전개(6)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소년감찰국 국장 주견하라고 해.”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남자 11명, 여자 10명, 총 21명의 소년 소녀들이 옛 야별초 본부 회의실에 모였다.
견하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고등학교 3학년생에게도 거리낌 없이 반말을 썼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그들을 ‘하대’할 수 있는 윗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해둬야 한다.
중학생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자기들끼리 모여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긴장한 얼굴로 각자 떨어져서 섰다.
회의실 바닥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견하가 지우지 말라고 특별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죽어간 그 노골적인 흔적은 공포를 주는 데 아주 좋은 효과를 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나잇대가 중, 고등학생 정도라는 견하의 판단은 이들에게 불행일까, 다행일까.
목숨을 건졌다는 측면에서는 다행이다.
견하는 아직 어려서 도저히 이런 일에 쓸 수 없는 영유아나, 그 습성을 알지 못하는 대학생의 목숨은 외면했다.
견하는 굳이 그들의 생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안타깝긴 했지만, 견하는 박애주의자가 아니다.
애초에 이 일은 리안의 이익을 위한 일이다. 견하에겐 복수심을 조금 충족할 기회이기도 했고.
이 학생들이 건질 목숨은 덤으로 받은 것이다.
“너희들이 할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그냥 학교에서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었던 일을 일기 정도의 형식으로 써서 매일 나한테 보고하는 거야.”
그 대가로 목숨도 살려주고, 남은 가족들이 지낼 집도 마련해줬다.
물론 이 공동주택은 여차하면 그들을 한 자리에서 편하게 몰살시키기 위한 울타리이기도 했다.
“교내 천손민족협회에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되었던 학생들의 뒤를 캘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 학생들 일은 특히 자세히 기억했다가 보고해야 해.”
견하는 눈앞의 아이들이 잘 듣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이 아이들이 신경 쓸 문제였다. 살고 싶다면 말이다.
애초에 그들에게 내리는 이 명령은 제대로 된 자료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자질에 대한 시험이었으니까.
견하는 그들이 쓸모에 미달할 경우 리안의 손에 맡겨버리면 그만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것. 너희들이 야별초 소년감찰국 소속이라는 걸 들키지 않도록 평소처럼 생활해.
물론 천손민족협회나 다른 조직에 붙어버리는 배신도 용납되지 않아. 너희가 너희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동주에게 가버린 사람들과 같은 부류라면, 말리진 않을게.
그럼 나는 너희들에게 원래 예정돼 있던 절차를 실행할 테니까.”
협박.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를 언급하며 자극한다.
화도 나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버리고 간 ‘기업가’ 아버지에 대한 적대의 씨앗도 뿌려졌다.
잘 키우면 그들은 평생 아버지의 그림자를 증오하면서, 그 증오를 제국 정부에 대한 충성으로 드러낼 것이다.
“보고 절차는 이런 식이야. 하교 후 집에 와서 생각나는 내용을 작성해. 그리고 1층 복도에 배치된 우편함에 넣는다. 간단하지?”
누굴 어느 학교에 배치할지는 이미 정해졌다.
20명은 각각 두 명씩 10개 학교에 배치되어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며 또 경쟁하기도 할 것이다.
나머지 하나, 고등학교 1학년 여자애 한 명은 견하가 따로 제1고로 배치했다. 직접 근처에 두고 쓸 생각이었다.
“인질로 잡혔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나 말고는 너흴 건드릴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해.
생활에 불편함이 있거나 하면 이야기해줘. 적절히 ‘처리’해 줄 테니까. 물론 너무 권한을 남용하지는 말고.”
견하는 턱 끝을 살짝 만지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건 이번에 새로 출범한 리안의 ‘당’ 이름이었다.
“아, 그리고 너희들 모두 ‘제국입헌당’ 당원으로 가입해야 해.”
***
“꽤 잘하네.”
‘참관인’ 운운하며 옆에 앉아 있던 루우가 소감을 말했다.
“그래? 난 너무 긴장해서 어설프지 않았나 싶은데.”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 같아서 소름 끼쳤을걸.”
“그렇다면 다행이고.”
루우는 교복 치마 아래 다리를 꼬았다. 허벅지 안쪽의 속옷까지 보일까 싶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견하는 어렵게 눈을 돌렸다.
루우가 계속 질문한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떠올린 거야?”
“그냥 해야 할 일을 찾은 거야.”
“정말 잘 찾네. 그 ‘해야 할 일’.”
“그저 주어져 있는 일이니까 찾는 게 수고스럽진 않지. 아까 말했잖아. ‘제국입헌당’이라고.”
“재미없는 이름이네.”
“그렇긴 해. 하지만 약칭이 ‘제헌당’이라는 장점이 있지.”
헌법을 만드는 당, 이라는 뜻도 된다. 영리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좀 얍삽한 수작이다.
“선거 때문에 시작한 일?”
“그래. 아마 투표권은 없겠지만, 여기서 새로운 당의 토대를 만들 거야.
학생들이 지지하는 젊은 태사, 대중을 끌어당기기엔 적당하다고 봐.”
견하는 전선을 시찰하던 리안의 청초한 소녀 같은 모습, 다친 병사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닌 누이 같은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사진과 삽화를 통해, 일종의 성녀(聖女) 같은 이미지를 대중에 선보이는 중이다.
“대학생들 인기를 얻으려면 공개토론 같은 데도 나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년의 옆얼굴을 보며, 루우는 왠지 거기 지성(知性)이 깃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삼 날렵해 보이기도 했다. 나쁘지 않았다.
“타고난 건지 아니면 보이지 않게 노력을 하는 건지…….”
루우의 중얼거림에 견하는 기운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름 열심히 공부 중이야. 고려는 지금까지 선거를 해본 적도 없고, 제국 정부 사람들 역시 어떻게 해야 대중의 인기를 끄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투표권은 갑자기 모두에게 주어질 거고…….”
자신은 리안이 믿는 얼마 안 되는, 아니 두 사람뿐인 측근 중 하나다.
“하지만 민국 정부에선 그 내부, 소수의 일이라 해도 선거 경험이 있지. 대중을 끌어들일 방안 연구도 많이 했을 거 같은데. 이대로 가만히만 있으면 언젠가는 선거에서 져.”
루우는 한쪽 발을 까딱거리다 물었다.
“민국 정부, 안세규 주석이 이걸 알고 어떻게 나올지, 그런 건 상관없어?”
“알아도 상관없어. 그래서 네가 여기 와서 보고 듣는 걸 말리지 않은 거고.”
“대비책이 있다?”
“글쎄.”
견하는 여기서 말을 아꼈다.
그리고 루우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내가, 주견하 네가 지금 보여준 모습이 꽤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서 제국 정부에 협조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래?”
“너, 일단은 그래도 임시정부 소속이었던 거 아니야?”
“계약관계야. 몽골에도 안세규 주석의 뜻에 동조하는 동지들이 있고, 나는 일종의 용병이자 경호로 파견된 거지.”
“‘뜻’이라…….”
어떻게든 민중의 권리를 확대하는 것이 안세규의 ‘뜻’일까?
“그런데 경호라니?”
“유능하긴 해도 어쨌든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주석은 젊으니까. 찬양보단 시기를 더 많이 받아.”
고려민국 임시정부 내 파벌 다툼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어떨까.
견하는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종합했다. 그리고 비약이긴 하지만, 결론을 한 번 내질러 보았다.
“혹시 말인데, 고려민국 임시정부에서 확보했다는 ‘황제 후보’는 지금…… 몽골의 그 ‘동지들’이 보호 중인 건가?”
루우는 웃었다. 두 번째로 보는 웃음이었다. 머리가 좋구나, 라고 그녀는 감탄조로 말했다.
“맞아. 나는 그 ‘거래’의 증거로 여기 왔어. 그 외에도 ‘이단’ 관련 지식 지원도 있지만.”
“그럼 몽골 측의 움직임도 그 ‘거래’와 관련이 있는 거겠네. 그러면…… 황제는 언제 고려에 선보일 셈이었던 거지?”
루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 잠시 생각해보더니 대답했다.
“글쎄…… 일단 내전과 선거가 끝나고, 헌법에서 황제의 지위에 관해 결정한 이후가 아닐까?”
***
“……이상이, 제가 루우한테 들은 이야기에요.”
“걔는 도저히 속을 알 수가 없어. 그 정보가 진짜기는 할까?”
효윤이 살짝 입술을 비죽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리안은 피식 웃었다.
“중장, 경쟁심이라도 드는 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자꾸 이쪽을 떠보려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효윤은 견하를 힐끔거렸다. 견하와 루우가 같은 교실에 있다는 것이 은근히…… 신경을 건드리긴 했다.
“자, 효윤이 의견도 일리는 있으니까, 루우가 민국 정부 측의 의도대로 우릴 기만하려고 가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은 접어두지 말자.
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황제 후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해.”
그 경우, 기만책에 역으로 기만책을 가해야겠지.
“하지만 루우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면, 이 정보는……”
“……‘귀띔’이겠죠?”
“그래. 우리보고 대비하라는 거겠지.”
리안은 조금 틈을 둔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음,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몽골에서 ‘황제 후보’를 납치해 올 수도 없고, 그렇다면 루우가 말한 대로 ‘헌법에서의 황제의 지위’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설정해두는 방식으로 대비를 해야겠지.”
효윤이 눈을 굴려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려면 일단 선거에서 이겨야겠네요.”
견하가 그 말에 끄덕였다.
“맞아. 가급적 크게 이길수록 좋겠지.”
압도적인 의석 차이로 승리한다면, 다른 변수가 없는 한 리안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법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하며 견하는 리안의 집무실에 오기 전에 생각해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선거일은 빨리 잡는 게 좋겠어요. 내전이 끝나기 전에 치를 수 있도록.”
효윤이 잠깐, 이라며 말을 가로막았다.
“내전 중이잖아. 이 와중에 선거를 치르자고? 내전을 확실히 끝내고 전국에서 선거를 치르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이런 거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승리가 확실해진 다음에 그걸 바탕으로 국민들 지지를 확보하는 게 좋지 않아?”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황제 문제가 급하니까. 그리고 내전이 끝나면 국민들은 그걸 ‘한 시대가 저물었다’고 판단할 수 있어.”
이를테면, 미승휴로 대표되는 세계대전 영웅들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생각한다든가.
“그러고 나면 ‘새 시대에 맞는 새 정부’를 찾기 시작할 거고, 내전에서 외교 방면에 큰 공을 세운 안세규 외무장관의 인기가 높아진다면 선거에서 불리해질 거야.”
안세규는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체제를 고려 제국에 소개한 인물로도 주목받을 것이다.
그런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효윤도 견하의 의견을 자기 나름대로 정리해본다.
“내전 중에 선거를 치른다면…… 아직 태사 각하에 대한 지지가 높은 상태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응. 사람들은 전쟁 중에 지도부를 갈아치우기보다는, 지금 지도부가 안정적으로 전쟁을 지휘하는 쪽을 바랄 테니까.”
“그렇다면 네 의견이 일리가 있겠네.”
효윤도 결국 견하의 의견에 동의했다.
동의하면서, 견하의 옆얼굴을 흘끔거린다.
소년은 어느새 리안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 열의에 차서 이야기하는 소년의 모습은, 생각보다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