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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35화 (35/541)

전개(1)

고려는 세계 제일이라 자랑할만한 철도망을 가졌어도,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한 탓에 철도의 군사적 활용에는 소홀했다.

군의 철도 운송을 담당하는 기구는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계획 수립과 철도성(鐵道省) 공무원들의 교육에만 전념했다.

실제로 철도를 통한 이동 훈련도 드물었고, 이렇게 중간에 누가 끼어들어 장난을 칠 경우에 대한 대책도 미비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군사 작전 관련 계획표가 민간인인 역장이나 철도 노동자들까지 다 볼 수 있는 곳에 놓여 있었단 말인가.”

동주는 혀를 찼다. 물론 한탄만 할 일은 아니었다. 금방 눈길을 지도의 서북부로 돌렸다.

“요란 떨지 마라. 유연하게 사고해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는 편제는 없다. 계획도 마찬가지다.

서북부는 인접한 부대들끼리 재편성한다. 필요하면 지휘관 중 일부를 진급시켜도 좋다. 오늘 내로 끝내라.”

지금부터 이어질 고된 일에 얼굴을 굳히는 참모들을 무시하고, 동주는 말을 이었다.

“우리 내부의 장난꾸러기들도 색출한다. 기관사와 기술자들을 징집하고, 기관실에는 장교가 반드시 동승한다.

재편성된 서북부 부대는 즉시 수도를 향해 수단 가리지 않고 진격시켜라. 동명을 포위 중인 우리 측 부대의 구원을 우선시한다. 몽골과의 교전은 무조건 회피하도록.”

참모 중 하나가 침을 삼키고 질문했다.

“동북부에 고립된 부대들은, 어찌합니까?”

“……버린다.”

침통한 목소리에 다들 말을 잃었다. 모두 그 침통함이 동주의 진심임을 안다.

동주는 부하를 소모품으로 여길지라도, 자신이 키운 그 소모품을 사랑하는 인간이었다.

“산동 총독 신수덕은 방어태세로 대기한다. 서부의 부대들은, 경계근무를 서는 인원 하나 남기지 말고 전부 수도로 보낸다. 역시 수단은 가리지 마라.”

“몽골군이 침입해오면…….”

“안 온다.”

“옛……?”

“서북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건 계산된 움직임이다. 저들은 안 온다. 아마…… 6주는 지켜보겠지. 우리는 그사이에 수도를 함락시키고 내전을 끝낸다.”

동주의 명령에 다들 반신반의하면서도, 명령 하달 체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한반도에서는, 청천강 방어선 구축은 중단한다.”

동주도 이번에는 잠깐 망설였다. 지도로 보면 동해와 황해가 만날 듯 좁아지는 곳, 여기서 북쪽으로는 계속 넓어지기만 한다. 개마 쪽 전선은 구멍투성이가 되겠지.

“둘로 나눈다. 하나는 삼한반도 내 태사파 부대의 편입, 무장해제, 또는 제거에 전념한다. 투항하지 않고 탈출하려는 적의 시도도 저지해라.

다른 하나는 압록강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북상해라. 북, 서, 남, 세 방면에서 수도를 친다.”

“하지만…….”

“이건 시간 싸움이다. 수도를 제압해야 제국 철도망을 완전히 장악하고, 몽골의 개입도 막는다. 태사가 광군사를 장악했다면 이제 광군도 동원할 거다.

그 전에 끝내야 한다. 태사도 수도를 잃으면 파멸이라는 걸 알 테니 심하게 저항하겠지만…….”

동주는 계산했다. 시체의 산을 이루고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얻는 건, 시체의 산보다 무거울 것인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수도를 함락시키면 이긴다. 실행하라.”

***

새벽의 차가운 공기. 내장이 김을 뿜는다.

간밤에는 서리가 내렸다.

그 위로 쏟아진 포격이 땅을 질척이게 했다. 군홧발들이 전진한다. 살점과 피와 내장과 진흙을 뒤섞으며.

“발 헛디디지 않게 조심해라. 그렇다고 느릿느릿 따라오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극북방위군의 한 병장은 후임에게 그렇게 주의를 줬다.

새벽이 밝았으니 오늘은 4월 13일. 어젯밤 극북방위군의 야간 공세는 성공적이었다.

“병장님, 생각보다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저 북쪽 끝에서 내려왔는데, 쟤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태사 각하께서 모든 철도 수송망을 우릴 위해 준비해 주셨다잖냐. 우리도 이제 그 뭐냐…… ‘혁명군’인가 뭔가 하는 거니까.”

“아, 같은 편은 철도로 빨리 올라오게 하고, 반대편들은 이동 못 하게 묶어놓고…… 그러면 이렇게 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두 병사의 대화처럼, 극북방위군의 이동은 허동주나 동명을 포위 중인 반란군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이거 봐라, 이거.”

부서진 참호에 들어서며 병장은 턱짓했다. 후임들이 몸을 낮추면서, 흘끗 진지를 돌아본다.

“우리 쪽 포병이 두들겨 부수기도 했지만, 애초에 이거 제대로 만들질 못했어. 그러니 이 지경이지.”

수도 동쪽 방면의 반란군은 도시 내 혁명군의 맹공격을 받아 수도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제대로 진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이를 극북방위군이 밖에서 공격해오면서 오히려 반란군이 역으로 포위당하게 됐다.

“얘들도 모르진 않았겠지. 예상은 했어도…… 도시 안에서 튀어나오는 태사군을 막을 진지랑, 도시 밖에서 들어오는 우리를 막을 진지, 둘 다 구축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겠지.”

안쪽에서 혁명군이 밀고 나오려는 걸 간신히 틀어막는 동안, 동명 근교에 도착한 극북방위군의 포진이 끝났다.

바깥쪽에서 포격이 쏟아졌다. 안 그래도 미완성인 진지가 부서졌다. 중요한 장비들도 망가졌다. 적지 않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옆 부대 애들 무전 얼핏 들은 건데, 걔들은 적 사단장도 사살했답니다.”

“에이, 설마 사살이겠습니까? 포탄 파편 잘못 맞아서 죽은 거 아니랍니까?”

“뭐 그랬을 수도 있고. 죽진 않고 부상만 입었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거 보면 반란군 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거야.”

“사기도 엄청 떨어졌겠지…….”

객관적인 전황의 불리함을 더 나쁘게 만드는 건, 절망감이다.

이 절망감은 고막이 감당하기 어려운 포성,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다는 두려움, 비명과 시체 혹은 시체에 가까워진 생존자들,

그리고 포위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 모든 요소가 진흙탕처럼 뒤섞여, 반란군 병사들의 사고를 가로막는다.

“돌격 준비하랍니다.”

무전병이 외친다. 병장은 피우려던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래. 야, 다 이긴 싸움이야. 죽지들 마라.”

***

아군이 극도로 유리하고 적군이 극도로 불리한 상황.

극북방위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돌격을 개시했다.

사령관 조유관은 돌격 명령의 하달과 그 실행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19년 전 고려민국 임시정부의 와해.

그때는 애송이 장교였던 자신도 고려민국 임시정부의 편에 서서 싸웠고, 결국 패배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고, 극북의 눈밭에 반사된 햇빛이 피부를 검게 태우는 동안, 그는 극북에 유배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혹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또 어떤 이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극북방위군의 기둥이 되었다.

지금 조유관의 명령을 받아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병사들은, 그때 함께 유배된 병사들의 후배나 자식 세대다.

“저들은, 왜 자기들이 춥고 척박한 땅에서 희망 없이 혹사당했는지 잘 알고 있지.”

그들에게 이 전투의 승리는 지긋지긋한 극북 유배의 끝, 거주지를 옮길 자유를 의미했다.

반대로 패배는, 가족까지 포함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러설 수 없었다.

덕분에 극북방위군 병사들은 높은 사기와 잔혹성을 발휘하며 공세를 펼쳤다. 반란군은 그들의 대검에 찢겨나갔다.

동이 틀 무렵이 되자, 조유관의 사령부로 낭보가 올라온다.

“반란군의 전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 돌파 성공이랍니다!”

“음.”

수염 속 입이 일단 잠깐 침묵을 지켰다.

“동명시 내에서도 태사군이 밀고 나올 테니 역포위를 당할 염려는 없겠지. 이대로 총공세다. 밀어붙여라.”

극북방위군 병사들이 수도로 진입한다.

그들은 수도 동명의 화려함에, 잠깐이지만 전투 중이라는 걸 잊었다. 그대로 갓 상경한 촌사람이 돼버린다.

“나중에 외출 실컷 내보내 줄 테니까 지금은 전투에 집중들 좀 해라!”

그런 그들을 다그치며 장교들은 시내로 진입했다.

저 앞에 다른 부대가 보였다.

무전을 통해 그들이 태사군, 혹은 자칭 혁명군임을 식별했다.

“어차피 태사 자신의 권력을 위한 내전 아닌가. 무슨 혁명이라는 건지…….”

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선 안될 말을 중얼거리며, 극북방위군 측 장교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저쪽에서도 장교가 걸어왔다.

홀로, 손에는 무기 없이.

터벅터벅 발소리만 울리며 다가간 그들은 악수를 나눴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살았습니다.”

“잘 버티셨습니다. 마무리 소탕에 착수합시다.”

속에 품은 생각이야 어쨌든, 두 장교는 이 만남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지 않도록, 예의 바른 인사를 주고받았다.

***

극북방위군 사령관 조유관은, 적어도 황궁까진 가야 제국 정부의 요인들을 만나리라 예상했다.

때문에 그는 측근들을 데리고 전선까지 마중 나온 태사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태사의 모자와 상의는 대원수의 검은 제복이다.

하지만 하의는 검은색 미니스커트다. 여기에 검은 스타킹의 윤기가 허벅지를 도드라지게 한다.

모자 아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며시 흔들렸다.

‘계집의 값싼 미인계인가, 아니면…….’

하나의 시험인가. 조유관의 예리한 감각은 미리안의 의도를 바쁘게 읽어냈다.

‘이런 미인계에 넘어가거나, 혹은 여자라고 얕볼 정도로 저능한 인간이라 판단되면…… 제거할 심산인가.’

조유관은 태사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무덤덤한 얼굴로 경례를 올렸다. 리안도 그 경례를 받아줬다.

조유관은 자신의 판단력을 칭찬했다.

태사의 얼굴은 중학생처럼 자그맣고 귀여웠지만, 모자챙 아래에서 자신을 쏘아보는 눈빛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안은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밀었다. 조유관은 그 손을 맞잡았다.

“중장 조유관.”

“이제 대장입니다. 작전 진행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간단한 말 몇 마디를 던지고 리안은 뒤쪽의 장교에게 손짓했다.

소령이 작은 상자를 들고 왔다. 뚜껑이 열린 상자 안에는 대장의 계급장이 들어 있었다.

조유관은 갑작스러운 진급에 잠시 당황했다. 리안은 그런 조유관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손수 견장을 갈아 끼우기 시작했다.

질문에 답하라는 시선이 던져진다.

상급자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의무가 퍼득 떠오른 조유관은, 전문가 다운 견해를 전했다.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북쪽과 남쪽을 포위한 반란군이 자기네 아군 구출을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안쪽에서 남북 방향을 밀어내면 도움을 드릴 수 있겠군요.”

앞으로의 작전을 의논하는 간단한 대화가 오고 갔다.

“오늘 저녁 황궁에서, 사기 진작과 단합을 위한 만찬이 열릴 예정입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차린 건 별로 없겠지만, 꼭 참석해주시길 바라요.”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조유관은 태사를 배웅했다.

도시 남쪽과 북쪽을 겨냥한 포진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조유관은 이 만남을 곱씹었다.

‘나이에 비해 꽤 하는군.’

다른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계급을 받고 경례를 올렸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한낱 의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 공식적인 행위는 다른 마음을 품는 데 제약이 된다.

거기에 더해, 혹시라도 극북방위군이 황궁으로 진격해 정권을 탈취할 가능성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구 민국 정부의 사병이 될 염려도 어느 정도 지웠다.

어떤 상황이든 주도권을 쥐려는 집념 하나는 대단한 여자다.

조유관은 19년 전 일의 복수, 그때 죽어간 동지들의 꿈,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떠올렸다.

마음 한구석에선 제국 정부에 대한 반발심이 꿈틀대고는 있다. 이것들은 아마 죽는 날까지 조유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리라.

다만, 그 이상의 실현이 먼 훗날일 것이리라는 슬픈 예감이, 조유관의 입가를 처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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