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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3화 (13/541)

친위 혁명(4)

리안은 황궁을 완전히 제압하고, 자운전에서 ‘혁명 사령부’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 뒤 혁명군 전원을 진급시켰다. 김천열은 중장이 되고 배영훈은 소령이 되는 식이었다. 효윤의 진급도 이때 같이 이뤄졌다.

리안은 이 진급을 통해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에겐 그만한 보상이 따름을 명백히 밝혔다.

뒤이어 리안은 허동주 편에 가담한 것이 확실시된 장병 전원의 계급을 박탈했다.

이로써 ‘법적으로’ 허동주의 군대는 그냥 ‘무장 강도’가 됐다.

공석이 된 자리에는 충성파 사람들을 채워 넣었다. 이 조치는 충성파와 반역파 간의 골을 깊게 파서 내통의 가능성을 없애고, 진급에 대한 열망으로 장병들의 호승심을 드높일 것이다.

그 외에도, 이 ‘확실한 보복 조치’로 허동주의 세력에 누가 더 가담하는 걸 막는 효과도 기대할 만했다.

아직 각 군의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은 중립을 지키며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들이 리안을 지지하게 하지는 못해도, 일단은 저쪽에 붙지도 못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의 중립 때문에, 황궁 전투 이후에도 허동주와 리안은 서로 노려만 보고 있다.

그 밖에도 예비군 동원 권한을 쥔 ‘광군사’나, 정치경찰인 ‘야별초’ 역시 뚜렷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섣불리 건들기도 어려워서, 혁명군은 여차하면 제압할 준비만 해 놓고 감시 중이었다.

리안은 테이블 위에 놓인 조간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 첫 면에 실린 사진에는, 침대에 의식을 잃은 채 누운 견하와, 옆에서 간호에 전념하는 리안의 모습이 잘 나와 있었다.

태사부가 붕괴하자마자 서둘러 신문사들을 장악한 보람이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전선의 병사들을 간호하는 성녀’ 이미지를 선전해 나가면 큰 도움이 되겠지.

라디오를 통한 리안의 육성 방송을 막겠다는 허동주의 의지는 대단했다. 방송 시설이 있는 태사부를 건물째 날려 버린 것도 모자라, 황제의 집무실인 현통전(賢統殿)의 설비들도 모조리 망가뜨리고 도주했다.

그 설비들은 전시에 황제의 ‘국민 사기 고무’ 목적으로 배치된 것이었다.

태사부 건물이 붕괴하자마자, 리안은 부대를 파견해 기자들과 시설을 ‘보호’했다. 신문사들마저 허동주의 손에 넘어갔다면 정말 곤란해질 뻔했다.

오늘 ‘보호’의 결과물을 읽어 보니 따로 ‘검열’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각하는 더 주무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나는 괜찮아. 이 상황에서 더 자면 게으름이지. 슬슬 루우와 약속한 시각이기도 하고.”

효윤은 끄덕였다. 홀연히 나타났던 소녀는 황궁 장악 작전이 성공하자, 또 홀연히 사라졌다.

오늘, 그러니까 4월 3일 이 시간에 자기네 주석과 함께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체가 뭐든, 묘한 애였다.

리안은 눈을 들어 침실 천장의 화려한 장식을 바라봤다. 지금 이렇게 리안, 효윤, 견하 세 사람이 쓰는 세린전은, 본래는 황제를 위한 침전이다. 그 앞에는 황제가 집무를 볼 공간인 현통전이 있다. 또 그 앞에는 조례와 사절 접견, 열병식 등 행사를 하는 자운전이 있다.

전화가 울렸다. 효윤보다 리안이 먼저 손을 뻗었다.

“아, 소령인가. 나만 편히 쉰 건 아닌지…… 미안하게 됐군.”

효윤은 방에 전화를 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저렇게 맨다리와 속옷을 다 드러내 놓고 누군가와 접견했다면 어떤 그림이 펼쳐졌을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래. ……잘 수습했나. 그럼 계속 수고하도록. 부탁하지.”

전화를 끊고 리안은 양손으로 눈꺼풀 위를 문질렀다. 염려했던 일인데 잘 풀려서 안도감이 밀려온 듯했다.

어젯밤 작전의 마무리는 피 말리는 작업이었다.

일종의 ‘전선 정리’를 해야 했다. 자운전에 놓인 작전도를 뚫어지라 들여다보며 중구난방으로 밀려오는 정보를 종합해 나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반란군에 길이 막히거나 포위된 부대는 우회시키거나, 혹은 다른 부대를 보내서 구출해 오도록 했다. 각 부대는 선제공격을 자제하면서, 위압감만으로 적이 길을 비키게 하는 어려운 과제를 맡았다.

혹시라도 추가 교전이 발생하면 본격적인 내전의 막을 올리기 위해, 리안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묘연한 허동주의 행방도 리안의 신경을 갉아 먹었다.

다행히, 황궁 외 구역에서는 큰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다. 허동주가 아직 지휘 체계를 바로잡지 못한 탓인지, 반란군은 놓친 혁명군 부대를 추격해 오진 않았다.

그렇게 동이 틀 무렵에, 혁명군은 황궁과 동명역을 중심으로 한 수도의 중심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외곽을 포위한 반란군과 대치하는 구도가 완성되었다.

그 후로는 몇 시간 동안 별다른 상황 변화 없이 으르렁거리는 중이다. 숨어 있던 관료들 몇몇이 입궐한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랄까.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리안이 배영훈 소령을 시켜 ‘수습’하게 한 일……. 그것은, 견하 부모님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허동주 놈의 행방에 대한 보고는 없었지?”

“예. 아직은요.”

리안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또 배영훈 소령이었다. 이번엔 효윤이 리안보다 좀 더 빨리 손을 뻗었다. 그러나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곤 한동안 듣기만 했다.

“……그래……? 자운전에? 의외군. 아니, 대담하다고 해야 하나. 알겠다. 바로 가지.”

전화를 끊은 리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는 자신의 블라우스와 두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리안은 의문이 담긴 시선을 보내는 효윤을 향해 말했다.

“치마 좀 갖다주겠어? 자운전으로 나가 봐야겠어.”

***

자운전으로 나가니, 그곳의 거대한 옥좌 앞에서 관료와 장군들이 한 남자와 소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소녀는 어제 만났던 루우였고, 하얀 전통 예복을 걸친 남자는…… 아마 고려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라는 자일 터.

지난번처럼 홀연히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엄천문으로 정면에서 당당히 들어왔다.

수행원이 루우 한 사람이라는 점도 의외였다.

아니, 루우의 강함을 생각해 보면 의외는 아닐지도. 효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리안 뒤에 바싹 붙었다.

리안은 안경 너머로 차갑게 번뜩이는 주석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생각보다 젊었다. 많아 봐야 서른일까? 머리카락은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빗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이다.

리안은 남자의 앞으로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마주 잡았다.

“고려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안세규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다니 기이한 인연이군요, 태사.”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군인들이 자신의 용맹을 강조하기 위해 내는 소리와는 달랐다. 타고난 목소리였다.

“태사 미리안이에요. 기이하긴 해도 필요한 인연이죠.”

“동의합니다.”

“일단 앉으실까요? 아, 여러분도 앉으세요. 상황을 설명해 드리죠.”

의심과 불안, 적개심이 공기 중에 흘렀다.

일단은 모두가 탁자 주위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어제 작전이 마무리된 시점의 거대한 작전도가 놓여 있었다.

리안은 자신이 앉은 상석과 마주 보는, 북면한 자리에 안세규가 앉도록 했다.

협력 관계를 맺게 된다고 해도, 리안은 그와 대등하게 보이고 싶진 않았다. 일인자의 자리를 내놓지 않는 건 물론이다.

안세규가 자리에 앉고 루우가 그 뒤에 서자, 가벼운 술렁임이 퍼졌다.

“다들 좀 놀라셨을 텐데, 저는 여기, 고려민국 임시정부와 오랜 반목을 끝내고, 평화적인 협력 관계를 맺을까 합니다.”

장군 중 누군가 입을 열려 했지만 리안은 손을 들어 가로막았다. 효윤이 박도를 꺼내 세우자 술렁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제까지 테러 집단으로 규정해 온 자들과 손을 잡다니 제정신인가……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리라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여기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허동주의 국가 전복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 또 다른 싸움을 벌일 순 없습니다. 타협이 가능한 쪽과는 평화협정을 맺고, 허동주와의 싸움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김천열은 구레나룻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리안에게 발언 허락을 구했다. 리안은 허락했다.

“전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각하의 판단은 지극히 옳습니다만, 저들은 이른바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온상입니다. 저들의…… ‘붉은 경향’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리안의 결정에 실망해 배신할지도 모른다. 김천열의 우려는 일리가 있다.

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서야, 사람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지도력을 보이는 소녀가 상당한 미인이라는 걸, 새삼 의식했다.

그리고 미소녀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정객의 모습을 더욱 뚜렷이 의식했다.

“솔직해집시다. 근 2년 사이에, 대학가에서, 그리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건 사실이에요. 지금 같은 상황만 아니라면, 억누르면 그만이겠죠.”

선대 태사 때까지만 해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불편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얼굴에 당혹이 스친다.

“하지만, 허동주가 먼저 그들의 열망을 이용한다면? 허동주는 천손민족협회라는, 강력한 대중 선동 조직이 있어요. 그가 자신이 ‘민중’의 열망을 한 몸에 받는다고 선동하기 시작하면, 노동자의 힘으로 귀족 사회를 부수자고 하면, 그걸 어떻게 막을 겁니까?

장병들에게 자기 부모와 형제를 사살하라고 할 겁니까?”

리안이 대학에서 얻은 게 있다면, 바로 대학가의 공기를 읽어 내는 능력일 것이다.

모두 말이 없었다. 설령 우매한 민중의 난동이라 괘씸하게 여긴다 해도, 이게 그들이 처한 현실이다.

내전은 현실주의자에게만 생존의 기회를 준다.

“뭐 그 밖에도, 외교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일본이나 아즈텍이 우리의 정통성 대신 허동주와의 타협을 우선시하면 곤란해집니다.

그러니 그들의 체제, 그들이 좋아하는 민주주의자들과 손을 잡아서 개입의 가능성을 낮춰야 합니다. 이게 세 번째 이유입니다.”

관료 중 한 명이 발언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리안이 아니라 안세규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당신네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사회주의 계열은 ‘혁명’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텐데, 지금 시점에서 협력하겠다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와 허동주가 싸우다 지쳤을 때, 그때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 기회 아닙니까?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의 지도부는 그렇게 무굴제국을 무너뜨렸고, 또 그런 방법으로 해외의 사회주의 정당들을 지도할 텐데요?”

안세규는 쓰게 웃었다. 생각보다 소탈한 웃음이라고, 효윤은 생각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정파도 일부 있습니다. 인정하지요. 하지만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 나타난 건, 국가 그 자체가 멸망할 위기를 함께 타파하기 위함입니다.

사회주의 이론이니 뭐니,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이 위기에 대처하려면, 최대한 빨리 내전을 끝내야 합니다.”

웃음기를 거두고, 안세규는 두 손을 모았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붕괴, 대공황이 머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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