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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5화 (5/541)

계기(2)

“허동주에겐 ‘살무사 중사’라는 별명이 있어. 그 인간이 말단 병사로 경력을 시작해서, 세계대전 때는 최전선뿐만 아니라 적 후방의 특수작전까지 지휘하면서 얻은 별명이지. 군사 방면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야.”

덕분에 허동주는 태사 미승휴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민심을 얻었다. 그도 전쟁 영웅이니까.

“게다가 뛰어난 사상가이기도 하지. 전쟁 중에 체득하고 발전시킨 건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민족주의와 군국주의를 결합하고 발전시켜서…… 상당한 지지 세력을 확보했어.

백부님이 건재하실 때도, 나라의 3분의 1은 허동주의 것이었어. 이제는 지지 집단을 ‘천손민족협회’라는 단체로 조직화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그 인간이 고려를 장악하는 속도는 더 빨라질 거야.”

견하도 알 것 같았다. 다름 아닌 그의 친구, 한재연이 천손민족협회의 열성 회원이다. 허동주의 세력은 그의 일상까지 뻗어 왔다.

“참전 경력. 오랜 세월 쌓은 국정 경험. 동지들과 국민의 지지. 그뿐만이 아니야. 그 인간의 ‘문하시중’이라는 직함도 문제야.”

태사 미승휴가, 허동주의 공적과 세력을 고려하여 준 ‘문하시중’이라는 관직.

그 관직 덕분에 ‘허동주는 태사 아래, 이인자’라는 인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박혔다.

하지만 이인자는 일인자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큰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태사는 명예직이고, ‘법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재상’은 문하시중이다.

“이 점이 권력 핵심에서 부각되면, 내가 모든 권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야.”

목소리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돌려 버린 옆얼굴도 쓸쓸해 보였다.

견하는 연민이 이는 한편으로, 의문도 들었다. 왜 리안은 저런 이유로 상심하는 걸까. 그 또래 여자애들 대다수는 ‘권력’ 같은 것 없이도 잘 사는데.

“이런 질문을 하면 불손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견하가 말을 꺼내자, 리안과 효윤 모두 그를 바라봤다. 그런 주목이 조금 겸연쩍었다.

“저는 왜 허동주가 아니라 태사 각하여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참전군인 나름의 원칙으로 태사 미리안을 지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견하는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권력이나 정치와는 인연 없이 살아갈 것이기에.

그리고 리안 앞에서 말할 순 없지만, 허동주가 미승휴를 죽였다 해도 견하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친구, 한재연에게 해가 될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해를 끼쳐야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동주와 추종자들은 전쟁을 일으킬 거야.”

견하는 “네?” 하고 의미 없는 소리를 냈다.

“재작년 일이야. 중서문하성 지하 벙커에서 비밀회의가 있었어. 내가 그 내용을 입수한 건 얼마 전의 일이고.”

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래. 일단 몽골과 외교적……이라고 해도 강압적인 합병을 하고, 1차로 키타이, 낭키아스 등과 전쟁을 일으켜 병탄한다.

이 1차 확장 계획에는 더 섬뜩한 이면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최소 2억 이상의 한족을 학살한다는 내용이 있어. 적어도 지금 우리 식민지인 산동에서 천만 명은 죽을 거야.

독가스의 개량 연구비 지원은 이미 이루어졌고, 새로운 형태의 수용소는 설계도까지 나왔어.”

말을 할 수가 없다.

견하가 알기로는 이 아파트에도 한족들이 몇 가구 산다. 정치가들은 그들을 죄다 죽일 계획을 세웠단 말인가? 왜?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2차 확장 계획에는 베트남, 라타나코신, 마닐라, 마자파히트…… 일본공화국이 포함됐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자원을 확보한 뒤, 해군을 증강한다는 계획이야.

3차 계획은 더 가관이지. 그렇게 증강된 해군으로 태평양에서 아즈텍 연방과 대결하여 패배시킨다, 그래서 제1의 강대국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꿈같은 환상을 결론이랍시고 내놓았어.”

리안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한숨의 밑바닥엔 경멸이 깔렸다.

“웃긴 건 4차, 5차 확장 계획도 있다는 거야.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 로마 제국, 신성 제국이 그 대상이야. 규모로만 따지면, 두 번째 세계대전이지. 수많은 청년이 죽을 거고 나라의 재산은 거덜 날 거야. 오직 허동주만 행복한 세상이지.

아니, 그자도 끝까지 행복할 수는 없을걸. 애초에 3차 계획부터 현실성이 없어. 우리는 아즈텍 연방을 못 이겨. 아즈텍과의 전쟁에서 나올 결과는 패망뿐이야.”

리안은 일어섰다. 효윤도 일어나 리안의 초조한 옆얼굴을 지켜보았다.

“‘국력의 차이는 정신력으로 극복한다’니. 그따위 계획을 백부님께 들이밀었으니 당연히 노발대발하실 수밖에.

그때 백부님께는 동명에서 칸발리크까지 이어지는 메갈로폴리스의 건설, 그 사업을 통한 경제 육성 정책이 최우선 과제였어. 그런 정신 나간 계획에는 단 한 푼도 쓸 수 없다고 소리치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지셨지.

허동주의 짓이야.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까 저지른 거야.”

갑자기, 리안은 견하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움켜쥐듯, 양 손바닥으로 견하의 얼굴을 감쌌다.

심장이 고동쳤다.

입을 맞출 듯 가까이 가져다 댄 얼굴, 그 눈동자를 보며 견하는 굳었다. 그것은 몇 시간 전, 효윤이 리안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전율이었다.

“잘 들어, 주견하 군. 그자들은 미쳤어. 막아야 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먹는 최고 통치자. 그녀는 식사 자리에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레 앉았다.

리안은 작게 크으, 소리를 냈다.

견하도 국물을 먹어 보니, 역시 크으 소리가 날 만큼 칼칼한 찌개였다. 뚝배기 구석에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목으로 넘길 때 고생하기 싫다면 잘 식혀서 먹어야 했다.

밥 위에 국물을 끼얹어 잘 스미게 하고, 숟가락과 그릇 사이에 밥을 누르듯 퍼 올리면, 알맞게 입을 채우는 부피, 밥알의 씹는 느낌, 국물의 매운맛이 만족스러운 식감을 선사했다.

달걀옷을 입힌 애호박전을 간장에 찍어 베어 물고, 잘 익은 깍두기를 집어 아삭아삭 씹었다. 양념이 지나치게 많지도, 설익지도 않은 좋은 맛이다. 이 무렵 깍두기는 아버지와 견하 모두 좋아하는 반찬이다.

식탁 위엔 딱 이 정도만 올라왔지만, 리안도 효윤도 맛있게 잘 먹었다.

“견하 군은 내일 저와 함께 제1대학교로 갈 거예요. 말씀드린 대로 제1고등학교로 전학 절차를 밟고, 기숙사도 배정받을 거고요.”

그냥 구 이름을 딴 다른 학교와 달리, 제1고등학교는 제1대학교 부지에 있는, 부속 고등학교 격인 학교다.

리안은 여기서 묵으며 식사까지 대접받은 답례로, 견하의 전학을 제안했다.

제1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태사 아래 자그마한 직함을 맡긴다. 그다음, 공직자의 대학 교육 보장 제도를 통해 제1대학교에 진학하게 할 계획이었다.

“……불법은 아니죠?”

“옛날 제1제국이나 제2제국 때, 문벌 귀족, 권문세족의 혜택을 이용한 거야. 세계대전 때 귀족 계급이 거의 전멸한 후로는 백부님이 부하들을 위해 쓰셨지만.”

귀족이라는 신분의 존재를 느껴 본 적이 없는데, 법으로는 여전히 남아 있을 줄이야. 황제는 없지만, 여전히 구제도가 영향을 끼치는 걸 보면, 이 나라는 확실히 ‘제국’이 맞나 보다.

어머니는 견하의 진학 보장에 뛸 듯이 기뻐했다. 다만 아버지는 이렇게 덧붙였다.

“태사 각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신중해라.”

‘신중해라’라는 말. 태사의 제안을 거부할 수도 없고, 아들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도 없던 아버지가 택한 절충안이다.

어머니는 한껏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일 당장 기숙사로 옮기려면 준비할 게 많겠다. 속옷이랑 양말부터 챙겨야겠네?”

“급히 쓸 생활용품 외에는 짐을 많이 꾸리지 않아도 돼요. 웬만한 물품은 제가 준비시키고, 교복도 일단 지금 것을 입다가, 거기서 맞추면 되니까요.”

“어머, 역시 명문…….”

미리안은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수저를 가지런히 내려놓고,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품위 있고, 예의 바른 미소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입에 맞으셨을지 모르겠네요…….”

“아주 맛있었어요. 태사부 식사보다 훨씬 나은걸요.”

물론 제국 최고 수준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보다 맛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 같은 칭찬도 때로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견하 어머니의 정성에 진심으로 감사함이, 그 말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말은 이처럼 거짓 속에 진실을 담기도 한다.

견하는 놀라운 기백을 뿜던 여자와 지금의 리안이 동일인인지 의아했다. 지금 리안은, 그저 예절 교육을 잘 받은 소녀로 보일 뿐이니까.

실제로 예절 교육은 잘 받았겠지만.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태사가 아니라 평범한 여자애 같다는 거지.’

최효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곧 식사를 마쳤다. 어머니는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견하도 어머니를 도와 반찬을 정리했다.

아버지가 리안에게 묻는다.

“그럼, 두 분, 저희 부부가 거실에서 잘 테니 안방에서 주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저희가 거실에서 자겠습니다.”

“하지만 각하, 발코니부터 부엌까지 트인 곳에서 주무시는 건…… 경호하는 입장에서는 반대예요.”

처음으로 효윤의 목소리를 들었다. 엄청 무뚝뚝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쾌활한 목소리다. 리안과 효윤 두 사람이 목소리를 바꾼다면 딱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음, 그럼…….”

견하는 접시를 건조대 위에 올려놓으려다 멈칫했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 왠지 돌아보지 않아도, 리안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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