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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92화 (292/300)

#292. 여덟 개의 죄 (3)

“다들 오래 기다렸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다시 니오프론의 갑판 위에 서 있었다.

감격 어린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새삼 ‘진짜’ 세상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 미친 용사 놈이! 진짜로 해냈구나. 혼자 싸우겠다고 고집부리길래 내심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어. 내가 얼마나 영웅적으로 싸웠는지 너희들이 봤어야 했는데.”

그러자 인형에서 본래 크기로 돌아온 뚠이 내 어깨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그렇게 영웅적이진 않았는데, 방장?”

“아앗! 넌 화룡도 7번 방의 뚠 아티르?”

“오, 오랜만이에요. 제르비어스 층장님.”

“내가 층장이었던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어. 뭘 또 새삼스럽게. 그런데 슈바인 놈이 영웅적이지 않았다는 건 무슨 소리야?”

“사실 방장이 꿈속에서 뭘 했냐면 축구라는 공놀이를…… 으아앗!”

뚠이 질겁해서 내 손길을 피해냈다.

젠장.

작정하고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는데 녀석이 영체로 불려왔다는 사실을 잠깐 깜빡했다.

무지막지하게 강해진 내 힘으로도 뚠의 입을 막을 순 없었던 것이다.

‘꿈속의 아스티나에게 고백받았다는 말은 죽어도 나오게 해선 안 돼.’

그런데 정작 아스티나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뇌신 지드를 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말이 맞았지? 나는 쟤를 믿고 있었다고.”

“크흠. 그래. 그건 본인의 판단이 틀렸군. 일단은 아가씨에게 사과하도록 하지. 설마 니오프론의 절대영역에서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는 죄수가 있을 줄은 몰랐네.”

뭘 사과한다는 건지 물어봐도 둘은 그저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 순간 방주에 가까운 니오프론의 배를 둘러싸고 심상치 않은 파동이 일어났다.

촤아아아아악!

타천의 강물이 격렬하게 요동치더니 까마득히 높은 파도가 일어난 것이다.

토니아가 흠칫 놀라며 경고했다.

“타천 죄수들이 다시 몰려오는 걸까?”

그 말에 반박한 것은 지드였다.

“그럴 일은 없다. 이곳은 강의 최상류. 타천한 녀석들이 몰려들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층장이 그것을 가만 놔두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층장이 죽었잖아. 니오프론의 부재를 깨닫고 모여드는 거라면?”

“그러기엔 시간이 맞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정밀한 기계의 감식안이다.

내 시선을 느낀 레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생명체의 반응은 없습니다, 관객님. 저것은 강물이 스스로 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결은 어느덧 파도를 넘어서 해일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배의 주변에 장막을 치듯 솟아오르는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감했다.

“다들 긴장하지 마. 나는 이런 걸 많이 겪어봤거든. 그 녀석이 나타나려는 거야.”

파도의 융기가 멈추었다.

해일의 꼭대기에서 강물이 흘러내리는 것과 솟아오르는 것이 정확히 평형을 이루는 상태가 된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봤다면 해일의 교차점에 이 배가 놓여 있는 셈.

즉, 십자가 모양이다.

[8층의 교도관 ‘숭배를 강탈하는 십자가’가 화신체를 만들어냅니다.]

타천의 강가를 관장하는 교도관.

놀랍게도 녀석의 화신체는 삵이나 뱀, 물건 등이 아니었다.

‘강물’ 그 자체였다.

“등반죄수 슈바인 스트링거. 지난번에 그대를 무시했던 것에 먼저 심심한 사과를 표하지.”

“심심한 사과 말고 짭짤한 사과를 원하는데?”

“원한다면 얼마든지 몇 시간 동안 사과를 할 수 있겠으나 그대를 둘러싼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거다. 현재 8층은 무주공산. 순리대로라면 새로운 층장인 그대가 다른 죄수들에게 자신의 율법을 강요할 순간이 와야 하겠으나…….”

일이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건 교도관도 나도 알고 있는 사실.

“그대는 최종층인 9층으로 올라가려 할 테지. 맞는가?”

“그래.”

“번복할 기회는 지금뿐이다. 알다시피 나는 8층 타천의 강가를 지배하는 교도관. 지금껏 그대가 만나온 다른 교도관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오직 나만이 ‘탈옥’의 자격을 갖춘 죄수를 최종층으로 올려보낼 수 있지.”

나는 침묵을 유지한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스윽 둘러보았다.

“번복 따윈 없어. 내가 탈옥의 의지를 너희에게 표명한 건 1층 화룡도에서부터였지.”

“상황이 달라졌지 않은가. 지금 그대는 무려 8개의 열쇠를 쟁취한 ‘수왕’이 되었으니까. 푸르가토리움 전체를 뒤져봐도 이젠 그대에게 대항할 강자가 존재하지 않을 거다.”

“변변찮았던 옛날과 다른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나는 감옥의 권력 구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오직 탈옥만이 내 목표다.”

“……그런가. 예상대로군. 어쩌면 다른 죄수의 우위에 서려는 욕망이 전혀 없는 그 태도야말로 그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의 본질이겠지.”

순간 숭배를 강탈하는 십자가의 존재감이 강렬해졌다.

“이 강물의 장벽으로 그대가 무사히 8층을 떠날 수 있도록 가호하겠다. 이 권능 행사엔 죄수뿐 아니라 다른 교도관들조차 끼어들 수 없으리라.”

지금껏 봐온 어떤 포탈보다 거대한 포탈이 갑판 위로 솟아올랐다.

지드가 숨을 들이마시는 게 보였다.

“가라, 등반죄수여. 그대가 탈옥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지막으로 구경하는 포탈이 될 것이다.”

나는 지드에게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와 같이 가지 않을래?”

“자네들과 내가?”

“나는 한 층에 한 명씩 친구를 데리고 다음 층에 올라갈 수 있거든. 당신도 나만큼이나 탈옥을 바랐던 거 아니야? 이 층에서 우리를 도와주기도 했고.”

지드는 내가 내민 손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친구가 되기만 하면 그토록 바랐던 최종층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니까.

보통의 죄수도 아니고 신격에 오른 자. 봉마연옥에 갇혀 받는 고통이 곱절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내 손을 잡지 않았다.

[죄수 지드가 친구신청을 거부하였습니다.]

나는 그의 선택에 연유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니까. 내 손으로 니오프론의 숨통을 끊지도 못했고, 벨리오나의 죽음을 막지도 못했지.”

“자존심 때문이야?”

지드의 입가에 웃음꽃이 폈다.

하지만 그건 내 말에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거 알고 있나? 나는 신격에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네. 수렴형과 방출형. 필멸자들의 꿈을 먹고 자란 니오프론이 수렴형 신격의 최강자라 할 수 있겠지.”

“당신은 번개의 신이니까 방출형이라는 건가?”

“그래. 내 절대영역인 구름 속 자기장에서 전기를 방출하는 거지. 그리고 그게 내 본질이다. 그래서 자네의 업적에 무임 승차할 순 없어. 번개의 신이 불완전연소에 만족하면 웃긴 일이니까.”

내가 다음 층으로 올라가면 지드는 다시 남겨진 죄수들과 공평한 위치에서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만족할 만큼 야망을 ‘방출’ 하겠지.

나는 내민 손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내.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업겠지만.”

“자네가 탈옥에 성공하면 그리되겠지. 부디 그리되길 빌겠네.”

지드와 작별한 뒤 나는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왔다.

모두가 포탈 앞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어코 여기까지 왔네.”

“그래. 용사 놈아. 이제 마지막 층만 남았다.”

“휴식을 취하지 않아도 되겠어? 니오프론에게 죽을 뻔했던 거 아니야?”

“여러 번 죽을 뻔했지. 하지만 전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어. 지금 내 컨디션은 최고조야.”

그 말엔 거짓이 없었다.

꿈의 신을 꿈속에서 해치웠다. 그 고양감과 자부심이 혈관 속에 맥동하는 게 느껴졌다.

무엇이 내 앞을 가로막든 다 때려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가볼까. 대망의 마지막 층으로.”

그렇게 우린 포탈 너머로 뛰어들었다.

*

“……네가 그렇게 떡하니 앉아 있으면 방금까지 각오를 다진 게 우습잖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제 대답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군요.”

만골사막과 천공섬을 건너뛰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공간이 있었다.

바로 층간구역.

익숙한 식탁 앞에 곰 인형이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 네가 했던 말이 어디 한두 마디였어야지.”

“제가 한가한 몸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강림하는 것에는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잖아요? 여러분과 이 장소에서 만나는 것도 마지막이겠지만…… 뭘 하시는 거죠?”

아스티나가 곰 인형의 귀를 쓰다듬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며? 그러면 이제 더는 못 만질 거잖아.”

“……그거 압니까? 당신들은 전부 슈바인 스트링거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어요.”

“글쎄. 모르겠는데.”

“그 말 취소해라, 교도관장!”

잠시 격분하는 제르비어스를 캉이가 말리는 소동이 일어났고,

그들을 뒤로 물린 뒤에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어때. 약속했던 대로 난 여기까지 왔다.”

“고생하셨다는 칭찬이라도 원하시는 건가요?”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네 반응이 궁금했던 건 사실이니까.”

나는 여덟 개의 불빛이 원을 그리고 있는 손등을 교도관장에게 들어 보였다.

“이제 딱 하나 남았다. 9부 능선을 넘긴 거지.”

“잘못된 표현입니다. 최종층의 열쇠는 그대가 지금껏 모아온 여덟 개의 열쇠를 모두 합친 것보다 난이도가 높을 테니까요.”

“그래? 그것 무척 궁금한데.”

곰 인형의 플라스틱 눈알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소용없습니다, 슈바인 스트링거. 그렇게 우회해서 다음 층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 해도 제 입이 열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쳇. 간파당했나.”

8층 타천의 강가는 확실히 위험한 장소였다.

하지만 등반 도중 설공이나 지드, 벨리오나처럼 8층의 죄수들과 엮이면서 마음의 대비를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최종층인 9층은 아무런 정보가 없다.

파천황 르팔타커스도 내게 최종층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냉장고를 빤히 쳐다보자 교도관장의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열어봤자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그래? 확인해 봐도 되지?”

거짓이 아니었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애초에 지금까지 층간 구역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던 기운 또한 감지할 수 없었다.

“당신이 기원검 네메시스를 완전히 복원했으니까요.”

그런 이유에서인가.

더 의아해진다. 르팔타커스는 내게 볼 일이 없다.

그렇다면 이 층간 구역은 철저하게 교도관장이 만들어낸 회담 장소라는 뜻이다.

“그럼 이제 슬슬 말해줘. 나와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라면 왜 층간 구역으로 불러낸 건지.”

“9층 교도관의 특별한 부탁으로 나온 겁니다.”

교도관이란 말에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물들었다.

“무슨 부탁이길래.”

“9층으로 당도하는 길에는 두 가지 갈래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문은 동일하지만, 문고리가 두 개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어느 쪽 문고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교도관이 당신을 마중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하네요.”

“아무거나 골라선 안 되겠군.”

곰 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각 문에는 교도관이 오래전에 내어놓은 문제가 있습니다. 수수께끼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물론 문제는 서로 다르겠지?”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예상을 벗어날 만큼 괴이했다.

“첫 번째 문엔 ‘당신이 맞추기 쉬운 여덟 개의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엔 ‘당신이 맞추기 어려운 단 하나의 문제’가 걸려 있지요.”

뭐야, 이 괴이한 밸런스는?

“선택해 주십시오. 어느 쪽 문을 통해 9층으로 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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