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여덟 개의 죄 (1)
콰자악!
니오프론이 지금껏 애지중지 품고 있던 악기가 박살 났다.
“시간을 끌지 않겠습니다, 슈바인 스트링거.”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어둠의 문이 열렸다.
그것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별무리에 둘러싸인 월면이었기 때문이다.
니오프론이 만들어낸 소환문은 수억 개의 별빛을 지워가며 그 존재감을 넓혔다.
“영광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 아이를 드러내는 걸 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비장의 무기라서?”
“아니요. 제 치부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본디 저는 아름다운 것을 숭상하며 추구하는데…… 태초부터 제 안에 있던 것은 그닥 유쾌하지 못하다는 점을 고백해야 하니까요.”
오싹오싹 소름이 돋았다.
당장 저 소환문을 공격해서 너머에 있는 것이 출현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으로 그쳤다.
내가 가진 그 어떤 수단으로도 도무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소리 없는 아우성과 함께 갑각류처럼 보이는 다리가 소환문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이 아이를 ‘악몽포식자’라고 부릅니다. 꿈을 꿀 정도로 발달한 지성체는 예외 없이 모두 악몽을 꾸지요. 유년기의 상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존재의 덧없음에서 비롯된 허무.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저는 한 곳에 치워놓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 웅덩이에서 이런 것이 태어나고 말았답니다.”
처음에는 지네와 같은 절지동물처럼 보였으나 그것이 전신을 드러냈을 땐 내 생각이 잘못되었단 걸 깨달았다.
아무리 끔찍해 보이는 혐오 동물이라 하더라도 ‘형태’라는 것은 존재한다.
하지만 악몽포식자에게 형태란 존재하지 않았다.
형태라는 것은 그 생명체의 생존 방식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애초에 형태가 없는 걸 상상할 수는 없다.
구현되는 순간 제약이 생겨버리게 되니까.
존재 자체가 이율배반적인 짐승을 니오프론은 꺼내 든 것이다.
“당신도 꿈을 꿔보았다면 알겠지요? 분명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친구가 낯선 이로 변해버리는 순간을. 그리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다.
꿈속에서 등장인물이 휙휙 정체를 바꾸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상함을 깨달을 수 없다.
누구도 자기 무의식의 혼돈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까.
“혼돈에 잡아먹혀 울부짖으십시오.”
아무런 전조 동작 없이 악몽포식자가 팔을 뻗어왔다.
아니, 그것을 팔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천 개의 입을 달고 있는 신체의 말단일 뿐.
‘말도 안 되는 속도다.’
내 마력 회로는 이제 참월의 마녀가 셋 있다 하더라도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비대해졌다.
그래서 점멸회피기인 워핑 또한 그 범위가 시야 전체로 넓혀져 있었다.
그런데도 악몽포식자의 공격은 워핑을 거의 따라잡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몇백 미터를 이동했는데도 악몽포식자는 곧바로 나를 따라붙었다.
마치 내가 어디로 움직일지 보고 대응한다기보다, 자석처럼 끌려온다는 느낌이었다.
니오프론의 음성은 소리가 전달될 수 없는 우주공간의 법칙 따윈 사뿐히 무시한 채 또렷이 전달되었다.
“이 아이는 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겁니다. 제가 말려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지요.”
어이없게도 니오프론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안타깝습니다. 당신은 일개 인간으로 보기 불가능할 만큼 다양한 세계를 내면에 품고 있었습니다. 꿈의 신인 제 입장에서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죠. 그래서 어떻게든 이 방법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어요. 이 아이가 집어삼킨 것은 다신 끄집어낼 수 없으니까.”
꿈의 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짐승이라는 건가.
내가 회피만 계속하고 있자 뚠이 다급하게 귓속말을 걸어왔다.
- 방장. 달아나자. 어떻게서든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해.
- 그럴 순 없어. 저 녀석이 날 멀쩡히 보내줄 리도 없거니와…… 몽중몽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더 약해지고 친구들마저 위험에 휩싸이게 될 거야.
- 하지만 저건 물리칠 수 없는 존재야. 나도 이 감옥에 오기 전에 무수한 악몽을 엿본 적이 있지만 저건 격이 달라. 쉽게 말해 저건 ‘신이 꾸는 악몽’이야. 인간인 네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어.
그야말로 절망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타고난 반골 기질을 미약하게나마 일깨우고 말았다.
“해보지, 뭐. 신이 꾸는 악몽에 대항할 무기가 없는 건 아니니까.”
파슈웃.
기원검을 감싸고 있던 순도 높은 검기를 해제했다.
다이아몬드도 자를 수 있는 검기였으나 지금, 이 순간에는 불필요하다.
오히려 검의 표면 자체에 담긴 뒤틀린 신의 신성(神聖)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촤아아아악!
나를 향해 뻗어오던 악몽포식자의 팔이 두 갈래로 잘려 나갔다.
“……!”
짐승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 명백하게 전달돼 왔다.
하지만 곧 소용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팔에서 다시 수백 개의 입이 튀어나왔다.
나는 기겁하며 몸을 빼냈다.
‘잘라낼 순 있지만 거기까지라는 건가?’
악몽포식자의 끔찍한 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녀석은 형태에 법칙이 없다는 것뿐 아니라, 그 부피에서도 제약이 없었다.
이미 월면의 상당한 면적이 악몽포식자의 체적에 의해 덮여 있었다.
신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나를 잡아먹을 때까지.
‘체력이 온존할 때 어떻게든 저 녀석을 처리해야 해.’
뭔가를 아낄 때가 아니다.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인벤토리를 열어 비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름: 탐식하는 신화종의 비늘]
[등급: S급]
[사용횟수: 2/3]
[차원감옥의 한 층을 관리하는 신격 존재로부터 떨어져나온 파편입니다. 이 비늘을 사용하면 B등급 이하의 아이템을 무한히 증식시킬 수 있습니다. 중지를 외치기 전까지 복제가 멈추지 않으니 주의하십시오. 증식한 아이템의 유지 시간은 24시간입니다.]
만철도시에서 고대종의 악마가 만들어낸 인형뽑기 기계. 그 내부에서 끝없이 증식해 결국 용량 초과를 만들어낸 S급 아이템이었다.
“물량전으로 가보자, 개자식아.”
등 뒤로 손을 뻗자 농구공만 한 월석이 날아왔다.
나는 그것에 신화종의 비늘을 쑤셔 박아넣었다.
영롱한 비늘의 색채가 월석을 뒤덮더니 곧 내가 기대했던 작용이 펼쳐졌다.
[탐식하는 신화종의 비늘을 사용했습니다.]
[F급 아이템 ‘월석 파편’이 무한 증식합니다.]
[남은 사용횟수 1/3]
콰르르르르륵!
가공할 속도로 늘어나는 월석이 악몽포식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분노한 땅의 신이 암석을 토해내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악몽포식자의 말단을 뒤덮은 갑각이 월석과 충돌하며 박살이 났다.
“맛이 어떠냐. 이건 무려 교도관의 권능이 담긴…….”
꿀렁! 꾸울렁!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신화종의 비늘에 닿은 물건은 끝없이 증식한다.
그 자체로는 보잘 없는 돌덩이라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불어나는 것이다.
강력한 등반죄수들을 자신의 술법으로 가둬둔 고대 악마조차 이것을 처리하지 못해 굴복해야만 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감당할 수 없을’ 때의 이야기.
악몽포식자의 표면에 닿은 월석이 빠른 속도로 삭제되었다.
수천 개의 입은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이 닿는 모든 존재를 집어삼켜 자신의 내면으로 밀어 넣었다.
마치 무제한의 용량을 담을 수 있는 쓰레기통처럼.
“말도 안 돼.”
녀석이 월석을 ‘포식’하는 속도가,
신화종의 비늘이 ‘증식’하는 속도를 웃돌았다.
꺼억, 하고 트림하면 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악몽포식자는 그런 불필요한 동작 따윈 취하지 않았다.
니오프론이 탄식했다.
“허망하겠군요, 슈바인 스트링거. 하나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아무리 교도관의 권능이 담긴 비보라 하더라도 제 꿈속에 들어온 이상 집어삼켜질 수밖에 없어요.”
“저건 시간 벌이용이다.”
“호오. 뭘 위한 시간 벌이지요?”
내가 싸움 장소를 월면으로 바꾼 것은 단순히 니오프론이 끌고 들어온 불사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화룡고를 배경으로 니오프론과 맞붙었다면 내가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미약한 망설임에 붙잡힐 수 있다.
소중한 추억이 그대로 구현된 장소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작용할 테니까.
하지만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
그러니 마음껏 파괴해도 죄책감 따위 들지 않을 것이다.
쿠우우우우우웅!
니오프론의 고개가 위로 꺾여졌다.
달의 뒷면에 잠들어 있던 고대문명의 우주전함 수십 대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물론 저것은 실존하는 게 아니다.
내 상상력에서 빚어진 가상의 산물.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닐 것이다.
“가라! 전부 태워버려!”
우주 전함의 갑판 전체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함포(艦砲)가 일제히 백색 레이저를 내뿜었다.
단 한 발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지워버릴 수 있는 화력이 무려 수십 발이나 뿜어지며 악몽포식자를 뒤덮었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기대했던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폭발이…… 없어?”
단지 빛무리가 번쩍였을 뿐이다.
하지만 악몽포식자의 부피는 조금도 줄지 않고 계속 나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자아. 또 시간 벌이용은 없습니까?”
니오프론이 약을 올리듯 말을 걸어왔다.
녀석은 처음 서 있던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녀석이 입을 움직이는 모양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멀어진 상황이었다.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기묘할 정도로.
하지만 니오프론이 웃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자명했다.
“그럼 이번엔 시간벌기 말고 진짜 필살기를 보여주마.”
나는 절박하게 상상했다.
고대문명의 우주 전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무기를 꺼내 들어도 죽일 수 없다면,
대체 무엇을 상상해야 이 괴물을 치워버릴 수 있을까.
문명의 이기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을 상상해서는 힘에 부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신을 이길 수 있는 ‘신’을 상상하겠다.
기술명도 이미 정해놓았다.
“먹어라, 부처님 손바다악! (Buddas Slap!)”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순간 거대한 금색 손바닥이 튀어나와 악몽포식자를 짓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황금색 표면을 가진 다섯 손가락이 버티던 괴물을 짓누르며 월면의 깊숙한 핵까지 파고들어 갔다.
“이건 못 이길 거다, 징글징글한 놈.”
처음에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생각했다.
내가 살던 지구에서 가장 신도가 많은 신. 무려 우주를 창조하였으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라도.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들은 ‘사랑의 신’이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셨지.
저런 무지막지한 괴물을 제압할 신으로는 마땅치 않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나 힌두교의 시바신은 호전적이고 그만큼 강력하긴 하겠지만 역시 제약이 따른다.
그 신화 세계에는 신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 떠오를 수 있는 그들의 강력함이 파편화될 것 같았다.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독보적이면서도,
힘을 쓸 때는 강력함을 보여주는 존재.
“손오공이라고 아냐?”
내가 있던 지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천상계와 하계를 뒤집어놓았던 말썽꾸러기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
그가 아마 이 감옥 안에 있었다면 굉장한 존재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크로톤이나 용왕 게브라둠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도술은 대단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봐 온 온갖 만화와 영화, 소설 등에서 변주되었던 인류의 신화 속 영웅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손오공을 손바닥만으로 제압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부처님. 미륵불.
온 세상을 분탕 치고 돌아다니는 손오공을 평온하게 짓누르는 존재.
“이게 내 필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