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동상이몽 (3)
“으아아아아아아!”
압도적인 과전류를 이기지 못한 제트카이저의 다리에 균열이 생겼다.
곧 슈퍼로봇의 신체를 이루던 부품들이 머리 위에 우수수 떨어졌다.
쿵. 쿵쿵.
우주 초과학의 산물이라기엔 도저히 보이지 않는 풍경이었다.
난 곧 그 정체를 알아냈다. 사이즈를 비대하게 늘린 장난감 블록들이었다.
‘어렸을 때의 내 상상력의 한계가 이 정도였으니까.’
기원검을 대각선으로 들어서 창처럼 세웠다.
아직 마지막 조각을 거둬들이지 못해 뭉툭하지만 검기를 씌우고 있기에 목표물을 관통하는 데 문제는 없다.
표적은 비틀거리고 있는 제트카이저의 가슴 정중앙.
“꿰뚫겠다.”
콰아아아아아악!
나는 사자상의 벌린 입을 뚫고 들어가 제트카이저의 등을 뚫고 나왔다.
단말마와도 같은 미약한 스파크를 터트린 제트카이저는 낡은 신화 속의 거인처럼 허물어졌다.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군요, 슈바인 스트링거. 어릴 적의 추억과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말이지요.”
“아무리 추억이 소중하다 해도 자유와 맞바꿀 순 없으니까.”
“정녕 신의 절대영역 안에서 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필요하다면.”
나는 두 번째 제트카이저의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피해내며 이렇게 대답했다.
거대한 검신을 ‘리버스 그래비티’로 속박했다.
그러자 나는 제트카이저의 검에 거꾸로 달라붙어 중력을 무시하고 달려 나갈 수 있었다.
처커덩!
로봇의 손바닥이 회전하더니 드릴로 변환되는 것이 보였다.
‘신을 죽이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신화와 설화 속에서 인간은 결국 강대한 신에게 농락당해 죽는다.
신의 변덕이나 폭력 앞에 저항할 수단 따위 없으니까.
어쩌면 필멸자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대전제.
신은 이길 수 없다.
신은 죽일 수 없다.
신은 영원하다.
신은 불멸하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그 명제를 파내지 않는 한 신의 권능에 생채기를 내는 것은 불가능할 거다.
- 방법이 있는 거야, 방장? 아무리 싸워도 상대는 지치지 않을 거야. 반면에 네 정신력엔 한계가 있고.
-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어. 꿈을 다루는 게 무엇인지 감이 오는 것 같아.
제트카이저의 드릴 회전에 맞추어 연속 워핑을 시전했다.
- 꿈이라고 해도 완전한 무(無)에서 뭔가를 창조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내가 겪어보거나 상상하지 못하는 건 구현할 수 없어. 그러니 관건은 이미지 트레이닝이야.
-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 머릿속으로 계속 그림을 그려보는 거지. 재료는 내 경험에서 가져오는 거고.
제트카이저는 분명 파괴의 화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피조물이었다.
인간 사냥꾼 여덟 명과 날다람쥐 한 마리가 교전을 벌이는 셈.
하지만 나는 빙설협곡에서 거인들을 쓰러트린 경험이 풍부하다.
그 거인들의 우두머리인 크로톤의 심장부에 파고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승리의 경험이 곧 상상력의 불길에 장작이 된다.
‘그뿐이 아니지. 나는 온갖 게임을 마스터한 몸이다.’
전 세계가 플레이어를 적대하는 가운데 홀로 싸워왔다.
숱한 게임들 속에서 플레이어의 직업은 용사…… 신의 권능을 빌려 싸우는 자였다.
“한낱 인간의 삶을 지펴서 신을 태우겠다고요? 너무 오만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신을 죽이는 게임도 숱하게 해 왔다.”
어쩌면 이 감옥 안에서 나만큼이나 신을 죽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오래 해온 죄수도 없을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두 번째 제트카이저가 기원검 아래 해체되었다.
하지만 니오프론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하기만 했다.
“당신이 바라는대로 이뤄지진 않을 겁니다. 보십시오.”
등 뒤에서 두 대의 제트카이저가 아무런 상처없이 재조립되었다.
“젠장.”
이를 악물고 사투를 벌인 것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당신은 신을 오해하고 있군요. 같은 수갑을 차고 있다고 해서 당신과 제가 동격일 수는 없습니다. 8층에 굴러 채는 것이 신격이다 보니 인간이나 환수를 약간 초월한 존재로 생각하나 본데요. 그것은 오산입니다.”
니오프론은 마치 내 심중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아홉 대의 제트카이저가 9채널 스피커처럼 서라운드로 내 정신을 압박해왔다.
“당신이 말하는 게임이 어떤 것인지 배웠습니다. 문명의 이기로 빚어진 일종의 가상 현실. 당신은 삶의 많은 부분을 그 가상 현실 속에서 보내왔군요. 게임 속에서 신적인 존재를 많이 죽였으니, 이곳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뭔가 대꾸하고 싶었으나 제트카이저가 원거리 포격 모드로 접어들어 그것을 피해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그러나 틀렸어요. 당신이 게임 속에서 죽인 신들은 그저 그것을 만든 설계자들이 지정한 코드의 조합이었을 뿐. 엄밀히 말해 ‘신’의 이름을 빌린 무신성(無神聖)의 존재.”
숨이 차오른다.
아니, 사실상 꿈속에서 숨이 찰 필요는 없다.
내가 이런 격한 움직임에 체력이 소모되는 게 당연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지치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해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
“당신이 생각하는 ‘신’을 그 세계의 용어를 빌려 표현해보자면 단순한 코드들의 조합인 NPC겠지요. 그러나 진짜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이 플레이어라면 저는 그 게임을 만든 개발자. 슈바인 스트링거. 아니, 알파 테스터 박상식. 당신이 게임 속에서 개발자를 죽여본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 그런 경험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릇 안에서 그릇 바깥의 존재를 해칠 수는 없는 법.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초전자포를 모두 쳐내거나 피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등 쪽에서 화끈한 작열통과 함께 나는 강당의 지붕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고고고.”
낯익은 복장의 학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스티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으면 안 돼.”
“안 죽어.”
“아직 수학여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잖아? 말했지?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면 우주 끝까지라도 너를 쫓아갈 거라고.”
후들거리는 손으로 기원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래.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대답은 네가 아니라 진짜 아스티나에게 들려줄 거야.”
“진짜 내가 따로 있다니?”
“응. 그러니까 어디론가 피해 있으라고, 선도부장.”
바라면 곧 이루어진다.
그것이 꿈의 논리.
나는 아스티나와 선도부원들이 모두 눈에 보이지 않기를 소망했다.
그러자 그들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텅 빈 강당에 나 혼자만을 남겨두고 사라져 버렸다.
아스티나의 왼팔에 매여 있던 붉은 완장만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 꿈의 등장인물을 지웠어. 대단해, 방장.
- 대단한 거 맞지?
- 물론. 무생물과 달리 의지가 있는 존재들은 꿈속에서도 다루기가 가장 까다로운걸.
- 니오프론도 이런 식으로 없애버릴 수 있을까?
- 스스로 그게 먹힐 거라고 믿고 있어?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 다음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벽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
- 그렇다면 시도해보지 않는 게 나아. 실패로 돌아가면 상대에게 승기를 넘겨주는 꼴이 될 거야.
-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많아. 관건은 녀석의 빈틈을 포착해내는 거지.
단 한 번의 유효타면 된다.
니오프론의 체력이나 신체는 그 자체로 대단치 않다. 각성자가 초능력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수준이니까.
“저는 꿈속에서 빈틈을 드러내 본 적이 없습니다, 등반죄수여. 집중력에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경험하지 않았으므로 저는 제가 빈틈을 드러내는 걸 상상하지도 못합니다.”
콰드드드드득!
강철 손가락들이 강당의 지붕을 거칠게 뜯어내었다.
그러자 강당은 뚜껑을 잃어버린 냄비의 형국이 되었고 나는 그 냄비 속의 개구리나 다름 없게 되었다.
나는 아홉 대의 제트카이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니오프론을 향해 오른손등을 들어 보였다.
일곱 개의 불빛이 거기에서 맥동하고 있었다.
“내가 쓰러트린 일곱 층장들도 모두 패배를 상상한 적 없었어. 최초의 경험을 안겨준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
“제가 당신에게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걸 알지 않습니까? 슬슬 지루해질 참이니 제 호흡대로 박자를 바꿔볼 참입니다만.”
“아, 잠깐만. 그 전에 내 턴이 아직 끝나질 않았다고.”
나는 품속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큰 콘솔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금속 판넬의 표면엔 동그란 버튼 하나만이 존재했다.
“……뭐지요, 그게?”
“뭐긴. 아까 제트카이저의 사자 입으로 들어갔을 때 꺼내온 자폭장치지.”
애니메이션 철왕전기 제트카이저에서 자폭장치가 등장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로봇의 콕피트에 그런 장치가 있을 거라 ‘상상’했다.
그리고 그 실물을 지금 손에 쥐고 있다.
“어디. 폭죽 좀 터트려 볼까. 학교에서 불놀이를 하면 교칙 위반이겠지만.”
티익.
자폭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제트카이저의 머리가 일제히 버섯구름을 만들어내며 터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중 한 기체의 목덜미에서 색깔이 전혀 다른 불길이 움직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불사조인가?”
푸른색과 붉은색의 불꽃이 절반씩 섞인 날개 한 쌍이 니오프론을 감싸고 있었다.
불타는 깃털을 가진 신화 속의 생물이 녀석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설명해버리니 김이 조금 새는군요. 어쨌든 제가 이 꿈에서 구현할 수 있는 건 단순한 쇠붙이만이 아니라는 거지요.”
녀석은 우등생에게 극히 어려운 연습문제를 던지는 교사처럼 굴었다.
“자아. 이 불사조는 많은 문화권에서 불멸의 상징이지요. 한번 쓰러트려 보겠습니까?”
강한 패를 던져왔다.
작은 승리의 경험을 내가 쌓을 수 있도록 놔두진 않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
그렇다면 화룡고의 학생으로서 기꺼이 응해줘야 하겠지.
“이곳은 내가 살아온 세계를 재료로 만들어졌지. 이 행성의 이름을 아나?”
“지구라고 하더군요. 우주 전체를 통틀어서도 꽤 아름다운 쪽에 속한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맞아. 그리고 지구에는 위성(衛星)이 하나 있어. 그건 달이라고 하지.”
나는 이미 꿈속의 시간을 한 번 점프시킨 이력이 있다. 두 번째는 더욱 쉬울 거다.
내가 밤이 되길 바라자 주변이 곧 어둠이 드리워졌다.
불사조와 니오프론의 머리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아스티나를 보지 못했더라면 아마 이 전법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거다.
어쩌면 돌파구를 강하게 염원한 내 무의식이 아스티나를 보낸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손바닥을 뻗어 보름달을 움켜쥘 듯이 겨누었다.
“허공섭물.”
니오프론과 불사조의 고개가 점점 위로 꺾였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지독하게 빠른 속도로 달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참월의 마녀는 삼월초원의 달 중 하나를 공격해 주먹만 한 월장석을 손에 얻은 적이 있었다.
나는 아예 달을 통째로 끌어왔으니 이 업적을 봤다면 박수를 쳐줬을 것이다.
쿠오오오오오오!
달에는 무수한 크레이터가 있다. 성능 좋은 망원경이 있어야 그 크레이터들의 윤곽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을 테지만,
지금 나는 육안으로 그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자아.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보시지.”
화룡고등학교의 강당에 달이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