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87화 (287/300)

#287. 동상이몽 (2)

“전부 물러서. 버스에 가까이 가지 마.”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똥 마려운 얼굴을 하고는.”

제르비어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는 버스의 앞문을 향해 다가섰다.

“멀미약이라도 잘못 먹은 거냐?”

녀석은 내가 붙잡을 틈도 없이 뛰쳐나가 버렸다.

다른 학생들도 주춤주춤 제르비어스의 뒤를 따라 앞으로 나섰다.

나는 기원검을 바닥에 꽂고 진기를 끌어 올렸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시전자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존재에게 천근추의 묘리를 싣는 상승무공이 펼쳐졌다.

이 보법의 영역에 들어오면 어깨 위로 갑자기 코뿔소가 올라탄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우아아악!”

“무거워!”

천마 류운학과 제르비어스를 제외한 모든 1반의 학생들이 볼품없이 뒤로 엎어졌다.

나는 그들과 버스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아무도 이 앞으로 보낼 수 없다는 듯이.

- 방장. 왜 그러는 거야? 저 쇳덩이에 뭐 문제라도 있어?

- 버스에는 문제가 없지. 하지만 저게 가려는 곳이 어딘지가 문제야.

수학여행의 행선지는 내가 꿈에서라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장소였다.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뇌리에 똑똑히 박혀 있다.

- 나는 저곳에서 두 부모님을 잃었어.

여행지 도착을 코앞에 두고 일가족이 참혹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석의 아버지와 조수석의 어머니는 즉사, 어린 나는 두 다리에 영구장애를 입었다.

사실은 나 또한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여분의 수명을 구걸한 대가로 푸르가토리움에 붙잡혀 와 있다.

내 무의식으로 빚어진 꿈이 저 장소를 골랐을 리 없다.

악독한 무언가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거, 학생들. 왜 그러는 거야? 빨리 출발 안 하면 곤란한데.”

선글라스를 낀 버스 기사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곤란하겠지. 내가 몽중몽을 만들어서 달콤한 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게 거슬렸을 테니까.”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학생?”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내 눈은 속여도 이 검은 속일 수 없으니까.”

왼 다리를 뒤로 내디디며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그리고 기원검을 뽑는 동작 그대로 전방에 무지막지한 참격을 날려 보냈다.

써거억!

반으로 썩둑 갈려진 버스가 수명을 다한 조개처럼 벌어지더니 이윽고 불길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퍼어어어엉!

내 시선은 요란하게 불타고 있는 버스를 향해 있지 않았다. 보나 마나 운전석은 텅 비어 있을 터.

내 눈길은 공중에 떠서 나를 내려다보는 몽현의 신 니오프론을 향해 있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으시군요, 등반죄수여.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선물상자를 박살 내버리면 기껏 준비해둔 제가 무안해지지 않습니까?”

“왠지 열어보지 않아도 더럽게 맘에 안 드는 게 들어 있을 것 같으니까.”

“멋을 모르시는 분이군요. 굳이 당신이 만들어낸 추억의 장소에서 최후를 맞이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내려와라. 그 면상을 이 검으로 갈아줄 테니까.”

니오프론은 그야말로 은근하게 움직였다.

교실 안에서 깨어났을 때도, 체육대회 축구 결승전에서 공을 쫓아 달릴 때도, 강당 안에서 아스티나에게 갑작스런 고백을 받을 때에도 녀석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음흉한 신은 분명 이 몽중몽의 외곽에서 파고들 틈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니오프론이 운동장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쓰러져 있던 화룡고의 학생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뒤로 물러섰다.

“당신의 꿈을 구경하는 건 제법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일생 품어온 소망이 구현화 된 꿈 치고는 소박한 편이었지만, 나름 풍미가 있었답니다. 이를 통해 당신에 대해 꽤 자세히 알 수 있었지요.”

“정확히 뭘 느꼈지?”

“그야말로 충만한 행복. 한 인간이 응당 누렸어야 했지만, 강탈당했다고 느낀 모든 것이 이 꿈 안에 집약돼 있더군요.”

“그래서 악몽으로 바꾸고 싶었나? 버스 기사로 둔갑하는 치졸한 수를 쓸 정도로?”

만약 내가 니오프론의 난입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버스에 올라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버스는 오래전에 내가 모든 것을 잃었던 그 장소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전복되었겠지.

사고 당시를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그리고 트라우마의 반복에 진저리 치는 내 뒤통수에 칼을 꽂으려 했을 것이다.

“당신이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꿈의 신과 꿈속에서 힘 대결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승산 없는 싸움인지.”

니오프론은 악기를 들고 있지 않은 한 팔을 펼쳐 화룡고의 교정을 가리켰다.

“솔직하게 말하면 감동한 것도 사실이에요. 당신의 친구는 제법 재주꾼이더군요. 감히 제가 만들어낸 꿈의 내부에서 또 다른 꿈을 피어나게 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나 긴 시간 동안 이 정도의 몽중몽을 겪어보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제가 얼마나 많은 자각몽 능력자를 만나봤다고 생각하나요?”

“여유를 부리는 것과 달리 우리의 시도가 제대로 먹혀들어 간 것 같은데? 꽁꽁 숨어 있던 네가 스스로 튀어나오게 만들었으니까. 굴속에 숨은 너구리를 끌어내는 데엔 연기를 피우는 게 최고지.”

“그 말은 제가 당신 뜻대로 움직였다는 말처럼 들려서 불쾌한데요?”

“맞잖아? 뚠이 내 꿈에 머물렀던 시간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어. 그런데도 너는 자신의 선언을 물리고 뛰쳐나온 거야.”

나는 그 이유도 짐작해낼 수 있었다.

우리가 몽중몽을 만들어낸 것 자체에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는 니오프론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뚠의 소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버텼다가 나를 붙잡으러 오면 녀석의 입장에선 아주 손쉬운 승부가 되었을 터.

그럴 수 없었던 건 내가 ‘변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꿈의 시간을 앞당겨 버린 것. 종족 전체가 자각몽자인 뚠이 칭찬해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었지. 너는 그 순간에 똥줄이 타기 시작한 거야. 내버려 뒀다간 내가 계속 성장해서 꿈을 침식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두려움이라. 그렇지 않습니다. 마당에 숨어 들어온 벌레를 내버려 두려다가…… 그 벌레가 자꾸 불쾌한 오물을 토해내길래 치워버리려고 마음먹었을 뿐이지요.”

쿠오오오오오.

니오프론이 현을 한 번 쓸어내리자 교정 일대가 격하게 출렁였다.

천마군림보로 광범위한 공간을 장악하고 있던 내가 ‘세계로부터 튕겨 나가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끝을 냅시다, 슈바인 스트링거. 당신이 연기를 피워내서 끌어낸 것이 너구리 따위가 아니라 사자였다는 걸 깨달으며 죽어가십시오.”

*

스파아아아앗!

준비동작 없이 쏘아낸 그래비티 슬래시가 니오프론이 있던 공간을 무참하게 찢어내 버렸다.

불타던 버스의 잔해가 허망하게 휘날리는 가운데 나는 공격이 빗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기원검. 녀석은 어디에 있지?’

정답은 내 등 뒤였다.

니오프론은 1반 학생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천연덕스럽게 어울리지도 않는 화룡고의 교복을 입고.

아직 패닉에 빠져 있던 학생들은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필 니오프론이 고개를 빼꼼 내민 곳은 제르비어스의 등 뒤였다.

“자신이 만들어낸 꿈이 꼭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건 아니지요. 어떻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들까지 죽일 수 있겠…….”

콰아아아아앙!

니오프론의 다음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용사전용기 살신참이 지면을 뚫고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후두두두둑.

순식간에 수류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폭격에 휘말린 학생들이 죽어 나갔다.

꿈속 친구들의 도륙 난 시체가 사방에 흩날렸다.

나와 함께 공을 찼던 누군가의 오른팔이, 소지품 검사를 피해 보겠다며 텀블러에 술을 숨겨온 누군가의 귀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

니오프론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사이에 숨으면 내가 1초라도 망설일 줄 알았나 보지?”

“아주 약간 주춤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요. 당신은 인간미라는 게 없는 겁니까?”

“이런 꼼수에는 제법 내성이 있어서 말이야. 내 꿈에서 누구의 등에 숨어도 소용없을 거다.”

광룡 메르킨의 정신 고문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악몽의 구렁텅이에서 친구들의 목을 수천 번 썰어낸 전적이 있는 몸이다.

실존하지 않는 환상이라는 확신이 있는 한,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 잘하고 있어, 방장. 저자가 당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져.

- 네가 보기에도 그래?

- 몽주인 네 감정을 뒤흔들어보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으니까. 방장이 이 꿈의 등장인물들을 가차 없이 대할 수 있다는 건 단단한 자의식을 갖고 세계에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거야.

아직 니오프론의 옷자락 하나도 스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평범한 싸움이 아니다. 상대의 육체에 상처를 내서 무력화시키는 건 의미가 없다.

신의 절대영역에 생채기를 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인정하지요. 당신의 몸집이 처음보다 훨씬 커졌다는걸. 하지만 마당을 집어삼키기 전에 휩쓸어버리면 그만입니다.”

니오프론의 연주가 요란해졌다.

이전까지 그 어떤 마술 같은 짓을 해도 단 한 번 현을 튕겼을 뿐인 녀석이 뭔가 큰 것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운동장을 박차고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주변 광경이 기묘하게 변하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버스들이 움직여?”

내가 잘라내 버린 버스를 제외하고서도 운동장엔 총 아홉 대의 버스가 멀쩡히 남아 있었다.

그 버스들이 일제히 스파크를 일으키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폭발시키려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마치 장난감 블록처럼 분리와 융합을 반복하던 버스들은 곧 이족 보행의 형체로 변신했다.

가슴에 사자의 머리를 단 슈퍼로봇.

“하여간 악취미를 가지셨군. 하필 저것들로 나를 붙잡겠다?”

무려 아홉 대의 제트카이저가 일제히 양손의 인피니티 드릴을 가동, 등에 단 맥시멈 윙으로 불을 뿜으며 나를 추격해왔다.

피유우우우웃!

선두로 덤벼든 제트카이저의 드릴을 피해 회피기동을 했으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분명 닿지 않았는데 마치 중력 마법처럼 공간 자체를 왜곡시키는지 자세가 흐트러진 것이다.

그사이 큼지막한 그늘이 내 온몸을 감쌌다.

뭔지 모르겠지만 머리 위에서 두 번째 습격이 날아오고 있다.

“이익!”

무려 3미터의 검기를 뽑아내어 우산처럼 들어 올리자마자,

터어어어어어엉!

빌딩도 잘라낼 수 있는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검면이 나를 내리쳤다.

“커허억!”

온몸의 내장이 극명히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몸속을 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곧 등 쪽에서 터져 나오는 묵직한 통증에 전부 날아가 버렸지만.

운동장에 크레이터를 만들며 추락해 버린 것이다.

- 방장! 괜찮아? 도와줄까?

뚠이 다급하게 협력의 의사를 보내왔다.

아마 나보다 훨씬 몽중몽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뚠의 조력을 얻는다면 이 위기를 타개하긴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니오프론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일.

녀석은 내가 꿈속에서 강해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니 무조건 그 반대로 행동해야 살 수 있다.

- 아니. 일단은 지켜봐 줘.

벌떡 일어서자마자 교정의 벚나무를 모조리 짓밟으며 제트카이저 한 대가 달려왔다.

그리고 돌진해오던 기세 그대로 오른발을 들어 나를 짓밟으려 했다.

[자이언트 포스 쉴드(Giant Force Shield)]

엑스자로 손을 교차해 황급히 방어 마법을 구동시켰다.

충격을 꽤 상쇄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지면이 허벅지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제트카이저의 콕피트에서 확성기에 실린 니오프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아시나요? 꿈속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건 유년기 시절 갖고 있던 환상이랍니다. 당신의 경우엔 이 거신병이 되겠지요. 악몽으로만 당신을 죽일 거라고 착각하셨나 봐요? 사실은 동경의 대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무기랍니다.”

동경의 대상이라고?

그것은 분명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작은 텔레비전 속의 용사 제트카이저.

천만 마력으로 불타오르는 주먹으로 거대 괴수들을 때려잡았던 무적의 슈퍼로봇.

가난한 꼬마를 지탱해주었던 꿈속의 친구.

오죽하면 그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도 달달 외웠었다.

그그그그그긍.

나는 무려 60톤의 무게를 가진 쇳덩어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보여주지.”

제트카이저의 발바닥에 박아넣은 기원검에서 강렬한 검기가 빛을 내뿜었다.

“내가 더 이상 그 어린 날의 꼬마가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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