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화룡고등학교 1반 반장 (2)
중력마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비티 볼.
이것은 특정 지점과 충돌했을 때 응축시킨 에너지를 터트리는 위험한 마법 폭탄이다.
꽈아아아아앙!
실제로 골대의 뒤에 앉아 있던 학생들 태반이 교정 바깥으로 날아갈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꿈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서인지 그 어떤 학생도 다치는 일은 없었다.
골대가 구부러지는 일도, 뽑혀서 나동그라지는 일도 없었다.
놀라운 것은 캉이조차 멀쩡했다는 점이다.
“그걸 막았다고?”
“당근이지. 그냥 막기만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축구공을 꽃잎처럼 감싸고 있던 순백의 꼬리가 좌악 펼쳐졌다. 그러자 한 손으로 공을 붙잡은 캉이의 오른손이 드러났다.
“실수라고는 해도…… 전력을 다했는데?”
“글쎄. 그런 것 치고는 슛에 맥아리가 없었는걸.”
골키퍼 전용 장갑을 끼고 있어서 캉이의 손가락은 더없이 큼지막해 보였다. 그중 검지가 좌우로 까닥거리는 모습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그제야 왜 캉이가 간단히 내 슛을 막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꿈의 몽주이기 때문이야. 캉이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 거야.’
한편으론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나는 3층 대수림에서 구미호 상태로 폭주하던 캉이를 무력으로 제압했던 적이 있으니까.
비록 캉이를 묶어두고 있던 주박을 풀어내야만 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죄책감이 있던 건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이 경기에선 안 좋게 작용하고 있었다.
솔직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잔뜩 힘을 때려 박은 슛을 이렇게 가뿐히 막아낸다면 대체 어떻게 이 구미호 소년의 빗장수비를 뚫어낼 수 있을까.
“대단해. 용병으로 모셔 올 만한 솜씨야. 철벽 키퍼.”
“흐, 흥! 아첨해봤자 소용없거든?”
“아첨이 아니야. 솔직한 감상이지.”
내 칭찬에 캉이는 쑥스러운 듯 웃다가 이내 정색하고는 공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어쩌지? 주장이 나를 이 팀에 데려온 건 골을 막으라는 게 전부가 아니거든. 후후.”
캉이의 동공에 붉은 만다라가 새겨졌다. 구미호의 주술이 완전 해방된다는 의미였다.
“엥?”
“나는 골을 넣기 위해 이 팀에 왔어.”
파아아아아아앙!
상쾌한 파공음과 함께 캉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녀석이 갖고 있던 축구공도 함께.
“막아! 무조건 막아라!”
하프라인에서 우리 팀 선수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캉이의 무식한 직선 돌파를 막지 못한 채 볼링공에 얻어맞은 볼링핀처럼 무참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아니! 키퍼가 저래도 되는 거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실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가 골을 넣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드물긴 하지만 월드컵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어느새 우리 팀의 페널티 라인까지 접근한 캉이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최종수비수인 스위퍼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제르비어스였다.
“나를 죽이지 않고선 절대 이 선을 넘을 수 없다.”
“그렇게 자신했다간 후회할 텐데.”
“1반의 골대는 난공불락이다. 여길 통과하려면 네 꼬리를 내놓아라.”
아니, 저게 고등학교 체육대회에서 학생들이 나눌 대화가 맞아? 조폭 영화에서 마주친 숙적끼리의 대사나 다름없잖아!
하지만 제르비어스는 자기 말을 지키는 남자였다.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캉이를 막아설 모양이다.
스으으으으으으.
마왕군 폭렬마법 특유의 색채인 보라색. 그 보라색 기운이 제르비어스의 두 다리를 중심으로 곧 전신에 휘몰아쳤다.
“저 녀석, 진짜로 하려고?”
현실 속에서 제르비어스와 캉이는 몇 번 티격태격 말싸움하긴 했어도 정면충돌한 적은 없다.
진짜로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내 무의식은 누구의 힘을 더 강하게 책정하고 있을까.
“공을 내놔!”
마기를 폭발시킨 제르비어스가 경주마처럼 캉이에게 달려들었다.
충돌하는 순간 사지가 분쇄될 것 같은 기세였으나 캉이는 그것에 역행하지 않고 요리조리 드리블하며 피해냈다.
그리고 빈틈을 발견한 순간 지체 없이 오버헤드킥을 날렸다.
퍼어어어어엉!
평범한 슛이 아니었다. 구미호의 근력이 실린 엄청난 공격. 동그란 축구공이 순간 만화처럼 늘어났다가 내쏘아졌다.
“어딜!”
제르비어스의 마기가 채찍처럼 휘둘러져서 슛을 튕겨냈다. 의기양양한 얼굴이었으나 그것은 상대가 예상한 움직임이었다는 게 곧 드러났다.
주인 없는 공에 곧 그림자가 졌다.
캉이가 로켓처럼 수직으로 솟아올라 공의 상승지점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분명한 동작을 취했다.
입을 쩍 벌리며 뭔가를 토해내려는 몸짓.
‘설마. 그건 아니겠지?’
설마가 맞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터져 나오는 붉은 광선. 캉이의 전용 살상기인 여우트림이 공에 적중했다. 그것은 곧 천벌처럼 내리꽂혔다.
정작 우리 팀 골키퍼는 그 박력에 질겁해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대로 가면…….
“가라! 오른발의 흑염룡!”
그때, 제르비어스의 오른발이 갑자기 비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무릎 아래의 체육복이 찢어지면서 용린으로 덮인 파충류의 다리가 캉이의 슛을 튕겨냈다.
나는 황망한 눈빛으로 심판을 쳐다봤다.
“이래도 안 불어?”
여우트림이라는 강력한 술법에 제르비어스는 용체화로 대응했는데도 심판은 요지부동이었다.
따지고 보면 캉이는 축구공에 ‘입김을 분’ 것이다. 그러니 반칙이라고 보긴 애매했다.
제르비어스 또한 어디까지나 자기 다리로 슛을 막아냈으니 정당한 수비로 해석하는 듯했다.
“뭘 멍하니 보고 있냐, 박상식!”
자연히 튕겨나온 공이 운동장의 하늘을 가로질러서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금 상대 팀 골키퍼인 캉이는 하프라인을 넘어서서 붙잡혀 있는 상태. 골문을 비우고 뛰쳐나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천금 같은 역습 기회.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슛을 때렸다. 그것은 곧 완전히 비어 있는 골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완벽한 골이라고 생각했다.
타아악!
상대 팀 페널티 박스에서 갑자기 나타난 캉이가 그것을 잡아내기 전까지는.
“뭐야?”
비명같은 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캉이가 순간이동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제르비어스와 대치 중인 캉이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드 위의 캉이가 두 명으로 늘어났을 뿐.
물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해석하지 못한 건 아니다.
“저건 명백한 반칙이지, 심판!”
내가 외쳤으나 심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칙 아니야.”
“어째서? 축구는 열 한 명이 뛰는 경긴데! 열 두 명이 되면 실격패지!”
“분신술은 괜찮아. 엄연히 경기를 치르고 있는 건 동일 인물이잖아. FIFA 규정에도 적혀 있으니까 심판 말에 토 달지 말도록.”
“으이이익!”
그 뒤로도 치열한 공방이 이뤄졌다.
기세가 등등해진 캉이는 아예 아홉 명의 분신을 만들어내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볐다.
자신이 골킥을 하고 그 골킥을 분신들이 받아서 티키타카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제르비어스가 완전히 흑룡으로 변해서 골대 앞에 드러눕지 않았다면 결국 실점하고야 말았을 거다.
‘정말 한 치도 물러섬이 없네.’
생각해보면 캉이는 본래 놀이에 강했다. 운동신경도 워낙 뛰어나며 지치지 않는 체력까지 겸비했다.
당연하다. 본래 인간이 아니라 환수 종이니까.
제르비어스쪽도 사정은 비슷했다. 녀석은 수백 년 동안 천 명이 넘는 용사들의 침공을 막아낸 폭렬마왕.
현실에서도 마왕성을 굳건하게 지켜낸 것처럼 내 꿈속에서는 골대를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
그렇게 전쟁과도 같았던 전반전이 끝났다.
우리 1반과 상대 팀인 8반 어느 쪽도 득점은 하지 못한 채 후반전을 기약해야만 했다.
“젠장! 디멜 녀석. 무시무시한 녀석을 용병으로 영입했네. 이러다간 승부차기로 가야 할지도 몰라.”
제르비어스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 굴욕이었는지 씩씩거렸다.
“야, 박상식. 이게 다 스트라이커인 네가 해결을 못 해줘서 그런 거 아니냐. 왜 설렁설렁하는 거야? 봐주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니거든?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가진 기술을 총동원해서 이 축구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다만 캉이의 실력이 그보다 앞섰을 뿐이다.
“그런데 왜 사상자…… 아니, 부상자가 안 나오는 거야?”
이상한 일이었다.
디멜이나 캉이, 나와 제르비어스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초인이니 그렇다 쳐도 다른 선수들은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구미호와 마왕의 충돌에 여러 번 몸이 날아갔는데도, 들것에 한 번 실려서 나갔다가 돌아오면 멀쩡히 뛸 수 있었다.
“우리 학교 보건 쌤은 세계 최고의 명의니까.”
“보건 쌤? 내 눈엔 안 보이는데?”
“안 보이는 게 아냐. 작아서 눈에 잘 안 뜨이시는 거지.”
작아서 안 보일 정도라는 말에 퍼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5층 빙설협곡에서 내가 사귄 친구.
“정말이네.”
페어리 퀸 토니아가 의료용 천막 아래서 요정술로 부상 선수를 1초만에 치료하고 있었다.
그러자 불현듯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왜 뚠이 없지?”
화룡도의 군기반장인 다이몬 키리스나 삼월초원에서 내게 검을 만들어줬던 만검패웅 같은 죄수가 등장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내게 도움을 줬던 아군이지만 친구의 계약을 맺진 않았으니까.
제르비어스는 같은 반 짝궁. 디멜과 캉이는 다른 반 친구. 천마와 마녀, 올쿠레 켄타, 토니아는 선생님.
이 세계가 정녕 내가 만들어낸 꿈이라면, 당연히 첫 번째로 사귄 친구인 뚠 아티르가 학생으로 있어야만 한다.
나는 몽중몽을 만들어내기 전에 뚠이 불안해했던 걸 떠올렸다.
‘만약 방장이 바라는 꿈속에 내가 없다면…… 우리는 이대로 작별하게 될 거야.’
설마 뚠의 걱정이 그대로 현실화한 걸까?
하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친구라면 모를까 7번 방의 동료들은 내게 무척이나 각별한 존재들이다. 뚠 아티르는 더더욱.
내 무의식이 뚠만 빼놓고 꿈으로 불러들였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제르비어스. 뚠 아티르는 몇 반이야?”
“뚠? 그런 녀석이 화룡고에 있었어? 금시초문인데.”
“몰라? 두더지 토인이고 땅속을 마음껏 헤엄칠 수 있어. 워낙 잠이 많아서 존재감은 없을 수 있겠지만…….”
“혹시 그 녀석이 축구도 잘하는 거냐? 그렇다면 우리도 용병을 영입하려는 생각인 거군! 좋은 생각이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일단 맞장구를 쳐줬다.
“그, 그래.”
“그런 거라면 교장 선생님께 물어보면 어떠냐? 나야 전교생의 이름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교장 선생님은 다르시겠지. 곧 후반전 시작이니까 빨리 다녀와.”
제르비어스의 충고대로 나는 조회대 위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티 타임을 갖고 있는 참월의 마녀 일레인 쿠디슈가 앉아 있었다.
“스승님!”
“어머, 1반 반장이군요. 하지만 스승의 날도 아닌데 그런 호칭은 너무 올드하지 않나요?”
무의식중에 입에 배 있는 호칭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 혹시 우리 학교 학생 중에 뚠 아티르가 있나요?”
그러자 마녀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런 이름은 화룡고 학생 명단에 없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진짜로 뚠이 없는 건가? 몽중몽의 세계에 오직 그 녀석만 빼놓았다는 게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데?
혹시나 싶어 나는 상태창까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친구 뚠 아티르의 스킬 ‘달콤한 잠꼬대 Lv. 3’을 시전 중입니다.]
[현재 친구와의 동조로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친구와의 스킬 동조.
이것은 올쿠레 켄타를 업고 마그마 볼에서 활약했을 때, 그리고 제르비어스와 함께 캉이에게 정신지배 마법을 걸었을 때 떠오른 메시지이기도 했다.
나는 확신했다.
분명히 뚠은 나와 함께 이 꿈속에 있다고.
어떻게든 녀석을 만나야 돌파구를 찾을 텐데.
“하지만 뚠 아티르가 누구인지는 알지요, 박상식 군.”
“어? 뚠을 아세요, 선생님?”
마녀는 찻잔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웃었다.
“물론이지요. 특히 학부모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겁니다.”
“그럼 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빨리 제 옆에 데려와야…….”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군요, 상식 군. 뚠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잖아요.”
이게 무슨 선문답 같은 소리인가.
뚠이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니.
내가 설명을 요구하자 마녀는 해사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뚠 아티르는 요즘 유행 중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