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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82화 (282/300)

#282. 화룡고등학교 1반 반장 (1)

“지금 전부 너만 기다리고 있잖아, 인마.”

위풍당당하게 소리치고 있는 제르비어스를 멍하니 지켜보고 서 있었다.

“제르비어스?”

“어쭈. 옷도 안 갈아입고 처자고 있었던 거냐. 빨랑 체육복으로 갈아입어, 인마. 눈곱도 떼고.”

“체육복?”

“그래, 결승전까지 꾸역꾸역 올라왔잖아. 이번에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안 그러면 8반 놈들한테 계속 무시당할 거라고. 배구 우승은 넘겨줘도 축구에서만큼은 안 되지.”

“축구?”

“……앵무새야 뭐야. 아니, 이 새끼가 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아직도 멍해 있는 거냐고.”

내가 멍하니 질문만을 되풀이하고 있자니 제르비어스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책상에 앉은 나를 강제로 일으켰다.

그러더니 사물함에서 파란색 체육복을 꺼내 나에게 던져줬다.

“아우 씨, 냄새 보소. 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빨고 처박아 놓은 건지, 원. 신라 시대 이후로 안 빤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나는 제르비어스가 던져준 체육복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그러면서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 금발벽안의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는 없었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박상식만이 서 있었다.

체육복 어깨에는 붉은 실 자수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화룡고등학교 2학년 1반 박상식.’

화룡고등학교라니.

내가 다니던 특수학교는 이런 이름이 아니었다. 교복도, 체육복도 이런 디자인이 아니었고.

‘이게 내가 만들어낸 몽중몽이야?’

당연히 꿈이라고 한다면 내 삶의 어떤 순간을 재현한 장소에 올 거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나는 입학한 적이 없는 학교의,

달려본 적 없는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늦으면 실격패야, 뛰어!”

제르비어스는 아직 축구화를 제대로 신지 못해 낑낑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어영부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축구화를 신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떤 간 큰 자슥이 복도에서 뛰는 거냐. 그것도 축구화를 신고서. 아앙?”

뒤를 돌아보니 훌륭한 적색 갈기를 휘날리는 준마가 복도를 꽉 채운 채 서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말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엔 근육질의 노인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올쿠레 어르신? 어떻게 여길…… 끄악!”

철퇴 같은 주먹이 내 정수리를 따악 하고 내리쳤다.

눈앞에 별이 핑핑 돌 만큼 아픈 한 방이었다.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어르신이라고? 너는 1반 반장이라는 놈이 어떻게 그 모양이냐.”

아무래도 내 꿈에서 올쿠레 켄타는 학생주임인 모양이다. 평소의 인자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

“봄날 망아지 같은 놈들. 아무리 체육대회 날이라고 해도 교무실 앞을 뛰어다니는 걸 용납할 순 없지.”

“망아지라뇨. 누가 보더라도 여기서 망아지는 어르신 쪽 아닙니까?”

“아니, 이 자슥이 그래도!”

“허허허, 그만하시죠, 선생님. 하루쯤은 풀어줘도 괜찮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올쿠레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천마 류운학이었다.

“남은 종목이 축구와 계주만 남았잖아요? 여기서 1반 반장을 붙잡아 놓으면 대회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올쿠레와 천마가 불똥 튀는 눈싸움을 시작했다.

“류 선생님이 그렇게 오냐오냐해주니까 1반이 중간고사에서 꼴찌를 한 거 아닙니까.”

“뭐, 꼭 공부만 열심히 시켜야 한다는 법 있나요. 우리 때와는 다른 세상이지요. 안 그러면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습니다.”

“오호. 꼰대라고 했습니까? 지금 1반 담임으로서 체육대회 우승을 위해 본분을 망각하신 건 아니고요? 체육 교사가 담임인데 우승 못하면 망신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잖습니까.”

올쿠레의 양팔이 거칠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거대한 전투 도끼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휘둘러질 듯 서슬 퍼런 예기를 내뿜으면서.

‘아니, 고등학교라면서? 교사가 왜 살상 병기인 도끼를 들고 있는 거야.’

내가 아는 현실 속에서 올쿠레는 결코 천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진심으로 생사결을 벌인다면 두 합도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릴 거다.

‘설마 칼부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천마의 허리춤에도 목검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뽑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기 어린 천마군림보가 시전되는 일도 없었다.

다만 알랑방귀를 뀌는 중년 남성만 있었을 뿐이다.

“얘들 체육대회가 빨리 끝나야 저희도 퇴근하고 한 잔 땡길 거 아닙니까. 똑!”

그렇게 말하며 천마는 엄지와 검지로 소주잔을 만들어 들이키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올쿠레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삽겹살?”

“에이, 날이 날인데. 오늘은 꽃등심으로 가시지요.”

“콜.”

그렇게 두 교사는 사이좋게 교무실 문 앞으로 향했다. 올쿠레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자 앞발로 벽을 박살 낸 다음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내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자,

천마가 나를 향해 윙크했다.

- 무조건 우승해라, 반장. 최소한 세 골 차로 이겨. 안 그러면 단체 기합인 줄 알아라.

충격적이게도 메시지는 전음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늦었어, 빨리 가자!”

제르비어스가 내 뒷덜미를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도무지 내 꿈의 테마를 알 수 없어 황당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진짜 황당한 순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화룡고등학교 53회 가을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 축구 결승전이 있겠습니다! 선수들은 모두 일렬로 서서 인사해 주세요.”

조회대에 서서 마이크 앞에서 낭랑하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참월의 마녀 일레인 쿠디슈였다.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는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야, 제르비어스. 저분이 교장 선생님이냐?”

“왜 아까부터 당연한 걸 묻고 있는 거냐.”

“보통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웨딩드레스를 입는 게 맞아?”

“평상복이시잖아. 맨날 저렇게 다니시는데.”

일레인을 오래 쳐다볼 수는 없었다.

그보다 더욱 강렬하게 시선을 강탈하는 존재가 계단을 점거한 채 확성기를 들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라, 무적 1반! 허접한 8반의 골대를 찢어버려라!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야야야!”

거기엔 치어리더 복을 입은 해골이 양손에 노란색 폼폼을 든 채 춤을 추고 있었다.

비르카 리케우톤이었다.

녀석의 등 뒤엔 스켈레톤 부대가 똑같은 춤을 일사불란하게 따라 추고 있었다.

‘저 녀석은 응원단장인 건가.’

이쯤 되면 아무리 희한한 녀석이 등장해도 더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래도 푸르가토리움에서 내가 사귄 친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꿈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몇 명이 더 나와 함께 축구를 뛰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왜 다들 낯선 얼굴들만 우리 팀에 있는 거지?

의문은 형광색 조끼를 입은 상대 팀의 선수들과 일렬로 마주 섰을 때 풀렸다.

“봄 대회에 당했던 수모를 갚아주마, 박상식. 우리 8반은 너희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한 다음 계속 이를 갈고 있었다고. 여름방학에 특훈까지 했어!”

8반의 주장 배지를 달고 있는 건 온몸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잭 프로스트였다.

“디멜? 너 괜찮은 거냐?”

“뭐가.”

“니 손바닥이 조금씩 녹아서 축구공이 젖고 있잖아.”

그러자 디멜의 옆에서 꼬리가 아홉 개 달린 동료가 내 말을 받아쳤다.

“참 못됐다. 친구의 신체 단점을 가지고 놀리면 못 쓰는 거지. 안 그래?”

“캉이?”

“별명 부르지 마! 내 이름은 호월랑이라고. 꼬리 좀 있다고 해서 강아지가 아니란 말이야.”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들렸다.

제르비어스가 바로 나에게 공을 돌렸다.

“가자. 정신 바짝 차려!”

나는 축구공에 발을 올려놓고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문 앞에 걸린 ‘화룡고 가을 체육대회’라는 현수막.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학생들.

교실 창문에 걸터앉아 흥미진진하게 운동장을 관전하고 있는 선생님들까지.

해골과 구미호, 마법사와 마왕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범한 고등학교의 체육대회였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나는 봉마연옥 푸르가토리움의 죄수.

그리고 여덟 번째 열쇠를 갖고 있는 층장 니오프론을 추격하기 위해 승부를…….

그때였다.

“멍하니 있으면 공을 뺏기게 되지!”

디멜 무바크가 나에게 덤벼왔다.

혹시나 빙결 마법을 쓰면 어떻게 하나 흠칫한 사이 디멜은 평범한 축구선수처럼 공을 빼앗아 내달렸다.

하지만 냅다 따라붙은 제르비어스의 태클에 공은 곧 라인 바깥으로 빠지고 말았다.

제르비어스는 저돌적 스트라이커인지 혼자서 드리블하며 8반 수비진을 애먹이고 있었다.

나는 디멜의 옆으로 다가갔다.

“디멜. 너 얼음 마법은 이제 못 쓰는 거냐?”

“뭔 소리야. 축구 경기잖아. 손을 쓰면 반칙이지.”

나는 아무런 말 없이 8반의 골대를 가리켰다.

거기엔 아홉 개의 꼬리로 날아오는 공을 모조리 쳐 내고 있는 캉이가 있었다.

“쟤는 꼬리를 쓰는데?”

“골키퍼잖아, 멍청아. 키퍼는 원래 전신을 다 쓸 수 있어.”

“이익…….”

이게 정말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세계란 말인가?

뭔 룰이 이따구야. 전혀 통일성이랄 게 없잖아.

나름대로 냉철한 이성과 합리를 겸비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는 마왕과 그 마왕의 슛을 거미손처럼 막아내는 구미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차게 식었다.

“보고만 있을 거냐, 박상식?”

“아니. 이제 나도 한 번 해보려고.”

제르비어스의 패스를 넘겨받아 달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공을 차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는 내가 만들어낸 꿈속.

어차피 주인공은 나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몸놀림이 가벼워졌다.

“발만 쓰는 거라면…… 경공술 정돈 해도 되겠지?”

축구공을 양발에 낀 채 초상비를 시전했다.

“어어어어?”

나를 뒤쫓던 8반 선수들은 모두 닭 쫓던 개마냥 하늘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유히 먹이를 거머쥔 채 창공을 노니는 독수리처럼 운동장 위를 날았다.

혹시나 심판이 휘슬을 불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심판은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디멜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분통을 터트렸을 뿐이었다.

“젠장! 봄 대회 때도 저거에 당했는데!”

그렇게 나는 무사히 골라인 앞에 착지했다.

내 앞을 막아서는 건 골키퍼인 캉이 뿐이었다.

구미호 소년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를 향해 선포했다.

“나는 이 대회를 위해 3반에서 영입된 용병이야. 저번 같은 결과는 없을걸?”

“……고작 체육대회 때문에 반을 옮겼다고?”

“응. 대한민국에선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지. 아이돌 준비 때문에 바쁜 몸이지만 짬을 낸 거라구.”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관에 혼미해지려고 할 때 태클을 걸기 위해서 달려오는 수비수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승부는 이겨야지.’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 축구공을 걷어찼다.

그리고 곧바로 아차 싶어 혀를 깨물 뻔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겨야겠다는 마음에 그만 축구공에 내공을 잔뜩 싣고야 말았다.

공이 날아가는 궤적의 잔디들이 무참하게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비티 볼(Gravity Ball).

주변을 소용돌이처럼 일그러뜨리는 중력 탄환이 캉이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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