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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81화 (281/300)

#281. 나만의 절대영역 (5)

시간이 흐르자 뚠은 제법 진정되었다.

“미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 이제 니오프론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줄게. 아직은 가설일 뿐이지만.”

그렇게 말하며 뚠은 바닥에 큼지막한 원을 그렸다. 그리고 원의 중간에 정확히 점 하나를 찍었다.

“이 동그라미를 우리가 있는 꿈이라고 생각해 봐. 그리고 이 점이 바로 방장, 너야. 우리는 그것을 꿈을 꾸는 사람인 ‘몽주(夢主)’라고 불러.”

“몽주. 이해했어.”

“자각몽을 다루는 기술은 총 세 가지야. 어디서 배웠거나 익힌 게 아니고 처음부터 할 수 있었지만, 종족의 다른 친구들도 이건 일맥상통했어.”

어미의 배에서 나온 사슴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초원을 딛고 일어선다.

그리고 그 사슴을 포식하는 표범도 아주 어려서부터 추격 놀이를 하며 사냥법에 숙달되어 간다.

유전자에 누적된 종으로서의 생존법. 그것이 두더지 토인에게는 자각몽에서 헤엄치는 법이었던 것이다.

“네 ‘달콤한 잠꼬대’는 사실 세 가지의 스킬이 융합된 거구나.”

“방장의 방식대로라면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 가장 쉬운 건 방장이 지금도 하고 있어.”

“지금도? 내가?”

뚠이 원 중앙의 점을 가리켰다.

“움직이고 있잖아. 보통의 꿈에선 관찰자로 일어나는 일을 목격할 수밖에 없지만 꿈이라는 걸 자각한 몽주는 신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방장은 두더지 토인이 아닌데도 거의 내 수준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 이 첫 번째 기술에 재능이 있는 거야.”

그것은 아마도 내가 VR 게임에서 인생 절반을 살아온 알파테스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제르비어스의 저주가 만들어낸 허상 속에서 심마와 대면했던 것도, 환룡 메르킨의 환상에 갇혀 고문받았던 기억 또한 도움이 됐을 것이다.

“두 번째가 중요해. 몽주를 둘러싼 꿈의 환경 자체를 바꿔버리는 기술이지. 이전 꿈에서 내가 하얀 공을 크게 만들기도 하고 형태를 바꿨던 것 기억해?”

“그걸로 이블버스터를 쓰러트렸지. 굉장했어.”

“외부 환경을 바꾼다는 건 아주 까다로워. 자칫 믿음이 흐트러지거나 의심이 끼어드는 순간 무의식중에 두려워하는 괴물을 소환할 수도 있거든.”

“니오프론은 그걸 숨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계속 쓰고 있었어.”

층장 니오프론은 몽현의 신답게 십만대산을 구현하기도 하고 내가 클리어한 게임을 생생하게 재현하기도 했다.

세계 창조에 버금가는 위업을 별다른 체력 소모도 없이 난사할 수 있는 듯 보였다.

“그야말로 신의 권능이지. 우리 종족에서 가장 뛰어난 몽주도 이 정도까지 해내지는 못했어.”

그러면서 뚠 아티르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뭔가 쑥스러운 말을 할 때 보이는 반응.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게 너구나? 종족에서 제일 뛰어난 몽주.”

“응. 맞아. 우리는 싸움이나 전쟁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꿈속에서는 누구도 다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술로 스포츠를 하는데 나는 그 영역의 챔피언이었어. 물론 이 감옥에 붙잡혀오기 전까지 그랬다는 말이지.”

그러고 보니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영체로 소환한 친구는 뚠을 포함해서 총 넷이다. 그중에서도 뚠의 활약은 단연 두드러졌다.

비르카는 7층에서 골제의 병사들을 춤으로 홀려내는 대단한 솜씨를 보였으나 그것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홀로그램 쇼에 가까웠다.

현실에 물리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돌멩이 하나 들어 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천마와 마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더라면 설공은 아스티나와 일대일 승부를 겨루는 게 아니라, 세 명의 절대고수를 상대로 싸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뚠은 달랐다.

니오프론이 만들어낸 꿈속의 괴물들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건 분명 파천황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영체로서 가능한 영역을 초월한 것이다.

“여기가 꿈의 신이 만들어낸 꿈이기 때문이겠지. 현실엔 개입할 순 없지만 이건 내 특기 중의 특기이니까.”

불현듯 하나의 의심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뚠은 마왕성의 지하에 땅굴을 파고 잠들어 있다가 소환빔을 맞고 끌려왔다고 했다.

본인의 설명도 그러했고, 용사의 심안이 알려주는 정보도 그걸 뒷받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뚠이 꾸고 있었던 꿈의 내용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그때 무슨 꿈을 꿨냐고? 꼭 말해야 해?”

“어쩌면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르니까.”

“요, 용사였어.”

“용사?”

“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꿈은 용사가 되어서 마왕을 쓰러트리고 공주를 구하는 꿈이거든. 그때도 분명 그 꿈을 꾸고 있었을 거야, 아마도.”

뚠이 꿈을 꾸는 동안 지상의 옥좌에서 잠을 자고 있던 마왕이 영향을 받았던 건 아닐까.

마왕의 입장에선 갑자기 두더지 토인이 자신을 무참하게 제압하는 내용은 끔찍한 악몽이었으리라.

‘그 충격으로 마왕이 죽었다면 뚠은 진정한 의미에서 마왕 학살을 해 온 건지도 모르겠네.’

뚠의 설명은 가장 중요한 세 번째 기술로 넘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야. 사실 나도 많이 시도해본 적은 없어.”

“그만큼 어려워서?”

“아니. 난이도는 비슷해. 하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주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이야. 방장, 만약에 네가 누워 있는 침실의 벽을 누군가 망치로 때려 부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더럽겠지? 보통은.”

“바로 그런 거야. 세 번째 기술은 바로 몽중몽을 만들어내는 거거든. 꿈속에서 꾸는 꿈. 몽주의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제스처로 읽힐 수 있기 때문에 허락받지 않고선 절대 시도하지 않는 금기라고 할 수 있어.”

뚠은 원 안에 작은 원을 하나 그렸다. 그것은 마치 풍선 속에 들어 있는 풍선처럼 보였다.

“오호라. 그으래?”

왜 뚠이 여기까지 설명을 이어왔는지 알겠다. 몽중몽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본론이었던 것이다.

“허락이라니. 우린 니오프론에게 그딴 거 구할 필요 없지. 자아, 뚠 아티르. 그 몽중몽이라는 걸 꾸어서 니오프론을 혼쭐내주자!”

“내가 아니야. 방장이 해야 해.”

“응? 내가?”

“내 본체는 1층에 있잖아. 그러니 방법을 알아도 몽중몽을 만들어낼 수 없어. 어디까지나 몽주는 네가 되어야 해.”

“알았어. 어차피 니오프론과 결판을 내려면 총대를 내가 메는 게 맞겠지.”

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타강사의 과외받는 학생인 내 심정에서 그것은 결코 달가운 신호는 아니었다.

“왜 그래?”

“방장이 몽중몽을 만들어내면 나 또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어.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거지. 만약 방장이 바라는 꿈속에 내가 없다면…… 우리는 이대로 작별하게 될 거야.”

내가 운전대를 쥐는 순간 뚠이 조수석에서 튕겨 나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끌었던 거야? 내가 만들어낸 꿈에 뚠, 너의 자리가 없을까 봐서?”

“……응.”

나는 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한 촉감이 느껴졌다. 비르카를 만질 수 없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용.

내가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뚠을 ‘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고마워. 그럼 한 번 해보자. 방장은 이제 마법도 쓸 수 있다며?”

“어, 그렇지.”

“그렇다면 마법진을 만들어 봐. 실제로 마법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게 현실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곧 뚠이 바닥에 그려놓은 원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마법진으로 바뀌었다.

아직 술식을 정하지 않아 마법진 안에서 회전하고 있는 문자들은 텅 비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눈을 감고 만들어내고 싶은 꿈을 상상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아.”

“알았어.”

나는 뚠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상상에 몰입했다.

“아, 뭔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데?”

“중간 단계를 만들어두면 좋아. 아무것도 없는 흰 도화지를 상상해. 그리고 방장은 붓을 쥐고 있는 거야. 그걸 채워넣기만 하면 돼.”

“그런 거라면 쉽지. 뚠, 지금까진 몰랐는데 너는 굉장히 뛰어난 선생이다. 입시학원을 차려도 되겠어.”

“헤헷, 그거 칭찬이지? 입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새하얀 도화지를 상상했다.

그리고 나는 나와 니오프론을 그곳에 배치했다. 그러고 나서 비오프론의 사이즈를 극단적으로 줄였다.

주먹 한 방으로 눌러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좋아. 이런 꿈을 만들어서 니오프론을 단숨에…….’

그때 뚠이 나를 방해했다.

“그런 방식이 아니야, 방장.”

“어? 내가 뭘 잘못하고 있어?”

“층장을 꺾고 열쇠를 받아내겠다는 건 비교적 최근에 생긴 바람이잖아. 몽중몽을 만들어내려면 그런 소망으로는 약해.”

그러면 어떤 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지?

내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자 뚠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말했다.

“평생에 걸쳐 추구해왔던 것. 갖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보물. 창밖으로 바라만 보았으되 닿아본 적 없는 신대륙.”

“…….”

“꿈꾸지 못했던 것을 꿈꿔보는 거야, 슈바인 스트링거. 자기 자신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솔직해져야만 해. 넌 할 수 있어.”

뚠은 나를 격려했지만, 거꾸로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게 뭘까?

내가 거닐고 싶었던 세계가 무엇인데?

어떻게 하면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거지?

그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그림에 변화가 생겼다. 분명 흰 도화지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손에 들린 것이 달라졌다.

붓이 아니라 기원검 네메시스로.

거기에 생각이 닿자 일이 조금 쉬워졌다.

‘그래. 기원검은 소유자의 욕망에 반응하는 검이잖아.’

나는 기원검이 내 진정한 바람을 도화지에 표현해줄 것이라 믿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도화지에 뭔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나와 뚠이 있던 세계 자체를 집어삼켰다.

*

따뜻한 햇살이 속눈썹을 간지럽혔다.

너무나 평온한 나른함.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

나는 스스륵 눈을 떴다.

“뭐야, 여기는?”

순간 한눈에 들어온 풍경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왼쪽에 보이는 건 넓은 운동장.

오른쪽에는 가지런히 도열한 책상과 의자들이 자리를 비운 주인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학교……인가?”

지금까지 내가 엎드려서 낮잠을 자고 있던 것은 평범한 목제 책상이었다.

오른쪽 하단에는 뭔가를 썼다가 지운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뭔가 싶어 자세히 보았더니 숫자와 기호가 나열된 공식이었다. 오해할 수 없는 익숙한 글씨체.

분명히 내가 남긴 것이다.

“컨닝페이퍼?”

간 크게도 책상에 이런 걸 적어놓다니. 이렇게 잘 보이는 곳에 적고서도 안 걸릴 거라 생각한 건가.

아니, 사실은 걸릴 게 무서워서 뒤늦게 지운 흔적인 걸까.

그때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렸다.

“누구냐!”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검을 정면으로 겨누었다.

하지만 내 손에 들어 있는 것은 검이 아니었다.

손때가 묻은 볼펜 한 자루였다.

“누구긴 누구야, 니 짝궁이지. 이 망할 놈의 새끼야. 오늘 같은 날 교실에서 처자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한 남자가 한 손으로 미닫이문을 붙잡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씩씩거리며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녀석.

지독하게 안 어울리는 교복을 입은 제르비어스 폰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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