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삼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6)
무수한 신격 죄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예언자.
그녀는 9층의 문을 열어젖힐 주인공으로 푸르가토나투스를 지목했고, 그 사건은 감옥의 모든 층에 던져진 불씨가 되었다.
그렇게 자라난 불길이 지금 정점에 달해 있다.
“니오프론은 여전히 제 예언을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겁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푸르가토나투스를 곁에 둬야만 한다는 집념에 매몰되어 있죠.”
달리아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대가 공략해야 할 지점은 거기에 있을 겁니다. 층장 니오프론이 단단히 쥐고 있는 예언에 대한 믿음. 그것에 속임수가 섞여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 전에 그대는 승부를 걸어야 할 겁니다.”
“소중한 정보를 준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할게. 다만 궁금한 것이 있어.”
“말씀하시지요.”
“푸르가토나투스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것과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 보고 온 나의 과거가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방금 말해준 이야기를 전달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저 검은 구멍에 들어가기 전의 그대와 지금의 그대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나고 싶었던 등반죄수는 후자였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알게 되고 나서…… 내 머릿속은 반죽처럼 흐물흐물해졌어. 혼란스럽단 말이지. 오히려 목표를 향해 달려갈 장기말이 필요했다면 지금의 내 정신상태는 나쁘게 작용하는 거 아닌가?”
“그대는 지금껏 자신이 무죄라고 믿어왔겠지요?”
“응.”
“아무리 완벽한 봉마연옥이라고 해도, 우주의 질서를 관장하는 푸르가토리움의 지배자라 해도 뭔가 착오를 일으켜서 죄를 짓지 않은 결백한 죄수를 붙잡아 온 거라고 믿어왔을 겁니다.”
“……정확해.”
“그 억울함이 지금까지의 그대를 멈추지 않고 달리게 해준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연료통은 텅 비게 될 테지요.”
달리아의 말은 계속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아카식 레코드가 내게 보여준 장면.
영혼 상태에서 겪었으나 그 직후 은폐된 기억.
나는 본래 주어진 수명을 억지로 늘렸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서 내 죄가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대에겐 이제 새로운 연료가 필요할 겁니다. 바로 정확히 이 시점 이후로 그대의 앞날은 무수한 변곡점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품게 되었어요. 아카식 레코드를 엿볼 수 있는 저마저도 흐릿하게만 보일 정도로.”
“당신은 거기에 희망을 건 거군. 니오프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달리아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실소가 피어났다.
내가 뭔가 말을 잘못한 걸까?
“복수라니오, 가당치 않습니다. 저는 니오프론이라는 죄수에 대해 아무런 원한도 없습니다. 지금 시점의 제가 그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이라서도 아니지요.”
“자신의 목숨을 거둬갈 상대를 미리 알았는데도 그 장본인을 미워하지 않는 게 가능해?”
“등반죄수여. 태어날 때부터 가슴에 두꺼운 창이 박혀 살아가는 여인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끔찍한 고통과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악취가 언제고 따라붙는 삶을 떠올려 보세요.”
“…….”
“그 여인에게 누군가 돌멩이를 던졌다 한들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요? 평생을 악의에 관통당해 살아가는 자에게 찰과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니오프론에게 원한이 없는 게 아니라, 오래전에 역치를 돌파한 뭔가가 있다는 소리구나. 모든 원망이 한 점에 집중되어서 다른 건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달리아의 얼굴은 구슬펐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토록 선해 보이는 여신이, 아무런 연고도 없으며 만날 수조차 없는 미래의 등반죄수에게 모든 걸 알려줄 정도로 친절한 여인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곳에 붙잡혀 온 걸까.
“달리아. 당신은 이 감옥이 내린 판결에 이의가 없는 거야? 무슨 죄를 지은 건지 물어도 되겠어?”
“저의 죄는 그대에게 한 터럭도 의미가 있지 않을 텐데요.”
“지금의 내가 알고 싶으니까. 마침 대화하기 좋은 영혼 상태이기도 하고. 혹시 알아? 당신도 내다보지 못하는 내 앞날에 뭔가 중요한 힌트가 될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
달리아의 미래시는 또렷하고도 강렬한 영상의 형태로 찾아오곤 했다.
잠들어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를 가리지 않았다.
“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 미래시(未來視)는 일곱 살 때 일어났습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었지요.”
인간 시절 달리아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목장의 딸로 태어났다.
백여 마리의 양들을 먹이고 산책시킨 뒤,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는 일이 일과의 전부인 일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목장에는 양을 노리고 침범한 늑대와 맞서 싸워 내쫓을 정도로 용맹하고 충직한 한스라는 번견이 있었다.
“어느 날 한스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제 동생을 물어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 꼬리를 흔들고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던 한스가 동생의 목을…… 뼈가 보이도록 깨물어 즉사시키는 꿈을.”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적인 장면.
달리아는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꺼내어 보았지만, 누구나 악몽은 꾸는 법이라는 반응만 돌아왔다.
“한스를 버려야 한다고 그렇게나 외쳤지만, 소용없었어요. 뛰어난 번견은 목장의 양 서너 마리보다 비싼 재산이었으니까요. 일곱 살배기 딸의 악몽 하나만 믿고 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될 만큼.”
그래서 달리아가 내린 판단은 도주였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동생을 등에 업고 무작정 깊은 산속으로 달아났다.
“그러면서도 저는 오직 한 가지만을 빌었습니다. 제가 본 것이 실제가 아니기를. 그저 의미 없는 악몽을 꾼 것이기를.”
소녀의 믿음은 무참하게 배신당했다.
두 어린 딸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님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번견의 뛰어난 후각뿐.
한스의 코에 남은 옷가지를 비벼 냄새를 각인시킨 후 사라진 자매의 뒤를 쫓게 한 것이다.
번견의 준족은 불과 반나절 만에 자매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전력으로 달리는 바람에 한스는 그만 허기가 지고 말았고 숲속에 흐드러진 버섯을 씹어 먹게 된다.
“그 버섯에 광견병을 일으키는 인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자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충직한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피아를 식별하지 못하고 살육본능에 눈을 뜬 야수만이 있을 뿐이었다.
달리아는 자신이 본 미래시가 눈앞에서 현실로 탈바꿈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래시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제 시도가, 거꾸로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완벽한 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해맑게 웃던 동생이 그저 살코기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달아나지 못했습니다. 그날 한스가 저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배를 채운 한스는 어디론가 달아나버렸고 남겨진 달리아는 뒤늦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저는 불길한 미래를 점치는 소녀로 온 마을에 악명을 떨쳤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방랑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사춘기에 접어들수록 미래시의 힘은 더욱 강해졌고 횟수도 빈번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달리아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미래시에 관한 한 자신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자에게 결코 희망 섞인 말이나 위안을 해줄 수 없는 주박에 걸리고 만 것이다.
전례 없는 예언자의 탄생에 온 세계가 달리아를 숭배했고, 그것은 어린 소녀를 신격의 반열에 들게 할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아시나요? 이 우주가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어디론가 흘러간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남게 되는 것은 수명만큼의 고통뿐이라는 것을.”
저주받은 재능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계가 그것을 축복이라 말했다.
“저는 침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미래시를 말하지 않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외면했습니다. 거대한 무력감에 빠져 파멸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푸르가토리움에 달리아가 잡혀 온 이유.
그 죄목은 ‘침묵한 죄’였던 것이다.
“제게는 답이 필요했습니다. 저에게 이토록이나 정밀한 예언 능력을 준 어떤 존재는…… 어째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았는지. 대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는 무엇인지. 그걸 알 수 없었으니까요.”
푸르가토리움에 붙잡혀 온 뒤 달리아가 느낀 것은 오히려 해방감이었다.
비로소 온 세계가 자신에게 예언을 갈구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입소 첫날에 저는 타천의 강가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강물에 빠져 죽으면 미래시의 권능도, 오래된 죄책감도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달리아는 타천하지 못했다.
하필 그녀가 뛰어든 장소가 톱니바퀴의 여신 벨리오나의 절대영역이었던 탓이다.
“벨리오나는 시간을 정지시킨 뒤 저를 강물에서 건져냈습니다. 자살하려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으라면서 저를 타박했지요.”
그 순간 달리아는 벨리오나와 함께 보내게 될 까마득한 시간을 엿보게 된다.
평생 순간만을 살아온 여신과 단 한 번도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 여신이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욕심이 났습니다. 이성이 없는 괴물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아졌어요. 벨리오나가 곁에 있으면 인간 시절 받지 못했던 위안을 비로소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면서 이대로 감옥에서 지내게 될 경우에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지 또한 순차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아는 벨리오나의 곁에 남기로 결정했다.
“벨리오나는 제게 미안함을 갖고 있을 겁니다. 자신을 지키느라 제가 죽었다고 믿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벨리오나가 저를 지켜준 거예요. 저는 그저…… 오래전 눈앞에서 잃어버렸던 동생을 그 아이에게 덧씌워서 기만했을 뿐입니다.”
*
“아니. 그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어. 당신에게는 책임이 없어. 그저 감당할 수 없는 힘에 휘둘리며 고통받았을 뿐이야.”
나는 벨리오나가 아스티나의 손에 목숨을 맡기면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보았다.
거기에 달리아에 대한 원망은 조금도 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이 있던 시간대에 왜곡 없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 벨리오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당신을 추억하고 있었어. 거기에 원망은 없었어. 오직 그리움만 가득했지.”
달리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대로 ‘기록’이 끝나버린 줄 알고 내가 조금 당황하기 시작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등반죄수여. 하지만 아직 제가 그대에게 해줄 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듣고 있어.”
“타천의 강가에서 무아의 괴물이 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을 때, 저는 뭔가를 직감했습니다. 미래시가 아니라…… 그저 간절한 소망이 가미된 바람 같은 거였죠. 어쩌면 이 감옥에 떨어진 것에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달리아는 정확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주 먼 미래에 ‘미래를 바꿀 힘’을 가진 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게 나라고 확신하는 거지?”
“확신이 아닙니다. 바라는 거지요. 일곱 살 이후로 제가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것. 앞날에 대한 무지의 축복. 그것이 당신에게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