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 삼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5)
“너무나, 너무나 커다란 죄입니다.”
소녀 모습을 하고 있는 교도관장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본디 희노애락이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아해할 만큼 감정 표현에 인색했던 녀석인지라 저 정도만 해도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알고 있어. 나는 벌을 받게 될 테지. 그게 네가 세계를 다루는 방식이니까.”
반면에 아홉 살의 내 영혼은 덤덤하게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단 당신은 두 다리를 잃게 될 겁니다. 이 행성의 어떤 의학적 기술로도 고칠 수 없을 거예요. 원래 이 순간 사망해야 했을 육체의 수명을 억지로 늘린 것이니까.”
“그것도 각오하고 있다.”
“후회되진 않으신가요, 왕이시여? 당신이 우주의 숱한 세계 중에서 하필 이곳을 시찰지로 고른 것이.”
“전혀. 나는 우주개척을 숨 쉬듯이 하는 초고도 문명이나 자연법칙을 농락하는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엔 관심이 별로 가지 않았어. 오직 지성체가 주어진 환경에 서로 부대끼며 울고 웃는 세계에서 태어나고 싶었다.”
“아직 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부탁을 들어드리려면 운명의 여신이 쏟아낼 분노와 맞닥뜨려야 해요. 정해진 인과를 뒤트는 이 변덕에 그녀는 분명 모독을 당한 기분이 들 테니까요.”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처음 푸르가토리움에 잡혀 들어왔을 때 내겐 두 가지 죄목이 걸려 있었다.
하나는 게임 속 세상에서 캐릭터들을 때려잡은 이유로 선고받은 마인학살죄.
그리고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운명의 여신을 모독한 죄’.
그것의 진짜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대체 원래의 나는 뭐였던 거지?’
무려 여덟 개의 층을 오르기 위해 발버둥 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나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로 붙잡혀 왔다는 억울함의 지분도 적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게 이런 폭거를 휘두른 교도관장의 얼굴에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생각으로 그 지옥 같은 여정을 이겨온 것이다.
그런데 진실을 알게 될수록 혼란스러웠다.
“당신은 푸르가토리움의 일개 죄수가 될 겁니다. 그것도 다른 죄수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약한 몸으로.”
“내가 받기로 한 육체는 어떻게 되는 거야?”
“타천의 강가에 담가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 외엔 당신이 감옥으로 귀환할 때까지 그 몸을 보존할 길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널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
급기야 청발 소녀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답답하군요. 타천의 강물에 육신이 잠겨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요? 본래의 권능도 모두 잃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냥…… 백지가 되어버린단 말예요.”
“아마도 그렇겠지. 타천의 강가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그 모든 걸 고작 십오 년 더 살겠다고 내팽개치는 게 왕이 내릴 만한 결정인가요?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 영혼은 버럭 화를 내는 소녀에게로 다가가 상대의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청발의 소녀는 흠칫 놀랐으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너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한 존재이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거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이 어린 지구인이 짧은 생애 동안 받은 가족의 따뜻함을 잊지 못해. 궁핍한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랑에서 많은 걸 배웠어. 아직 그걸 다 베풀지 못한 채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겨우 그런 하찮은 감정 때문에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고요?”
“그 하찮은 감정을 배우기 위해서 내가 이 별에 온 것이니까.”
“당신은 스스로의 의지로 타천을 결심한 거예요. 부디…… 그 결정에 후회가 없기를 바라겠어요.”
아홉 살의 내 영혼은 교도관장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더니 싱그럽게 웃었다. 내가 단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물론 너무 좋은 날들을 보내는 바람에 날 데려오는 걸 잠깐 잊어먹으면 더욱 좋고.”
“……웃기지 마세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내가 아는 너라면 그럴 테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홉 살의 내 영혼은 다시 찌그러진 자동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산등성이 너머에서 앰뷸런스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메아리를 퍼트리며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때부턴 내가 기억하는 인간 박상식의 삶이 다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교도관장은 공중으로 스르륵 떠올랐다.
여전히 지켜보고 있는 내 존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로.
“아카식 레코드는 당신의 진명을 고쳐 쓰게 될 테죠.”
소녀의 입이 허망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왕좌를 잃어버린 왕이시여.”
*
“허어어어억.”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달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진실을 감당해야 했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세계의 전체가 붕괴되고 강제로 재조립당하는 정도의 폭력적인 아픔과 함께.
나는 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모종의 이유로 왕은 필멸자의 삶을 체험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고 교도관장 또한 그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여동생을 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예정된 죽음을 거부했으며 그 대가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망각한 채 일개 죄수로 ‘타천’한 것이다.
“대체 난 뭐였지?”
그것은 내 혼잣말이었으나 달리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것은 제가 여기서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이군요. 하지만 그대는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보고 왔으니까요.”
“……어떻게 평생 동안 전혀 기억을 못 할 수가 있지? 저 정도로 중요한 일을 어찌 그리 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냐고.”
“이 강물에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요.”
8층에서 만난 타천 죄수들 중 유일하게 내게 말을 걸어왔던 백발의 죄수가 떠올랐다.
녀석은 내게 물었었다.
어째서 강물의 냄새를 풍기면서도 멀쩡할 수 있느냐고.
‘사실 난 조금도 멀쩡하지 않았어. 내가 왜 이 감옥에 붙잡혀 왔는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내게 남겨진 숙제거리는 많았다.
운명의 여신을 모독하기 전의 나.
푸르가토리움의 교도관장은 어째서 나를 ‘왕’이라고 불렀는가.
내가 본래 푸르가토리움에서 했어야 했던 건 무엇이었는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지금 품고 있는 의문도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노력 여하? 당신은 미래를 읽을 수 있잖아. 그래서 나와 실시간 대화하듯 기록을 남긴 거고. 그런데 왜 노력 여하라는 표현이 붙는 거지?”
“사건의 지평선에서 돌아온 그대의 시점에서 다양한 분기점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위대한 푸르가토리움의 교도관장인 그분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변덕을 저지른 장본인입니다. 기억을 되찾아나갈수록 그 분기점의 곡선은 가팔라질 테지요.”
육체를 떠난 영혼 상태인 덕분인지 혼란스러운 감정이 진정되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숨겨진 내 과거가 너무 충격적이었다고는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나는 9층에 올라야 하는 등반죄수이며 결국 탈옥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인 인간이다.
왕이니, 왕좌니 하는 건 일단 머리에서 잊기로 했다.
지상명제는 이 층의 층장인 니오프론에게서 열쇠를 빼앗는 방법뿐이다.
“이제 제가 드릴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신 것 같군요.”
“무슨 말이든 귀담아듣겠어.”
달리아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니오프론이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아실 테죠?”
“내 친구인 아스티나 류. 2층 삼월초원에서 태어난 마검사.”
“푸르가토나투스지요. 그런데 등반죄수여.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뜻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나요?”
“물론이지. 절대 틀릴 리 없는 백과사전이 알려준 거니까.”
2층과 3층의 층간구역에서 단탈리온은 이 단어에 대한 정보 제한이 풀렸다면서 내게 푸르가토나투스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이 감옥 푸르가토리움과 나투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나투스(Natus)는 이 감옥의 언어체계에선 일종의 고유명사로서 보통 3개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각각 어떤 뜻을 갖고 있는데?’
‘태어나다, 만들어지다, 빚어지다.’
감옥에서 삶을 얻은 자.
당시의 나는 푸르가토나투스의 정의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달리아는 그것을 부정했다.
“저는 니오프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 차례에 9층의 문을 열어젖히는 자는 푸르가토나투스일 거라고. 그리고 그에게 뜻도 설명해 주었죠.”
아스티나의 입장에선 비극이 시작된 시점이다.
달리아의 이 예언 때문에 니오프론은 설공을 삼월초원에 내려보냈고, 아스티나의 삶은 파괴되었다.
무수한 세계선으로 달아나 내가 푸르가토리움에 입소한 세계선에 당도할 때까지 그녀의 발자국엔 온통 피투성이뿐이었다.
“저는 예언을 내릴 때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 권능에 내려진 제약. 지금의 그대라면 이해할 수 있을 테죠. 신격 존재라 해서 결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음을.”
“계속해 봐. 그래서?”
“하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니오프론을 속이고 싶었습니다. 곡예에 가까운 기만이었지만 저는 성공했지요. 니오프론은 제 예언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해하고 있다고?”
달리아의 입에서 또 한 번 충격적인 사실이 흘러나왔다.
“마녀의 딸은 분명 푸르가토나투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푸르가토나투스는 한 명이 아니거든요.”
“……뭐?”
“묻겠습니다. 왕좌를 잃어버린 왕이여. 당신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 천혜의 육체로 보이는 그 몸은 어디서 비롯된 겁니까?”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의 몸.
푸르가토리움에 처음 입소할 당시 인간 박상식의 몸 대신에 강제로 빙의된 육체.
‘처음엔 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했었지.’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게임 속에서 키보드로 입력한 이름은 허세 섞인 이름 [슈바인 스트링거]와 게임 캐릭터가 갖고 있던 인벤토리, 상태창들이 모두 그 사실만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파고들지 않았지? 교도관장이 내게 이 육체를 준 이유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죄와 내 영혼이 겪었던 사건들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대는 이 감옥에서 만들어진 자입니다. 푸르가토나투스의 두 번째 의미에 부합하지요.”
“그럼 세 번째인 빚어진 자도 있는 거야?”
“마녀의 딸이 바로 빚어진 자입니다. 그녀는 본디 이 세계선에 속한 주인공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의 머릿속에서 꾸며진 소설 같은 가상의 이야기. 그 미약한 가능성에서 ‘빚어진’ 존재이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요. 태어난 게 아닙니다. 가상의 세계선에서 빚어진 거지요.”
“그렇다면 태어난 자는? 아스티나가 아니라면 누구야?”
“그대에겐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진 환수에게서 태어난 동료가 있지 않습니까.”
캉이.
임신한 채 감옥에 갇힌 환수 호이란이 낳자마자 3층으로 내려보내야 했던 구미호 소년.
그러고 보니 캉이야말로 의심의 여지 없이 감옥에서 태어난 존재다.
그런데 설공은 캉이의 목숨이 아닌 아스티나의 목숨만을 노렸다. 오직 아스티나만을 가리켜 ‘예언의 아이’라 불렀다.
때문에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쩌면 나 또한 진실의 일부만 말함으로써 상대를 기만하는 작전에 현혹된 건지도 모른다.
세 개의 뜻을 가진 하나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래요. 푸르가토나투스는 당신을 포함한 세 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