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삼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3)
“저걸 폭포라고 부를 수 있는 거야?”
탄식의 폭포는 내가 알고 있던 폭포의 정의와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본디 폭포라고 한다면 강물이 깎아지른 지형을 만나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는 장소를 말할 거다.
하지만 탄식의 폭포에서 물줄기의 방향은 아래를 향하지 않고 오히려 위를 향하고 있었다. 적색편광을 내뿜는 거대한 구멍이 물줄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먼발치에서 주변 일대를 붕괴시키고 있는 커다란 구체를 지켜봤다.
아스티나가 소감을 내뱉었다.
“들었던 대로 블랙홀과 비슷해 보이는데?”
“블랙홀이면 블랙홀이지, 비슷해 보인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일전에 내가 단탈리온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었던 블랙홀을 떠올려 봐. 그건 내 몸집보다 작은 크기였어. 저 정도 크기의 블랙홀이라면 여기 8층은 물론이거니와 푸르가토리움 전체가 멀쩡히 유지될 수가 없는걸.”
무려 9서클에 도달한 중력 마법사의 감식안.
게다가 아스티나는 이곳과 다른 세계선에서 수없이 블랙홀을 생성 시켜 과거로 회귀해 온 여행자다.
그런 그녀조차 강줄기 끄트머리에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블랙홀을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8층의 교도관 숭배를 강탈하는 십자가가 등반죄수를 주시합니다.]
만전불패의 체술이 9레벨로 올라서일까. 안내음성이 들리기 전에 불쾌한 시선이 나를 지켜본다는 느낌을 먼저 감지할 수 있었다.
[8층의 교도관은 탄식의 폭포를 가리켜 자연법칙이 만들어낸 금역이라고 경고합니다. 육신을 가진 자가 무모하게 접근할 경우 영원이라는 개념에 박제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교도관의 설명 중에서 ‘영원이라는 개념’은 지드가 꺼냈던 말과 일치하는 데가 있었다.
“저 블랙홀 안에 사건의 지평선이란 게 있다고?”
사상지평(事象地平).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무저갱의 경계선.
어렸을 때 본 SF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실수로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한 우주선이 다른 차원의 지옥을 불러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아스티나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엄마와 내가 만들어낸 블랙홀은 엄밀히 말하면 그 원리를 술식으로 재현한 열화판에 불과해. 그런데 저건 아니야. 마력으로 통제해서 만든 복제 같은 게 아니라 진품이라는 거지.”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절대 탈출할 수 없다?”
“심지어 빛조차도. 그래서 의식을 가진 존재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절대로 알 수 없어. 내가 서고에서 본 책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는 순간 우주가 종말을 맞을 때까지 죽지도 못한 채 갇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마법사도 있었어.”
자연법칙을 절대영역으로 농락하는 신격 죄수들조차 어째서 저 폭포에 얼씬도 하지 않는지 납득될 만한 설명이었다.
“그런데도 달리아는 저곳으로 나를 불렀단 말이지?”
그것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라는 존재가 푸르가토리움에 불려올 것을 예측해서.
그렇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드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슈바인 스트링거. 나 역시 호승심이라면 이 층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건만 저것만큼은 예외다. 호승심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만 발휘되는 것. 저 폭포는 그저 재해일 뿐이야. 인간의 육체를 가진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호승심 때문에 저길 가려는 게 아니야. 탈옥으로 가는 길이 저곳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려는 거지.”
지드는 결국 두 손을 들고야 말았지만 제르비어스는 마지막까지 나를 만류했다.
“용사야. 네가 불나방처럼 여기저기 뛰어드는 성미인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잘 모르겠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죄수가 남긴 말만 믿고 저런 물체에 다가선다는 게 현명한 일일까?”
“단순히 달리아나 벨리오나의 말만 믿고서 이러는 건 아니야. 또 다른 이유가 있거든. 아직 너희에게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그게 뭔데?”
“층간 구역에서 기원검의 시험을 통과하려고 부단히 애쓰던 때의 일이야. 나는 추체험의 세계에서 자포자기에 가까운 상태로 주저앉아 있다가…… 미래를 점지하는 주술사를 만난 적이 있어.”
황제 르팔타커스의 미래에서 ‘자살’을 읽어냈으며 내 미래에선 ‘왕’을 보았다고 말했던 주술사 노파.
그녀는 내게 지워진 운명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제 능력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낯선 별자리를 넘어서…… 공허가 그 자리를 가리고 있습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 처음 맞이하는 경험이로군요.’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다는 거야?’
‘가로막고 있다기보단 아직 때가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당신은 머지않아…… 저처럼 미천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예언자를 만나게 될 겁니다. 아마도 그분의 존재감이 제 눈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을 흘러넘겼었다.
일단 아홉 신을 제한 시간 안에 죽일 방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고, 노파와의 만남이 끝난 뒤엔 아스티나를 비롯한 친구들을 추체험의 세계에서 불러올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어 노파와의 만남은 안중에도 없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달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일종의 확신이 생겼다.
그 노파가 말했던 ‘훨씬 뛰어난 예언자’.
여신 달리아가 아니고 누구겠냔 말이다.
“나는 그녀로부터 꼭 확인할 게 있어.”
주술사는 마지막으로 내게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은 그분의 예언을 거부할 겁니다.’
내가 달리아의 예언을 받을 것이며 그를 거부할 것이라는 말.
평범한 사주카페에서 알게 된 타로점도 아니고 무려 운명의 여신의 입에서 나온 예언을 내가 걷어찰 것이라는 말은 그냥 흘러넘길 수가 없었다.
저 폭포를 우회해서는 끝내 진실을 확인하지 못하리라.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만일의 경우엔 너희들 곁으로 순간이동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까지 친구의 곁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내 능력이 실패로 돌아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험난한 장소라고 해도 일단 뛰어들어볼 수 있는 근원에는 그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을 안심시키려고 꺼낸 말을 비웃은 건 교도관이었다.
[8층의 교도관이 등반죄수가 가진 순간이동의 권능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수왕 르팔타커스 시온의 힘. 모든 죄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의 축복임은 분명하나 결국 죄수가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탄식의 폭포는 교도관조차 예상하지 못한 혼돈이 빚어낸 현상. 등반죄수의 만용은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젠장. 초치지 말아줄래? 분명 우리가 처음 이 층에 떨어졌을 때는 우리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고 지껄이지 않았던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쩌면 살짝 자존심이 상한 건지도 모르고, 교도관 자신조차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레나스. 저 블랙홀의 영향권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알려줄 수 있겠어?”
“관객님이 볼 수 있도록 돌부리에 초전자포로 표식을 남겨놓겠습니다. 그곳이 안전하게 관측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고마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난 뒤 선수상에 올라섰다.
그때, 아스티나가 내 팔목을 붙잡았다.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해.”
아스티나의 얼굴엔 무거운 죄책감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리면서 이렇게 말해줬다.
“작별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 예전에도 그랬듯이 멀쩡히 돌아올 테니까.”
*
내심 큰소리는 쳐 놓았으나, 탄식의 폭포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귓가까지 울려 퍼진다고 착각할 정도로.
하지만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너무 조용하잖아?’
내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불규칙과 혼돈의 무도회나 다름없었다.
강물은 블랙홀을 향해 잡아 당겨지고 있었으며 파괴된 돌무더기가 허공에서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연히 공사장의 소음을 수백 배로 확대한 수준의 굉음이 들려야 할 텐데 주변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소리조차 저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마냥.
교도관이 나를 지켜보는 시선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를 떠난 것인지, 아니면 내 만전불패의 체술을 지탱하는 감각이 왜곡되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길이 없었다.
‘일단은 기다려볼까.’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보아도 누군가가 내 눈앞에 나타난다거나 무언가가 소환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단탈리온을 꺼내들기로 했다.
녀석은 내가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봇물 터지듯 글씨를 만들어나갔다.
- 용사님. 제발 부탁입니다. 저를 저곳으로 던져주십시오.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이야?”
- 저 구멍 너머에서 그분의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아카식 레코드로 이어지는 길목이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 숙원을 아시잖습니까.
“그건 곤란해. 약속과 다르잖아. 나는 너를 9층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 뭐가 있는지도 모를 구멍에 널 집어 던져주겠다고 하진 않았어.”
- 그래도 이번이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잖습니까! 선심 한 번 써주십시오, 쫌!
단탈리온은 평소와 달리 무척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녀석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모든 단어를 총동원해야 했다.
“너는 원래 가정문의 문장을 사용하지 않아, 단탈리온. 내 질문에 침묵으로 답했던 적은 있어도 ‘이럴지도 모른다’라거나 ‘저럴 수도 있다’는 식의 표현은 결코 쓴 적이 없었지.”
- 그, 그렇지요.
“그런 네가 아카식 레코드로 이어지는 길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표현을 쓴 걸로 봐서는…… 너에게도 확신이 없는 거야. 저 구멍 너머에 뭐가 있을지.”
- ……젠장. 용사님은 쓸데없이 눈치만 빠르십니다.
“쓸 데가 왜 없냐. 그 눈치로 8층까지 올라온 건데. 그나저나 너 입이 좀 험해졌다?”
- 말씀하셨다시피 저는 전지의 마도서. 그러나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볼 수 없지요. 그저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제가 보기에 이번 8층을 지배하고 있는 층장 니오프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사님이 꺾을 수 없는 상대입니다.
“오호라. 그래서 내가 그 자식한테 뒈질 것 같으니 차라리 블랙홀에 뛰어드는 희박한 확률에 네 목숨을 걸어보겠다?”
- 용사님이 8층의 층장이 되실 확률보다는 저 블랙홀 안에 제가 찾는 답이 있을 확률이 더 큰 게 사실이니까요.
“안 돼. 해줄 생각 없어. 너와 나는 운명공동체다. 종착역이 코 앞인데 제멋대로 탈선하겠다는 건 계약 위반이다.”
- 흐흑. 너무하십니다.
“눈물 흘릴 눈도 없으면서 우는 척하지 마라.”
- 이제는 종족차별까지 하시는군요. 됐고. 물어볼 거나 물어보십시오.
백지로 페이지를 넘기는 단탈리온의 동작이 어째서인지 잔뜩 토라진 소녀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걸 애써 무시하며 질문을 던졌다.
“여신 달리아는 나를 여기로 불렀어. 그녀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죄수 달리아는 오래전에 확실히 죽었습니다. 르팔타커스 시온처럼 영령이 될 새도 없는 완전한 소멸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죽은 죄수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질문을 잘못한 건가. 그렇다면 달리아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벨리오나에게 유언을 남겼던 건데?”
-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는 인과율이 이어지지 않는 독립된 공간이 있습니다. 달리아는 아카식 레코드의 편린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예언자. 그녀가 저 블랙홀 안에 접촉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용사님께서 저 너머로 건너가야만 접속이 가능하지만 물리적으로 귀환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간이동의 권능을 사용한다 해도?”
- 말씀드렸듯 수왕의 권능도 인과율의 법칙을 초월할 수는 없으니까요.
단탈리온은 계속 부정적인 대답만 내놓고 있었지만 답답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가 짚어야 할 핵심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수단 중에서 달리아가 뭔가를 내다보았다는 거잖아? 그게 뭔질 말해 줘.”
아무래도 이번의 질문이 잭팟인 모양이었다.
단탈리온은 잠시의 공백 이후 또렷한 글씨를 페이지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용사님이 가장 마지막으로 사귄 친구. 그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