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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56화 (256/300)

#256. 무너진 꼭짓점 (3)

“뭐야 저게?”

어릴 적 다큐멘터리에서 어린 버팔로가 강물에 빠진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버팔로는 다신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그곳에서 생을 다해야 했다.

수면 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던 악어 떼의 습격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 타천의 강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오십이 넘는 타천 죄수들이 한 지점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점성을 가진 물체가 떼로 우글거리는 모습은 태생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한다.

그런데도 대체 무엇을 향해 모여들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건 벨리오나의 배다. 꼴이 말이 아니군.”

지드가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대항해시대의 범선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선박이 수직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선체의 3분의 1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채 위태롭게 버티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구경할 수 없는 범선의 밑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워어어어어.”

타천 죄수들은 생고기에 몰려드는 파리 떼처럼 범선 좌현과 우현에 올라타려 애쓰는 중이었다.

“관객님, 이 이상 접근하면 비상시 도주가 어려워집니다.”

레나스가 멈춰선 지점은 벨리오나의 배로부터 500미터 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지드는 아예 먹구름을 꼬리처럼 허리에 휘감은 채 내가 있는 보트 위로 내려섰다.

“지드, 저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말해줄 수 있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지고의 힘을 가진 신격 죄수가 타천의 과정을 밟고 있는 거지. 때문에 강물에 잠식된 녀석들을 모조리 불러모으는 것 같다.”

“벨리오나가 타천했다는 거야? 하필이면 오늘?”

단순한 우연일 리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가 8층으로 이어지는 포탈을 열어젖힌 것과 연관이 있을 터였다.

“아직 희망은 있다. 벨리오나를 저기서 구해내야 해.”

“아직 무사하다는 보장은?”

내 질문에 지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어. 하지만 봐라, 슈바인 스트링거. 벨리오나의 배에서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없나?”

“당장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다는 것 외엔…… 앗?”

그러고 보니 설명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존재했다.

벨리오나의 배는 마치 수면 위에 돋아난 것처럼 침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라앉은 수위가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일단 배의 갑판 위에 엉겨 붙어 있는 타천 죄수들의 덩치나 숫자로 미뤄봐도 이미 선체가 두 동강 나거나, 더 깊은 수면으로 잠겨 들어야 한다.

“벨리오나는 시곗바늘과 톱니바퀴의 여신이야. 그녀의 절대영역 안에선 시간의 흐름이 멈추게 되지.”

지드의 설명에 따르면 아직 완전히 타천하지 않은 벨리오나가 가까스로 자신의 배를 ‘침몰하는 순간’에 붙잡아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런 짓이 가능한 건 이 층에서도 벨리오나가 유일하다. 하지만 평소의 그녀였다면 타천 죄수들이 저 정도로 가깝게 다가오는 걸 허용할 리 없겠지. 뭔가 변고를 당한 거야.”

“구해야 하나?”

“나는 그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스르륵 날아오른 지드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자리를 지키라 말했다.

“일단 상황을 보고 오겠다. 그대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지드의 뇌창이 쏘아져 나갔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드의 신병이 날아가는 뇌창 위에 스케이트보드를 타듯 올라타 있는 게 보였다.

한 줄기의 벼락이 꼬리를 허공에 흩날린 채 범선 위를 맴돌았다. 지드가 선내로 진입할 틈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캉이가 슬그머니 내게 다가왔다.

“왜 그래, 캉이야? 할 말이라도 있니?”

“내가 아니야, 형아. 토니아 누나가 여기로 와 달랬어.”

캉이의 쫑긋 선 귀 뒤에서 토니아가 자못 심각한 얼굴을 내밀었다.

“슈바인, 혹시 지금 기원검을 꺼내 볼 수 있겠어?”

“기원검을? 왜?”

“한 가지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여태껏 토니아가 아무 근거 없이 내게 뭔가를 제안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체없이 인벤토리에서 기원검을 소환했다.

아론다이트를 들지 않은 왼손에 쥐어진 기원검을 토니아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네.”

“뭐가?”

“5층에서 나와 같이 크로톤의 체내로 들어갔던 때를 기억하지? 그때엔 지금보다 더 표면적이 적었던 기원검은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어. 크로톤에게 가까워질수록 나는 예민하게 그걸 느낄 수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란 거야?”

“응. 나는 오래전 크로톤이 기원검에 소원을 빌었던 장소에도 있었으니까, 착각할 여지는 없어. 네 손의 기원검이 지금 잠잠하다는 건…….”

토니아의 시선이 가라앉고 있는 벨리오나의 배를 향했다.

“저곳에 기원검의 파편이 없다는 뜻이야.”

*

잠시 후, 지드가 복잡미묘한 얼굴로 돌아왔다.

“어땠어?”

“벨리오나가 저곳에 있는 것은 확인했다. 하지만 전혀 부름에 응답하지 않더군.”

“선내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던 거야?”

“말했듯이 신격의 절대영역을 침범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야. 나는 천둥과 벼락의 신. 때문에 속도전에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만……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순 없지.”

하지만 벨리오나는 절대영역 안에 흐르는 시간을 가둔다. 지드가 벨리오나를 가리켜 어째서 껄끄러운 사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서로에게 상성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때 아스티나가 한 가지 답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배를 통째로 건져내는 건 어때? 그 벨리오나란 죄수가 배 전체에 절대영역을 펼친 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너무 무식한 방법이라고 내가 한숨을 내쉬려는데, 지드는 오히려 아스티나의 말에 반색했다.

“좋은 발상이군. 그렇게 하면 벨리오나와 대화를 할 환경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어.”

아스티나가 입을 꾹 다문 내게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내었다.

“우리가 매번 네 작전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라고?”

그로부터 10여 분 뒤.

레나스를 제외한 전원이 보트 위에서 뛰쳐나갈 준비를 한 채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지? 일단 인양 작업에 앞서 청소를 하는 게 먼저야.”

제자리에서 무릎을 움켜잡은 채 몸을 풀고 있던 캉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그래. 지금.”

신호를 주자 구미호 소년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뛰쳐 올랐다.

샤아아아아앗!

상공에서 여우화를 마친 캉이가 아홉 개의 꼬리를 수평으로 접은 채 범선을 향해 날아갔다.

곧이어 세 개의 만다라가 구미호 주변을 맴돌더니 압도적인 화력을 지닌 여우트림을 아래로 내쏘았다.

콰아아아아아!

느닷없이 배후에서 습격을 당한 타천 죄수들이 울부짖으며 범선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워어어어어어.”

하지만 고작 몇 마리뿐이었다.

진흙을 온몸에 덮은 타천 죄수들에게 동료를 걱정하는 의식 따윈 없어 보였다.

떨어져 나간 빈자리를 향해 거침없이 재등반을 시작했다.

기울어진 탑처럼 솟은 범선 선미에 구미호가 사뿐 내려앉았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캉이의 꼬리가 묵직한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타천 죄수들의 육체를 강타했다.

환수의 요력이 담긴 공격에 적중당한 죄수들이 강물 위에 빠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으어어어어어.”

혹시나 자신들 앞을 방해하는 캉이에게 타천 죄수들이 공격 의사를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은 마치 캉이를 보거나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무시한 채 범선에 달라붙는 행동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저 꼬마 혼자서는 불가능할 거야. 내가 잠깐 틈을 만들어 볼 테니 제대로 따라잡아 달라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 지드가 먹구름의 크기를 거대하게 확장시켰다.

꽈르르르르릉!

그러자 열 개가 넘는 벼락 줄기가 범선 주위를 화끈하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신묘하게도 범선에 올라타 있는 캉이에게는 단 한 자락의 벼락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감전당한 타천 죄수들의 동작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오래 지속되진 않을 거야! 어서!”

지드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체고를 자랑하는 마룡이 날개를 펄럭였다.

용으로 변신한 제르비어스의 등 위엔 은발을 휘날리는 여인이 뭔가를 머리 위로 들어올린 채였다.

아스티나의 마법진이 전개한 술식은 범선의 주변부를 감쌌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들어 올릴 수 없는 육중한 배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중력 마법이었다.

범선의 좌현과 우현에 마룡과 구미호가 달라붙었다.

“끄아아아아앗!”

“이야아아아압!”

제르비어스와 캉이가 호흡을 맞춰 용을 썼다.

촤아아아아아.

강물 아래 잠겨 있던 선수부가 밤공기 아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갑판 위에 고여 있던 강물이 흘러내리며 여전히 감전 상태로 부들부들 떠는 타천 죄수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곧 톱니바퀴를 형상화한 선수상이 강물 위로 솟아오르며 범선 전체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아직 축축하게 젖어 있는 배 밑면에 달라붙었다.

예닐곱의 타천 죄수들이 손톱을 박아 넣은 채 버티고 있었고, 그들의 붉은 동공이 나를 노려보았다.

“크워어어어어!”

캉이나 제르비어스처럼 나 또한 돌멩이 보듯 무시해 줬으면 하고 바랐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타천 죄수들은 내가 인식 범위에 들어오자마자 거친 포효를 내뱉은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 힘 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단전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내공을 갈무리하며 벨리오나의 범선 밑면에 손바닥을 대었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자신을 제외한 주변을 향해 천근추의 묘리를 싣는 무공.

이전까지의 나였다면 이 정도로 정밀하게 표적을 정할 수는 없었을 거다.

하지만 거듭해 층을 오르면서 내 천마군림보는 삼월초원 전체를 짓눌렀던 천마 류운학의 그것을 넘어서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우워어어어어.”

갑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 때문에 타천 죄수들이 모조리 강물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범선 밑면에 달라붙어 있는 존재는 이제 나 혼자뿐이었다.

“난 머드팩은 질색이야. 다신 보지 말자고.”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양손을 털던 내 시야에 의아한 광경이 들어왔다.

‘저 녀석은 뭐지?’

오십여 마리의 타천 죄수들은 제각각인 크기와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진흙더미와 어패류를 몸에 덕지덕지 붙인 흉한 꼴이었다.

그런데 단 한 녀석.

신체의 절반 이상이나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죄수가 하나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에 네 개의 팔을 가진 도깨비 같은 죄수였다.

“크아아아아아!”

녀석이 다른 죄수들의 머리를 짓밟으며 나를 향해 도약했다.

대응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배 밑면을 가볍게 걷어차며 수면을 향해 뛰었다.

푸우우우욱!

아론다이트의 검신이 타천 죄수 오른쪽 가슴을 찔렀다. 푸른색 피가 상처에서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벌어진 일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백발의 타천 죄수가 두 팔로 아론다이트의 검신을 붙잡아 멈춰 세운 것이다.

옆구리에 돋아난 것처럼 보이는 나머지 두 팔이 내 목을 덥석 잡았다.

뿌리칠 수 없는 수준의 악력은 아니었다. 내가 힘을 써서 녀석의 손목을 붙잡았을 때,

타천 죄수의 입술이 달싹였다.

“벗어날 생각인가?”

“뭣?”

충격적이게도 백발의 타천 죄수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타천의 강물을 마신 자여. 그대는 어찌하여 그리 멀쩡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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