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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55화 (255/300)

#255. 무너진 꼭짓점 (2)

“관객님, 전방을 주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레나스의 느닷없는 경고였다.

그와 동시에 보트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정확히 우리가 관성에 튕겨 나가지 않을 정도로만.

“왜 그래, 레나스?”

“전방 경로를 미지의 생물체가 막아서고 있습니다. 상대 용적으로 미뤄보건대 충돌을 피하기 어려워서 알려드렸습니다.”

레나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캉이가 코를 킁킁거렸다.

“형아, 무서운 냄새가 나.”

타천의 강은 하늘에서 무수한 빛을 뿌리는 천체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검은 장막처럼 고고하게 흐르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액체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다들 긴장해. 뭔가 있어.”

인벤토리에서 아론다이트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수면이 부글부글 끓더니 어깨가 떡 벌어진 괴형체가 강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표면이 검은 진흙으로 흘러내리는 와중에 관절의 접합부엔 따개비처럼 보이는 어패류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혐오를 자아냈다.

어깨 위에 얹어진 얼굴 부위에서 동그란 원이 생겨났다.

“그워어어어어어.”

아무래도 저게 입인 모양이었지만 울부짖는 소리의 의미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머리 위에서 지드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바로 타천 죄수다. 본래 세계의 신자들로부터 불신당하고 궁지에 몰린 나머지 강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불쌍한 녀석들이지.”

“저 괴물이…… 원래는 신이었다고?”

수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수갑이 있어야 할 위치에 꾸물텅한 진흙이 달라붙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중엔 드물게 인간으로 태어나 신격으로 초월을 이룬 녀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애초에 힘을 갖고 태어나지. 그런데 절대영역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하게 되면? 상상조차 못 했던 무력감에 휩싸이게 된다. 권능의 근간을 잃어버린 탓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거야.”

“위험한가?”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돼. 저 강물에 완전히 잠겨버린 죄수는 자아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렸을걸.”

지드의 말은 옳았다.

타천 죄수는 멀뚱히 서서 간간이 신음을 내뱉을 뿐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거나, 위협적인 동작을 취하긴커녕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만약 당신도 그 구름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면…….”

“저런 꼴이 되겠지. 그러니 8층 죄수들이 저 강물에 닿는 걸 끔찍하게 꺼리는 거야.”

“당신과 저 괴물의 차이가 뭐길래?”

“부조리하게 느껴지겠지만 단순한 운이다. 본래 세계에서 내가 사라졌더라도 벼락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불꽃이나 바람처럼 대자연의 원소를 기반으로 한 신격 죄수들은 권능을 제법 오래 유지하는 편이지. 신자들이 신의 부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우니까.”

그런 원리라면 층장 니오프론이 오랫동안 8층의 권좌를 꿰차고 있는 맥락도 납득할 수 있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는 모두 잠이 필요하다.

우주 어딘가에 자전하지 않는 행성이 있고 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환경에서 생명의 진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지드 역시 내 추측에 동의했다.

“그대의 생각이 맞을 거다. 보통의 인간들이 꿈에 나타난 신의 전언과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을 구분할 수야 없을 테니.”

우리는 최대한 타천 죄수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뱃머리를 돌렸다.

본래대로였다면 내가 추체험의 세계에서 보았던 아홉 신과 비슷한 수준의 추앙을 받았을 터인 존재가 움직이는 폐기물로 전락해 버린 모습은 어딘가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등을 돌렸을 때,

그 일은 일어났다.

푸화아아악!

뭔가 거대한 돌덩이가 호수로 떨어질 때의 소리가 나더니 섬찟한 직감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녀석이 갑자기 움직였다!”

제르비어스가 갑판 난간에 올라선 채 외쳤다.

타천 죄수가 있던 자리엔 어지러운 파문만 남겨져 있었다.

아무런 전조 없이 뛰쳐 오른 녀석이 지척까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가장 빠르게 대응한 것은 방어태세로 돌변한 레나스였다. 보트 측면에 달린 초전자포가 포신을 회전하더니 허공의 한 점을 향했다.

파슈우우웅!

십자포화에 타천 죄수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진흙더미가 녹아내렸다.

공중에서 잠시 주춤거렸을 뿐인 괴물은 보트로부터 50미터 거리에 착지하며 거센 물살을 일으켰다.

레나스는 우아하게 거리를 벌렸으나 타천 죄수는 성난 고릴라처럼 보트 우현을 향해 돌진해 왔다.

“안 건드린다며?”

“허, 타천한 자가 저렇게 날뛰는 건 처음 보는 일이군.”

아스티나가 그려낸 마법진이 잠시 보트 위의 어둠을 잘라먹었다.

[마도제국학파 중력 마법]

[자이언트 포스 쉴드(Giant Force Shield)]

반투명의 푸른 방어막이 보트 전체를 감싼 것과 타천 죄수의 주먹이 충돌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꾸우우우우웅!

보이지 않는 막에 튕겨나간 타천 죄수는 더 거칠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어어!”

녀석이 포스 실드를 재차 두들기니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 아스티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슈바인, 금방 깨질 거야. 상대의 완력을 견뎌낼 수가 없어.”

“내가 신호하면 전부 엎드려.”

아론다이트에 검기를 흘려 넣으며 아스티나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으로 지근거리에서 마주하는 타천 죄수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진흙더미에 파묻힌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용암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아스티나가 마법진을 거두는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포스 실드가 사라지자 타천 죄수의 상반신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쏟아졌고,

성검의 궤적이 춤사위처럼 펼쳐졌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초월식(超越式)]

[아수라대멸겁(阿修羅大滅劫)]

순간 강바닥이 드러날 정도의 검파가 일어나며 타천 죄수의 가슴팍을 연거푸 할퀴었다.

녀석은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애초에 없는 것처럼 아수라대멸겁의 여덟 검파를 맨몸으로 받아들였다.

“끄어어어어어.”

충격에 몸부림치는 듯 허우적대던 타천 죄수가 강바닥에 쓰러졌다.

왠지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입 밖으로 내뱉는 음성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강물 위로 금세 타천 죄수의 상반신이 쑤욱 하고 올라왔다.

검파에 잘려나간 진흙더미 때문에 근육질의 회색 피부가 훤히 드러났다.

외견상 아무런 상처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만, 여기서 발이 묶여선 곤란하니까 어쩔 수 없지.”

지드의 중얼거림과 함께 어디선가 나타난 회색 먹구름이 타천 죄수의 두터운 허리를 휘감았다.

옴짝달싹 못 하는 걸 보니 먹구름에 포함된 절대영역의 권능이 타천 죄수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듯 보였다.

엄지와 검지 위에 뇌창의 창날을 얹은 지드의 눈빛이 번쩍이는 순간, 뇌창이 완전히 사라졌다.

일 초 뒤 뇌신의 애병이 나타난 곳은 타천 죄수의 복부 정중앙이었다.

꽈르르르르릉!

매서운 벼락이 타천 죄수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는 파괴력이었을 텐데도 타천 죄수는 움직임만 조금 느려졌을 뿐이었다.

“이 정도까지가 한계인가. 장기까진 닿지 못했어. 나와는 상성이 별로군.”

지드는 손바닥을 툭툭 털더니 산뜻하게 말했다.

“벼락의 후유증이 남아 있을 때 달아나는 게 좋겠어. 여기서 저 녀석과 사생결단을 낼 이유가 없으니까.”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우리는 전속력으로 그로부터 달아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 개의 붉은빛이 강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

“저 녀석이 왜 갑자기 덤빈 거야, 지드?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처음 보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강물에 잠식당한 타천 죄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네. 자신이 누구였는지, 왜 이곳에 끌려왔는지, 심지어는 의사를 표현할 언어조차 잃어버린단 말이야.”

“그런 것치곤 철천지원수처럼 달려들던걸.”

“신기해야 할 쪽은 그대가 아니라 이 몸이지. 반쯤 농담 삼아 묻는 건데…… 혹시 감옥 밖에서 신과 원수진 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

“아니야. 그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어.”

“그렇다면 자네가 혹시 정체를 숨긴 신이라던가?”

“이익.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지드의 말을 무시했다.

다른 가능성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은 토니아였다.

“슈바인, 네 기원검에 반응한 건 아닐까? 우리 중엔 신격이라 할 만한 존재가 없지만 그 무기는 엄연히 신의 손길로 제련된 무기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토니아 말에도 일리는 있었으나 그렇게 설명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기원검 네메시스는 분명 뒤틀린 신이 만들어낸 보구이면서 아홉 신의 존재를 말살한 신살검.

하지만 아직 완전하게 수복되지도 않았거니와 무엇보다 내 인벤토리에 고이 보관된 상태다.

바깥으로 꺼내놓지도 않은 기원검에 타천 죄수가 반응했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지드가 첨언했다.

“내 생각도 기원검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군. 지금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벨리오나 또한 기원검의 파편을 갖고 있지. 하지만 타천 죄수가 그녀를 공격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러면서 지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흐르고 있는 강물의 수면을 가리켰다.

“애초에 타천 죄수가 지성을 잃지 않은 죄수들을 건드린 적은 내가 감옥에 입소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어. 만약 그런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면 니오프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설공 녀석이 타천 죄수들을 가만 놔뒀을 리 없지. 탈옥을 노리는 무리라면 죄수살해죄로 형량이 추가되는 걸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지드뿐 아니라 다른 죄수들에게 물어봐도 방금의 습격에 명확한 설명을 얻어내긴 불가능하단 소리였다.

“니오프론이 무슨 수를 쓴 것은 아닐까?”

“그 녀석이 층장이라고는 하나 전능한 존재는 아니야. 특히나 자신의 절대영역 바깥에서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할걸.”

아수라대멸겁처럼 커다란 소진을 가져오는 기술을 쓴 참이라 피하고 싶었으나 나는 다시금 단탈리온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부정적이었다.

- 타천 죄수가 용사님께 덤벼든 이유는 누군가의 명령을 받거나 분노에 사로잡혀서가 아닙니다. 그는 용사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 했던 겁니다. 하지만 언어를 망각했기에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던 거죠.

“내게 뭘 묻고 싶어 했길래?”

- 그 질문에 대한 답변엔 금제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제게 이런 식의 제한을 걸 수 있는 분은 이 감옥에서 단 한 분뿐이지요.

교도관장.

어떤 식으로든 그 녀석이 연관되어 있단 소리였다.

그때, 레나스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관객님, 이전과 동일한 반응이 전방에서 다수 포착됩니다.”

“얼마나 되는데?”

“오십 개체를 넘어갔는데……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방금처럼 무식하게 돌진해오는 녀석들이 수십이라면 눈앞이 아득해지는 숫자다.

“그렇다면 아예 도강을 포기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육로를 생각하는 게…….”

“안 된다, 슈바인 스트링거. 오히려 최대한 속력을 높여 전진해야만 한다.”

이마 위에 챙을 만들어 먼 곳을 내다보고 있던 지드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째서?”

내가 이유를 묻자 그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타천 죄수들이 몰려드는 저 장소가…… 벨리오나의 절대영역이니까. 더없이 불길한 징조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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