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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54화 (254/300)

#254. 무너진 꼭짓점 (1)

“8층 세력이 세 개로 나누어져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있어.”

그것은 일전에 여신 벨리오나가 오토마타의 몸을 빌려 내게 해준 이야기였다.

첫 번째로 예언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층장과 설공이 속해 있는 신탁파.

탈옥을 위해 감옥에서 태어난 ‘푸르가토나투스’를 노리고 있는 위협적인 세력이다.

두 번째는 자구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뇌신 지드처럼 층장의 열쇠를 빼앗아 다음 층에 오르려는 자유로운 죄수들.

마지막 세 번째가 기원검의 존재를 알려주었던 기원파다.

푸르가토리움 역사상 가장 탈옥에 근접했던 사내, 9층에 발을 들인 유일한 죄수 르팔타커스 시온의 애병 네메시스를 완전체로 수복해 탈옥을 노리는 무리다.

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와는 조금 껄끄러운 사이지만 그녀 또한 니오프론을 무척 경계하고 있으니까.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거야.”

“어차피 내 쪽에서도 벨리오나와는 볼 일이 있었어. 4층 만철도시에서 초대장을 받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벨리오나에게 기원검을 순순히 건네줄 생각이 없는데. 그쪽에서도 마찬가지일 거고.”

애초에 벨리오나가 내게 기원검의 위치를 알려준 이유는 8층까지 등반한 시점에서 갈취하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중재를 위해 나서주겠다는 거지. 삼각형이 균형을 잡기 위해선 세 개의 꼭짓점이 제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 자구파가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서 무게추가 바뀌는 상황이야. 벨리오나는 강력한 죄수지만 내 진언이라면 적어도 내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니오프론이 난공불락의 존재라는 거야?”

“특별한 죄수들이 모인 이 8층에서도 녀석은 유일무이한 존재다. 설령 르팔타커스가 이 시대에 현신해 있더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을 지도.”

지드는 골제 바르한을 제외하면 전성기의 르팔타커스와 싸워본 유일한 죄수일 터였다. 르팔타커스의 검격에 신체가 갈가리 찢겨 나갔던 광경이 아직도 내 뇌리에 생생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할 정도라니.

“신격에 오른 죄수들은 저마다 절대영역을 갖고 있다. 권능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고유의 싸움터 같은 거지. 나 같은 경우엔 벼락의 원천인 이 먹구름이 절대영역이라 할 수 있다.”

“마법사들의 결계 같은 건가?”

“그런 비교는 지렁이와 용을 두고 공통점을 찾는 셈이라 말하고 싶군. 신의 절대영역은 애초에 깨트릴 수 없어. 힘과 힘이 맞붙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의 개념이 우위인지가 중요하거든.”

지드의 설명은 일전에 사부님이 해주었던 경고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생사경이나 탈마지경을 이룬 고수라면 단전에 쌓은 내공은 의미가 없어지고 육체 또한 만독불침에 이른다. 그 정도의 고수가 서로를 제압하려면 자연법칙을 주무르는 상대의 ‘논리’를 깨부숴야 하지.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병장기의 강도와도 상관없이 진정한 ‘개념끼리의 사투’가 벌어진다는 뜻이니라.’

병장기로 상대의 숨통을 끊어내려는 것은 필멸자의 싸움법이다.

불멸자들은 상대의 개념을 자신의 개념으로 짓누르는 것이란 설명이었다.

“잘 와닿지 않는데.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순 없겠어?”

“니오프론의 이명은 몽현(夢現)과 꿈결의 신이다.”

“꿈?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 말이야?”

“그래. 신적인 존재가 필멸자의 꿈에 현신하는 일은 대부분의 신격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를 통해서 계시를 내리거나 선지자를 점지하기도 하고. 그것을 현몽(現夢)이라 하지. 몽현은 정확히 그 반대다.”

지드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니오프론은 자신의 절대영역에서 벌어진 일을 전부 자신의 지배하에 둘 수 있다. 쉽게 말해 무방비한 상태에서 신이 꾸는 꿈속으로 내던져지는 거지. 슈바인 스트링거. 그대는 자신의 꿈속에서 죽을 수 있나?”

“…….”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니오프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꿈결의 신이니까. 내구력으로 치면 그 어떤 죄수보다 대단할 게 없는 허약한 본체를 지니고서도 타천의 강가를 주름잡는 층장이 된 이유지.”

자신의 영역을 꿈으로 치환해버리는 권능이라.

직접 맞부딪혀보지 않고서는 어떤 식일지 감이 오지 않않았다.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좋아. 당신을 따라가겠어, 지드. 하지만 벨리오나가 먼저 싸움을 걸어온다면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야.”

“대화는 내게 맡겨줘. 벨리오나는 음흉한 신이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은 아니니까.”

지드는 먹구름 위에 걸터앉은 채 손짓했다.

“잠시 이 강물 위를 유영해야 하는데, 그대들이 탑승할 만한 운송수단을 구할 수 있겠나? 맘 같아선 내 구름에 태워주고 싶다만 환수로 보이는 저 어린 꼬마를 제외하면 벼락의 고온을 견딜 수 없을 텐데.”

“그런 거라면 이쪽에서도 믿을 만한 친구가 있어.”

아리송한 얼굴의 지드를 뒤로 한 채 나는 인벤토리에서 오토마타 레나스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관객님.”

“오랜만이야, 레나스.”

층간 구역에서 나와 친구들은 기원검이 만들어낸 추체험 세계에서 아홉 신과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인벤토리는 봉인되었기에 레나스의 힘을 빌릴 수가 없었다.

오토마타 레나스는 영혼이 없는 자동인형.

친구맺기의 권능으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소지품’으로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강물을 건널 수 있는 배가 필요해. 가능하겠니?”

“물론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태울 수 있는 크기면 되겠습니까?”

“그래. 부탁 좀 할게.”

레나스가 눈을 감자 소녀의 모습을 한 인형의 가슴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마정석이 레나스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의 성질을 변환시키는 것이다.

[연금무장술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D: 수영 특화형]

직립보행의 인체는 사라지고, 곧 꼬리에 커다란 모터를 장착한 황금색 보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연금술이군. 뛰어난 연금술사의 손을 거친 모양이지?”

지드는 보트로 변신한 레나스를 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다만 한 가지 조언을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혹시 원거리에서 적을 요격하는 장치도 구비할 수 있나?”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내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전후좌우 사방위를 모두 감당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

선수에 달린 레나스의 머리가 나를 쳐다봤다. 명령을 내려달라는 뜻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보트 측면에 개틀링 건을 연상케 하는 입자포가 생겨났다.

“이 강물 위에 대포로 쏴야 할 뭔가가 있기라도 한 거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거지. 무슨 뜻인지는 곧 알게 될 거라네.”

*

우리는 강물 위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위를 볼 필요는 없어. 오히려 현혹되기만 할걸.”

지드의 말처럼 타천의 강가 위엔 몽환적인 천구가 수없이 베일을 바꾸고 있었다.

여러 개의 혜성이 꼬리를 물며 날아가기도 하고, 오로라의 물결이 넘실거리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거야?”

“아까 신에게는 각자의 절대영역이란 게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 논리에 따르면 타천의 강가는 8층 교도관의 밑에 있는 절대영역이라 할 수 있겠지. 내가 자네를 면회하러 갔던 대수림을 떠올려 봐.”

대수림의 이야기가 나오자 캉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자란 거목들이 즐비한 곳.

밤이 찾아오지 않는 영원한 낮.

“보통은 교도관들의 권능이 층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관된 환경이 유지될 거야. 하지만 이곳은 죄수들조차 교도관 못지않은 절대영역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풍경이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지.”

“교도관이 붓으로 그려 만들어낸 그림을 죄수들이 계속 덧칠하고 있다는 거야?”

“좋은 비유로군. 이전에도 느꼈는데 자넨 전사보다는 음유시인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어.”

“이 층만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이 푸르가토리움이 세워진 이래 타천의 강가는 늘 최고층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 하지만 그것과 어울리지 않게 층장의 자리가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네.”

“층장이 계속 바뀐다고?”

지드의 먹구름은 마치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우리의 머리 위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표정을 주시하려면 머리를 최대한 꺾어야만 했다.

“그대들은 평범한 죄수와 신격을 나누는 기준을 알고 있나?”

우리 중 문제 맞추기에 가장 열정적인 마왕이 손가락을 들었다.

“초인에 가까운 힘?”

“아닐세. 그렇다면 르팔타커스 시온이야말로 그 정의에 적합했을 텐데, 그는 신이 아니었지.”

다음 도전자는 아스티나였다.

“문헌에 남을 정도의 업적?”

“설화의 주인공을 말하는 건가. 그것은 신격의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야. 뛰어난 영웅에게도 그런 노래들은 따라붙게 마련이니까.”

의외로 지드를 놀라게 한 장본인은 토니아였다.

페어리 퀸은 나직한 목소리만으로도 좌중을 휘어잡는 프리마돈나처럼 말했다.

“숭배하는 자가 있어야 해. 태산을 뒤엎는 용력이나 구전될 만큼 놀라운 업적이 없더라도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그의 존재를 믿고 기도를 올린다면 그는 신격에 오를 수 있어.”

정령의 가호 속에 세계수에서 태어나는 요정이라서일까.

토니아의 말에 지드는 손가락을 튕겼다.

“완벽한 정답이군. 그래, 맞아. 신격에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신자(信者). 신의 존재를 믿는 자들의 숭배가 있어야만 하지.”

그러면서 지드는 엄지로 훤히 드러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는 벼락의 신. 여타 많은 우주에서 생명체들이 가장 먼저 싸우게 되는 기상변화에 근간을 두고 있지. 천둥과 우레는 생명체의 수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위대하니까.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 벼락을 맞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부터 나는 자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어.”

“그렇다면 벨리오나는?”

“그녀도 마찬가지야. 그 세계에 인지력을 갖춘 필멸자들이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고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하는 향수를 품게 될 만큼 지능이 발전하면 신격에 오르게 되는 거지.”

벼락에 대한 공포.

시간에 대한 관념.

그런 것들이 곧 인간 사이에서 어떤 종류의 믿음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신격의 근간이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존재들조차 이 감옥은 강제로 붙잡아 올 수 있지. 본래 세계에서 수많은 신자를 거느렸던 우리가 죄수가 되어 본래 세계와 단절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신을 잃게 되는 거야?”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는 신, 기도를 침묵으로 되돌려주는 신이 되는 거야. 푸르가토리움에 입소한 순간엔 그 어떤 죄수보다 강력한 힘을 지켜낼 수 있지.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신자들의 마음엔 불신의 싹이 트게 되겠지.”

신이 우릴 버리고 떠났다.

그렇게 까마득한 시간이 지나면 그 누구도 한때 세계에 실존했던 신의 이름조차 희미해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8층 층장이 계속 바뀔 수밖에 없는 거라네. 신자들이 신을 등진 순간 우리의 힘은 약해지게 되니까.”

“만약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되지?”

지드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먹구름만큼이나 어두운 얼굴로.

“타천(堕天). 불멸의 지위를 잃고 몰락하게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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