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42화 (242/300)

#242. 기원검의 주인 (6)

매의 발톱이 사냥감의 심장을 꿰뚫듯이 기원검 네메시스가 천사들의 갑옷을 찢어발겼다.

충만한 힘이 실린 내 일격을 제대로 응수하는 선봉은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검의 위력이 대단해서만은 아니다.

[시동 무기 네메시스와의 동조로 스킬 만전불패의 체술 & 만전불패의 검술이 Lv. 8로 오릅니다.]

감옥에 떨어진 이래 내가 첫 번째로 부여받은 스킬인 만전불패의 체술과 검술.

친구들에게서 빌려오는 스킬이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이라면 만전불패는 운영체제라 할 수 있다.

파천황 르팔타커스 시온이 걸어온 무의 길. 이것이 있었기에 완전히 다른 베이스를 가진 무공과 마법을 빠른 속도로 습득할 수 있었다.

레벨이 8로 오르자 나는 음속을 돌파하는 움직임 속에서도 활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뇌신 지드와 르팔타커스의 싸움을 목격하더라도 모든 동작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일방적으로 흘러갔다는 소린 아니다.

퍼어어어어엉!

작열하는 신의 천사들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으면 갑옷 속 불길이 터지면서 폭발했다.

공중전을 펼치고 있었기에 폭발에 휩쓸리는 것은 가까스로 면할 수 있었으나 당혹스러운 상황은 다음 순간에 일어났다.

쿠오오오오오!

폭발에 휘말린 천사들이 피해를 입기는커녕 버프 마법이라도 부여받은 것처럼 빠르고 용맹해진 것이다.

쌔애액!

천사가 휘두른 검이 턱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녀석들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치명타를 입을 뻔했다.

‘전장을 바꿔야겠어.’

나는 땅에 내려서면서 지상전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상대하는 적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회피기동의 자유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다는 약점이 있었다.

‘착실하게 수를 줄여나가자.’

일 대 다의 전투엔 이골이 나 있었기에 천사들의 폭발하는 타이밍과 간격을 조절하면서 적을 쓰러트려 나갔다.

30여 분이 흘렀을 때 평원에 서 있던 것은 나 혼자였다.

평원의 풀밭 가운데 절반이 화마에 몸부림치는 가운데 두 번째 손톱이 열렸다.

[벌써 지쳐서는 곤란할 거다, 오만한 인간이여.]

성별을 알 수 없는 신의 음성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정확히는 음색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이 변화했달까.

뛰쳐나오는 천사들의 유형도 달랐다.

“불 다음엔 얼음이냐?”

천사들을 관장하는 신의 성격에 따라 병사들의 무기와 머리 역할을 하는 아우라가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얼어붙은 신과 광란의 신, 바스러지는 신의 천사들과 차례대로 싸워나갔다.

내가 기원검을 휘두르는 것인지 기원검의 궤적에 내 몸이 따라가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무아지경의 순간이었다.

결국엔 무공을 펼치는 것을 넘어서 생존을 위한 짐승의 발악과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아뿔사, 엄청난 지구전으로 몰고 가는구나.’

몸놀림이 점점 둔해졌다.

상태창을 볼 틈도 없었으나 직감적으로 남은 HP와 MP가 간당간당하다는 것을 느꼈다.

천사들은 좀비처럼 바로 옆에서 동료들이 썰려 나가도 공포에 빠지거나 전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지성은 존재하는 듯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시선을 현혹하는 등 전술이 점점 발전되어 나갔다.

푸우우욱!

결국 바스러지는 신의 천사들에게 최초의 일격을 허용했다. 천사들의 쌍날검에 허벅지가 꿰뚫린 것이다.

[해독이 불가한 맹독에 침식되었습니다.]

바스러지는 신의 권능은 독이었다. 그걸 깨달았으나 이미 내겐 달아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젠장.”

안타깝게도 다섯 번째 이후의 신들은 어떤 신명을 가졌는지 들을 길이 없었다.

중독된 몸은 곧 천사들에게 도륙당했기 때문이다.

*

[추체험의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남은 재도전 기회는 총 9회입니다.]

[10회 실패 시 기원검의 능력은 사라지며 뒤틀린 신의 마지막 유산도 소멸됩니다.]

나는 다시 야전 막사의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약 올리듯 떠오르는 메시지창을 갈라버리고 싶었으나 그보다는 패인을 분석하는 게 우선이었다.

‘침착하자. 기회는 앞으로 9번이나 남아 있어.’

도전에 실패한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라는 건 다행이었지만 8층에 우글대고 있을 신격의 죄수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기원검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르팔타커스 이 양반,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재도전 기회가 있는 줄 알았다면 상황이 달랐을 텐데.”

아마도 르팔타커스 시온의 능력은 기원검의 이전 소유자를 커다란 격차로 웃돌았을 거다. 그러니 단 한 번 만에 시험을 통과해 이 검의 주인이 된 것이다.

한 번 실패해야만 남은 기회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는 방식이었으니까.

마치 게이머들의 기를 죽여놓기 위해 첫 번째 보스를 클리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세팅한 고난이도의 게임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보면 르팔타커스는 깨지 말라고 만든 스테이지를 원트에 깬 썩은 물이었겠지.

“하아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고인 물의 업적을 똑같이 달성해야만 하는 입장이라니.

“폐하, 기침하셨……네요?”

대장군의 노크가 끝나자마자 문을 벌컥 열었다.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친 모습을 보며 당황한 듯 보였으나 내 쪽에선 일 초도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대장군, 자쿰에게 가자.”

“……아직 일몰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까? 어제는 분명 진지를 둘러보실 거라 말씀하셨습니다만.”

“짐의 꿈자리가 무척 더러웠다. 그걸 떨치기 위해선 검을 좀 휘둘러야겠어.”

“폐하도 꿈 같은 걸 꾸십니까?”

“짐도 사람이잖아.”

“폐하를 모시는 동안 한 번도 꿈자리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니까요. 적습에 대비해 언제나 선잠을 주무시는 편이잖습니까. 음, 어쩌면 계시를 받으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실 주술사를 부를까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오늘 아홉 신의 목을 전부 벨 참인데 계시를 운운하는 것도 우습잖아.”

당혹스러워하는 대장군의 어깨를 밀친 후 자쿰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수월하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질주에 가까운 속도였는데도 대장군은 곧잘 따라왔다.

“새삼 대단하십니다, 폐하.”

“뭐가?”

“진지가 완성된 건 오늘 새벽에야 가능했는데,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안내도 없이 최단거리를 주파하셨잖습니까.”

대장군의 입장에선 내가 천리안이나 미래시를 가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평상시였다면 ‘사실은 내게 예언가의 자질이 있노라’ 운운하며 놀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삼갔다.

천사들의 무기가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이 아직 뇌리에 생생했기 때문에.

“크허어엉…… 낑?”

첫 만남 때처럼 갈기를 세우려 드는 자쿰을 정신지배로 단숨에 고양이처럼 들었다.

그리고 기원검을 손에 들었다.

잠시 눈을 감고 평원에서의 싸움을 복기했다.

나중엔 체력이 고갈됐으나 기원검을 휘두르는 감각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분명 회차를 거듭할수록 나아질 거다.

해가 지기 전에 이 검을 받아줄 연습 상대가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전력 질주로 나를 따라왔음에도 호흡에 큰 변화가 없는 거구의 사내를 흘깃 쳐다보았다.

“대장군.”

“하명하십시오.”

“대련을 좀 하고 싶은데. 괜찮겠어?”

대장군은 끔찍하게 싫어하는 여인에게 사랑 고백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씀은 농으로라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폐하와 대련이라니요, 제국의 대장군이 죽게 됩니다.”

“그 정도로 자신 없나? 짐이 없으면 네가 최고 군수권자인데. 살살할게.”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자 그는 변명거리로 허리춤에 찬 보검을 만지작거렸다.

“폐하께서 아무리 제게 맞춰주셔도 기원검과 접촉하는 순간 이 검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음…… 그건 그렇겠네.”

어쩌면 대장군에게 기원검 못지않게 뛰어난 검이 있다면 대련이 성사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론다이트나 디아볼릭을 꺼내 보려 시도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인벤토리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시동 무기가 용사와 인벤토리가 접촉하는 것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강제 실행이 가능합니다.]

조금 억지를 쓴다면 인벤토리를 열 수 있다는 소리였다.

[강제 실행할 경우 시동 무기가 구현한 추체험의 세계가 용량 초과로 붕괴될 확률이 존재합니다.]

그건 안 될 말이다.

결국 입맛을 다신 채 대장군과의 대련을 포기했다.

르팔타커스와 그의 기원검이 대륙 전체를 통틀어 대적 불가로 뛰어나기에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그럼 짐의 동작을 관전하는 건 가능하겠지?”

나는 대장군 앞에서 섀도복싱을 하는 복서처럼 기원검을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10분 정도 무극파천공의 초식을 선보이자 대장군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흥미롭습니다, 폐하. 처음 보여주시는 형태의 동작들이군요.”

“평소의 짐과 비교한다면 어때?”

“검의 궤적이 훨씬 화려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반격과 역습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시네요. 평소 폐하가 사용하시는 동작들은 직선적이고 패도적입니다. 상대가 공격을 맞받아칠 거라는 전제 자체를 안 하는 방식이시죠.”

……그랬단 말이지.

르팔타커스의 몸에 빙의한다는 건 여러모로 상식이 파괴되는 일이었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은 으리으리한 출정식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지난번 전투를 되짚어보는 것이었다.

‘어젠 MP를 소진하는 큰 기술을 지나치게 남발했어. 일단 초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싸워야겠지?’

최단 기록을 달성해야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신들로부터 승리를 갈취하는 게 목적이다.

신들의 손톱에서 소환되는 천사들의 숫자와 전투 스타일, 전장의 특성 등 다양한 정보가 내 머리에 입력돼 있다.

그것들은 천금을 주고서도 얻을 수 없는 대단히 소중한 것들이다.

‘승산은 충분하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 꿰뚫고 있다는 건 이미 절반의 우위를 점한 거나 마찬가지야.’

다시 해 질 녘의 평원.

이번엔 기원검을 땅에 꽂지 않고 어깨에 멘 채 나는 두 번째로 아홉 신과 마주했다.

[르팔타커스 시온이여, 우리가 아흐레의 시간을 준 것은 그대가 신성모독의 죄업을 반성하고…….]

검을 들지 않은 한쪽으로 귀를 후벼팠다.

“훈계는 집어치우고. 빨랑 덤벼라, 신 새끼들아.”

[……뭐라고?]

“그 같잖은 손톱에서 머리에 불 달린 천사들을 내보낼 거잖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안 오면 내 쪽에서 먼저 간다.

나는 기원검에 최소한의 검기를 두른 채 신들이 소환한 손가락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콰아아아앙!

작열하는 신의 천사들은 등장하자마자 자세를 잡기도 전에 미리 위치를 선점한 내게 박살 나기 시작했다.

작열하는 신은 어이없어했다.

[어찌 이렇게 품격 없는 전사가 있단 말인가!]

복싱 경기로 치면 링 아나운서가 선수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상대의 아구창을 날린 셈이다.

“뭐 어때? 이 싸움에 품격이고 비겁이 어디 있냐.”

그렇게 두 번째 싸움에서 나는 천사들의 협공에 당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2회차를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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