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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41화 (241/300)

#241. 기원검의 주인 (5)

티라노 사우르스 덩치처럼 거대한 사자가 내 눈앞에 멈춰 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머리 위에 섰다고 해야겠다.

“자쿰?”

나는 내 입에서 처음 내뱉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서인지 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눈동자에선 여전히 미심쩍은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군요. 본래 이 녀석은 폐하의 얼굴을 보면 머리부터 낮추고 갈기를 들이미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요?”

대장군은 이렇게 말하며 우려스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내게서 한 발짝 물러나는 꼴을 보니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황제의 근위병 출신이 맞긴 한 건가.

“이리 주지 않으련?”

나는 자쿰의 꼬리 뒤쪽에 있는 검을 가리키며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아니, 공손하다 말해야 할 정도였다.

휘이이이익!

난데없이 자쿰이 앞발을 휘두르면서 내 머리를 짓눌렀다.

“어억?”

반사적으로 양손에 내공을 둘러 막아냈지만 8톤은 될 것 같은 무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으지지직.

내 두 다리가 무참하게 땅을 뚫고 들어가는 게 보였다.

이 정도면 구미호에 가까운 영물인 듯하다.

‘이 세계’는 나를 르팔타커스 시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리한 사자는 주인 흉내를 내고 있는 영혼의 본질을 알아챈 걸지도 모른다.

킁킁킁.

코를 씰룩이는 걸 보면 예민한 후각에서 이질감을 느낀 걸 수도 있겠다.

“폐하, 오늘은 거사가 예정된 날이니 평소처럼 자쿰과 놀아주실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장군은 놀란 기색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르팔타커스는 평소에 이 거대한 사자와 어떤 장난을 쳐왔던 걸까.

어쨌든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순 없는 노릇.

나는 푸르가토리움의 3층 대수림에서 성장시킨 스킬을 시전했다.

[친구 제르비어스 폰타인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정신지배 Lv. 4]

이 스킬은 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짐승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다. 아무리 비상식적인 크기의 사자라고 해도 포유류인 이상 먹힐 거라 확신했다.

“크릉.”

녀석은 온순해진 눈길로 돌아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풍성한 갈기를 툭툭 쓰다듬어 줬다.

“옳지, 착하다.”

자쿰이 옆으로 물러서자 기원검 네메시스를 손에 집을 수 있었다.

[용사가 추체험의 세계를 만들어낸 시동 무기와 접촉했습니다.]

[이전 주인이 사망했으나 용사가 아직 시련을 통과하지 못해 인벤토리에 수납할 순 없습니다.]

[이 시동 무기는 주인의 자격을 스스로 판단하는 지성이 있습니다. 주인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선 시동 무기가 제시하는 ‘검의 시련’에 통과해야 합니다.]

[‘검의 시련’에 참가한 도전자는 이전 주인이 생전에 맞서 싸웠던 적수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적을 상대하게 됩니다. 시련을 통과하기 위해선 나타난 적을 궤멸시키면 됩니다.]

푸르가토리움의 죄수가 된 이래 나는 다양한 검을 만져보았다. 현무패웅검, 디아볼릭, 그리고 용사의 최종무장인 아론다이트까지.

그것들에 비하면 기원검은 뒤틀린 신이 만든 역작이란 칭호와는 어울리지 않게 평범한 대검처럼 보였다.

하지만 손에 쥐고 무게 중심을 느껴보니 더없이 휘두르기 좋은 명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칼자루만 남아 있어서 몰랐는데 정말 굉장한 물건이네.’

나는 뇌신 지드가 불러냈던 르팔타커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상의 검투장에서 내 눈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적의 목을 베어냈던 기원검의 궤적과 파괴력을.

“이봐, 대장군.”

“말씀하십시오.”

“짐이 이걸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인적이 드문 협곡이 근처에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꽈아아아아앙!

“뭐, 뭐야 이게?”

분명히 가볍게 휘둘러 본 살신참이었다. 평소처럼 내공을 실어 보긴 했으나 테스트가 목적이었기에 전력의 30퍼센트 정도만 검기를 발출했다.

그런데 절벽의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렸다.

만약 발휘할 수 있는 최강의 절기를 기원검에 담아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장군, 이번엔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게 좋을…… 이미 그러고 있군.”

압도적인 검기가 네메시스의 검신을 타고 웅혼하게 뻗어 나왔다.

산을 베어낸다는 건 언제까지나 비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 무기를 손에 쥔 순간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천마회풍일섬(天魔會風一閃)]

말 그대로 단전을 통해 폭산하는 내공을 이 날붙이가 온전히 받아들여 그것을 증폭시킨다.

이내 그것은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파멸의 직선’을 만들어냈다.

일섬.

그것이 협곡 절반을 날려버렸다.

우르르르르.

아름다운 자연을 무참하게 짓밟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굉장한 검이구나.’

말 그대로 신의 목을 자를 수도 있겠다는 실감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대장군의 반응은 기이했다.

“폐하, 이 원정대의 누구도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행여 신민들이 잠에서 깰까 저어되어 힘을 줄이실 필요는 없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억, 그래?”

미쳐 날뛸 것 같던 아드레날린이 살짝 새어 나오는 기분이었다.

분명 이 용사의 몸을 얻은 이래 구사했던 모든 동작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일격이었다.

그런데도 이 대장군의 시선에선 ‘평소와 달리 힘을 조심스럽게 쓴다’는 것처럼 비치고 있었다.

‘이거, 르팔타커스와 비교당하는 기분이라서 썩 유쾌하진 않은데?’

이렇게 생각했다가 나는 곧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정신머리가 틀려먹었다.

나는 지금 푸르가토리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죄수의 인생에서 제일 찬란했던 순간에 들어와 있다.

르팔타커스와 비교당하고,

그것을 인정받아야만 이 무기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다.

“폐하, 드디어 잠이 깨신 겁니까. 이제야 평소 제게 보여주신 눈빛으로 돌아오셨군요.”

황제 르팔타커스는 잠들어 있는 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투쟁심에 불타는 눈빛을 하고 있었던 건가.

“준비는 다 끝났어. 신들의 모가지를 따러 가 볼까.”

당장 신들과의 결전을 치를 작정이었으나 일은 내 예상과 달리 번잡한 일 몇 가지를 치러야 했다.

일단 황제를 따라나선 신민들의 애국가 제창과 수백 무희들의 춤사래(춤사위), 그리고 만 명의 신민이 모두 내 앞에서 절을 아홉 번 하는 것까지 참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 제국의 황제에게 하는 절이 하필 아홉 번이지?’

곧 결론이 나왔다.

이 세계의 신이 아홉 명이기 때문이다.

*

휘이이이이잉.

나 홀로 뚜벅뚜벅 걸어온 평원 위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벌어진 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실제 르팔타커스 또한 신들의 강림이 예고된 이 장소에서 두 시간 가까이 혼자 서 있었다는 뜻이다.

“당신은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오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저지른 일은 온 우주를 통틀어 전례가 없을 수준의 파괴였다는 점이다.

비록 그 결과로 어떤 감옥의 죄수가 될 거라 예상할 수는 없었겠지만.

태양이 정확히 지평선 아래로 몸을 숨겼을 때.

번쩌억!

하늘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대륙을 관장하는 아홉 신들이 르팔타커스 시온이란 인간의 부름에 응한 것이다.

“이렇게 강림하는 거군.”

10제곱킬로미터는 돼 보이는 광활한 평원에 곧 여러 개의 봉우리들이 솟아올랐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지형이나 건축물이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표피와 주름, 그리고 끄트머리에 달린 손톱까지.

아홉 개의 거대한 손가락이 평원을 들어 올리려는 것처럼 등장한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으나 넋을 놓지 않기가 어려울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

[르팔타커스 시온이여, 우리가 그대에게 말미를 준 의도를 오해한 모양이군.]

아홉 개의 손가락 중 한쪽 엄지에서 폐부를 꿰뚫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기원검을 땅에 꽂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 방향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아흐레의 시간을 준 것은 그대가 신성모독의 죄업을 반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영혼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걷어차 버렸군.]

르팔타커스는 수다스러운 편이 아니었다. 이 순간에 대해서 내게 자세히 뭘 전달해 주지도 않았다.

별수 없이 나는 연기를 때려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내가 걷어찰 것은 너희들의 엉덩이뿐이야.”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그대에게 어떤 고통을 줘야 응당한 벌이 될지 우리는 오랜 시간 고민했다. 한 번의 죽음으로는 충분하지 않겠구나.]

“원래 싸움에 앞서 혓바닥 긴 것들의 공통점이 있지. 곧 일어날 결과에 겁을 먹은 소인배란 점이지.”

나는 힘찬 동작으로 기원검을 뽑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세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검에서 새파란 검기가 수직으로 쏘아 올려졌다.

아홉 개의 손가락이 자연스레 평원에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 그림자 안에 수십 개의 마을이 들어갈 정도로 손가락들의 용적은 컸다.

[뒤틀린 신의 역겨운 토사물을 들고 있구나.]

어투의 내용과 달리 신의 음성에는 미약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너희가 왜 아홉인지 알 것도 같다.”

본래 열 번째 손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 거기엔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앙상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기원검을 만들어낸 뒤틀린 신, 아마도 그는 모종의 사연으로 신들의 권좌에서 내쫓김을 당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결전의 자리는 기원검을 만든 장인의 대리복수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대리복수전을 또 한 번 대리로 치르는 내가 있었다.

“와라, 전부 해치워줄 테니.”

[이제부터는 울부짖으며 애원해도 돌이킬 수 없다. 그대는 아홉 신의 진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차례차례, 하나씩.]

한 손가락이 부르르 진동하더니 무언가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내가 손톱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사실 손톱이 아니라 거대한 포탈이었다.

[가라, 천사들이여. 저 오만한 인간에게 가르쳐줘라. 숭배하기 위해 태어난 피조물의 응당한 위치를.]

수천 명의 천사들이 곧 하늘 저편을 가득 메우며 날아왔다.

웅웅웅웅웅.

처음엔 메뚜기떼처럼 작게 느껴졌지만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천사들 한 명 한 명의 체구가 3미터에 달하는 거인들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뿜는 철갑옷에 강철 날개가 달려 있었고,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선 불길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첫 번째 타자, 당신의 이름은?”

[나는 작열하는 신이다.]

“그래. 일단 네 천사들부터 참교육해주마.”

역수로 거머쥔 기원검을 등 뒤로 잡아당겼다.

반원으로 휘두른 검에서 천지를 일도양단할 기세의 검기가 뿜어져 나와 평원을 집어삼켰다.

천사들의 분쇄된 몸에서 거대한 양의 피가 흩뿌려졌다.

내리는 비는 노을보다 조금 더 붉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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