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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35화 (235/300)

#235. 만료되었습니다 (6)

흔히들 ‘시간 싸움’이라는 표현을 쓴다.

제한된 시간 안에 먼저 목표를 완수하는 쪽이 승리하는 싸움을 가리킨다. 또는 상대보다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즉, 시간 싸움의 본질은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상대보다 더 많은 양의 시간을 확보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간 싸움으로 골제 바르한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녀석은 수천 명의 죄수로부터 오랫동안 수명을 흡수해왔고 자신이 보유한 시간을 수십만 년으로 연장했다.

고작 백여 발의 화살로 수십만 발의 화살을 가진 적과 싸우는 꼴.

싸우는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싸움의 ‘터’를 바꾸기로 했다.

서로의 과녁을 평등하게 없애버린 것이다.

그 결과 지독하게 괴이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대만 맞아라, 쫌!”

골제의 머리 위로 뛰어 올라가 수직으로 검을 내리찍었다.

보통 이런 구도로 머리 위를 빼앗긴 상대는 회피하거나 반격의 태세를 취하게 되는데 골제의 반응은 달랐다.

그냥 서 있을 뿐이다.

퍼어어어억!

피격 순간 충격은 내 쪽이 입는다.

무슨 공격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오른쪽 어깨 위가 탈골되면서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완전 사기라니까 진짜. 격투게임에서 무적 치트를 쓴 핵 유저와 싸우는 느낌이야.”

파천황의 만전불패의 체술은 실전에서 수많은 적을 쓰러트린 검투사의 신체 운용법이다. 당연히 바닥에 쓰러지는 행위야말로 무조건 기피해야 할 순간이다.

상대에게 유리한 공격 기회를 넘겨주는 꼴이니까.

나는 일부러 느긋하게 일어났다.

골제는 나를 씹어먹으려는 듯 보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선제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자신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술식을 구사해도 나를 일격에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아니지. 사실은 나를 죽일 방법이 떠올랐는지도 몰라. 그런데 그걸 실행할 용기가 없는 거 아니냐?”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이 공간은 소유자인 나와 연결된 아공간이지. 이 공간 속에서 나를 죽이면 어떻게 될지 너는 확신할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나도 그 답을 모르니까.”

“…….”

정곡을 찔렸는지 골제는 침묵만을 지켰다.

가능성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내가 죽는 순간 인벤토리에 있는 물건이 전부 튀어나와 버리는 것이다.

PK가 자유로운 MMORPG게임에서 차용되는 시스템처럼.

이 경우 골제는 나를 죽임으로써 해방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도 충분히 존재한다. 내가 죽는 동시에 아공간도 소멸되는 것이다.

골제의 입장에선 가장 피하고 싶은 결말일 것이다. 죽음의 순간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우주로부터 ‘삭제’된다.

또 다른 가능성이라면 내 사망 이후에도 아공간이 온전하게 유지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 역시 공포스럽기는 마찬가지.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무한의 감옥에 갇히게 되니까.

“그래서 너는 유일한 열쇠일지도 모를 나를 죽일 수 없어.”

“세상엔 죽이지 않고도 고통을 주는 방법이 많지.”

“그래? 어디 한번 해보라니까.”

*

그 뒤로도 지루한 싸움이 이어졌다.

나는 벌떡벌떡 일어서서 공격하고, 골제는 시간을 풀어내 방어한다.

허공섭물로 사각에서 공격해 보려 했지만 그것마저 통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골제는 비로소 내 진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말했잖아. 한 대만 때리고 싶다니까.”

“웃기지 마라. 그런 연기가 통할 순간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건 감정적 화풀이가 아니야. 뭘 노리고 있는 거냐, 슈바인 스트링거.”

“……벌써 들통났나. 하지만 너를 쥐어박고 싶다는 마음은 진짜야. 물론 노림수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여기까지 온 이상 구태여 숨길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골제는 이미 내 목적을 짐작하고 있었다.

“내 마법의 근간인 시간을 소모시키려 하고 있군.”

“그래. 당신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거든. 해골의 몸이란 건 참 편리한 것 같아. 지칠 일이 없으니까.”

“무용한 일이다. 나를 굴복시킬 순 없으니 포기하고 이 속박을 해제해라.”

“누구 좋으라고? 너야말로 이 승부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테니 편하게 굴복하는 게 어때?”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마도에 의탁하면서까지 이루려고 하는 종자들이 흑마법사가 된다. 내 집념을 우습게 보지 마라.”

“그럼 계속해 보자고. 어느 쪽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지.”

*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나는 태양이나 달이 없는 공간에서 시간 감각이 얼마나 뒤틀릴 수 있는지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

일주일이 흘렀다.

아니, 어쩌면 여드레나 아흐레일지도 모른다.

표백된 공간에서 정확한 날짜를 계산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단탈리온에게 물어보았다.

“6일하고도 2시간 30분이 흘렀습니다.”

괜스레 무안해졌다.

*

한 달이 흘렀다.

나는 평범한 방식으로 골제를 공격하는 데 조금 질려서 온갖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기 시작했다.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라기보단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내 주먹을 받아랏!”

“……불쾌한 짓 하지 마라. 주먹이 있을 곳에 발을 부착해놓는 건 무슨 짓이냐.”

“뭐, 어때. 내 몸을 레고 블록 삼아서 노는 건데.”

드워프로 보이는 작은 유골에 내 머리를 접합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격이 골제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다만 나가떨어졌을 때 한바탕 웃을 수 있었을 뿐이다.

골제는 웃지 않았다.

*

몇 달이 흘렀다.

사실 확신할 수는 없다. 단탈리온에게 물어보려 해도 MP가 꾸준히 소진되고 있었으므로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허공섭물도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골제에게 덤비는 새로운 방식은 진작에 다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평범하게 걸어가서 주먹질을 하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골제 쪽도 지겹긴 마찬가지인지 내 몸이 나가떨어지는 각도나 뼈의 피격 위치도 매번 동일했다.

그 시기에서 골제가 말을 걸어왔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이런다고 해서 내가 평생의 숙원인 탈옥을 포기할 리는 없다. 반면에 자네에게는 나만큼의 간절함이 없어.”

“왜 그렇게 속단하는 거야? 이쪽도 간절함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데.”

“세계수를 신경 쓰지 않아도 자네의 탈옥 여정에는 문제가 없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동료의 가족을 위한다는 알량한 감정이 얼마나 오래갈 것 같으냐.”

“아하, 믿는 게 그쪽이었냐? 하지만 잘못 짚었어. 내가 당신을 못 본 체하고 다음 층에 오르지 않는 건 단순히 캉이를 위해서만은 아니야. 그건 해결하지 않은 과제를 등 뒤에 남기면 견디질 못하는 내 직성과 관련된 거지. 일종의 본성이다.”

“이쯤 되면 자존심을 걸고서라도 자네에게 굴복할 순 없다. 각오해라.”

“각오는 인벤토리에 널 집어넣을 때부터 되어 있었거든?”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내가 공격을 시도하는 타이밍도 흐트러지고 있었다. 혼자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골제가 시야에서 사라진 적도 있었다.

물론 찾는 게 어렵진 않았다.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는 뼈의 천국에서 붉은 망토를 걸친 골제의 모습은 튀어도 너무 튄다.

“도망칠 곳을 찾았던 거야, 설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침대나 테이블이라도 넣어올 걸 그랬어. 당신을 위해서.”

“본심에도 없는 말을 하지 마라.”

“맞아. 침대에 눕혀놓자마자 그 목을 썰어버리려고 시도하겠지.”

골제와 나누는 대화도 어느덧 살벌함은 사라지고 이웃과 나누는 담소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녀석을 자극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과 르팔타커스 시온의 싸움을 상상해 본 적 있어.”

“……내게는 아직 생생한 기억이지. 무수한 등반 죄수들을 보았지만 그런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전사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재앙신을 무력으로 물러나게 한 죄수도 오직 그뿐이었지.”

“나와 비교하면 어떻지?”

“솔직히 말하면 자네도 뛰어난 등반 죄수의 반열에 올라있지. 먼저 동맹을 제안한 쪽에서 자네를 깎아내리는 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격.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팔타커스는 논외다. 그는 마법사인 나와 오직 물리력만으로 대등한 승부를 벌였으니까.”

“물론 일신의 무력을 비교한다면 지금의 내가 당신과 싸운 르팔타커스를 능가할 순 없겠지. 하지만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나는 르팔타커스를 뛰어넘을 거야.”

정확히 내 검격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골제를 가리켰다.

“르팔타커스마저 무승부를 기록했던 당신에게 항복 선언을 받아냄으로써 그걸 증명할 거다.”

“……이젠 헛소리라고 말하는 것조차 지겹군.”

골제가 희미한 동작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로소 작전이 먹히고 있다는 신호가 나온 것이다.

“르팔타커스와 당신의 싸움을 수없이 복기해 봤어. 인간의 몸으로 이미 신격에 오른 전사인 그의 공격은 한 대도 맞아줄 수 없는 위협. 당신은 그가 덤벼올 때마다 많은 시간을 해방시켜 르팔타커스가 당신을 박살 냈을 순간 위에 덧칠했을 거야.”

“그래서?”

“그렇게 수십 일의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지겨움을 느꼈겠지. 지금의 당신과 나처럼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하지만 지겨움을 느끼는 건 공평한 상황이지.”

“아니. 결코 공평하지 않아. 르팔타커스는 평소의 호흡대로 싸울 뿐이었겠지만…… 당신은 자신이 풀어낸 시간만큼의 인생을 추가로 감당해야 하니까.”

그렇다.

이건 공평한 인내심 싸움이 아니다.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골제 쪽이 되는 것이다.

“르팔타커스의 1분이 당신에겐 2분이 되었겠지. 둘이 싸우는 하루가 당신에겐 이틀, 사흘치로 느껴졌을 거야. 당신에게 수만 년의 시간이 탄환처럼 쟁여져 있다고 해도 정신은 인간의 것이지.”

그리고 인간은 반복에 신물 나 한다.

“그래서 난 자신 있어. 참고로 나는 1층 화룡도에서 톤 단위의 흙을 퍼먹었던 미치광이 출신이다. 탈옥을 위해서라면 지겨움과의 전쟁도 각오가 돼 있지.”

*

“단탈리온, 얼마나 시간이 소요된 거야?”

“63일하고도 4시간 28분입니다.”

“그래, 참으로 오래 걸렸네. 르팔타커스의 기록을 능가했으니 좋아해야 하는 거야, 단축시키지 못한 점에 실망해야 하는 거야?”

내가 오랜만에 만난 단탈리온과 속닥거리고 있을 때,

골제는 내 눈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가 인간의 몸이었다면 분한 마음에 턱을 앙다물고 눈물을 짜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아, 골제. 다시 한번 말해주겠어?”

말했듯이 이건 시간 싸움.

그리고 상대는 무한한 화살을 비축한 시간의 저격수.

나는 그를 꺾기 위해 화살통에 꾸준히 불을 지르는 작전을 펴 왔다.

이제 성과를 확인할 시간.

그가 존재하지도 않는 폐부를 쥐어짜내듯 말했다.

“항복이다.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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