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21화 (221/300)

#221. 스켈레토마키아 (4)

섬멸전.

애초에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낼 생각이 없다.

서로가 마지막 병사 하나를 죽일 때까지 싸울 것이다.

그것이 6층과 7층, 두 진영의 죄수들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삼월초원에서 목격했던 마교와 마탑의 쌍마대전보다 훨씬 농밀한 살기가 전장에 넘실대고 있었다.

돌진 거리만큼 해골 병사들을 튕겨내는 용아병들의 무용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곳은 모두가 모두에게 노출되어 있는 사막.

곧 용아병 한 기당 해골 병사 예닐곱 명이 단단한 갑옷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북을 치던 거인 해골 병사가 무게로 용아병을 짓누르고 다른 병사들에게 포효했다. 그것을 신호로 해골 병사들의 창과 화살들이 전우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얼핏 보면 동귀어진처럼 보이지만 아니었다. 무기는 거인 해골 병사의 척추와 갈비뼈의 빈 공간을 뚫고 용아병의 갑옷을 박살 낼 뿐이었다.

개체로서의 무력은 용아병이 훨씬 뛰어났으나 상대는 조직력에서 크게 앞서 있었다. 스스로 희생양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용아병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반면에 해골 병사들은 아래층인 만골사막에서 환수들의 그림자를 상대로 줄곧 ‘강력한 상대’를 집단전으로 상대하는 방법을 학습해온 상황.

그래서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용들은 달랐다.

콰아아아아아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용들의 브레스가 사막의 지형을 바꿔놓겠다는 듯 적군을 밀어붙였다. 직격당한 병사들이 흔적도 없이 먼지가 되어버리는 와중에도 동요는 없었다.

해골마를 타고 질주하던 병사들의 손목에서 작살이 튀어나와 이제 막 불을 뿜은 용의 턱 밑을 파고들었다.

푸우우욱!

용에게는 벌레가 쏘는 것처럼 가소로운 일격.

하지만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압도적인 숫자를 이용해 목표물인 용의 지근거리까지 파고든다. 그것이 해골 병사들의 전략이었다.

정작 두 진영의 수장들은 주변에서 펼쳐지는 난전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용왕과 골제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죄수들은 하나도 없었다.

두 층장의 사이에 평원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바르한, 병사들을 제법 오랜 시간 훈련시킨 듯 보이는구나.”

“곧 죽을 용에게서 인정받아봤자 조금도 기쁘지 않다, 게브라둠.”

“인정이나 칭찬 같은 게 아니다. 그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려는 거지. 다른 용들과 나를 동격으로 놓으면 곤란하지. 내가 전장에 참여하는 순간 숫자는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안다. 그래서 내 군단들이 승리를 거둘 때까지 내가 너를 이곳에 붙잡아 놓을 것이다.”

“자신은 있는가?”

“지난번 내 등반에서 너는 부하들 뒤에 숨어 목숨을 온존했지.”

“공을 쌓고 싶어하는 용들의 의지에 응답해준 것뿐이다. 이 층에는 갖고 놀 장난감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서.”

파지지지직.

골제의 지팡이에서 그 주인의 키보다 몇 십 배는 긴 마력창이 형성되었다.

“오늘 이후로 천공섬은 그런 지루한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희 날개 달린 도마뱀들의 큼지막한 두개골이 우리의 노리개가 될 테니까.”

용왕이 앞발을 거세게 휘둘러 골제의 마력창을 한 방에 깨부쉈다. 공중에서 박살 난 마력창의 파편들이 다음 순간 화살이 되어 용왕의 날개를 향해 쏘아졌다.

그 화살들은 목표물에 닿지 못하고 허공이 가를 뿐.

순식간에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한 용왕이 골제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

사막 위로 아수라장이 펼쳐졌으나 나는 거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론다이트를 어깨에 짊어진 채 친구들에게 선언했다.

“뚫고 가겠어.”

내 인벤토리에 있는 캉이의 시체를 호이란 앞까지 가져 간다.

두 층의 죄수들이 총력을 다해 벌이는 공층전 따위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내가 따라붙을게.”

아스티나가 흑기사의 갑옷을 장착했고,

“뒤는 신경 쓰지 마라. 달라붙는 적들은 나와 레나스에게 맡겨.”

제르비어스가 후열에서 듬직하게 외쳤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이식 무영보(無影步)]

천마군림보로 장악한 공간을 중력 마법인 워핑으로 돌파하는 융합기인 ‘무영보’.

그 스킬이 발현되자 나는 신속으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빛살이 되었다.

내 경로 위에 서 있던 해골 병사들이 나와 충돌하며 날아갔다.

보통의 병사들은 내 존재를 눈치채지도 못했다.

눈을 꿰뚫렸는지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 치는 거대한 용 한 마리.

나는 그 용의 옆구리와 날개 사이를 지나쳤다.

용아병은 해골 병사들과 달리 마력을 가진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 루트에 뛰어들어 방패를 내미는 용아병도 있었다. 지금 녀석들의 뇌리에 나는 적군의 군단장 정도로 인식되고 있을 테니까.

투웅! 투우웅!

후방에서 그래비티 봄과 초전자포가 그런 용아병들을 치워주었다.

그럼에도 세계수를 감싼 모래기둥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저 거대한 건축물이 내게서 도망칠 리도 없건만 초조함이 들었다.

물론 이대로 날아가기만 한다면 제 시간에 도착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다만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반드시 방해꾼이 등장할 것이라고.

“참전하지 않고 어딜 달아나느냐?”

아무런 전조 없이 순간이동으로 앞을 막아서는 존재는 두 마리의 거대한 용들이었다.

뇌룡 간다르바와 폭룡 발카드.

용왕 옆에서 싸우고 있어야 할 간부급 용 두 마리가 내 앞에 떠 있었다.

무영보의 질주를 거뒀다.

“지금 한참 바빠 보이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냐?”

“용왕의 명이시다. 그분은 이 전쟁보다 너를 다시 쟁취하는 데 관심이 있으시거든.”

내가 행동에 나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리다.

곧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가 내 좌우에 내려섰다.

둘 역시 곧 상황을 파악하고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폭룡 발카드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7층의 교도관이 남은 시간이 8분이라고 알려옵니다.]

여기에서 발이 묶이면 안 된다.

“슈바인, 우린 신경 쓰지 말고 몸을 빼내.”

“그래. 저 둘은 어떻게든 해보겠다.”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가 자신만만한 태도를 드러냈으나 내게는 그것이 만용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저 두 마리 중 한 마리만 여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하기 버거울 터였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투닥거리다가 교도관들의 회의가 소집되는 순간 나는 캉이를 영원히 잃어버릴 터였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제르비어스가 이상행동을 보였다.

“레나스, 떨어져 있어라.”

“뭐 하는 거야, 마왕?”

오토마타가 제르비어스의 등과 어깨로부터 해제되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지만 레나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르비어스의 다음 행동은 더욱 기괴했다.

망토를 벗어 던진 뒤 갑옷마저 끌러 맨몸의 상체를 훤하게 드러낸 것이다.

나와 함께 했던 그 숱한 싸움들에서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모습이었다.

“제르비어스.”

설마 할복 같은 거라도 하려는 건가?

하지만 녀석의 눈빛은 자포자기한 것이 아니었다. 증오와 분노로부터도 초탈한 듯 가라앉아 있었다.

“깨달은 것 같거든, 조건을.”

“무슨 조건?”

제르비어스의 피부에 빛줄기가 아로새겨졌다.

그것을 본 아스티나가 숨을 들이켰다. 아마도 나와 같은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분노가 아니었다.”

문신처럼 전신에 퍼져나가는 빛의 문양.

그것은 결계의 한 종류였다.

나로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복잡한 술식.

문양들이 서로 얽히고 떨어지면서 기하학적인 그림들을 만들어냈다.

그것들이 응집한 장소는 제르비어스의 이마.

두 개의 뿔 사이에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증오도 아니었어.”

화아아아아악!

제르비어스 주변에 소용돌이가 일어나면서 나와 아스티나, 레나스는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물러섰다.

퇴로를 막고 서 있던 간다르바와 발카드의 날개가 찢어질 듯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게 제르비어스의 마력이라고?’

마나스트림의 역류가 물리적인 현상에까지 간섭하고 있었다.

마법을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막을 진동시킨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단탈리온의 말을 듣고 어벙한 표정을 지었던 제르비어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 변신할 수 있어?’

너무 오래전이라 무의식중에 잊고 있었다.

하지만 제르비어스가 자신의 변신 조건에 대해 끝없이 갈구하며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비로소 그 답을 찾은 모양이다.

내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어린 소년 때문이다.

‘간절히 지키고 싶은 대상이 생겼을 때 해방되는 건가?’

그렇다면 제르비어스는 무엇으로 변신할 것인가?

그 대답이 소용돌이 안에서 튀어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아!

지옥파쇄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마력포가 소용돌이를 찢고 전개되었다.

뇌룡 간다르바는 화들짝 놀라며 마법을 전개했다. 일전에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던 벼락의 장막을 두른 것이다.

콰지지지지직!

하지만 마력포가 그 장막을 거칠게 찢어버리며 간다르바의 복부에 폭발을 일으켰다.

“이건…… 브레스?”

동료가 맥없이 튕겨져나가는 걸 본 발카드의 비늘이 거꾸로 솟았다.

잠잠해진 사막에 다시 발을 내딛은 것은 보라색 비늘에 세 개의 검은 뿔을 가진 용이었다.

양쪽에 달린 뿔이 휘어져 전투기의 양익에 달린 미사일처럼 용의 턱 양쪽을 지키고 있었다.

[친구 제르비어스 폰타인이 ‘종족변화’를 달성했습니다.’]

[마족 -> 마룡(魔龍)]

[친구의 마력수치가 해방되면서 스킬 ‘폭렬마법’과 관련한 모든 스킬의 수준이 현격하게 오릅니다.]

……용이라고?

제르비어스가 있었던 세계에는 오래 전에 용이 멸종했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마족과 충돌하여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를 바꾸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제르비어스 폰타인은 세계수의 입구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본체 안에 ‘마룡’을 숨기고 있어서.

“웃기지 마라! 껍데기를 흉내 냈다고 해서 최강종을 넘볼 순 없다!”

발카드 주변으로 여섯 개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저 마력구 하나하나에 엄청난 폭발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저거 단 한 개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나와 레나스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무려 여섯 개의 마력구가 동시에 우리 쪽을 향해 날아왔다.

나와 아스티나가 포스 쉴드를 전개하려고 마음 먹은 것보다 폭발이 더욱 빨랐다.

콰아아아아아앙!

하지만 순간 어둠의 장막이 우리 앞에 내려앉았고, 레나스의 담담한 음성이 그 안에서 속삭였다.

“용의 공격이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다시 장막이 거둬지자 그것이 마룡이 된 제르비어스의 오른쪽 날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마족의 모습이었을 때도 녀석은 화염면역이라는 사기 스탯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폭발면역으로 진화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 뭐 하고 있냐, 용사 놈아. 빨리 가라. 우리 막내를 되살려야 할 것 아니냐.

- ……어, 응. 알았어.

제르비어스가 있던 자리에서 소닉붐이 일어났다.

녀석이 발카드와의 거리를 지우면서 워핑에 가까운 돌격을 해낸 것이다.

마룡이 폭룡의 목을 깨물었다.

비늘이 폭산하듯 날리며 사막의 하늘을 우롱했다.

그것이 내가 자리를 뜨기 전에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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