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스켈레토마키아 (3)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감옥의 시스템은 어린 구미호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난 여지껏 이보다 서늘한 사망 선고를 본 적이 없었다.
“꺄아앗!”
토니아가 뭔가에 확 떠밀려 사막을 굴렀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울화를 터트린 것이 내공의 폭발로 일어난 모양이다.
그럼에도 토니아는 포르르 날아와 내 손등 위에 앉았다.
“슈바인, 괜찮아?”
도저히 그렇다는 대답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페어리는 상대와 접촉해 있을 때 그 감정을 면밀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지금 내 심정이 어떨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너,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호이란의 그림자를 쓰러트리느라 격전을 치렀다. 그 직후 순간이동으로 날아와 경공술에 또 내공을 몰아 썼다.
“토니아, 회복시켜줄 필요 없어.”
“어? 하지만…….”
평상시였다면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거나 토니아의 회복술의 세례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3병 남은 엘릭서를 꺼내서 뚜껑을 땄다.
‘마실 순 없겠지. 그냥 뿌리자.’
[엘릭서의 효과로 HP와 MP가 완전 회복됩니다.]
단숨에 끝까지 차오르는 생기를 확인한 페어리는 화들짝 놀랐다.
“신의 음료 같은 거야?”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이 엘릭서로 캉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몰랐다.
공허와 자책이 나를 좀먹기 위해 주변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직, 그 감정들에게 내 심장의 한켠을 내줄 수는 없었다.
제르비어스와 아스티나가 우리를 발견하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용사놈아, 왜 이런 곳에 있었냐.”
“슈바인! 나를 소환하기로 해놓고…….”
당장이라도 나를 닦달하려던 둘의 입이 다물어졌다.
내 발치에 쓰러져 있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직감한 것이다.
아스티나는 블랙홀에 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물었다.
“아니지?”
“…….”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잖아. 빨리 아니라고 말해!”
제르비어스는 털퍼덕 주저앉은 채 자신의 뿔을 잡아 뜯으려 했다.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다.”
마족의 선혈이 그의 뿔 아래로 흘러내려 두 눈가를 적셨다.
“일어서라, 마왕.”
제르비어스의 어깨 떨림이 멈췄다.
나는 그 둘을 향해 말했다.
“캉이를 살릴 수 있을지 몰라.”
내 오른쪽 어깨 위에서 토니아가 흠칫 놀랐다.
“슈바인, 네 상심은 잘 알겠지만 그건 불가능해.”
“여기가 평범한 세계였다면, 그리고 캉이가 평범한 여우였다면 당연히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여기는 차원감옥 푸르가토리움이며 캉이는 엄연히 신화 속 생물인 구미호다.
“구미호에겐 아홉 개의 목숨이 있어. 어쩌면 다시 살릴 방법이 있을지 몰라.”
상태창이 보여준 메시지가 미약한 힌트가 되어 주었다.
나는 캉이의 작은 손을 붙잡았다.
구미호로 변신하지 않을 때 이 아이의 손은 이렇게나 조그맸다.
“아이템 수납.”
오래 전 화룡도에서 내 인벤토리에 큰 관심을 보였던 실성 드워프 하스록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디 나를 넣어주게!’
‘……뭘 넣어주라고?’
‘나를 그 아공간에 넣어달란 말일세! 그 안에 재밌는 게 잔뜩 있을 거 아닌가.’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목숨이라도 초개처럼 던질 것 같았던 드워프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때는 단순한 농담처럼 넘겼던 상황이 내게 실제로 닥쳐오고야 말았다.
새카맣게 타버린 캉이의 시체가 모래 위에서 사라졌다.
캉이가, 캉이였던 무언가는 이제 내 인벤토리에 칸 하나를 채우게 되었다.
아스티나가 눈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은발의 마검사는 내게 희망을 갈구하는 중이었다.
“어쩌려는 거야?”
“캉이는 구미호인 호이란의 아들이잖아. 호이란은 교도관과 자신의 꼬리를 거래했어. 마치 여벌의 목숨처럼. 어쩌면 캉이도 그럴 수 있을지 몰라.”
단탈리온을 펼쳐 들어서 방법을 물어봤다.
녀석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었는지 모래가 가져다주는 삭풍에 우는 소리를 내지 않고 진지하게 답했다.
- 성체가 된 구미호라면 용사님이 생각하신 방법이 통할 것입니다. 하지만 캉이 님은 그 경지에 다다르기 전에 숨이 끊어졌지요.
“구미호가 성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 이름. 동족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이름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구미호 호이란은 세계수 위그드라실에 자진해서 흡수당했던 것입니다.
아들에게 이름을 준다.
그럼으로써 성체로 만들어 이 감옥을 벗어날 수 있도록, 그 정도의 강한 환수로 각성시킬 수 있도록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안배한 것이다.
포악한 용들로부터 자식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 후대의 누군가에게 양육을 부탁했던 호이란.
순서는 바뀌었으나 나는 둘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계수로 되돌아간다.”
그때, 감옥이 나에게 통보했다.
[7층의 교도관이 등반죄수에게 알립니다. 방금 전 푸르가토리움의 모든 교도관에게 소집령이 내려졌다고 전합니다.]
소집령?
감옥의 교도관들이 전부 모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감옥의 명운과 직결되는 어떤 안건, 혹은 교도관들에게 전례 없는 사건이 들이닥쳤을 때만 일어나는 명령이다.
설마 또 나와 관련된 일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다.
[감옥에서 태어난 생명체인 미성년 구미호의 사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안건입니다. 7층의 교도관은 이미 등반죄수의 계획을 알고 있으며 교도관들의 회의가 종료되는 순간 그 계획에는 커다란 지장이 생길 것이라 예고합니다.]
“지장이라니. 무슨 지장을 말하는 거야?”
[영혼을 가진 존재가 죽음을 맞이하면 윤회의 고리에 끌어당겨집니다. 현재 미성년 구미호의 영혼은 감옥에 붙잡혀 있는 상황, 그리고 교도관들은 이 안건에 완전히 무관심합니다.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며 구미호의 영혼은 윤회의 고리에 회수당할 것이라고 교도관은 예상합니다.]
나는 5층에서 직접 그 현상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영혼폭발의 순간 스스로 내 심장을 터트렸고, 다음 순간 윤회의 고리가 내 영혼을 회수하기 위해 끌어당겼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캉이에게 벌어진다면?
영과 육이 서로 떨어진다면 캉이에게 이름을 준다 한들 되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상대가 윤회의 고리라니.
그건 그냥 원래부터 존재했던 우주의 질서 같은 것이라고 했다. 협박이나 애원, 거래 따위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불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동료들 앞에서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었다.
하지만 안내메시지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7층의 교도관은 죄수 호이란에게 빚이 있으며 그것을 갚고 싶어한다고 전합니다. 용은 원한과 은혜를 공정하게 대하는 존재라고 알립니다.]
영겁에 똬리를 튼 용.
그가 내게 도움을 주겠다는 건가?
하지만 현재 투표권이 존재하는 교도관은 여덟. 교도관 하나의 행사로는 상황을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기권표를 내던지는 녀석인 나태에 짓눌린 쥐가 캉이를 훈련시켰던 정에 휘둘려 표를 던져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해도 2:6.
회의가 열리는 순간 캉이를 구할 방법은 이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7층의 교도관이 등반죄수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전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소집령에 최대한 늦게 응할 계획이라고 덧붙입니다. 일정 시간이 흐르면 교도관들은 회의 장소에 강제 소환당하게 됩니다.]
나는 5층 교도관의 권한 박탈을 안건으로 건 회의에 참가해본 적이 있었다.
그 장소에서 꽤 오랜 난상토론을 겪고 나왔을 때 바깥의 시간은 단 1초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
교도관들의 회의 장소는 층간 구역처럼 시간이 멈춘 공간.
‘끌려가는 순간 상황이 끝나니 그때까지 버티겠다는 거군.’
회의가 벌어지기 전에 캉이를 되살린다면 안건은 없던 일이 된다. 회수할 영혼이 없다면 윤회의 고리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제야 교도관이 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 굳이 내게 말을 거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10분. 교도관에게 허락된 시간은 10분이라고 다시 전합니다. 등반죄수는 10분 안에 어린 구미호의 ‘육’을 되살려 떠돌고 있는 ‘영’과 접붙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휘이이이이잉.
끝나지 않고 불어닥칠 것 같던 사막의 모래바람이 그 순간 기승을 멈추었다.
사막 위 아득히 높은 곳까지 솟아오른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본래 모습은 나무의 거체를 감싸고 있는 모래 기둥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 막대한 천재지변을 일으킨 장본인이 전장에 막 상륙하고 있었다.
“용왕 게브라둠은 숨지 말라!”
골제 바르한의 음성이 사막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래층에서 내가 지켜봤던 연설에서 그러했듯 마법을 통해 층의 모든 죄수들이 들을 수 있도록 선포하는 것이었다.
“나는 6층장 바르한 니칸드로스! 오래 전 그대에게 패배한 뒤 오늘 이 순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해왔다.”
오래전 단신으로 천공섬에 올라와 용왕을 꺾지 못하고 실패했던 6층장.
그가 죽지 않는 군대를 이끌고 수백 년 만에 귀환했다.
쿠오오오오오오.
골제의 등 뒤에 펼쳐진 사막에서 해골 병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수가 무려 팔 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장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 둥. 둥둥둥.
육중한 북소리에 맞춰 솟아오르는 해골마들. 병사들을 태운 채 천공을 질주할 수 있는 사역마들이다.
“나를 향해 숨지 말라고 했느냐?”
그 북소리들을 일제히 잠재우는 날갯짓이 있었다.
사막에 내려앉은 흑룡의 목소리 역시 마력이 실려 있었다.
고함은커녕 속삭임에 가까웠으나 그 안에 실린 압박감은 상대편의 모든 병사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용왕 게브라둠.
그녀가 일백 기의 용아병을 양옆에 둔 채 고고히 골제를 내려다봤다.
“일단 두 가지가 마음에 안 드는군. 아래층으로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난 주제에 골제라는 허명을 스스로에게 붙인 점.”
용왕이 뒷발을 들었다가 한 번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우웅!
사막 전체가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어디서 뼈만 남은 오합지졸들을 모아와서는 불사의 군대라고 자부하는 점. 감히 편법으로 천명의 눈금을 속이고 있는 주제에 불사를 칭하느냐.”
슈욱. 슉. 슈수숙.
용의 피막이 공기를 찢을 때 나는 파공음.
수백 개의 날갯짓이 천공섬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군주의 부름을 받아 날아온 용들이 해골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포효했다.
용왕이 최후통첩을 내밀었고,
“어디 보자꾸나. 백골을 짓밟아 가루로 만들어버려도 ‘불사’를 외칠 수 있는지 말이야.”
골제가 그것을 찢어 삼켰다.
“너희의 비늘을 모두 뜯어내 그 불필요하게 큰 위장에 밀어 넣어줄 것이다.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날개들은 내 옥좌 밑의 카페트로 삼아주지.”
쿠아아아아아아!
용왕의 브레스가 골제를 향해 내쏘아졌다.
나를 상대로 할 때는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던 골제의 지팡이.
그것이 홍염의 마법진을 펼쳐 브레스의 각도를 꺾어놓았다.
용의 입김이 푸른 하늘을 수놓는 폭죽이 되었다.
죽음을 농락하는 육체를 가진 용들과,
죽음을 상징하는 뼈에서 일어난 병사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격돌했다.
스켈레토마키아의 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