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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19화 (219/300)

#219. 스켈레토마키아 (2)

흑갑의 용린병.

용왕 게브라둠의 비늘에서 만들어진 병사는 용아병처럼 방패와 창을 들고 있지 않은 맨손이었다.

하지만 캉이의 입장에서는 훨씬 까다로운 적이었는데, 룬문자로 덧씌워진 반투명의 병장기들을 소환하면서 덤벼왔기 때문이다.

꽈아아아아앙!

캉이는 동시에 용린병 세 기를 상대하고 있었다.

강철을 부술 기세로 휘두른 앞발을 여유롭게 피하면서 룬 글레이브를 찔러왔다.

마법의 힘이 담긴 무기에 닿을 때마다 구미호의 요력이 그것을 튕겨냈다.

하지만 순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아찔한 고통이 캉이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뒤로 공중제비를 도는 캉이는 그 관성을 이용해 아홉 개의 꼬리로 지면을 휩쓸었다.

두 기의 용린병이 타격을 입고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동료의 희생으로 기회를 얻은 용린병이 룬 글레이브를 거대한 룬 글러브로 변형시키며 뛰어올랐다.

본래보다 스무 배는 커진 마법 철권이 캉이의 주둥이 옆면을 후려쳤다.

퍼어어어억!

세계수 전체가 진동할 만큼 충격파가 일어났으나 캉이는 바닥에 드러누워선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상대는 몸을 뒤집을 시간을 주지 않고 올라탈 테니까.

후열에 있던 용린병 다섯 기가 동시에 날아올랐다.

캉이는 하늘을 올려다본 상태에서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턱을 앙다문 상태에서 여우트림을 내쏘았다.

그러자 본래였다면 빛의 기둥처럼 작렬할 여우트림이 구미호의 이빨과 이빨 사이를 통과하며 수십 개의 광선으로 나뉘어 비산했다.

퍼어어어엉!

자폭이나 다름없는 폭발을 일으킨 캉이가 벌떡 몸을 일으킨 다음 포효했다.

“괜찮니?”

토니아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정면의 적을 향해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페어리의 요정술로 힘이 증폭된 상황이었기에 지금의 캉이는 본능에 따라 사냥하는 짐승처럼 흥분상태였다.

전투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힘을 거둬야 할까?’

토니아가 캉이를 걱정해 요정술의 가호를 거두는 순간 구미호는 침착한 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문제는 그 빈틈을 상대 쪽에서 놓칠 리 없다는 사실이다.

“어?”

그런데 용린병과 용아병들이 입구로부터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분전이 효과가 있어서일까?

그렇지만 누가 보더라도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은 용의 병사들이 아니라 이 구미호 쪽이었다.

토니아는 시선을 더 넓게 돌렸고,

그제야 소강상태가 생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세계수 수관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한층 광대하게 느껴졌다. 시력이 더 좋아졌을 리도 없는데 광활한 하늘이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인상을 준다.

깨끗하다는 건, 마땅히 있어야 할 무언가가 치워졌다는 뜻도 된다.

“운해가…… 없어졌어?”

7층 천공섬에서 바다처럼 펼쳐져 있던 하얀 구름들이 까마득히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급격히 수심이 내려가서 감춰져 있던 해저섬이 드러나는 것처럼 위그드라실을 둘러싼 하늘이 쾌청해진 것이다.

기상이변에 가까운 이 현상을 토니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판단을 도와준 것은 영겁에 똬리를 튼 용의 경고였다.

“교도관인 내 언약은 이 시간부로 유효하지 않다. 달아나라, 용왕 게브라둠이 본체로 그대들을 참살하러 올 것이다.”

토니아의 말에는 반응하지 않던 캉이가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교도관이 전한 경고의 어떤 부분이 이 구미호의 역린을 건든 것이다.

“달아나지 않아. 어디로도.”

다음 순간 용린병들의 신체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들의 신체가 수십 개의 비늘로 조각조각 나뉘어지더니 허공에서 합쳐진 것이다.

어떠한 비행의 전조도 없이,

용왕 게브라둠이 본체의 모습으로 그 장소에 현신했다.

샤아아아아아아.

용린병이었던 검은 비늘들이 흑룡의 가슴팍으로 날아가 본래 있던 자리로 다시 달라붙었다.

용왕은 자신의 거체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는 구멍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희한한 구조를 갖고 있었군, 위그드라실.”

백 기의 용아병들이 모두 창을 꽂고 무릎을 꿇었다.

용을 튕겨내는 언약이 효력을 다했음을 직감하자마자 순간이동으로 날아왔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찾아왔음에도 빠르게 행동한 판단력, 그리고 층 안에서 자신을 막아설 존재가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는 오만함이 그녀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용왕 게브라둠이 한 발짝 내딛으며 캉이에게 턱짓했다.

“비켜라. 어린 짐승아. 나는 저 구멍 안에 볼일이 있다.”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 직감했다.

자신이 눈엣가시로 여기던 존재들, 죽였다 믿은 구미호, 죽이는 데 실패한 이무기가 모두 한데 모여 있다는 것을.

“오늘 비늘에 묻은 먼지처럼 해묵은 것들을 한 번에 청소할 수 있겠어.”

용왕은 군주의 패기를 뿜으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자신의 체고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구미호를 완전히 무시한 채로.

그녀의 앞발이 기어코 구멍 앞에 도달했다.

“세계수의 혈관에 내 브레스를 토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군.”

한 번의 입김으로 재앙을 부를 수 있는 천공섬의 패자가 제대로 힘을 모았다.

그녀의 드래곤 하트에 마력이 모여들자 캉이의 머리 위에 숨어 있던 토니아는 심장이 멎는 듯한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저것은 존재해서는 안 될 생물이다.

그야말로 폭력의 화신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위압감에 요정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물드는 듯했다.

그러나 캉이는 아니었다.

“내가 호이란의 아들이다!”

발악이 섞인 그 외침은 용왕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뭣이라?”

“네가 괴롭혔던 구미호의 아들이 바로 나야! 그래도 무시할 테냐?”

용왕의 기다란 목이 휘익 하고 등 뒤를 향했다.

한쪽 날개로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하얀 털의 여우가 아홉 개의 꼬리를 바짝 세운 채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수갑이 없군. 죄수가 아니라 감옥에서 태어난 거야.”

호이란의 3층으로 내려보냈던 아들이라.

생각해보니 감옥 안에서 구미호라는 종족이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더 빨리 눈치챌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호이란에 비해서 약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 용왕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것이다.

“고민이 되게 만드는구나. 부모와 자식 중에서 어느 쪽을 먼저 죽여야 나머지 쪽의 울부짖음이 더 클까. 나는 누구의 얼굴을 더 보고 싶은 걸까.”

드래곤하트에 모인 마력은 여전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용왕이 원하기만 하면 그것은 입 바깥으로 터져 나와 재앙을 만들어낼 것이다.

용의 계산은 금방 끝났다.

“당연히 자식을 잃은 어미의 얼굴이 더 구미에 당기는구나.”

발사는 캉이 쪽이 더 빨랐다.

아홉 꼬리로 끌어모은 요력을 한데 모은 여우트림이 용왕의 몸통을 노리고 날아갔다.

붉은 광선포가 그녀의 비늘에 닿기 직전 용의 숨결인 브레스가 터져 나와 그것을 가뿐하게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아앙!

브레스가 캉이의 여우트림을 찢어발기며 공간을 잠식해 나갔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말단으로 갈수록 얇아지던 브레스는,

끝내 어린 구미호의 가슴을 꿰뚫었다.

*

순간이동을 마쳤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레나스를 등에 매단 마왕의 등이었다.

“제르비어스!”

불러도 대답이 없자 가까이 날아가서 녀석의 어깨를 움켜잡아야 했다.

원래였다면 ‘용사의 신체가 상극인 존재와 접촉했습니다!’ 하며 호들갑을 떠는 경고 메시지가 떠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의 내 몸이 인간의 영역보다 마족의 것에 더 가깝기 때문이겠지.

“적이 쳐들어왔다면서? 어디에…… 있다는 거야?”

“사라졌다.”

제르비어스의 목소리는 어딘가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사라졌었는데…… 용왕이 갑자기 나타났어.”

녀석이 가리킨 방향은 몇 킬로미터 떨어진 세계수의 꼭대기였다.

방금 전에 내가 뛰어들었던 입구에 검은 얼룩 하나가 붙어 있었다.

용왕 게브라둠이 본래의 모습으로 온 것이다.

그 주변에 흰개미처럼 뿌려진 점들이 용아병인 듯했다.

“캉이는? 그 애는 어디에 있는데?”

“……네가 오기 직전에 소리를 들었다. 캉이의 비명소리였어.”

그제야 제르비어스가 어딘가 넋 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불길한 상상을 현실로 끌어온 것은 레나스의 담담한 음성이었다.

“강력한 에너지의 분출 이후, 캉이 관객님의 생체 반응이 탐지되지 않습…….”

“친구 캉이의 곁으로 순간이동!”

제르비어스의 고개가 꺾이다시피 나를 향했다.

마치 제발 눈앞에서 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채.

하지만 시동어를 외친 지 몇 초가 흘러도 마왕의 일그러진 얼굴은 내 시야를 떠나지 않았다.

[순간이동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는 친구입니다.]

[현재 친구 목록에서 캉이란 이름은 비활성 상태입니다.]

비활성 상태라니.

지금까지 상태창이 이런 메시지를 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르비어스가 기절해서 순간이동이 불가능했을 때도,

디멜 무바크가 나와 절교를 선언해 스킬이 차단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둘 모두 내 친구목록에서 비활성화된 적은 없었다.

머릿속에서 팽팽했던 실이 끊어지는 순간,

나는 이미 남은 마력을 모두 짜내어 경공술을 펼치고 있었다.

“게브라두우우움!”

용왕의 거체가 순식간에 커졌다.

그녀는 내가 시야에 들어오기 전부터 습격자의 존재를 눈치챈 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등반죄수, 너도 이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게 아니었나? 어떻게…….”

용왕의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뇌리에 분노가 가득 차서 청각마저 마비된 것은 아니었다.

푸화아아아아악!

용왕의 등 뒤에서 거대한 모래폭풍이 일어나 수관부에 몰려 있던 모든 존재를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뭣이?”

그것은 경동맥이 잘려 분수처럼 피를 내뿜는 거대한 짐승을 연상케 했다.

세계수의 정수리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가 화산의 마그마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막대했던지 순식간에 교도관의 거체마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젠장.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꿀렁꿀렁 흘러넘치던 모래가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표면을 완전히 감싸 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폭풍은 계속 휘몰아치고 있었고 그제야 나는 천공섬의 운해가 완전히 증발해버렸다는 걸 알아챘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사막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구름이 있던 빈 자리를 모래가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천지개벽.

마법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신기가 발현되는 중이었다.

이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골제 바르한의 짓이겠지.

나처럼 폭풍에 튕겨져나간 용아병들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채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나를 발견하고 덤벼드는 용아병에게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뻐어어어억!

성검이 용아병의 갑옷에 실금을 냈고 얻어맞은 용아병은 맥없이 추락했다.

놀랍게도 지면을 형성하고 있는 모래가 어찌나 두터운지 용아병은 사막에 추락한 것처럼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단탈리온! 캉이의 위치를 알려줘.”

마도서가 알려주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 지점에 가까이 갈수록 낯익은 기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차마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구미호의 기가 아니라 페어리의 기였으니까.

“토니아?”

사막의 먼지에 뒤덮인 토니아가 한 자리를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그녀가 떠도는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은 새카맣게 그을린 소년의 몸이었다.

“캉이야?”

부름에 응답은 없었다.

눈을 뜨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용왕의 브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낸 캉이의 변신은 풀려 있었고,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뻥 뚫려 있었다.

“살릴 수가 없었어……. 내 요정술로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가…….”

토니아의 구슬픈 비명이 귓가를 간지럽히다가 사라졌다.

지독하리만치 현실감이 없었다.

“죽었다고?”

캉이가 죽었다고?

대수림에서 둥지를 판 채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영 속에서 외로워하던 소년.

‘나는 너무 오래 혼자서 살아남았어. 나를 거쳐 간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어. 영원히 이곳을 지키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

‘같이 나아가자. 무엇도 버리지 않아도 돼. 너는 이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갖고 있는 아이니까.’

무엇도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했다.

아무것도 잃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이 아이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 탈옥에 동참시킨 것이다.

“안 돼.”

자신이 구미호인 것도, 이곳이 죄수들을 가둔 차원감옥인 것도 알지 못했던 소년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내 눈앞에 누워 있었다.

“아니야. 믿을 수가 없어.”

캉이 옆에 무릎을 꿇었다.

녀석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눈앞에 신벌처럼 펼쳐졌다.

[용사가 주인 없는 물건과 접촉했습니다.]

[용사의 인벤토리에 수납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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