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11화 (211/300)

#211. 용이되 용이 아닌 것 (4)

“위그드라실이…… 죄수라고?”

이 감옥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비르카 리케우톤이 자신이 여자라고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그 요지부동의 순위가 방금 뒤바뀌었다.

“그렇다. 이것은 죄수들은 물론이거니와 층장조차 모르고 있는 기밀 중의 기밀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 층을 둘러싸고 있는 것도 모자라 다른 층에까지 뿌리를 뻗어내리고 있는 거대한 세계수.

당연히 화룡도의 마그마나 대수림의 나무들, 빙설협곡의 동굴들처럼 자연적인 지형의 일부라고 생각해왔다.

‘그 규모에 속아왔구나.’

아래층인 만골사막에서 세계수의 뿌리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걸 ‘기둥’이라고 불렀다. 스케일이 너무 커져버리면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놀랐으나 단연 가장 소스라친 것은 캉이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토니아였다.

“어, 어떻게? 내가 알고 있는 세계수는 정령이 숨결을 불어넣은 페어리들의 요람인데.”

교도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대들은 푸르가토리움이 죄수를 판별하는 기준을 아는가?”

그것은 내가 붙잡혀 온 이래 오랫동안 생각해온 화두 중 하나였다.

“살생. 그것도 희생자의 숫자가 무척 많아…… 학살에 가까운 살생 아니야?”

“그 추론엔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있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지진이나 벼락, 어쩌면 초신성 폭발로 인해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는 행성도 감옥에 붙잡혀와야 말이 되지.”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보통은 무생물에게 ‘죄를 짓는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할 뿐.

살생이라는 개념만으로 죄수를 붙잡아온다면 푸르가토리움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혼돈의 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영겁에 똬리를 튼 용이 말을 이어나갔다.

“영혼을 가진 존재가 다른 영혼에게 저지르는 죄. 푸르가토리움이 죄수를 데려오는 기준은 이것이다. 위그드라실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영혼을 가진 생명체를 집어삼키는 포식자다. 세계 하나를 끝장내버릴 수 있는 생물병기지.”

“너무 놀라운 얘기를 들어서 그런데, 나한테 좀 수다스러운 마도서가 한 권 있거든? 녀석한테 확인을 좀 해봐도 되겠어?”

“문제 없다.”

설마 했는데 단탈리온도 교도관의 말을 입증해주었다.

- 그렇습니다. 푸르가토리움에서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세계수 ‘위그드라실’은 그녀가 있던 세계에서 전쟁의 신이 남긴 반신반수(半神半樹)입니다.

“반은 신이고 반은 나무라고?”

-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의 신에게 패배한 전쟁의 신이 장차 세계를 파멸할 힘을 가진 무기를 고안했고, 그것의 결과물이 이 위그드라실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위그드라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성한 물푸레나무다. 오딘, 토르, 로키 등 현재도 인기가 높은 신화적 영웅들이 활개 치는 무대 중 하나다.

당연히 내가 테스트했던 게임들 중에서도 위그드라실이 배경으로 나온 게임들이 많았다.

아스가르드, 미드가르드, 요툰헤임 등 아홉 개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거대한 나무…… 잠깐, 아홉 개?

- 맞습니다. 아홉 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나무라는 개념은 다양한 우주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영혼의 진화에도 유사계보가 존재하니까요. 아홉 층으로 이뤄진 푸르가토리움의 세계수도 이런 공통점을 가졌기에 용사님에게 ‘위그드라실’이라고 번역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에도 말씀을 드렸다시피 용사님이 알고 계신 고유명사와 같거나 닮았다 해서 그 본질 또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합니다.

[단탈리온이 당신의 MP를 550만큼 가져갑니다.]

마도서를 덮었다.

교도관의 말이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마력을 낭비하는 건 아까우니까.

교도관은 차분한 태도로 나를 기다려주었다.

“이 세계수가 생물병기라는 건 이제 알겠어. 하지만 식물이 어떻게 전쟁에서 무기로 사용된다는 거지?”

“슈바인 스트링거, 내가 교도관들의 투표에서 그대의 등반을 막고 싶어했던 것은 알겠지.”

“암. 그것도 궁금한 참이었어.”

“그대는 르팔타커스 시온에 이어 두 번째 수왕 후보로 교도관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대단한 죄수다. 1층에서 7층까지 파죽지세로 등반을 하고 그 과정에서 무려 두 명의 교도관을 죽이거나 타천시켰지.”

전혀 칭찬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다음에 나올 말이 진짜 본론이라는 느낌 때문에.

“나는 그렇게 위험한 죄수가 이 7층 천공섬에 도달하면 가까스로 내가 지탱해온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반대표를 던졌던 거야.”

“균형이 무너진다는 말의 의미는 뭐지? 더 자세히 설명해 줘.”

거대한 용의 머리가 살짝 아래로 턱짓을 했다.

그 정도의 움직임만으로도 산맥이 꿈틀대는 걸 목격하는 기분이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그대처럼 위험한 죄수의 영혼을 먹어치워 복사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캉이를 제외한 모두가 흠칫 놀라며 자신이 밟고 서 있는 세계수의 가지를 노려보았다.

“영혼을 흡수해서 복사를 한다고?”

“이 천공섬에 깔린 운해는 위그드라실이 빨아들이는 수액(樹液)으로 이뤄져 있다. 이 층에서 죽은 시체는 운해에 던져지며 세계수는 그 안에서 영혼의 유전자를 복제하지. 그렇게 복제된 ‘존재’는 죽여도 다시 되살아난다. 세계수의 수액에 그 영혼의 정보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으니까. 세계수의 중심부로 멀어질수록 지성을 잃고 약해지긴 하나 전장에 끊임없이 내보낼 수 있는 병사가 되는 것이지.”

“설마…….”

“푸르가토리움의 죄수들은 세계수가 그렇게 복제한 존재를 ‘그림자’라고 부른다. 슈바인 스트링거, 그대에겐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익숙하고 말고.

1층 화룡도에서 날 죽일 뻔했던 마그마 엘리게이터.

2층 삼월초원에서 정기적으로 출몰하는 네 마리의 사신수.

6층 만골사막에서 뿌리를 통해 뛰쳐나오는 환수들.

제르비어스는 밍밍이와 함께 마그마 엘리게이터를 꾸준히 사냥해왔다.

천마신교의 간부들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퇴치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다.

골제의 군단은 아예 뿌리 근처에 진지를 세워 환수들의 그림자를 때려잡는 요새를 건설하기까지 했다.

‘그림자는 죽여도 계속 살아난다.’

‘사망하는 죄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난다.’

이대로 까마득한 세월이 흐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푸르가토리움의 아홉 층 전체가 강력한 환수들의 그림자로 뒤덮이게 된다.

“위그드라실이 내가 지배하는 7층에 처음 입소했을 때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도관들 또한 마찬가지였지. 엄격히 분리돼 있는 각 층의 경계를 돌파할 수 있는 죄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그러다가 그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

“환수종의 먹이사슬 중 최상층에 속한 용이 세계수의 운해에 빨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화룡 이그니스.”

나와 이멜타스의 눈빛이 서로 교차되었다.

이그니스는 그가 내게 해준 이야기에 등장하는 용의 이름이었다. 본래 용왕이 아끼는 수하였으나 광룡 메르킨이 세뇌시키는 바람에 군주로부터 척살 당했던 비운의 용.

“마침 그대들 중에는 1층 출신이 둘이나 있군. 1층 화룡도는 본래 마그마로 둘러싸인 섬이 아니라 인간형 죄수들이 생존하기 적합한 평야로 이뤄진 섬이었다. 이름도 화룡도가 아닌 무풍도였지.”

“화룡 이그니스의 그림자가 1층에 내려왔던 거군.”

“그렇다. 화룡의 입에서 내뿜어지는 브레스가 마그마를 이루었고 당시 죄수의 7할 이상이 사망하고 말았지.”

이상하긴 했다.

화룡도에는 용이 살지 않는데도 이름엔 화룡이 붙어 있다. 그렇다고 지형이 용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화룡에게 멸망할 뻔한 섬.

그것이 화룡도의 이름에 숨겨진 진실이었다.

“결국 새로운 교도관인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이 사태를 진압했다. 문제는 그 사건 이후로 7층을 향한 다른 교도관들의 항의가 빗발쳤다는 것이지. 최강종인 용이 다른 층에 현신했을 때 벌어지는 일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영겁에 똬리를 튼 용은 스스로 고룡의 모습을 한 화신체가 되어 위그드라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신적 존재의 권능을 사용해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용’의 영혼만큼은 흡수할 수 없도록 제약을 걸었다.

“이후로 용은 세계수에 접근할 수 없다. 세계수 또한 용이 죽는다 하더라도 용을 거둬들일 수 없고. 그래서 7층 천공섬에 거주하는 죄수의 9할이 용으로 이뤄진 것이다.”

용과 세계수의 상호불가침.

어느 쪽도 상대를 해칠 수 없는 것이다.

“이제야 몇 개의 의문이 풀리는군.”

7층 천공섬에 처음 도달했을 때 이멜타스는 용왕의 추격을 피해 세계수로 도망치라고 했다. 용이 접근할 수 없는 안전지대이기 때문에.

얼핏 용의 외양을 한 환룡 이멜타스는 사실 이무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세계수와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번에 소화하기 힘든 사실들을 연거푸 듣고 나니 어지러울 정도였다.

“화룡도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내가 입소하고 층장이 되기 한참 전에 벌어진 사건인 모양이지.”

화룡도의 유래를 듣게 된 제르비어스도,

“삼월초원에서 혼자서 청룡을 쓰러트린 것이 내 성인식이었어. 그런데 그게 이미 죽은 환수의 복제품에 불과했다니…….”

자신도 자각 못한 사이 위그드라실의 첨병을 쓰러트렸던 아스티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캉이가 대뜸 손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거야? 엄마는 구미호니까 용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죽은 거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캉이가 설마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의 죽음’이란 가능성 또한 태연하게 확인하려 들고 있다.

정작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할 용기가 아직 없었는데 말이다.

“이름 없는 꼬마여.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신생아 시절의 너를 지켜본 것이 바로 나다. 태어나자마자 3층 대수림으로 내려갔기에 기억하지 못할 뿐.”

교도관의 눈에선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과연 영겁을 관조하는 신적 존재에 비하면 캉이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짐승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구미호 소년은 죄가 없이 감옥에 갇힌 불쌍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캉이를 대수림으로 내려보냈던 것은 단순히 호이란과의 계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연민의 작용 때문이었을까.

“네 어미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녀가 가진 최후의 꼬리를 여기 있는 이무기에게 건네주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없지.”

이멜타스가 풀썩 주저앉았다.

호이란이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만 믿고 수백 년을 버텨온 이무기가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었다.

반면 정작 캉이는 여전히 확인할 것이 있다는 듯 교도관을 재촉했다.

“죽었으면 죽은 거고,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거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건 뭐야? 배배 꼬지 말고 대답해.”

순간 영겁에 똬리를 튼 용이 꼬리를 들어 올려 캉이를 짓이겨버리진 않을까 겁이 날 정도였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었다고 볼 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지.”

용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물론 어조와 달리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호이란은 살아 있는 상태로 세계수에 집어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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