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206화 (206/300)

#206. 최후의 꼬리 (7)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삼식 살신참(殺神斬)]

아스티나는 지금껏 이 기술을 여러 번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러나 이 순간 과거의 경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야구장의 단골 관중이 직접 홈플레이트에 앉아 투수의 강속구를 받게 되는 형국이었다.

살신참은 정면으로 파쇄하기 극도로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마검 디아볼릭에 덧씌워진 순도 높은 검기는 물론이거니와 공간을 찢어발기는 무극파천공의 묘리와 검의 궤적을 비트는 중력 마법의 정수가 한데 담겨 있었다.

채애애앵!

‘하지만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티나는 정면에서 그것을 받아냈다. 청룡패웅검의 손잡이에 부착된 월장석이 이 무식한 힘겨루기를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해골에는 얼굴 근육이 없었기에 슈바인의 현재 심경은 알 길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차리라’거나 ‘눈을 뜨라’는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대결 도중에 설득을 시도한다는 것은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지금의 아스티나와 친구들에겐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 어떤 적을 상대할 때보다 진지했다.

우지끈!

아스티나와 슈바인의 압력을 지탱하던 세계수의 가지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발 디딜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나 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동시에 점멸한 둘은 각기 다른 가지에 안착했다.

“크윽.”

가지 위에 무릎을 꿇은 아스티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패도적인 검기를 완전히 상쇄하지 못했다. 방금 전의 충돌이 가져온 여파가 오른팔에 둔중한 통증을 선사하고 있었다.

순간 검은 망토가 아스티나의 눈앞에 질풍처럼 내려앉았다.

“내가 선봉을 맡겠다, 아스티나.”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눈빛을 한 폭렬마왕 제르비어스.

“상성이 좋지 않아. 너와 슈바인은 그동안 대련도 많이 했고 기술 체계도 비슷하지.”

소프트웨어의 버전이 차이나지 않는다면 결국엔 하드웨어의 내구도 싸움이다.

그런 면에서 아스티나는 용사의 육체를 가진 슈바인에게 물리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제르비어스가 오메가 위프에 회전하는 마기를 가동시키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 이 채찍을 얻고 나서 슈바인과 제대로 붙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빈틈을 만들 수 있을 거다.”

마왕의 뿔에서 솟아오르는 보라색 마기가 순간 주변의 공기를 흐트러트렸다.

[마왕군 폭렬마법]

[4급 오의 오메가 플레어(Omega Flare)]

쿠아아아아앙!

드래곤 브레스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자랑하며 보라색 기둥이 슈바인과 충돌했다.

아니, 충돌했다는 것은 제르비어스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곧바로 녀석이 워핑으로 폭파 지점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직감했다.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점멸 마법. 그러나 마왕에게는 마나스트림을 감지할 수 있는 뿔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슈바인이 가진 마력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졌으므로 전장에서 그 존재감을 놓친다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거기냐!”

오메가 위프가 나뭇가지에서 뛰어오르는 뱀처럼 아무것도 없는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워핑을 마치고 날아간 슈바인의 옆구리에 오메가 위프가 휘감겼다.

채찍의 매듭이 갈비뼈를 단단히 파고들었다. 풀어내기 무척 까다로운 구속.

슈바인의 뼈만 남은 왼손이 오메가 위프를 붙잡은 채 잡아당겼다.

콰드드득.

마왕의 전완근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제르비어스의 입장에선 미쳐 날뛰는 거인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놓아줄 수 없었다.

슈바인의 후위를 노리고 날아드는 아스티나의 마법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움직일 수 없는 표적이라면 마법사에겐 더할 나위 없는 표적이다.

[마도제국학파 중력 마법]

[그래비티 봄]

무려 열다섯 개의 중력 폭발구가 슈바인 주변을 둘러쌌다.

처음으로 슈바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스티나의 마력 회로는 이렇게까지 크지 않을 텐데. 메르킨이 이런 상황을 준비했다고?”

미세한 균열.

세계가 가짜라고 철썩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에 일어난 작은 파도.

아스티나는 그것을 더욱 키워보기로 했다.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자 오메가 위프에 붙잡힌 슈바인 스트링거는 그래비티 봄의 연격을 그대로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쿠콰쾅! 쾅! 쾅!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가해져오는 타격에 휘청이던 슈바인은 기나긴 폭격을 견디어내고는 멀쩡히 고개를 들었다.

“이번 건 정말 어지러웠어.”

아스티나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이번 공격은 용의 비늘을 가진 이멜타스조차도 피해 없이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슈바인에게서 전해지는 마력의 크기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어째서?

그 답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이멜타스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지금 슈바인 스트링거의 육체에는 흑마법이 걸려 있다. 일격에 숨통을 끊을 정도의 파괴력이 아니면 전혀 대미지를 줄 수 없어. 그러니 용왕의 고문도 전혀 통하지 않았을 터.”

그것은 이멜타스가 이 싸움에 끼어들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용의 화력까지 더해져서 이 등반죄수를 소멸시키기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니까.

다음 순간 슈바인은 디아볼릭을 휘둘러 오메가 위프를 내려쳤다. 채찍을 끊어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단단한 경도에 뒷받침되어 유연하기까지 한 오메가 위프의 탄성을 끊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마기를 통해 제르비어스에게 충격이 전달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

채찍을 끊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는지 슈바인은 곧 디아볼릭을 역소환한 다음 파격적인 수를 내보였다.

“뭘하려는 거야?”

딸칵.

해골 병사가 보인 행동은 놀랍게도 자신의 머리를 몸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어디론가 힘껏 던지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 발아래 강력한 지뢰를 터트렸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일식 축공탄(縮空彈)]

머리를 잃은 해골의 몸뚱아리가 수백 개의 뼛조각으로 비산했다.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는 덤벼들려던 자세 그대로 돌이 되어 굳고 말았다.

설마 친구들이 진심으로 덤벼오는 이 순간을 메르킨의 환상이라고 믿어 자살함으로써 벗어나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의 슈바인에게 돌아갈 ‘현실’ 같은 것은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가 진짜 현실이다.

“끝난 게 아니다. 똑바로 봐라!”

이멜타스의 벼락같은 외침과 동시에 그 일이 일어났다.

[사자교령술(死者交靈術) 네크로맨시]

[연골봉합 Lv. 5]

멀리 날아간 슈바인의 머리를 중심으로 박살 났던 뼛조각들이 날아와 달라붙었다.

다시 멀쩡해진 슈바인이 서슬 퍼런 기세를 내뿜으며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빨리 끝내자. 난 이제 이 싸움에 지겨움 말고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거든.”

세 명의 공방전이 다시 한 번 시작되었다.

아스티나가 공중에서 슈바인과 충돌하면 제르비어스가 그것을 보조하는 식이었다.

아직까지 싸움에 참가하지 않은 캉이는 가지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못하겠어.”

머리를 움켜잡으며 괴로워하는 캉이를 이멜타스는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단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가 나서야 한다. 이중에서 가장 무섭게 성장한 것은 아스티나도 제르비어스도 아니야. 바로 너다.”

“하, 하지만 그러다가 진짜로 슈바인 형아가 죽어버리면 어떡해?”

“친구의 상실이 두려운 것이냐.”

“친구가 아니야. 우린…… 가족이야.”

가족이라는 말이 이멜타스의 마음을 깊숙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서야 한다고 용은 경고했다.

“캉이야, 용들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게 뭔데?”

“바로 후회라는 것이다. 만물의 제왕인 용조차도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야. 방금 전 저 마족이 들려준 동화를 떠올려라. 그 지우개 공주는 왕의 기억에서 왕비를 지운 일로 평생을 후회로 몸부림쳤을 것이다.”

이멜타스의 손길이 캉이의 축 처진 꼬리를 가리켰다.

“너도 그럴 셈이냐? 지금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먼 훗날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괴롭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말이다.”

캉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자 소년의 솟아오른 두 개의 귀 사이에 앉아 있던 토니아가 다정스럽게 속삭였다.

“해보자, 캉이야. 네가 폭주할 것 같으면 옆에서 요정술로 진정시켜줄게. 지금 나선다면 제압할 수 있어.”

“응…… 해볼게.”

이멜타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구미호의 변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녀와라. 여우의 발톱으로 네 친구를 되찾아 와.”

푸하아아아앗!

늠름한 구미호로 변신한 캉이가 앞발을 웅크린 다음 멋지게 도약했다.

캉이가 내쏜 여우트림에 맞아 슈바인의 공세가 흔들렸다.

꼬리를 회전시켜 비행하는 구미호의 운신 또한 못 알아볼 정도로 유려해졌다.

“캉이야.”

“오래 끌고 싶지 않아, 누나. 내가 뭘 하면 되지?”

구미호의 위풍당당한 그 모습은 마치 2층 대수림을 공포로 물들여놓았던 일식 아래의 포악한 짐승을 떠올리게 했다.

제르비어스는 그때 슈바인을 도와 가까스로 캉이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의 회상이 마왕의 뇌리에 번쩍이는 영감을 가져다주었다.

“먹힐 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다들 들어줘.”

작전을 떠올리고 지시하는 것은 언제나 대장인 슈바인의 몫이었기에 제르비어스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어색했으나 망설이고 있을 틈이 없었다.

“실패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작전을 들은 셋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달아올랐다.

상대는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 무자비한 해골 병사였다.

슈바인이 검기를 흩뿌리며 뭉쳐 있는 셋을 향해 돌격해왔다.

“간다!”

구미호를 혼자 놔둔 채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가 몸을 빼내었다.

여우의 붉은 동공이 한 번 번쩍인 순간 해골 병사는 아홉 마리의 구미호에게 둘러싸여야 했다.

그가 멈칫하는 사이 가장 가까이 있던 구미호가 여우트림을 내쏘았다.

콰아아아아아!

기가 막힌 시간차를 두고 또 다른 여우트림이 슈바인을 집어삼킬 듯이 덮쳤다.

곡예에 가까운 비행으로 그것을 피해내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캉이가 영점을 맞춰가고 있었다.

결국 광선포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슈바인이 곧장 본체를 향해 날아왔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완벽한 분신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캉이의 정수리에 숨어 있던 토니아가 비명을 질렀다.

“나 때문이야.”

구미호는 완벽한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어도, 페어리 퀸에게 그런 재주는 없다.

슈바인은 이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도 토니아의 미약한 존재감을 읽어내고 본체의 위치를 파악해낸 것이다.

캉이가 앞발을 들어 디아볼릭을 멈춰 세웠다.

구미호의 거체가 뒤로 밀릴 만큼 패도적인 일격이었다.

지금껏 자신과 놀아준 형의 장난스러운 몸짓이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살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점을 노리는 두 명의 사냥꾼이 있었다.

“어딜!”

공들여 만들어낸 거대한 마법진이 해골 병사의 머리에 그림자를 드리워 냈다.

[마도제국학파 중력 마법]

[그래비티 트랩(Gravity Trap)]

일행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8클래스 마법사의 비기가 발동되면서 슈바인이 디아볼릭과 함께 덜컥 붙잡혔다.

단순히 머리 위에서 짓누르는 중력과는 달랐다.

여덟 방위에서 묵직한 압박을 가하는 완벽한 구속 기술.

발동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자신이 있었다.

머리를 뽑아 탈출한다는 사자교령술조차 시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제르비어스가 캉이의 등 뒤에서 날아와 옴짝달싹 못 하는 슈바인 앞에 섰다.

마왕은 맨손이었다.

오메가 위프는 줄어든 채 허리춤에 달려 있었다.

지금부터 그가 시도할 기술에 채찍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닐 거다, 용사야. 우리가 네게 할 잔소리가 아주 많이 쌓여 있거든.”

마왕의 오른손이 해골 병사의 경추를 움켜잡았다.

이제는 까마득히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첫 만남의 순간.

마그마의 바다에서 마주쳤던 두 사내.

그때도 제르비어스는 이 용사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었다.

“오랜만에 그때로 되돌아가 볼까.”

지우개 공주를 구원했던 것은 결코 잊지 않았던 이름 하나였다.

제르비어스는 이 용사가 가진 진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우스꽝스러운 어감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그 세 글자.

그것이 마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깨어나라, 박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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