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99화 (199/300)

#199. 용의 본질 (3)

그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독특한 표현이었다.

“질투?”

“용은 세계의 독존자다. 성체가 되어 온전한 힘을 갖추게 되면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게 되지. 살아가는 법을 알려줄 스승도, 의지가 되어줄 동반자도 용에겐 생존의 필수 요소가 아니다.”

마법에 관한 지식도,

진리에 대한 탐구도 용은 저절로 익힐 수 있다.

뛰어난 지성과 불멸의 육체가 자연스레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왕은 필멸자를 향한 용의 질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너희들을 질투한다. 약하고 보잘것없어 세대를 이어 지식을 전수하고, 문명을 만들어 야생에 대항하고, 사랑과 번식을 통해 필멸의 굴레를 극복하는 너희 무지렁이들을 질투한다.”

무수한 용들의 설화에 나오는 것은 각종 금은보화.

어째서 용은 명검과 황금을 그토록 자신의 레어에 쌓아두는가.

“우리는 타자를 위해 아무것도 베풀지 못해. 그래서 너희가 만들어낸 보물을 힘으로 강탈함으로써 그것을 채우려 한다.”

하지만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질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감옥에서 붙잡혀 들어오면서 나는 깨달았다. 질투야말로 용의 본질이라는 것을. 바로 그렇기에 나는 네가 가진 기원검을 탐내는 것이다.”

질투하기에 빼앗는다.

빼앗아도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기나긴 수명 동안 족쇄처럼 비늘 속을 파고 든다.

그것이 용왕이 말하는 용의 진짜 숙명이었다.

“너는 내게서 기원검을 빼앗으려 하지.”

수단이 목적을 대체하는 그 개념이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다른 여섯 개의 층과 달리 이번 층에서만 층장의 열쇠가 양도될 수 없는지 말이다.

이 용은 죽음이 닥쳐온 상황이어도 양도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네게서 층장의 열쇠를 빼앗을 거다.”

“어디 그렇게 될 수 있나 지켜보자고.”

그 후 잠시 동안 용왕과 나의 대화는 뚝 끊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날갯짓 소리만이 들리더니 뇌룡 간다르바가 레어의 지붕 위에 내려섰다.

그의 등에서 깡마른 사내가 뛰어내렸다.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한 광룡 메르킨.

서슬 퍼렇게 퀭한 눈동자가 용왕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용왕을 다시 뵙습니다.”

“이야기는 들었겠지, 메르킨? 이번에 혁혁한 공을 세우면 유폐령을 해제시켜 주마.”

“성은이 망극합니다.”

“입바른 소리는 거기까지 하도록. 네가 할 일을 해라.”

용왕이 앉은 용린병의 신체가 뒤로 스르륵 밀려났다.

그렇게 자연스레 생겨난 공간에 메르킨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진땀이 나야 할 상황이건만 아쉽게도 해골 상태라서 땀을 흘릴 구멍이 없었다.

메르킨이 나를 내려다보면서 용왕에게 물었다.

“제가 이 해골에게 무엇을 하면 됩니까?”

“그 등반죄수를 죽이지 않은 상태로 기원검 네메시스의 파편을 내놓게 만들어야 한다.”

“……이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듯 보입니다만.”

“아공간 주머니에서 귀중한 물건들을 넣고 꺼내는 걸 할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의 의지로 복종할 수 있도록 잘 달래야 할 거다.”

메르킨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그거 재밌겠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유희입니다.”

두 눈동자는 전혀 웃지 않으면서 양쪽 입술 끝이 귀까지 올라가는 몰골이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 감옥에서 여러 미친놈들을 봐 왔지만 이 자식은 광기의 레벨이 다르다.’

메르킨이 허리춤에서 기다란 로프 하나를 꺼내었다.

그 로프 양쪽 끝에는 동그란 흡착판이 달려 있었는데, 녀석은 그것을 자신의 정수리에 올려놓았다.

“……그게 뭐야?”

“마인드 스포일러(Mind Spoiler). 가장 뛰어난 방어기제를 가진 용의 정신 방벽마저 무너뜨려 버리는 기계지.”

메르킨이 반대편 흡착판을 내게 들이밀며 음흉하게 웃었다.

“이걸 사용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술자의 정신이 용의 발톱에 짓이겨진 넝마처럼 망가지게 된다. 그래도 괜찮은가?”

“당연히 안 괜찮지. 그러니까 좀 치워주면 고맙겠는데.”

“스스로 기원검을 내놓을 기회를 주마. 마인드 스포일러가 네 머리에 닿는 순간부터는 나도 멈출 수가 없거든. 어떠냐?”

아이들이 갖고 노는 우스꽝스러운 장난감 청진기처럼 생긴 흡착판이 독사의 아가리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죽어도 너희에겐 못 내어준다.”

나름 비장한 말투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 메르킨은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다행이군. 네가 쉽게 굴복하지 않는 종류의 죄수라서. 지레 겁을 먹고 덜컥 용왕께 물건을 바칠까 봐 잠시 긴장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너처럼 강하게 버티는 녀석들의 마음을 함락시키는 순간이거든.”

흡착판이 내 두개골의 이마 부분에 닿기 직전 메르킨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왜 그렇게 턱을 덜그럭대는 거지?”

“웃고 있는 거다.”

나는 양팔을 제압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내 눈에 보이는 메시지창이 ‘그 내용’을 출력해주기만을.

[이 시간부로 친구들을 용사의 곁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다. 몇 분만 늦었어도 진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했을 거야.

“뭐가 그리 즐겁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뭔지도 알려줄까? 바로 의기양양한 적의 코앞에서 시간을 끌다가 반격 따윈 꿈도 못 꾸는 그 뒤통수에 준비한 폭탄을 터트리는 순간이다.”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직감한 용왕 게브라둠이 다급하게 외쳤다.

“메르킨! 뭔가 이상하다. 장난은 그만두고 어서…….”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빨랐다.

“친구 전부를 소환하겠다!”

발악하듯 입 밖으로 꺼낸 외침이 레어 안에서 메아리치자 내 전후좌우 네 방위의 허공에서 그리운 얼굴들이 뛰쳐나왔다.

*

[친구 제르비어스 폰타인을 소환합니다.]

무시무시한 뿔을 가진 마왕에,

[친구 아스티나 류를 소환합니다.]

은발을 휘날리는 마검사,

[친구 캉이를 소환합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 소년,

[친구 토니아를 소환합니다.]

그리고 든든한 페어리 퀸까지.

용왕의 드래곤 레어에 모인 세 용 중에서 그 누구도 이토록 은밀한 궁전에 적들이 무더기로 뛰쳐나오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용들이 침입자를 격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 찰나의 시점보다,

내 친구들이 적을 감지하고 행동에 옮기는 순간이 더 빠르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제르비어스가 내 소망을 이뤄주었다.

[마왕군 폭렬마법]

[4급 오의 오메가 플레어(Omega Flare)]

내 옆에 내려서자마자 이곳의 적대적인 공기를 읽어내고 최고의 공격마법을 터트린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오메가 플레어에 적중한 메르킨이 벽을 뚫고 날아갔다.

그사이 아스티나는 나를 풀어주려 다가왔다가,

전혀 대비되지 않은 상황에 질겁했다.

24시간 만에 직면하는 동료의 얼굴이 해골바가지라는 상황은 좀처럼 버티기 어려운 충격이다.

“꺄아아악! 슈바인 맞아? 너 얼굴이 왜 그래?”

“다이어트를 많이 해서 그래.”

분기탱천한 용왕이 제자리에서 박차 올랐다.

그녀의 오른손이 순식간에 검은 비늘로 뒤덮이더니 날카로운 발톱을 내게 내리쳤다.

“네 이노옴!”

나는 지금껏 스킬을 봉인 당해온 설움을 풀겠다는 심정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이식 무영보(無影步)]

공간을 찢어내고 늘어난 내 몸이 용왕의 참격을 가볍게 흘려내며 사슬로부터 손쉽게 벗어났다.

그러고는 인벤토리에서 가장 든든한 무기인 용사전용검 아론다이트를 해방시켰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사식 비천성검(飛天聖劍)]

피이이이이잉!

폭산하듯 날뛰는 아론다이트의 궤적에 용왕 게브라둠이 멀찍이 내동댕이쳐졌다.

물론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해 있다 하더라도 워낙에 단단한 내구력을 가졌기에 물리적으로 밀려났을 뿐, 다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용왕이여! 괜찮으십니까?”

간다르바가 용왕 옆에 내려서며 외쳤다.

곧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그의 육체에 벼락이 내리치듯 번쩍거렸다. 그러고는 본래의 거대한 뇌룡으로 화했다.

완전히 용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 대미지를 줘야 한다.

“캉이야! 저 자식 날려버려!”

아홉 개의 꼬리를 바짝 세우고 있는 캉이에게 외치자마자 여우화를 마친 구미호 소년이 위턱과 아래턱을 쩍하고 벌렸다.

[여우트림]

강력한 붉은 광선포가 터져 나와 용체화 중인 간다르바의 가슴팍을 직격했다.

용왕 앞을 막아서며 버티던 간다르바의 얼굴이 여우트림의 화력에 찡그려졌다.

그러다가 전략을 바꿨는지 일단 머리만 용의 형태로 바꾼 간다르바가 전격의 브레스로 여우트림을 밀어냈다.

쿠아아아아아앙!

드래곤 브레스와 여우트림이 정면충돌하면서 레어 전체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당연히 출력에서는 캉이가 밀려나고 있었기에 나는 다급히 페어리 퀸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토니아! 어서!”

토니아가 내 견갑골에 내려앉자마자 나 역시 캉이의 스킬을 빌려와 여우트림을 내뱉었다.

[친구 캉이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여우트림 Lv. 7]

[친구 토니아의 요정술 효과로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두 줄기의 붉은 광선포가 간다르바의 브레스를 뒤로 밀려나게 만들었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지금껏 나를 구속하고 있던 두 줄의 사슬이 잔해와 함께 추락했다.

“지금이야! 달아나자!”

내가 몸을 빼자 친구들은 망설이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아스티나는 리버스 그래비티로 나를 따라붙었고, 제르비어스는 변신한 캉이의 등에 냉큼 올라탔다.

용왕의 레어를 벗어난 우리는 널찍한 들판으로 나와 빠르게 비행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슈바인?”

“형아, 정말 형아 맞아? 왜 해골이 됐어?”

“저 무시무시한 놈들은 다 뭐냐, 용사 놈아. 설명을 해라, 설명을!”

당황한 친구들의 재촉이 쏟아졌지만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앙!

용체화를 마친 간다르바가 용왕의 레어를 완전히 무너뜨리며 날아오른 것이다.

“일단은 달아나야 돼! 여기는 하늘에 떠 있는 섬이야. 방향은 내가 알려줄 테니 거기서 기다려.”

내가 비행을 멈춘 채 뒤돌아서자, 한참을 날아가던 아스티나가 되돌아왔다.

“너 혼자 저 황금색 용과 싸우겠다고?”

“그래. 놈들은 내가 가진 기원검을 노리고 있어. 두 무리로 갈라져서 도망치면 분명히 나를 쫓아올 거야.”

순간이동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용들로부터 추격당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진다.

여기서 내가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친구 곁으로 몸을 빼내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그때, 입술을 질끈 깨문 아스티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기원검의 파편을 내게 줘. 파천황의 유지가 담긴 검이잖아. 그걸 내가 갖고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할 거야.”

“오호, 좋은 생각이야.”

아스티나가 기원검을 갖고 있다면 우릴 쫓아오는 용들의 허를 찌르는 한 수가 될 수 있다.

나는 인벤토리를 연 다음 기원검의 파편이 있는 칸에 손을 뻗었다.

마음속으로 만지겠다는 생각만 하면 기원검은 곧 아공간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내 손에 쥐어질 것이다.

그런데,

등골을 섬짓하게 하는 어떤 위화감이 내 손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슈바인? 왜 망설이고 있는 거야? 서둘러.”

어쩐지 다급하게 나를 재촉하는 아스티나의 표정이 낯설게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캉이의 등에 올라탄 제르비어스도, 내 어깨 위에서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 있는 토니아도 모두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스티나, 너는 내가 르팔타커스와 교도관장의 도움에 의지하는 걸 늘 경계해야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너는 파천황의 ‘유지’ 같은 표현을 쓴 적이 없어. 지금껏 단 한 번도.”

아스티나의 얼굴이 밀랍처럼 굳었다.

나는 오른손을 휘둘러 인벤토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아스티나의 표정에 미세한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주머니를 닫았어?”

“인벤토리는 내 눈에만 보여, 아스티나. 어떻게 내가 인벤토리를 해제한 걸 알았지?”

불길한 침묵이 우리 둘 사이를 헤집었다.

등 뒤가 간지러웠다. 이상하게도 우리를 당장 불태우겠다는 듯 날아와야 할 간다르바가 제자리에서 날갯짓하며 노려보기만 하고 있다.

아스티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다. 공부가 부족했군. 두 번째부턴 다를 거다, 등반죄수.”

목소리에 노이즈가 끼더니,

나중에는 청량한 아스티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굵직한 사내의 음성으로 바뀌었다.

“재밌구나, 재밌어. 일단 한 번 죽어라.”

썩두욱!

아스티나의 청룡패웅검이 내 몸을 수직으로 일도양단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훨씬 더 무서운 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친구들을 소환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마인드 스포일러가 만들어낸 착각이었던 것이다.

암전된 시야를 채우며 들려오는 목소리는 광룡 메르킨의 그것이었다.

“어디 언제까지 그걸 내놓지 않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후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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