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불사자의 사막 (4)
‘인생, 정말 모르는 일이야.’
사막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지구에 있었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호주나 모로코에서 사막 깊숙한 곳까지 낙타를 타고 들어가는 사막투어에 대해서 들었던 적이 있다.
낙타의 등에 기대서 광해에 찌들지 않은 투명한 밤하늘이 여행자를 압도한다던 사막 여행. 이국의 모래 위에서 은하수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낭만.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왔던 내게는 지극히 머나먼 일이었다.
그것은 건강한 육체를 가졌을 뿐 아니라,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부유한 자들의 유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 내가 지금 사막을 여행하고 있다.
물론 지금 나를 태워주고 있는 것은 낙타가 아니라 연금술로 만들어진 금속 소녀지만.
“떨림이 감지됩니다, 관객님. 이 폭염에 설마 추우신 건가요?”
“아니. 웃은 거야.”
레나스는 그녀의 무장연금술을 발휘해 호버보드 형태로 변환된 상태였다.
납작해진 허리와 다리가 발판이 되어 내 다리를 지탱하고 있으며 좌우로 나란히 뻗은 양팔이 킥보드의 T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즉, 나는 레나스의 팔을 붙잡은 채 호버보드를 운전하고 있다.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현재 관객님의 생명력은 계속 깎여나가고 있고 동료분들과도 떨어져 고립된 상황이 아니던가요? 즐거워할 요소가 없습니다.”
“인간은 즐거울 때만 웃는 건 아니야. 어이가 없어서 짓는 헛웃음이라는 것도 있어.”
지구에 있었을 때는 죽는 순간까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사막 여행.
그게 봉마연옥 푸르가토리움이라는 곳에서 용사의 몸에 빙의되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상황에서 아이러니를 느꼈던 것이다.
“여전히 모르겠군요. 인간들의 감정이란 제 연산 능력으로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참고할 데이터가 단순히 부족한 걸 수도 있어, 레나스. 네가 더 많은 인간을 만나게 되면 언젠가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럴까요? 감정의 근원은 ‘욕망’이라 들었습니다. 제가 감정이라는 걸 이해하고 그것을 품게 되면…… 결국 영혼을 갖고 싶어질까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내가 있던 세계엔 너처럼 뛰어난 수준의 로봇…… 그러니까 오토마타는 없었거든. 분명한 건 네 주인인 연금술사 사니릭투스는 그렇게 되길 꿈꾸고 있었어.”
인간과의 대화였다면 이 타이밍에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겠지만 레나스는 그렇지 않았다. 바로 다음 질문을 던져왔다.
“주인님이 사망하신 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제 사고회로에 이전엔 없었던 부하가 일어났죠. 아직 완전히 해석해내진 못했지만요. 그 현상에 대해 아직 라벨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네가 느낀 최초의 감정일지도 몰라. 감정이 아니라 해도 그 조상쯤은 될 수도 있고.”
“그러면 관객님이 방금 지었다던 ‘헛웃음’의 기반에는 어떤 감정이 깔려 있으신 건가요? 거기엔 라벨이 있습니까.”
라벨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겠군. 내가 있던 지구에서도 사막은 있었어. 긴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혹은 전쟁을 위해 사막을 건넜지. 하지만 그런 시대는 오래전에 끝나버렸고 사막은 이제 평화로운 관광지가 되었어.”
“모래벌레를 길들이는 방법을 찾아내신 건가요?”
“아니. 애초에 지구의 사막엔 그런 괴물이 없거든. 무서운 건 방울뱀 정도일까? 전갈을 비교해 봐도 아까 우리가 마주쳤던 괴물들보다 훨씬 작아. 커 봤자 내 손바닥 정도?”
“그렇다면 관광지가 될 수 있었겠군요. 제가 있던 만철도시처럼.”
“그래. 어쨌든 내게 있어 사막은 직접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었어. 하지만 여동생 상희는 나와 달리 두 다리가 멀쩡했고 공부도 잘했으니 언젠가는 사막을 밟을 일도 생겼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두고 온 동생에 대한 슬픈 감정이 몽글몽글 피어난 거야.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가만히 놔두면 눈덩이처럼 불어나거든? 그래서 그러고 싶지 않을 땐 헛웃음을 지어.”
“슬픔을 누르기 위해 웃음을 짓는 거군요. 감정 반응으로서의 얼굴 근육 형성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조정 능력을 달성하려 했던 시도로 해석되는데, 맞나요?”
“……나름 괜찮은 해석이라 생각해.”
“알겠습니다. 이 순간을 저장해두고 계속 곱씹어 보겠습니다.”
레나스와 내가 가는 경로의 양옆으로 V자의 모래 파도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함께 달리던 해골 병사들은 모두 우리와 일정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때 군단장이라고 자신을 밝혔던 앙굴렘이 해골마를 붙여왔다.
“잘 따라붙으시는군. 최대 속도에 가깝게 달리고 있는데도 말이오.”
“아마 레나스가 마음먹으면 최소 두 배는 더 빨리 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여러분과 보폭을 맞추는 거죠.”
“그렇소이까. 대단한 준마를 보유하셨군.”
“친구라고 해주세요. 레나스와 저는 주종관계가 아니거든요.”
“아, 실례했소이다.”
앙굴렘은 투구를 슬쩍 들어 올려 사과의 표시를 했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죠?”
“군단의 주둔지인 만골전은 다섯 번째 뿌리의 하단부에 자리 잡고 있소. 골제 바르한께서 등반죄수인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
그의 설명에서 나는 기묘한 단어를 찾아냈다.
“뿌리? 당신들은 저 거대한 검은 기둥들을 그렇게 부릅니까?”
“그렇소이다.”
“그건 조금 이상하군요. 보통 뿌리는 지면을 향해 내리뻗은 부분을 가리키잖아요? 뿌리가 아니라 가지라고 해야 맞지 않나요?”
앙굴렘은 턱을 달그락 부딪히고는 고삐를 느슨하게 붙잡았다.
나는 그 동작에서 ‘애석한 한숨’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마도 뼈밖에 남지 않은 존재의 제스처를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건 화룡도 7번 방의 스켈레톤 비르카 리케우톤 덕분일 거다.
“놀라지 말고 들으시오, 슈바인 스트링거. 우리가 저 기둥을 뿌리라고 부르는 건 무슨 암호나 비유적인 명칭이 아니라오. 저것이 진짜 뿌리이기 때문이지. 그것도 세계수의 뿌리라오.”
나는 입을 조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라면…… 위그드라실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소이다. 아래층에서 올라오셨을 텐데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위그드라실이라면 내게도 익숙한 단어다.
뇌신 지드가 내게 선물로 주었던 아이템의 명칭이 ‘위그드라실의 이파리’였다.
나는 방문했던 층에 면회를 신청할 수 있는 그 아이템 덕분에 화룡도에서 푸르가토늄을 빌려올 수 있었다.
“세계수는 푸르가토리움의 7층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 어째서 그 뿌리가 6층까지 뻗어 있는 거죠?”
“그것이 이 모든 악몽의 원인이라오.”
*
앙굴렘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아주 오래전 멀쩡한 6층의 하늘 위에서 여덟 개의 검은 기둥이 내려왔다. 천천히 뻗어내리던 그것은 머지않아 땅 위에 닿게 되었고, 지상의 모든 생명력을 탐욕스럽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누구의 농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소이다. 골제께서도 다만 짐작만 하고 계실 뿐. 강력한 후보는 7층장 혹은 7층의 교도관일 것이라고.”
6층의 죄수들은 곧 심각한 재앙에 부딪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은 신들의 설화 속에나 등장하는 초월적인 식물. 그러나 그 본질은 나무다.
그리고 나무는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흡수한다.
“세계수의 뿌리가 빨아들이는 생명력의 양은 막대했소. 아무리 강력한 괴력과 뛰어난 마법을 익힌 죄수라 하더라도 그것에 저항할 수는 없었지.”
야금야금 생명력을 빨리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세계수의 본체는 한 층 위인 7층에 있다. 아래 층의 죄수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강탈당할 수밖에 없다. 6층 전체가 ‘세계수의 숙주’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6층의 죄수들은 최대한 멀리 세계수로부터 달아나 연명하려 했으나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 결국 뿌리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소. 당시의 층장이던 골제께서 불사자의 축복법을 만드시기 전까지는.”
골제 바르한.
“그 불사자의 축복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골제께서는 리치(Lich)요. 들어보신 적 있소?”
리치라면 스켈레톤, 뱀파이어, 데스나이트 등의 언데드 종족 중에서도 단연 높은 위치에 속한 사령술사를 말한다.
“스스로 불사의 존재가 된 마법사 아닙니까?”
“그렇소이다. 해골로 이루어진 모든 존재의 정점에 서 계신 분이지. 그분께서 불사의 비법을 다른 죄수들에게도 나누어준 것이오. 층의 구원자이자 우리 모두를 살린 황제이시지.”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들 중에서 리치는 언제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보스 몬스터였다.
물리 데미지에 완전 면역인 것은 기본에다 각종 상위 마법들을 마구 흩뿌린다. 축복을 받은 전설급 무기로 때려잡거나 리치의 약점인 라이프 베슬을 깨트려야만 이길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푸르가토리움에서 만난 죄수들은 게임 속 존재가 아니었다.
무공을 쓰는 엘프도 있고, 늑대인간보다 강한 스컹크도 존재했다.
‘이름은 그 본질을 말해주지 않아.’
기본적으로 푸르가토리움에는 통역의 마법이 걸려 있다.
대기실에서 차카 도기노브가 지껄이던 외침을 내가 전혀 못 알아들었을 때를 떠올려 보자. 다른 차원에서 붙잡혀온 죄수들이 서로 다른 고유명사를 쓰는 건 당연하다.
그것을 이 감옥이 내 지식에 가장 걸맞은 단어로 ‘통역’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구의 북구 신화에 나오는 위그드라실이 이 감옥에도 존재하는 거겠지.’
내가 갖고 있는 개념에 빗대 통역해주는 거라면 더더욱 선입견에 매달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감옥의 세계수가 북구 신화 속 세계수가 아니듯, 리치 또한 게임 속에서 내가 격파했던 리치와 단순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플레이어가 레벨업하기 편하라고 만들어둔 약점인 라이프 베슬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오?”
“몇 가지 의문점이 있어서 그럽니다.”
“말씀하시오. 아직 만골전까지 닿기엔 시간이 있으니.”
나는 사양하지 않고 앙굴렘에게 물었다.
“부끄럽지만 저는 마법의 소양이 있습니다.”
“그렇소이까? 마력 회로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데?”
엘프라서일까. 앙굴렘은 내 마력 회로가 현재 봉인되어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다.
아스티나 류가 같은 층에 없기에 단전과 마력 회로에 잠금장치가 걸린 거나 비슷한 상황.
나는 그것을 술술 말해줄 순 없었으므로 대충 둘러대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거든요. 어쨌든 그래서 마법의 발동 조건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습니다. 타인을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주는 마법이라면 보통 강력한 술식이 아닐 겁니다. 그 축복으로 인해 골제가 다른 죄수들에게 가져가는 건 뭡니까? 형량이나 영혼을 거래하나요?”
“없소. 아무것도 없소이다.”
“대가를 가져가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앙굴렘의 어깨가 들썩였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등반죄수들과 대화를 나누면 꼭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하더군. 아래층에서 층장이란 존재는 대체 어떤 짓들을 벌이고 있는 거요.”
“어, 그거야…….”
나는 제대로 된 대꾸를 하기 어려웠다.
바로 직전에 만난 층장이자 다른 죄수들을 흡수하고 핍박하던 크로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병사요. 총사령관이 병사에게 식량과 무기를 내어주면서 영혼의 소유권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웃기는 일 아니겠소? 사령관이 병사에게 바라는 건 단 하나뿐이겠지.”
“그게 뭡니까?”
“전쟁에서의 승리.”
거대한 기둥이 이제 시야 전체를 가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자 기둥 밑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모래 위에 세워진 거석 문명을 보는 듯했다.
저곳이 만골전.
골제 바르한과 그의 병사들이 거하는 주둔지다.
무시무시한 성벽은 물론 공성탑과 투석기까지 즐비했다. 게다가 곳곳에 꽂혀 있는 깃발과 그 아래 무수한 숫자의 막사들이 그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만전의 태세다.
“대체 어떤 전쟁을 말하는 겁니까?”
“말해 무엇하겠소.”
앙굴렘은 고삐를 강렬하게 한 차례 내리치고는 한쪽 손을 꺼내 들었다. 뾰족한 해골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뿌리가 내려오고 있는 하늘.
“7층. 골제와 우리는 7층과 전쟁을 벌이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