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불사자의 사막 (3)
모래벌레의 대가리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유조 플랜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생물체의 외양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거대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녀석의 압도적인 크기가 설명될 수 있으려나.
“뭘 먹으면 저렇게 커질 수 있는 거야?”
3층 대수림에서 마주친 교도관 ‘증식하는 밀림의 뱀’보다도 더한 박력이 느껴졌다. 몸통의 둘레만 하더라도 그 화신체를 훨씬 웃돌고 있다.
녀석의 몸통은 청자처럼 푸른 빛을 띠고 있었고 군데군데 검은 얼룩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회백색 사막과 대비되는 명징한 피부가 암시하는 사실은 절망적이었다. 파충류로서 보호색이 필요 없다는 것은 생태계의 왕에게만 허락되는 지위.
이 모래벌레가 사막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증명이었다.
‘전갈의 체액에 반응한 거야.’
우리가 쓰러트린 전갈의 사체는 이미 모래와 함께 저 벌레의 식도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전갈과 충분히 떨어져 있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저 꼴이 났을 거라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했다.
하지만 저런 덩치를 가진 녀석이 고작 전갈 몇 마리에 성이 찰 리 없다.
즈거어어억.
굳게 다물어져 있던 모래벌레의 입이 네 부분으로 나뉘며 감춰져 있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 숫자는 수백 개에 달했다.
녀석이 몸을 뒤트는 것만으로 발생하는 돌풍이 나를 몇 걸음 물러서게 만들었다.
“관객님, 어떻게 할까요?”
고저가 없는 레나스의 질문이 나를 패닉으로부터 건져주었다. 압도적인 크기 앞에서 굳어버리기 마련인 생물 특유의 본성이 오토마타에겐 없다.
덕분에 다행히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뭘 어떻게 해. 전속력으로 달아난다.”
평소였다면 ‘모래벌레를 퇴치하라’던가 ‘모래벌레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으라’는 퀘스트가 주어질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교도관장은 아무런 퀘스트도 주질 않고 있었다.
이 모래벌레가 토벌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재해라는 뜻이었다.
샤아아아악!
나와 레나스가 물러날 태세를 취하자 모래벌레의 이빨이 차르르륵 소리를 내며 떨었다.
키이이이잉!
“커허억.”
순간 관자놀이에 총알이 박힌 것처럼 아찔한 충격과 함께 한쪽 무릎을 모래 위에 꿇어야 했다. 내공이 실린 음파 공격에 비견할 만한 불의의 습격.
옆에 있는 레나스마저 청각 기관에 이상이 왔는지 머리를 흔드는 모습이었다.
‘이빨이 아니었어. 먹잇감이 달아날 수 없도록 발달한 기관이었던 거야.’
생각해 보면 저 정도 괴물이 뭔가를 삼킬 때 그것을 분해해야 할 필요 따윈 없었을 거다. 편리한 소화를 위한 이빨 따위 거추장스러운 셈.
꽃잎처럼 펼쳐진 아가리가 우리를 덮치기 위해 파고들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달아나, 레나스!”
점멸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가까스로 유용한 스킬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친구 올쿠레 켄타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천년명마의 질주 Lv. 3]
모든 지형에서 준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켄타우로스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의 후임자가 되면서 나는 화룡도 친구들의 스킬을 어느 때고 빌려올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모래벌레의 아가리로부터 몸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몇십 미터 떨어진 사막의 지면이 부르르 떨리더니 모래벌레의 대가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도 녀석이 저렇게 집어삼킨 모래를 따로 배출하는 배설기관이 있는 건지, 있다면 항문과 비슷한 기관일 텐데 그게 땅 끝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궁금증이 들었다.
모래의 파도를 가르며 날아온 레나스가 속도를 멈추지 않고 내게 달라붙었다.
오토마타의 매끈한 두 다리가 내 허리를 휘감았다.
“지면에선 운신의 폭이 제약됩니다, 관객님. 날아서 탈출하는 게 상책입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레나스의 날개 부스터가 불을 뿜자 우리는 순식간에 모래벌레로부터 멀어졌다.
녀석의 고개는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휘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전해졌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질 않는다. 그건 몇 번의 사선을 넘으면서 이 육체에 새겨진 일종의 육감 같은 거였다.
후우우우우욱!
모래벌레의 벌려진 입이 일순간에 다물어지더니 쭈욱 늘어났다.
그러고는 정확히 우리가 있는 방향의 대기를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레나스의 비행 속도가 급감하더니 결국 모래벌레의 주둥이에 잡아 당겨지기에 이르렀다.
날개 부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에 내 눈썹이 그을릴 것처럼 출력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인력에서 빠져나오는 건 무리였다.
파슈우우우웅!
내 오른쪽 어깨 위에서 레나스의 초전자포가 내쏘아졌다. 하지만 모래벌레의 표피는 엄청나게 단단한 모양인지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겠어, 레나스?”
“저 생물체의 위장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신체의 강도는 어지간한 염산에도 버틸 수 있으나 관객님이 걱정되는군요.”
“젠장.”
대화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란 이렇게나 골치 아픈 존재다.
내가 맛이 없으므로 먹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는 의사전달이 되지 않으니 관계 재설정이 요원한 거 아닌가.
‘화룡도에서 폭탄을 하나라도 남겨 좋을 걸 그랬어.’
콰아아아아앙!
그때, 모래벌레의 몸통 한쪽에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며 녀석이 비틀거렸다. 녀석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우린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누군가 저 벌레에 포격을 가했어.”
모래벌레가 일으키는 먼지 바람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단단한 고체가 서로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
녹슨 갑옷을 입은 수십 명의 병사가 뭔가에 탑승한 채 사막을 질주하고 있었다.
‘말? 아니면 낙타?’
그들이 올라탄 존재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다리가 워낙 빠르게 모래 위를 밟고 있었고 색깔 또한 하얬기 때문이다.
“몸을 피하시오!”
선두에 선 병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의심의 여지 없이 나를 향해 던지는 조언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병사들 전원이 손에 든 육중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석궁과 비슷해 보이는 투척 무기. 그곳에서 수십 개의 갈고리가 파공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모래벌레의 주둥이 곳곳에 갈고리가 박혔다. 갈고리에는 두툼한 쇠사슬이 연결돼 있었다.
녀석은 거슬린다는 듯이 몸을 비틀댔으나 병사들은 이미 이 상황이 익숙한 듯이 약속된 움직임을 보였다.
좌우로 산개한 병사들이 갈고리를 끌어당기자 대롱 형태로 늘어나 있던 모래벌레의 주둥이가 일전의 꽃잎 모양으로 펼쳐졌다.
내게 소리를 쳤던 선두의 병사가 탑승 생물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달리는 생물 위에서 두 다리로 일어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면 대단한 묘기였다.
그가 훌쩍 뛰어오르더니 무언가를 모래벌레의 아가리를 향해 집어 던졌고,
퍼어어어어엉!
그것은 착탄 직전에 터지며 보라색 가루를 공기 중에 퍼트렸다.
구우우우웅.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레나스의 초전자포에도 일말의 미동이 없던 모래벌레가 그 가루에 질색하며 요동친 것이다.
철컥! 철컥!
정확한 타이밍에 석궁으로부터 분리된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모래벌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지면 아래로 파고 들어갔고, 곧 기다란 구릉을 만들어내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등반죄수 님, 다친 곳은 없으시오?”
모래벌레를 내쫓은 병사가 나와 레나스에게 다가왔다.
“괜찮습니다. 그쪽이 아니었다면 저 무지막지한 놈의 한 끼 식사가 됐겠지요.”
나는 레나스에게서 떨어져나와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오. 저 괴물은 사막의 재앙신이오. 저 재앙신에게 집어 삼켜진 죄수는 절대로 살아나올 수가 없지.”
“뭘 집어던진 건지 물어봐도 됩니까?”
“재앙신이 꺼려 하는 식물에서 채취한 방충제요. 저 냄새가 사라지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리니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오.”
갑옷 병사의 등 뒤로 그가 탑승했던 생물이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그 생물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해골마.
안장 밑이 전부 뼈로만 이루어진 말이 달그락거리며 주인에게 머리를 부볐다.
“환영하오, 등반죄수여. 나는 위대하신 골제 휘하의 3군단장 앙굴렘이라 합니다.”
그가 내게 인사하며 투구를 벗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기감을 펼칠 수 없게 된 나는 그렇다 쳐도 레나스는 대형 전갈은 물론 모래벌레가 접근할 때도 미리 경고해왔었다.
그런데 이 병사들의 무리가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도 내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
무시한 게 아니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초면에 이런 말씀을 드려 뭣하지만 혹시…….”
내 조심스런 질문에 앙굴렘은 호탕하게 웃었다.
“스켈레톤 아니냐고 물어보시려는 거요? 크하하하.”
투구를 벗은 그의 얼굴엔 머리카락도, 피부도, 눈알도 없었다. 그저 깨끗하게까지 느껴지는 백골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날 포함해서 군단병들 중에 언데드 종족은 없소이다.”
쇠사슬을 주워온 병사들이 앙굴렘의 뒤에 나란히 도열했다. 군단장과 달리 그들은 투구나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기에 모습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해골군단이었다.
손목에는 푸르가토늄으로 만들어진 수갑이 채워져 있다. 의심의 여지 없는 6층의 죄수들.
하지만 내 용사의 심안에 비치는 종족명이 내게 혼란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름: 앙굴렘]
[종족: 엘프]
[HP: ****]
[MP: 3,908]
여지껏 봐온 정보창들 중에서 가장 괴이쩍었다.
종족이 스켈레톤이나 데스나이트가 아닌 엘프라니. 그리고 생명력을 보여주는 HP 스탯의 표기도 이상했다.
****표시는 감옥에 들어온 이래 처음 보는 수치.
측정불가로 높은 체력을 가진 죄수들의 경우엔 언제나 ????처럼 물음표로 표시가 되었다.
그렇다면 저 표시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후천적으로…… 뼈만 남게 되신 겁니까?”
“말하자면 그렇소이다. 나뿐만 아니라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로.”
“저주 같은 걸로 보이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앙굴렘은 앙상한 뼈다귀 손가락으로 아래턱을 긁었다.
“거기에 답해주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되겠으나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건 당신에게 곤란할 거요.”
문제는 그에게 있지 않았다. 내게 있었다.
“아래층에서 올라온 등반죄수라면 조금씩 체력이 깎여나가고 있을 거요.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미뤄봤을 때 감탄이 나올 만큼 균형이 잘 잡혀 있소. 하나 이 만골사막은 죽음의 기운이 지배하는 곳. 아무런 대책도 없이 헤매다간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할 거요.”
나는 앙굴렘이 흘리듯 말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HP가 계속 1씩 깎여나가는 상태 이상의 저주. 그는 분명히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대책 없이 헤매면 안 된다는 말은…… 혹시 여러분을 따라가면 대책이 생긴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요?”
앙굴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6층의 층장이자 군단을 이끌고 계신 골제 바르한께서 당신을 저주로부터 구해줄 거요. 오직 그분만이 가능한 축복으로.”
“축복이요?”
바르한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느슨해져 있던 병사들의 자세가 꼿꼿해졌다.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해골들임에도 완전한 복종과 경의가 동작에 담겨 있었다.
앙굴렘이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불사자의 축복을 말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