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망각된 약속, 약속된 망각 (3)
[용사는 사망했습니다.]
푸르가토리움의 수갑을 찬 이래 내가 절대 시도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들의 목록이 있다면,
자살은 그 목록의 최상단에 적혀 있었을 것이다.
2층 삼월초원에서 MP의 최대치를 늘이려 제르비어스의 저주를 스스로 받아들였을 때 몇 번이나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저도 죽음으로의 도피만큼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나는 탈옥을 해야만 했고,
이 감옥을 벗어나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으니까.
[용사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추출됩니다.]
붕 떠오르는 느낌이 전신을 지배한다.
말로만 들었던 유체이탈이 이런 감각일까? 솜털에 파고드는 추위와 귓가를 어지럽히던 굉음이 삽시간에 내게서 멀어졌다.
금발에 푸른 눈.
신들린 조각가가 빚어놓은 것 같은 육체가 허물어진다. 일격에 심장이 꿰뚫렸고 요란한 혈흔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것은 나였다.
정확히는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의 육체.
푸르가토리움의 다섯 층을 오르면서 내 영혼을 지켜준 소중한 몸이었다.
[윤회의 고리가 용사의 영혼을 끌어당깁니다.]
레나스가 허물어지는 내 등을 받치는 것이 보였다. 영혼 폭발이 일대를 휘감았으나 물리적인 여파는 아무것도 없었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정확한 타이밍을 제대로 맞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생을 마친 크로톤의 세포들이 빠른 속도로 고사하는 중이었다.
그 모든 풍경들이 마치 미니어처를 보듯 작아진다.
내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어디론가 잡아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머나먼 우주 저편에서 숭고한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생을 향한 집착과 미련들이 탈피를 마친 허물처럼 내 존재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계속 끌려가면 자아마저도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위기감은 없었다. 그저, 순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 뿐.
‘윤회의 고리’로 되돌아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지식은 내게 없었다. 마도서 단탈리온에게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현상을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알 것 같다.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과정이다. 형태는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깨달음을 거듭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뿐이다.
이렇게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머지 않아 우주가 탄생한 이유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최초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영혼은 협곡의 천공을 향해 계속 나아가다가 덜컥 멈춰서게 되었다.
[용사가 가진 부활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희미해져가던 자아가 불현듯 또렷해졌다.
‘이런. 내가 지금 어디에 끌려가고 있었던 거야?’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았다. 하마터면 정말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뻔했다.
언젠가는 저 강을 진짜로 건너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안 된다.
“큰일날 뻔했다. 코인이 제 때 발동했으니 망정이지.”
교도관장이 퀘스트의 보상으로 내주었던 1코인.
오래된 횡스크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사망하면 다시 코인을 넣을 때까지 퉁퉁 부은 얼굴로 울고 있던 캐릭터가 생각났다.
동전이 들어가면 캐릭터는 다시 멀끔해져선 묶여 있던 사슬을 풀고 스테이지로 복귀한다.
‘자아, 복귀할 차례다.’
내 영혼은 다시 육체로 회귀하며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육체의 재동기화에 2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예상 못 한 메시지와 함께 기묘한 감각이 나를 덮쳤다.
꽁꽁 싸매져 있던 매듭 하나가 툭 하고 풀리듯이.
[용사의 영혼이 특수한 독립 상태에 놓였습니다.]
[일시적으로 아카식 레코드의 접속 권한을 얻었습니다.]
[용사가 망각하고 있던 약속 하나를 떠올립니다.]
*
“개떡 같네, 내 팔자.”
낯익은 고시원의 단칸방.
검은 머리의 깡마른 청년이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푹 쉬고 있다.
노란 장판 위엔 접힌 휠체어, 책상 위엔 아무렇게나 던져진 핸드폰.
‘이건…… 나잖아?’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가 아닌 인간 박상식.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과 두 다리를 잃어버린 채 알파 테스터로 살았던 스물 여섯의 청년이 내 눈앞에 있었다.
“으아아아! 단 하루라도 좋으니 진짜 용사로 살아보고 싶다!”
과거의 나 자신이 이불을 퍽퍽 걷어차더니 이렇게 외쳤다.
바로 코 앞에 둥둥 떠 있는 내 영혼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로.
아카식 레코드에 일시적으로 접촉했다고 했나.
그렇다면 이건 환상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과거를 비춰주는 것일 테다.
‘내가 푸르가토리움에 잡혀 왔던 바로 그날이다.’
딩고소프트란 게임 회사에서 준비 중이던 신작 [블러디 크라운]의 테스트를 마치고 돌아온 시점의 나.
게임 속에선 무적의 용사이지만 현실에선 비루하기 짝이 없는 처지에 울컥해 지쳐 잠들었던 그날.
곧 인생 최악의 재앙이 자신을 덮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드는 과거의 내가 보였다.
이 녀석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 고시원이 아닐 것이다.
지구도 아니다.
흉악한 죄수들이 붙잡혀 오는 푸르가토리움이라는 괴상망측한 감옥이다.
“일어나, 박상식!”
소용없단 걸 알면서도 누워 있는 내 아구창에 주먹을 날렸다.
“용사고 뭐고 지금 잠들면 넌 끝장이라고, 이 새끼야!”
하지만 내 주먹은 그대로 얼굴과 침대를 통과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곧 발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게 꿈이라면 과거의 나를 두들겨 패서 깨울 수 있었겠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건 꿈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다. 범죄현장의 CCTV를 돌려보는 것과 같다. 지켜볼 순 있으나 일어났던 일에 개입하지는 못하는.
부르륵.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여동생에게 온 문자였다.
[울상희: 오빠, 무슨 생각할지 내가 뻔히 알겠거든? 약속 지켜. 졸업식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안 오면…….]
잠금화면에 뜬 문구는 거기까지였다. 그 뒤의 내용은 지금의 내 상태론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저 폰을 두 번 다시 만지지 못 한다.
그리고 끝내 상희의 졸업식에도 가지 못 한다.
‘망각하고 있던 약속을 보여준다고 했잖아. 그게 설마 이걸까?’
하지만 난 상희의 졸업식에 가겠다는 약속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망각된 약속’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얼마나 기다렸을까.
완전히 잠에 곯아떨어진 내 머리 위로 한 번 들었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대의 절실함이 우주의 저편에 닿았습니다.]
[당신은 푸르가토리움의 소환 대상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고시원의 벽까지 물러섰다.
워낙에 좁은 방이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각은 정확히 12:00, 자정이다.
‘소환빔이 내려오지 않을까?’
푸르가토리움에서 만난 모든 죄수들은 대부분 하늘에서 내려온 소환빔을 맞고 붙잡혀 왔다고 증언했다. 뚠 아티르나 나처럼 불운하게도 잠든 사이에 끌려온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하얀빛 따위는 없었다.
대신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존재가 맞은편 벽을 뚫고 등장했다.
‘뭐야, 쟤는?’
국적을 알아볼 수 없는 하늘하늘한 백의.
푸른색 머리카락을 발목까지 늘어뜨린 아름다운 미소녀가 고시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자세히 보니 맨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고 조금 떠 있었다.
유령인가?
그때 소녀의 입이 스르륵 열렸다.
“때가 되었어요, 박상식. 약속을 이행할 차례입니다.”
나는 신음이 새어나오는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처음 보는 외양이었으나 그 목소리는 지극히 익숙한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퀘스트를 주는 목소리.
화신체인 곰인형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던 그것.
소녀의 정체는 푸르가토리움의 교도관장이었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침대의 이불 위에서 반투명한 영체가 쑤욱 하고 올라온 것이다.
박상식의 영혼은 소녀를 마주보고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루만, 하루만 더 이 몸에 머무를 순 없을까?”
“그건 곤란합니다. 당신이 운명의 여신에게 허락받은 날짜는 분명 오늘이었으니까요. 여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날까지. 그것이 언약이었습니다.”
“세상엔 유도리라는 게 있잖아. 나는 당연히 졸업식까지는 보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조건을 건 거라고.”
“그렇다면 더 분명한 단어를 써야 했겠지요. 안타깝지만 이 육체의 유효기간은 끝났습니다.”
저 둘이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걸까.
언약은 뭐고, 유효기간은 또 뭐야?
일단 과거의 내 영혼은 왜 저 소녀를 알아보는 것처럼 구는 거지?
내 기억엔 분명 지금의 이 대화가 남아 있지 않은데.
과거의 내 영혼이 풀죽은 모습으로 물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제가 관리하고 있는 차원감옥 푸르가토리움. 그곳으로 가게 될 겁니다.”
“감옥?”
“당신이 일전에 제게 반항한 것 때문에 운명이 어그러졌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제가 안배해 둔 자리의 권한은 오래 전에 소멸했어요.”
“그러면?”
“당신은 죄수로 입소하게 될 겁니다. 최대한 제가 뒤에서 애써보겠으나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아무것도 장담드릴 수가 없네요.”
“나는 지금 이 대화를 기억할 수 있나?”
백의의 소녀는 무감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오토마타인 레나스의 무표정과 닮은 듯했으나 본질적으로 달랐다.
감정이 없기에 표정을 지을 수 없는 레나스와 달리 이 소녀는 감정을 초월했기에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영혼 상태로 겪은 일은 육체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필멸자들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일전의 만남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마중 역시 아카식 레코드에만 기록될 거예요.”
소녀가 과거의 내 영혼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럼 소환을 집행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납득해버린 한 영혼의 어깨가 내게 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운명의 여신을 모독한 죄인이여, 교도관장의 의무이자 권한으로 당신을 푸르가토리움으로 데려갑니다.”
*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용사의 영혼이 다시 육체와 접합했습니다.]
눈을 뜨니 나를 반긴 것은 고저가 없는 레나스의 평온한 목소리였다.
“살아나셨군요, 관객님.”
레나스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곁을 지키며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왼쪽 가슴을 내려다보니 파괴된 심장과 피부는 원상복구되어 있었다.
계획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것.
그리고 부활에 성공했다는 것에 기뻐해야 했겠지만 지금 날 뒤덮고 있는 감정은 혼란과 황망함뿐이었다.
“어디 있어?”
“무엇을 찾으시는 겁니까.”
“그 빌어먹을 곰인형 새끼, 어딨냐고!”
그러자 오른쪽 무릎 옆에서 곰인형이 쪼르르 걸어나왔다.
“영혼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 그것을 보고 오셨군요.”
“그건 분명히 일어났던 일인 거지?”
“당신은 약속을 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망각을 약속드렸고요. 하지만 지금 이 시간부로 그 금제가 깨져버렸군요.”
녀석은 이런 흐름을 모두 예상했다는 듯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 꼴을 보아하니 더욱 울화통이 터졌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소환빔을 맞고 이 감옥에 붙잡혀 왔다고 생각했어.”
“아니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짓지도 않은 죄명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믿어 왔지.”
“그 또한 사실이 아니지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우주 최악의 죄수라고.”
지금 내 손엔 프라이팬 대신 디아볼릭이 들려 있다. 여기는 층간 구역도 아니다.
이 마검을 휘둘러 교도관장의 목을 베면 조금이라도 녀석의 본체에 아픔이라는 걸 전달시킬 수 있을까.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풀렸다.
한 번 시도해봤지 않나. 녀석에게 물리적인 협박을 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진심을 담아 애원했다.
“말해줘, 교도관장. 나는…… 왜 여기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