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영혼 폭발 (5)
5층의 교도관 가늠자를 속이는 저울의 본격적인 반박이 이어졌다.
“영혼 폭발이라는 것은 여기 모은 다른 교도관들이 가진 유구한 역사에 비춰보아도 극히 드문 현상이다. 즉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할 순 없었다는 거지. 슈바인 스트링거, 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건 감옥 안에 화재가 일어난 게 아니라 느닷없이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감옥 전체를 초토화시킨 셈이다.”
오호라.
능력 밖의 문제였다, 관할을 넘어선 재앙이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는 건가.
문제는 사기꾼 저울의 전략이 다른 교도관들에게는 제법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저 녀석의 비수 같은 논리가 향하는 과녁은 내가 아니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다른 교도관들.
“다들 신중하게 투표해야 할 거다. 우리의 권능은 감옥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 힘. 그 목적이라 함은 율법을 만들어서 죄수들에게 시련을 주는 것이지. 하지만 권한을 벗어난 불확정 요소까지 모두 책임지고 형벌을 받아야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나?”
교도관장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나는 똥줄이 탔다.
마치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변호사의 알량한 혀처럼 사기꾼 저울이 다른 교도관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이번 투표로 인해 교도관의 직함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당신들의 층에는 절대로 이런 ‘운석’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어떤 전례를 만들 것인지는 너희들 손에 달려 있어. 나는 스스로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올가미를 굳이 한 올 한 올 엮을 필요는 없다고 말해두고 싶군.”
요약하자면 녀석은 지금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다.
신격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통념은 여기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같은 필멸자들을 상대로 가해지는 제약. 동급의 교도관들이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라면 얼마든지 기만과 연기를 할 수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다른 교도관들 또한 쉽사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본인은 가늠자를 속이는 저울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소이다. 실제로 크로톤이라는 죄수는 여러 층장들 중에서도 규격을 벗어나는 행패를 많이 벌여온 것이 사실이니까.”
“교도관이 자신이 관리해온 층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는 법이지. 나는 일리가 있다고 보는데.”
“고의였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너무 천착하지 말자고요. 푸르가토리움의 대의는 인과율을 어그러뜨리는 죄수들을 잡아둠으로써 본래 그 죄수가 속해 있던 차원의 안위를 지켜내는 데 있습니다. 불필요한 학대를 죄수에게 가할 권한 또한 교도관에게 주어져선 안 되지 않습니까.”
치열한 갑론을박이 접시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저마다 할 말이 있어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기꾼 저울의 논리에 아직 내가 적당한 반격을 완성하지 못해서 우물쭈물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던 1층 교도관이 나섰다.
화염의 꼬리를 담그는 삵.
“우리 교도관들은 각자의 존재를 은유하는 신명을 갖고 있지요. 안건에 올라온 5층 교도관의 신명은 가늠자를 속이는 저울. 가늠자를 가리는 행위 자체에서 쾌락을 얻지요. 죄수의 숙원을 걸고 저울에 올린 뒤 한쪽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울어질지 알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에 매료된 자입니다.”
“……그래서?”
짧은 순간의 망설임.
사기꾼 저울은 정곡을 찔려서인지, 아니면 불타는 삵이 왜 여기서 신명의 이야기를 거론하는지 알 수 없어서인지 기세가 줄어든 음색이었다.
“즉, 당신은 한 층 전체의 명운이 저울 위에 올라온 지금의 상황 자체에서 대단한 짜릿함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저는 당신의 교도관 자격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겠습니다. 이 사태가 당신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든, 우연한 재앙이든 이미 한 번 달콤함에 취했으니 재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만약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우린 매번 골치를 썩게 될 테니까요.”
“내가 오늘을 무사히 넘긴다면 이 극단적 순간의 맛에 취해 재현을 꿈꿀 거라는 말인가.”
“요약을 잘해주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 어느 차원의 법정에도 저지른 죄가 아닌 저지를지도 모르는 죄에 형벌을 내리는 경우는 없다. 만약이라는 단어에 과하게 얽매이는 건 소인배의 언사야.”
“그렇지만 여기는 푸르가토리움이지요. 애초에 법정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 단어를 꺼낸 걸 보면 스스로 지나친 행실을 일삼았다는 무의식의 발로 아니겠어요?”
너도 찔리니까 이런 거 아니냐는 말이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지만 불타는 삵은 의외로 든든한 존재였다.
나는 아무리 혀를 놀려도 상대편의 평정심을 뒤흔들지는 못했는데 차분한 존댓말로 얄밉게 궁지로 몰아넣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명백한 살기가 ‘가늠자를 속이는 저울’의 접시에서 흘러나왔다.
“입을 조심하라,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 우리가 만약 같은 층에 있는 죄수였다면 그대는 결코 이렇게 건방지게 굴 수 없었을 터.”
“오호. 방금 ‘만약’이라는 표현을 쓰셨군요. 스스로 소인배라고 인정하는 거라고 봐도 되겠지요?”
휘파람이 불고 싶어질 정도였다.
솔직히 감탄이 나온다.
상대가 꺼낸 말에서 반격거리를 포착해내 그대로 되돌려주는 기술.
나도 이런 도발의 영역에서 나름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건만 이렇게 한 수 배우게 되는군.
“감히 최하층의 교도관 따위가……!”
분을 참지 못했는지 사기꾼 저울이 격을 해방하려 했으나 완벽한 타이밍에 곰인형의 앞발바닥이 그 접시를 내리눌렀다.
“난동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순식간에 찾아온 적막.
교도관장의 위세에 눌린 것인지 다른 교도관들도 녀석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기만 했다.
“이제 각자의 입장은 충분히 들은 것 같군요. 푸르가토리움을 지탱하는 기둥들로서 각자의 판단을 내렸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투표를 시작할까요.”
만약 이 교도관들이 모두 육체를 갖고 있었더라면 이 순간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졌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그러고 있는데 나 혼자만 신격이 아니라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안건은 5층 교도관의 자격을 박탈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입니다.”
일단 저지르고 봤지만 사태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기에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초조하게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표를 던진 것은 내 변호를 맡았던 접시였다.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 박탈에 한 표 던지겠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으니 부연은 필요 없겠지요.”
박탈 1 vs 유지 0.
다음은 3층 교도관인 증식하는 밀림의 뱀.
“나는 유지시켜야 한다에 한 표. 최초의 사례인 만큼 층의 죄수들과 교도관을 동시에 잃는 건 이 감옥에 너무 큰 타격이야. 이 표에 저 등반죄수에 대한 사적인 감정은 개입하지 않았다.”
박탈 1 vs 유지 1.
다음 순서 역시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녀석이었다. 2층 교도관 쟁패를 부르는 나선기둥.
“나 역시 유지에 한 표. 솔직히 말하자면 내 표엔 사적인 감정이 듬뿍 담겨 있다. 저 등반죄수가 계속 층을 올라갈 경우의 리스크를 다들 얕보고 있는 것 같군.”
박탈 1 vs 유지 2.
상황이 뒤집혔다.
이제부터는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상위층 교도관들의 손에 달렸다.
빙설협곡의 다음 위층을 맡고 있는 6층 ‘폐허에서 춤추는 이끼’의 차례였다.
“본인은 다른 교도관의 율법 행사에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소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크로톤이라는 층장은 등반죄수 슈바인 스트링거에게 패배했소. 그것을 인정해야 할 거요. 거꾸로 말해 내가 관리하는 6층에서는 비슷한 일조차 일어나지 않을 테니 나는 겁날 것이 없지. 박탈에 한 표요.”
박탈 2 vs 유지 2.
“7층 교도관으로서 나 영겁에 똬리를 튼 용은 유지에 한 표다. 나는 저 등반죄수가 세계수의 본체가 있는 우리 층에 오면 참혹한 꼴을 당할 거라고 생각한다. 용은 원래 약자를 괴롭히는 일엔 관심이 없지.”
왜 자꾸 내 얘기를 하는 거야?
뭔가 투표의 목적이 변질되고 있는 느낌이잖아.
아니다. ‘가늠자를 속이는 저울’의 처분은 핑계일 뿐, 발안자가 다름 아닌 나였기 때문에 이 교도관들은 이 자리에 모인 걸 수도 있다.
그리고 한때 용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7층의 교도관은 나를 보고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거다.
이렇게 되면 박탈 2 vs 유지 3.
나는 애타는 심정으로 8층 교도관 ‘숭배를 강탈하는 십자가’를 쳐다봤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몸이 있는 8층은 통제 불가능의 상태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 원인은 오래전에 죽은 르팔타커스 시온이 남긴 기원검의 파편들 때문이죠. 전 파천황의 기원검이 완성되는 걸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파국이 일상이 된 제 층이 정리가 될 것 같거든요. 그러니 박탈에 한 표입니다.”
이제 모든 걸 결정지을 단 한 표만 남았다.
푸르가토리움의 최종 층인 9층.
아직 한 번도 그 ‘신명’을 듣지 못한 교도관의 차례였다.
놀랍게도 9층 교도관의 접시에는 아무런 표식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깨끗한 하얀 접시.
게다가 목소리 또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이 아니었다.
“■■■ ■■■■■■ ■■■. ■■■ ■ ■■ ■■■ ■■ ■■.”
뭐지? 어디에 한 표를 던진 거야.
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자 교도관장 곰인형이 통역을 맡아줬다.
“아직 9층의 교도관은 역사상 그 어떤 죄수에게도 신명을 밝힐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슈바인 스트링거, 당신에게는 그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테지요. 그는 결정하기 전에 당신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겠다고 하는군요.”
나에게 질문을?
내 반응과 상관없이 곰인형은 기계적으로 다음 대사를 말했다.
“이 투표를 연 진짜 목적을 듣고 싶다는군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대답 여하에 따라 9층 교도관은 표를 어디에 던질지 결정할 거다.
목적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알고 싶다’가 아니다. 호기심을 풀겠다는 게 아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몸을 사리지 않고 완전히 정직해질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응해줘야지. 나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벌거벗은 마음으로 속내를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물어온다니 솔직하게 대답해주마. 나는 너희 교도관 새끼들이 전부 마음에 안 들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이렇게까지 세게 말할 줄 몰랐는지 눈앞의 접시에 그려진 고양이가 황급하게 꼬리를 치켜드는 게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후진이 아니라 액셀을 밟아야 할 때다.
“물론 나는 죄수에 불과하고 너희는 감옥의 한 층을 맡는 교도관이니 입장이 다르겠지. 하지만 너희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죄수들을 수렁에 빠트려서 기어 올라오는 걸 편하게 앉아 구경하고만 있지.”
이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온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준비한 대본처럼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설명을 해줄까? 너희 중 어떤 녀석은 자신의 율법을 우회하려는 내 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죄 없는 한 여인을 3만 번이나 영겁 회귀하도록 만들었고, 어떤 녀석은 한 구미호의 배 속에 있던 태아를 자기 층으로 납치해 세뇌시켰지. 그뿐이야? 내가 층 배정을 받기 전에 대기실에서 만났던 쥐새끼는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날 소멸시키려 했다니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0층 교도관 ‘나태에 짓눌린 쥐’. 그놈도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빙설협곡에서도 마찬가지야. 타인의 영혼을 먹어치운 건 죄수 크로톤이 벌인 짓이지. 그걸 가능하게 해준 기원검 또한 르팔타커스라는 죄수의 무기였고.”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화난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교도관은 끝까지 관여하지 말았어야 해. 하지만 저 사기꾼 저울은 기상현상에 개입했어. 크로톤의 숨결을 대기에 퍼트려서 눈발에 접촉하는 죄수들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데 힘을 보탰지. 신격을 가진 놈들이 벌인 짓치고는 너무 멋이 없지 않아? 안 그래?”
나를 싫어하는 교도관들뿐 아니라, 내게 우호적인 표를 던진 교도관들마저 분기탱천했다는 느낌이 온다.
“헷. 어쩔 거냐. 너희 이미 투표했잖아. 이제 와서 내 말뽄새가 마음에 안 든다고 번복할 거냐?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개떡같이 멋 없는 행위지.”
반면에 아직 신명을 알지 못하는 9층 교도관은 계속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출사표를 던지기로 했다.
“내 원래 정체는 용사가 아니라 시험관이었다. 인간이 만든 가상세계의 모든 요소들을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직접 뛰어들어 격파하고 돈을 버는 게 내 일이었지. 과거의 전공을 살려서 점수를 주자면…….”
신격을 갖지 않아도 지금의 내 말이 완전한 진심이라는 건 결코 모를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 호흡 한 호흡에 영혼을 토해내고 있으니까.
“시발놈들아, 이 푸르가토리움은 망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