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76화 (176/300)

#176. 증오라는 이름의 수갑 (4)

날개와 더듬이가 있어서일까.

토니아가 이야기해주는 페어리들의 세계는 곤충들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침입자가 둥지 안에 들어서면 병정개미들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다. 개체의 죽음은 큰 의미가 없다. 종족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여왕개미가 알을 낳지만 유충을 직접 돌보지는 않는다. 둥지 전체가 합심하여 돌보게 마련이다.

크로토니아는 일족에서 최초로 그 돌봄에서 낙오된 개체였다. 성체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이 샴쌍둥이 페어리가 감내해야 했던 시선은 싸늘한 냉대와 공포가 섞인 혐오뿐이었다.

“세상을 향한 크로톤의 증오는 같은 몸을 공유하는 나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어.”

종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만 멸종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을 외면했던 장로들의 결정을 비난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샴쌍둥이의 사내아이였던 크로톤은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크로톤의 갈망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지.”

어째서 어른들은 자신들을 이 세계수의 줄기에 처박아 두었을까.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번영해야 하는 구식 생존 방법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의 감정에서 양분을 추출하고 세계수의 보호에 안위를 의탁할 만큼 약하기 때문이다.

“성별을 분화시켜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교환하고 어린 개체가 성장할 때까지 지켜줘야 하므로 성체는 자식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품도록 진화하게 되지. 크로톤에게는 그 모든 세상의 법칙이 증오스러웠던 거야.”

애초에 자손에 의지할 필요 없이 한 개체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유전자를 섞음으로써 질병이나 재난에 대항할 필요 없이 한 개체가 불사의 권능을 가질 만큼 강력하다면.

그 누구도 자신처럼 버림받을 일은 없었을 텐데.

“그래서 세계수는 우리가 세뇌시킨 인간 무리들의 손에 참혹하게 불타 버렸어. 하늘 끝까지 닿아 있는 그 거대한 나무가 소멸하기까지 보름하고도 닷새가 더 넘게 걸렸어.”

환상과 현실을 연결해주는 세계수가 불타버리자 페어리뿐 아니라 다른 강력한 환상종들 또한 새로운 자손을 잉태할 수 없게 되었다.

대륙을 제패하고 있던 인간들은 환상종이 사라진 빈 자리를 파괴와 정복으로 채웠다. 한 돌연변이 페어리의 증오가 멈추지 않는 불길처럼 대륙 전체에 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린 푸르가토리움에 붙잡혀 왔어.”

5층 빙설협곡에서 크로토니아는 원래의 세계에서보다 더욱 혹독한 환경에 내던져졌다는 걸 깨달았다.

일 년 내내 폭설이 쏟아지는 극지방의 설원.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라 할 수 있는 거인들의 무법천지.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푸르가토리움의 특수함이 아니었다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거인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페어리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왜 교도관들은 이런 거인들의 층에 너희를 집어넣었을까? 죄수들은 보통 그 종족에 걸맞은 층에 보내지게 된단 말이야.”

인간과 마인은 화룡도. 반인반수는 대수림. 이런 식으로.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우리가 몸을 피신할 동굴을 찾다가 반짝이는 조각을 발견했을 때야.”

“……기원검의 파편.”

“페어리는 누군가를 홀리는 종족. 그렇기에 알 수 있었어. 누군가가 우리를 그 동굴로 인도했다는 사실을.”

“5층의 교도관 ‘저울 뭐시기’가 너희를 불러들였구나.”

기원검은 그 주인의 갈망을 구현시켜 준다.

숙원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준다.

4층 만철도시의 교도관인 사니릭투스가 푸르가토리움의 무기고에서 레나스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교도관으로서의 권능이 아니라 기원검의 칼자루가 가진 이 힘 덕분이었다.

“기원검은 우리에게 속삭였어. 영원토록 그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다른 죄수의 영혼을 흡수하여 몸집을 키워나갈 수 있고, 흡수한 죄수의 형량마저 끌어안으면서 이 감옥 안에서 영원불멸토록 ‘존재’할 수 있다.

그 누구의 악의에도 무릎 꿇지 않으며,

그 누구의 선의에도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크로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희열이라는 것을 체험했어. 모든 죄수에게 형벌의 장소인 푸르가토리움이 사실 그에게는 낙원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빠졌지.”

하지만 한 가지 장애물이 크로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자신을 막아서지 않았던 육체의 반쪽이 기원검 네메시스의 유혹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감옥에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어. 푸르가토리움은 한 죄수의 죄를 판별할 때 영혼을 기준으로 삼아. 그렇기에 같은 육체를 갖고 태어난 샴쌍둥이라 하더라도 영혼이 다르다면 한 존재만 따로 불러낼 수 있는 힘이 있지.”

“내가 알고 있는 죄수 중에도 그런 케이스가 있지.”

올쿠레 켄타.

수인병단의 기마단장으로서 전쟁터를 누볐던 켄타우로스.

하지만 푸르가토리움은 그의 다리가 되어준 우로스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키메라로 거듭난 그들을 분리시켜 상반신인 켄타족만 데려온 것이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어. 푸르가토리움은 나에게도 죄가 있다고 판결한 거야.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크로톤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어. 불타는 세계수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던 수많은 종족들의 원망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하지만 네게도 이유가 있었겠지. 크로톤을 떠나서는 너도 살 수가 없었으니까.”

“그건 핑계가 되지 않아. 나는…… 크로톤을 말리지 않았어. 어쩌면 내 안에도 일족을 향한 원망이, 그리고 혼자 남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그만큼 강했던 거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육체의 반쪽이 다른 반쪽에게 저항했다.

그 결과는 비극으로 갈무리 되었다.

“크로톤은 나를 버리기로 했어. 기원검의 힘을 얻는 대신에 혼자가 되기로 한 거지.”

토니아의 육체 반쪽이 장치로 대체된 것은 크로톤의 폭력 때문이 아니었다. 기원검이 샴쌍둥이를 분리시켜 버린 후유증이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야.”

크로톤은 약한 죄수들부터 하나하나 흡수해 착실히 덩치를 키워나갔다. 접촉한 죄수에게 반항의 의지를 빼앗아가 버리는 힘이 있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크로톤이 그 숙원대로 강력한 불사의 거인이 되어버리는 동안 토니아는 가까스로 생존해 때를 기다렸다.

크로톤을 죽일 수 있는 용사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그날을.

*

“그러니까 이건 복수이기도 하고, 동시에 속죄이기도 한 거야.”

토니아와 나는 거대한 공동의 입구에 서 있었다. 내 손에 쥔 기원검의 칼자루가 격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앞에 크로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고마워, 슈바인 스트링거. 운명의 정령왕은 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를 더 준다고 하셨지. 네가 나의 마지막 기회였어.”

“계획은 세워뒀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신호하면 너는 친구들에게 순간이동으로 돌아가.”

“너는 어떻게 하려고?”

“남매끼리 미뤄둔 대화를 나눠야겠지.”

토니아는 비장한 표정을 지을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결전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천천히 공동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축구 경기장보다 조금 넓은 크기의 공동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중앙의 공간에 반쪽짜리 페어리가 날갯짓도 없이 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페어리의 등 뒤에는 기원검의 칼자루에 딱 맞는 크기의 조각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토니아, 다시 나를 만나게 되면 둘 중 하나는 죽게 될 거라고 말했지 않나.”

페어리 퀸과 놀랍도록 흡사한 외모. 그리고 정반대로 오른쪽 날개와 어깨가 잘려나간 사내가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크로톤의 말에 토니아는 망설임 없이 받아쳤다.

“네가 다른 존재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 내뱉는 건, 예언의 존재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에 불과해. 정신 차려, 크로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그딴 낡아빠진 훈계인가. 그때 너를 살려준 건 내 마지막 자비였어, 토니아.”

“그 말은 이쪽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물론 그때 널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고통받았어. 이제 그 악연을 그만 끝내자.”

“그 약해빠진 등반죄수 한 명을 호위무사로 대동했다고 감히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무모하기 짝이 없구나.”

남매의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재지 못하고 있던 나는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생각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거인 형태로 있을 때는 로봇에 올라타서 너를 때렸지. 쾌감은 있었지만 타격감은 없었어. 이제 맨손으로 널 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짜릿한걸?”

내 협박에 크로톤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웃었다.

“우습구나, 슈바인 스트링거. 내가 어째서 너희 둘의 침입 사실을 알고서도 여기까지 오도록 내버려 뒀다고 생각해?”

슈수수수수숙!

아무것도 없던 공동의 바닥에서 수백 명의 죄수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솟아올랐다. 한 명 한 명이 강력한 무위를 내뿜는 절대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견적을 낼 필요도 없다.

정면으로 맞붙었다간 뼈도 못 추린다.

하지만 나는 디아볼릭을 꺼내지도 않은 채 덤덤히 토니아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로부터 전달되는 평온함의 감정 밑에 무언가 숨겨둔 계획이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고,

그 믿음은 보답받았다.

“네가 수백 명의 죄수들을 먹어치워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우리가 제 발로 이곳에 기어들어 왔다고 생각해?”

남매여서일까.

똑같은 어순으로 받아치는 것이 제법 매서웠다.

그러자 토니아는 처음으로 내 정수리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그리고 스케이트를 타듯 볼에서 어깨로, 팔꿈치에서 손등으로 미끄러졌다.

그러자 페어리 퀸의 날개에서 거대한 빛이 터져 나왔고, 그것은 한 차례 폭발 이후 기원검의 칼자루에 또렷이 맺혔다.

크로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말도 안 돼! 그걸…… 어떻게?”

녀석의 옆에 있던 기원검의 파편에서 똑같은 크기의 광휘가 터져 나왔다. 크로톤은 전혀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치이이이이이익.

크로톤의 평정심 때문인지 기원검의 파편이 벌인 일인지 몰라도 진시황릉의 병마용처럼 서 있던 죄수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하지만 공동 내부를 채우는 긴장감은 사라지기는커녕 한층 더 농밀해졌다.

쿠오오오오오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거지, 싶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짐의 애병 둘이 만났구나. 기원검은 그 소원을 이뤄주는 만능열쇠 같은 것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크로톤이 발악하듯 외쳤다.

“뭐라는 거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이 건 내 꺼야. 아무도 못 건드린다고!”

허공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파천황 르팔타커스 시온의 것이라는 걸 알 리 없는 크로톤의 불경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장본인은 그걸 듣지 못했는지 전언은 계속 이어졌다.

[기원검은 더 강렬한 열망에 이끌리게 된다. 두 조각이 만났으니 각자의 숙원이 상대의 그것보다 얼마나 무거운지 저울에 올려야 할 것이다.]

어디선가 교도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적어도 내 숙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것은 탈옥.

이 감옥을 빠져나가서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갈망이다.

하지만 그걸 저울에 올렸을 때 저 크로톤의 그것을 이길 수 있을까?

수백 명의 영혼을 흡수해버렸고 그 대가로 영원한 수감의 운명까지 받아들인 저 표독스러운 페어리, 증오라는 이름의 수갑을 스스로에게 채운 광기 어린 죄수의 욕망을?

[이제부터 너희의 ‘기원(祈願)’을 저울에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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