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65화 (165/300)

#165. 천만 마력 (1)

분명 나는 덫에 걸렸다.

교도관이 놓은 그 덫은 아무런 잠금장치도, 함정도 없었으나…… 내가 외면하기 어려운 치즈가 던져져 있었던 것이다.

“당신답지 않게 말수가 없어졌군요. 이해가 어려운가요, 슈바인 스트링거?”

“아니, 전부 이해했어. 그러니까 화룡도의 신세를 지는 대신에 너의 후임자가 되라는 거잖아. 내가 탈옥에 성공할 경우엔 7번 방의 친구들과 자유를 함께 만끽하는 것이고…….”

“실패했을 경우엔 잠자코 저의 족쇄를 당신이 넘겨 받아 영원토록 화룡도를 관리하셔야 한다는 거죠.”

“대체 언제부터 이런 걸 준비했던 거지? 내가 화룡도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려 했던 거야?”

“그랬다면 저는 다른 교도관이 당신을 가로채가는 것을 꼬리나 빨며 지켜봐야 했겠죠. 계획은 당신이 8층의 죄수인 지드에게 위그드라실의 이파리를 선물로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그 타이밍에 화룡도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디멜, 너는 알고 있었던 거지?”

7번 방의 잭 프로스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어두운 눈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녀석의 입에서 손을 떼어내자 디멜이 기다렸다는 듯이 애원했다.

“거절해라, 슈바인. 차라리 스스로 마그마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게 나아. 그렇다면 현세에서의 삶은 끝나겠지만 다른 생명체로 태어날 수 있겠지. 하지만 교도관이 되는 건 네 영혼을 이 감옥에 저당 잡히는 거야.”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이 마그마 볼의 관중에 불과했던 디멜의 귓가에 속삭였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알겠다.

마그마 볼에 참전해 이자나르를 막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화룡도에 돌아와 함정에 걸릴 것이라 언질을 준 거겠지.

실로 교묘한 책략이다.

디멜의 진심을 알게 되면 내가 번뇌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걸 역이용한 전략.

“어때요? 이만하면 나와 계약을 맺을 만한 메리트가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죽지 않고 최종층인 9층까지 오른다는 전제하에 그 순간까지 우리의 목표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너는 내가 9층에서 좌절할 것을 확신하는군?”

“물론이죠. 저는 죄수들의 왕이라 불렸던 수왕 르팔타커스 시온의 여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교도관. 당신도 물론 대단한 죄수며 심지어 파천황의 권능까지 획득했지만 그가 도달하지 못했던 걸 당신이 달성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 그 계약을…….”

“안 돼!”

디멜 무바크가 소리쳤다.

“이 벽창호 자식아!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디멜. 넌 나를 막기 위해서 원치도 않는 층장의 완장을 찬 거잖아. 맞지?”

“네놈의 고집이 얼마나 질긴지는 우리가 제일 잘 아니까.”

자신이 층장이 되어 면회권을 사용해 내려올 나를 돌려세우면 교도관의 후임자가 되는 위험을 원천봉쇄할 수 있을 거라 믿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걸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미련한 자식. 진심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거야?”

“그로서는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로 당신은 힘이 깎여나간 상태로 돌아올 터이고, 거꾸로 디멜은 마그마의 수위를 낮춰준 제 권능 덕분에 본래의 마력을 되찾았으니까요.”

하지만 승부는 났다.

결정타를 먹은 디멜은 내게 덤빌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녀석이 내게 덤비며 악바리처럼 꺼낸 말이 이명처럼 달라붙었다.

‘친구의 어깨에 올라간 짐을 외면하는 게 네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냐?’

내 어깨에 올라갈지 모를 짐을 치우기 위해 스스로 손을 더럽힌 거구나. 그것도 7번 방의 동료들에게조차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을 고립시켜가면서.

얼어붙은 빙궁 안에서 내내 외로웠을 디멜의 시간을 생각하니 거꾸로 내 심장은 불타는 것처럼 달궈졌다.

“패배를 인정해, 디멜. 나한테 푸르가토늄 반출권을 넘겨.”

“지금까지 뭘 들은 거냐.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꼴을 어떻게 보라고!”

나는 진심을 담아 디멜을 설득했다.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나는 절대 여기서 물러서지 않을 거야.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다섯 교도관을 상대해 봤어. 놈들은 죄수들을 농락하는 데 도가 튼 놈들이야. 내가 네 고집에 못 이겨 빈손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

“화룡도의 수위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다. 그러면 너는 강제로 층장에서 폐위될 거고, 7번 방 친구들의 안위가 통째로 위험해질 거야. 직접적으로 죄수들에게 해를 가할 수 없는 대신 그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너희를 말려 죽일 거라고.”

내 추론에 교도관의 화신체는 앞발로 턱을 긁으며 동의했다.

“영민하군요. 맞습니다. 그것 또한 제 계획에 있는 일이지요.”

한숨을 내쉬는 디멜에게 나는 다시 간곡하게 말했다.

“한 번만 내 판단에 따라줘. 예전에 마그마 볼에서 내 전략에 목숨을 맡겼던 그때처럼. 나는 절대로 이 감옥의 폭군들에게 굴복하지 않을 테니까. 놈들의 노리개로 전락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가 있는 거냐.”

마도제국의 이단심판관. 동지들을 의심하고 색출해야 했던 마법사. 그래서 디멜은 냉철하고 강력한 대신에…… 그 의심의 칼날을 자신에게 향하는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하지만 난 아니다.

줄곧 스스로를 믿어왔기 때문에 여러 난관을 헤쳐올 수 있었다.

“나를 믿어라, 디멜. 만약 나를 못 믿겠으면 뭐 그건 그것대로 나쁘진 않다만…… 나는 어차피 탈옥에 성공할 건데 그 시간 동안 내내 전전긍긍할 너만 손해잖아?

“지금 농담할 타이밍이…….”

“농담할 타이밍이 아닌데도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건 강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야, 디멜 무바크. 나는 그만큼의 강자가 되었어. 그러니 교도관들이 어떤 술수를 나에게 부리든 간에 전부 쳐부수고 이겨낼 거야.”

“너는 투쟁과 도전의 화신 같은 놈이지. 잘 알아. 그런 놈이니까 그 빈약했던 몸으로도 마그마 볼에 뛰어들었겠지. 하지만 지나치게 뒤를 돌아보지 않는 단점이 있어!”

“너는 지나치게 뒤만 돌아보는 단점이 있고.”

“……망할 자식. 네 멋대로 해라.”

결국 디멜은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

“후임자의 계약. 어떻게 맺으면 되는 거지?”

“당신이 마음 속으로 진심을 다해 받아들이면 그 순간 푸르가토리움이 우리의 계약을 인정해줄 겁니다.”

“좋아. 받아들이겠어. 나는 너와 계약을 맺겠다, 화염에 꼬리를 담그는 삵.”

느닷없이 먹구름이 갈라지며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태양빛이 녀석과 나를 비추었다.

처음 마그마 볼에 도전했을 때 우리 7번 방의 죄수들을 비추었던 바로 그 햇빛이었다.

“이 순간부터 등반 죄수 슈바인 스트링거와 1층 화룡도는 인과의 끈으로 얽혀 있게 됩니다. 다른 그 어떤 교도관의 권능도, 나아가 교도관장마저도 이 언약에 개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절차가 다 끝났기 때문일까.

퀘스트를 내준 교도관장의 메시지 또한 타이밍 좋게 울렸다.

띠링!

[돌발 퀘스트 #12. ‘7번 방의 신고식’을 완료했습니다.]

[용사는 층장 디멜 무바크에게서 푸르가토늄 반출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보상으로 민첩이 80 오릅니다.]

[……용사여, 무운을 빕니다.]

이제껏 퀘스트 완료 알림에는 보여준 적 없던 한 줄이 추가되었다.

교도관장 역시 이 계약에 걱정을 표하는 심정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어디 당신이 9층에서 마음껏 좌절하는 순간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헬 판테라의 눈에 있던 총기가 사라졌다. 교도관의 화신체에서 평범한 고양잇과 맹수로 돌아온 밍밍이는 내게 다가와 허벅지에 머리를 한 번 부비고는 본래 있던 터전으로 돌아갔다.

겁을 먹은 채 다가오지 못했던 뚠 아티르가 디멜을 머리맡으로 총총 뛰어왔다.

“디멜! 다 들었어. 괜찮은 거야?”

뚠의 등 뒤에는 올쿠레 켄타와 비르카 리케우톤이 걱정어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상반신을 가까스로 일으킨 디멜은 차마 옛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했다.

“미안해. 면목이 없다.”

그러나 올쿠레는 양팔로 뚜벅뚜벅 걸어와 잭 프로스트를 안아주었다.

“우리야말로 송구하네, 디멜. 자네의 그런 깊은 속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동안 줄곧 오해하고 있었어.”

“켈켈켈!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놈들은 원래 주먹다툼을 좀 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웃기지 마라, 비르카. 허풍은.”

한동안 비르카와 디멜은 티격태격하면서 한 마디를 지지 않으려고 악을 썼다. 그사이에 낀 뚠이 디멜의 입가에서 튀는 침에 곤욕을 치렀고, 올쿠레는 침착하게 비르카의 삐걱이던 골반뼈를 제대로 맞춰주었다.

그제야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리고 보고 싶었던 7번 방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다들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야. 마음 같아서는 화룡도에 좀 더 머무르고 싶지만…….”

올쿠레가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에게 무척 소중한 친구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서둘러야지.”

“죄송합니다, 어르신. 내려와서는 이렇게 사고만 치고 결국 뒷수습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역시 뚠 아티르였다.

“다시 예전처럼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방장. 이게 마지막 작별이면 어떻게 해?”

“아까 그 살쾡이가 그랬잖아. 이제 우리 7번 방은 나와 인과의 끈으로 완전히 묶인 거야. 내가 탈옥에 성공하면 너희도 모두 자유의 몸이 된다. 밖에 나가면 뭘 하고 싶은지 소원 목록이나 적어 놔.”

“미안한데 두더지 토인들에겐 문자가 없어. 그래서 꿈을 꾸는 거야. 뭔가를 잊지 않기 위해 꿈에서 되새김질하는 종족이니까.”

그건 차마 몰랐다.

그냥 단순히 잠이 많아서 꿈을 많이 꾸는 게으른 종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해해서 미안하군.

비르카의 어깨가 달그락거렸다.

“슈바인, 그렇게 꽁무늬가 빠져라 다시 튀어올라 간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 어떤 아리따운 처자에게 단단히 코가 꿰인 거 아니냐? 켈켈켈.”

“……대체 뭘 가지고 그런 억측을 하는 거냐. 스켈레톤의 육감이냐?”

“아니, 여자의 육감이다. 연애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돌아와 나를 찾아오도록.”

그런 상담이 필요한 때가 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 시선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곳은 디멜의 얼굴이었다.

“머리는 좀 괜찮냐? 내 전력이 담긴 박치기를 맞았으니 한동안 골이 좀 땡길 거야.”

“빙궁으로 돌아가서 찬 바람을 좀 쐬면 금방 괜찮아질 거다. 네 앞가림이나 잘해, 멍청아.”

“계속 그곳에 머무를 거야?”

“아니. 빙궁은 오직 너를 퇴치하기 위해 급조한 건물이니까. 다시 7번 방으로 돌아갈 거야.”

“그래. 거기가 네가 있을 곳이니까.”

7번 방의 동료들을 한 번씩 껴안아준 다음 나는 한 걸음 멀찍이 물러났다.

면회의 권능이 종료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험한 바가 없었기에 최대한 얼굴만 마주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잘 가, 슈바인.”

“우리의 방장, 무사하게나.”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이젠 서로 삐치거나 토라지지 말고 똘똘 뭉쳐 있으라고. 알았지?”

열렬히 팔을 흔들어주는 녀석들의 모습이 곧 흐릿해졌다.

*

[죄수의 ‘면회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등반죄수 슈바인 스트링거의 신병이 다시 5층 빙설협곡에 귀속됩니다.]

그렇게 나는 빙설협곡의 페어리 동굴로 되돌아왔다.

휘이이이잉.

솜털이 쭈뼛하고 섰다.

처음에는 5층 특유의 압도적인 추위 때문에 생기는 생리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을 감지한 용사 특유의 반사적인 본능이 보내는 경고였다.

“관객님! 피하십시오.”

꽤 멀리서 들려오는 레나스의 외침. 그 방향을 찾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꽈르르르릉!

머리 위의 동굴이 통째로 무너져내리며 거인의 발바닥이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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