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61화 (161/300)

#161. 뒤늦은 신고식 (1)

띠링!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돌발 퀘스트 #11. ‘금의환향’]

[용사는 출신층인 화룡도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4명의 방장들이 용사의 앞을 가로막았군요. 이것은 단순한 전투가 아닌 과거의 망령을 떨쳐내기 위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명의 방장 전원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드십시오. 두말 하면 입 아프겠지만 다른 층에 붙잡혀 있는 친구들의 스킬은 대여할 수 없을 겁니다.]

[기한: 20분]

[보상: 만전불패의 체술 숙련도 상승]

[실패 시: 1층장 접견 불가]

‘교도관장 녀석.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퀘스트 보상 같은 거 주지 않아도 이놈들을 두들겨 패는 건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이라고.’

레이스 오르콰이움.

녀석의 본체는 둥둥 떠있는 하얀 가면이며 그것을 핵으로 삼아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검은 안개를 무기로 삼는다. 일렁이고 있다가 갑자기 죽창처럼 뻗어오는 공격이 위협적이다.

“하지만 안 통하지.”

나는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피겨 스케이터처럼 종횡무진 찔러오는 오르콰이움의 손길을 유연하게 피해냈다.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조금의 낭비도 없이.

마치 자신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앉아 있는 것인 양 요리조리 공격을 피해내는 걸 보고 오르콰이움은 질겁했다. 녀석의 가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파천황의 권능인 만전불패의 체술이 성장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경험에서 나온 데이터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어둠이 늘어날 수 있는 범위도, 선호하는 간격도, 무의식적으로 지면에 접촉하는 걸 선호하는 사소한 습관까지도 모두 파악을 완료한 뒤다.

‘너는 나와 이렇게 싸우는 게 처음이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아마 내내 1층 화룡도에서만 묶여 있던 오르콰이움은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4층 만철도시에서 내가 녀석의 무기인 낫을 지급받아 ‘똑같은 전투법’으로 덤벼온 무이크루라는 오토마타와 혈전을 치렀던 사실을.

물론 그걸 내가 친절하게 설명해줄 의무 따윈 없다.

“어디 냄새나는 주먹에 맞아봐라.”

오르콰이움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진각을 밟았다. 회축이 크게 틀어지며 전력으로 내지른 훅이 레이스의 가면을 후려쳤다.

꽈지익!

“커허어억!”

물 머금은 휴지조각처럼 쪼그라든 오르콰이움이 마당 구석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보통 동료가 당하면 격분하거나 전열에 동요가 일어나는 게 정상이다만, 화룡도의 방장들은 달랐다. 마그마 볼의 본고장답게 애초에 동료라는 개념이 존재하질 않는 것인지 오직 내 빈틈에만 집중한 것이다.

“허리가 비었다, 슈바인 스트링거!”

그래서 야불타의 거친 태클이 나를 덮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보통 상대를 밀어내기 위해 인간이 양팔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사슴벌레의 머리를 가진 녀석은 또 하나의 유리한 점을 갖고 있었다.

꽈아아악!

잘 벼려진 장검이나 다름없는 두 개의 집게로 내 허리를 앞뒤로 옭아맨 것이다. 자유로운 양팔로는 내 두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분명히 한 놈을 상대하고 있지만 두 명과 레슬링을 하는 기분이다.

“채석장의 관리자, 야불타.”

“그래. 그곳에서 오직 나만이 곡괭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체감하게 될 것이다.”

집게가 내 상체를 하체로부터 분리시켜버릴 기세로 조여들어왔다. 대체 무슨 물질로 만들어졌는지 몰라도 확실히 광석을 캘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집게날이 내 복근을 찢어버리기 위해 파고들었다.

“너랑 오르콰이움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

“지금의 층장 님이 빙궁을 만드신 이래 과거의 은원은 무의미해졌다.”

“우두머리에게 쫄아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제법 고풍스럽게 할 줄 아는구나.”

“다이몬도 층장을 이기지 못했어. 죽고 싶지 않다면 생리에 따라야지.”

야불타는 링 바깥으로 상대를 집어던지려는 프로레슬러처럼 이리저리 날 끌고 다녔다.

천근추를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녀석에게 당황을 선물해줄 수 있었으련만 스킬이 봉인 당한 지금에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녀석의 두 집게를 양팔로 움켜잡으며 읊조렸다.

“억지로 명령을 듣는 녀석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어.”

“항복하겠다는 거냐?”

“아니. 한 방에 기절시켜주겠다는 거야.”

허리를 활처럼 휘게 만들어 야불타의 정수리와 최대한 거리를 둔 다음,

있는 힘껏 박치기를 시전했다.

꾸우우우웅!

마당 바닥에 거대한 사슴벌레 화석이 만들어졌다. 땅을 뚫고 움푹 들어간 야불타는 그대로 기절해 꿈틀대지도 못했다.

“혹 난 거 아냐 이거?”

이마를 쓸어내리며 투덜대고 있자 저 멀리서 차카 도기노브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첫 타격에 멀리 날려보냈던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것이다.

“몰라보게 강해졌구나, 비실대던 인간 놈이.”

“아직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어. 만족할 때까지 때려줄 테니까 이리 와라.”

검지를 까닥거리며 도발했으나 어쩐 일인지 차카는 멀리서 날 노려볼 뿐 더 이상 다가오진 않았다.

“네놈이 더 강해져서 돌아올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 우리도 멍청하게 가만히 세월을 보낸 건 아니다.”

“뭔가 비장의 수라도 있는 모양이지?”

“널 때려잡기 위해서 애지중지 키워온 물건을 지금 보여주마.”

쩌저저적.

빙궁의 옥상에서 기묘한 파열음이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단순한 장식인 줄만 알았던 ‘무언가’가 벽면을 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뼈다귀만 남아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초대형 악어.

한때 마그마 엘리게이터였으나 지금은 언데드 몬스터가 되어 있는 괴수였다.

“어떠냐. 이 스컬 엘리게이터를 상대하려면 아무리 네놈이라도 애 좀 먹을 거다. 후후후.”

“……이름까지 붙여줬냐, 그새?”

덩치가 조금 클 뿐인 홉고블린 차카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나는 후열로 물러나 있는 레이스 오르콰이움을 노려보았다. 좀비나 구울 등으로 이뤄진 4번 방을 다스리던 녀석이니 시체를 일으켜서 조종하는 사령술을 쓴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르콰이움의 가면이 요사스럽게 웃었다.

“힘과 맷집만 무식하게 센 네놈과 힘겨루기를 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어디 있는 힘껏 발버둥쳐 봐라.”

해골에는 발성기관이 없기 때문일까.

스컬 엘리게이터는 포효 한 번 없이 바로 짓쳐들어왔다.

깨물리지 않기 위해 뒤로 훌쩍 물러나니 곧바로 녀석이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왔다.

우르르르릉!

허리를 숙여 피해냈으나 내 등 뒤의 벽은 맥없이 허물어졌다. 압도적인 체구에서 나오는 굉장한 파괴력이다.

아마도 마그마 속에서 사는 엘리게이터 중 가장 체구가 커다란 녀석을 사령시킨 게 틀림없다.

“먼지로 돌려보내 주마.”

공중으로 뛰어올라 스컬 엘리게이터의 관자놀이를 거세게 걷어찼다. 그러나 녀석은 조금 비틀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스컬 엘리게이터의 HP 피해는 0입니다.]

[흑마법으로 움직이는 패밀리어입니다. 마력이 실린 공격이 아니면 타격을 줄 수 없습니다.]

물리력으로 아무리 쥐어패도 멀쩡하다는 얘기였다. 제르비어스의 폭렬 마법이나 아스티나의 중력 마법이 있었다면 승부는 단시간에 끝났겠지만 지금의 나로선 차포를 모두 빼앗긴 상황.

계단 위에서 배를 내밀고 웃고 있는 차카의 송곳니가 눈을 어지럽혔다.

“어떠냐. 맥을 못 추겠지? 이 악어와 싸우느라 기진맥진했을 때 내가 산성독으로 네 번지르르한 얼굴을 녹여줄 테다.”

차카의 말을 조롱으로 받아쳐 주고 싶었으나 해골 악어의 공격을 피해 다니느라 여유가 없었다.

“낙오된 찌끄레기들만 모인 7번 방의 방장. 네놈과 같은 방장이라는 게 열 받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 이번 기회에 너희 7번 방 놈들을 깡그리 청소해 주마.”

그렇게 떠들었단 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7번 방을 모욕하는 건 여전히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너희는 실수를 했다.”

나는 스컬 엘리게이터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맞받았다. 녀석의 윗턱과 아랫턱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멈춰 세운 것이다.

“차라리 좀비 상태로 덤볐어야지. 뼈만 남은 괴물을 내게 던져준 시점에서 너희의 패배는 확정된 거야.”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우리 7번 방의 죄수들은 의외로 엘리트라는 거다. 지금 그걸 증명해주지.”

처음 화룡도에 떨어졌을 때에도 나는 한 녀석의 스킬만큼은 빌려온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온몸이 뼈로 이뤄져 있지 않는 한 써먹을 일이 없는 스킬들만 가지고 있는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면 얘기가 다르지.

나는 대마도사의 실험체로 만들어진 스켈레톤, 만성관절염에 시달리는 7번 방의 동료 비르카 리케우톤에게 감사하며 그, 아니 그녀의 스킬을 빌려왔다.

[친구 비르카 리케우톤의 스킬을 빌려옵니다.]

[사령통제마법 제 4 언령]

[골수폭파술 Lv. 1]

뼛속에 존재하는 골수를 연소시켜 폭발시키는 마법이 해골 악어의 전신을 덮쳤다.

녀석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신의 모든 관절 접합부의 장력을 잃어버리며 허물어져 내렸다.

내 양손에는 단검 크기만 한 악어의 이빨 두 개가 나란히 들려 있었고, 그것은 곧 표창처럼 차카 도기노브의 어깨와 오르콰이움의 가면으로 날아갔다.

“끄아아아악!”

“커허억!”

어떠냐.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역수의 뼛조각으로 된통 당하는 기분이.

차카는 피가 철철 나는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그래도 녀석은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사령술이 통째로 격파된 충격 때문인지 확연히 쪼그라들었다. 가면에도 아무런 표정이 출력되지 않고 텅 비어 버렸다.

스컬 엘리게이터의 파편들은 다섯 살 아이가 갖고 놀다가 포기해버린 레고 블럭처럼 마당 전체를 뒤덮었다. 나는 그것을 우지끈 밟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금껏 전투에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16번 방장 콩파스가 내 눈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 항복이다! 나는 너에게 덤비지 않겠다. 살려다오.”

한 대도 안 맞고 백기를 든단 말야? 이건 또 신선한 반응이네.

내가 달려들지 않고 주춤거리자 콩파스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바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잘못했다! 나는 그냥 저 녀석들의 행패가 무서워서 널 막아선 거야.”

“나한테 채석장에서 당했던 굴욕, 그걸 복수하고 싶었던 간 아니고?”

비열한 웃음이 코볼트의 입꼬리에 맺힌다.

“에헤이. 그, 그럴 리가. 나는 반성이란 걸 할 줄 아는 놈이야! 그러니 부디 강자의 자비를 베풀어서 그냥 날 지나쳐 줬으면 좋겠다.”

“그래그래. 강자의 자비는 중요하지, 암.”

나는 그대로 콩파스의 옆을 지나쳐…… 가려다가 결국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의 턱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런데 너만 얼굴이 너무 깨끗하면 나중에 너희 방 녀석들한테 비난받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 딱 한 대만 맞아라. 주먹 말고 손바닥으로 때려줄게.”

“어어어엉? 굳이 그럴 필요는…… 꾸에에에엑!”

강렬한 싸대기에 얻어맞은 콩파스는 아예 담벼락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손바닥을 툭툭 털며 녀석은 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네놈은 강자였을 때도 우리 7번 방을 줄곧 괴롭혔었지, 콩파스. 반성의 타이밍이 늦어도 너무 늦었어.”

그렇게 빙궁의 현관 앞에 발을 디뎠을 때,

여전히 분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차카가 말했다.

“망할 자식. 대체 뭘 처먹었길래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달라진 거냐.”

“하여간 머릿속에 음식 생각뿐이냐. 피나는 수행과 노력 끝에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은 못 해?”

“나는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다.”

“알아. 너와는 대기실에서부터 악연이었으니까.”

“그런데 층장 님은 다르지. 네놈과 무척 끈끈했던 사이이며 서로의 성격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우릴 상대했던 것처럼 흘러갈 거라고 착각하지 마.”

디멜 무바크.

이렇게 바깥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꿈쩍도 않은 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냉담한 반응.

“차카 도기노브. 너는 입소 첫날에 13번 방에 들어가 죄수들을 다 때려눕히고 방장이 됐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그걸 못했었어. 애초에 방장이 공석이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7번 방의 방장이 됐거든.”

신참과 고참 간의 무자비한 육탄전인 신고식.

정글 속의 초식동물만 모인 우리 7번 방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단어.

“결국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봐야 하지 않겠어.”

현무패웅검을 꺼내 들고 빙궁의 철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결코 나를 환영하지 않는 듯 차가운 문을 뒤로 밀어냈다.

“그날 하지 못했던 신고식. 이번에 한번 해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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