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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52화 (152/300)

#152. 빙설협곡 (2)

‘의지가 봉쇄되어 버리는 주술이라니.’

지독하리만치 강력한 암시에 붙잡혔다.

마법의 발동도,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수준까지 무언가가 내게 간섭할 수 있었을까.

이 층에 와서 한 것이라곤 눈을 맞는 것밖에…….

“잠깐만. 이 눈이 설마?”

손바닥을 내밀자 달라붙은 눈송이가 피부로 스르륵 녹아들었다.

당연히 자연현상일 거라 생각한 이 눈보라엔 내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어떤 마법적인 요소가 얽혀 있었던 모양이다.

음흉한 교도관 녀석.

왜 갑자기 등장하자마자 말을 걸어서 이것저것 떠들어대나 했더니.

내 관심을 자신에게 돌려 떨어지는 눈에 경계심을 가질 물리적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거였다.

화신체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도 나를 방해할 수 있는, 얄미우면서도 영리한 방법이었다.

[5층의 교도관이 음흉하게 웃습니다.]

[그러면서 5층의 교도관은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이 주술은 엄연히 층을 지배하는 층장의 술수이며 자신은 그것을 지켜볼 뿐이라고.]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5층 빙설협곡에는 층장이 존재하며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등반죄수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쿠우우우우웅!

정체불명의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그 방향을 주목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관객님,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젠장.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단 말야.

“의아하군요. 제가 탐지한 바에 따르면 관객님께선 여기에 가만히 있고 싶으신 듯한…….”

후우우우우욱!

눈보라가 갈라지고 두 개의 시커먼 기둥이 눈앞에 등장했다.

처음엔 건축물이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크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지만 그것은 분명 이족보행을 하는 생물체의 다리였다.

“하하하. 내가 하나 찾았다.”

천둥이 말을 했다. 아니, 천둥에 가까운 데시벨을 가진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그것은 체고가 30미터는 훌쩍 넘어보이는 거인이었다. 양손에 찬 수갑의 크기 또한 무지막지하게 거대했다.

항공모함의 서치라이트만한 눈이 나를 내려다봤다.

“어어라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네.”

꿈뻑거리는 거인의 눈에 의아함이 드리워졌다.

녀석은 나와 레나스를 번갈아 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산발을 파고드는 그 검지 하나가 내 몸통만 했다.

그러자 녀석 옆에서 또 한 명의 거인이 눈보라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니굴라스, 제물을 찾았다고?”

“어. 그런데 두 마리야, 씨룸.”

씨룸이라는 거인이 허리를 숙여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뭔가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리는 생물이 아니잖아. 그냥 치워버리자.”

“어, 알았어.”

거인 니굴라스가 자신의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레나스 앞에 갖다 대었다.

이런 상황에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바둑돌로 알까기를 하려는 듯한 동작…….

빠아아아아악!

대포를 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레나스가 일직선으로 멀리 날아갔다.

“레나스으으으으!”

망연자실해서 시야 너머로 사라져버린 레나스를 쫓으려 했으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윽, 제기랄.”

인형 친구가 무력하게 당하는 걸 지켜만 봐야 하는 나 자신이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그때, 손가락만으로 레나스를 날려 보낸 니굴라스가 눈썹을 찌푸렸다.

“아얏. 손톱이 깨졌어. 따끔했는데.”

“제대로 못 때렸나 보지, 멍청이.”

“나 멍청이 아니다!”

“꼭 멍청이들이 그렇게 외친다니깐.”

두 거인이 꽥꽥 소리를 지르니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멍청이란 말에 기분이 나쁜지 니굴라스는 우스꽝스럽게 주먹으로 가슴을 펑펑 때렸으나 나는 웃지 못했다.

레나스는 타격을 입기 전에 분명 연금무장술을 발동해 수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거인에겐 고작 손톱에 금이 가는 정도의 충격밖에 주지 못한 것이다.

“갈 길이 멀어, 니굴라스. 이 소인(小人)을 통에 담아.”

“칫, 알았어.”

씨룸이 두 손가락으로 내 허리를 붙잡더니 들어 올렸다. 뭔가 마차 같은 것에 집어 던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철컥.

그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큼지막한 새장 같은 곳이었다. 초등학생의 채집망에 붙잡혀 들어온 매미 같은 꼴이었다.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내 근력 스탯이라면 맨손으로 부숴버릴 수 있는 허술한 구조였다.

“젠장.”

하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는다. 주먹을 눈앞까지 들어 올릴 순 있으나 결코 뻗을 수가 없었다.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나무통을 허리춤에 매단 니굴라스가 걷기 시작한 것이다. 삐그덕거리는 불친절한 놀이기구에 매달린 듯 어지러웠다.

그러나 곧 니굴라스가 걸음을 멈췄다.

“어라? 아까 그거, 다시 날아오는데?”

창살을 붙잡고 우리가 지나온 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공기를 찢어발기며 레나스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연금무장술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B: 저격 특화형]

두 거인 앞에 떠오른 오토마타는 초전자포를 내쏠 수 있는 양팔을 내밀었다.

“당신들에게서 적대반응을 감지했습니다. 그분의 신병을 놓고 물러나십시오. 경고는 한 번으로…….”

쐐애애애액!

레나스가 있던 공간에 초대형 곤봉이 휘둘러졌다.

오토마타는 나와 싸울 때 보여줬던 민첩함을 발휘해 공격을 피해냈으나 풍압에 비틀거렸다.

“내가 처리할게.”

곤봉을 손에 쥔 거인 씨룸이 레나스를 때려잡기 위해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렀다.

상대의 궤적을 미리 예측하고 피할 수 있는 레나스는 정타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오토마타가 퍼붓는 매서운 살상기술 역시 씨룸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나스의 수검과 수창은 씨룸의 단단한 회색 피부를 뚫어내지 못했고, 초전자포는 그을음을 조금 만들어내는 데 그쳤다.

요리조리 공격을 피하는 레나스가 귀찮았는지 씨룸은 곤봉을 눈밭에 콱! 하고 박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엄청난 굉음을 내질렀다.

“저-리-꺼-져-라!”

사자후처럼 무공의 묘리 같은 것은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있는 힘껏 내지르는 것만으로 거인의 외침은 중력 폭탄에 가까운 파괴력으로 레나스를 덮쳤다.

눈밭에 불시착한 레나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레나스! 괜찮아?”

“현재 충격 받은 부위를 자가 수복 중입니다. 제 무기들론 거인의 내구력에 손상을 입히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크기와 무게 면에서 상대가 되질 않고 있었다.

격투기에서는 체급이라는 개념이 무척 중요하다. 두 선수의 기술 수준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66kg의 페더급 선수가 120kg의 헤비급 선수를 쓰러트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레나스와 씨룸의 체급 차이는 그보다 훨씬 더한 격차였다.

쿠웅. 쿠우우웅.

게다가 소리와 기감으로 판단해보건대 또 다른 거인들이 우리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어이없이 레나스를 잃어버릴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달아나, 레나스.”

“제가 떠나면 관객님의 신병은 더욱 위험해질 텐데요.”

“이 녀석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거리만큼 떨어져서 나를 추적해. 나는 그동안 뭔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레나스는 고민하지 않는 자동인형.

내 명령이 떨어지자 등 뒤에 날개를 펴 신속하게 사라져 버렸다.

“어라? 가 버렸군.”

씨룸은 별 미련도 없었는지 눈밭에 박은 곤봉을 다시 집어들고는 니굴라스에게 걸음을 재촉했다.

흔들림에 익숙해지기 위해 벽면에 손을 짚었는데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잘했어. 계속 덤비게 했으면 쟤 망가졌을걸?”

“누구야?”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나무통 안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이 통의 내부는 인간 하나 정도밖에 담기지 않을 만큼 작았다.

“여길 봐. 큰 소리 내진 말고.”

왼쪽 어깨 위 허공에 그것은 떠 있었다.

내 엄지만 한 인간의 형체가 나비의 날개를 등 뒤에 단 채 날고 있었다.

“요, 요, 요정?”

“이, 이, 인간?”

녀석은 정확히 내 표정과 어투를 따라하면서 날 놀리고 있었다.

내가 어이없어 하자 요정은 키득거리더니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이왕이면 페어리(Fairy)라고 해줬으면 좋겠어. 요정이라고 하면 엘프들이랑 헷갈리잖아?”

“……넌 뭐야?”

“페어리 족의 일원인 젠타라고 해.”

젠타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내 주변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녀석의 팔과 다리에는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워낙 작아서 인간의 반지보다 아담한 크기였다.

“저 거인들과 한패냐?”

“에이, 설마. 페어리 퀸이 저 녀석들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저 야만스런 것들이랑 우리가 어울리기나 하니?”

거인들과는 적대세력이라는 건가.

마교도와 마법사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삼월초원처럼 이곳 5층에서는 거인족과 페어리족이 전쟁을 벌이고 있기라도 한 건가?

내 의문에 젠타의 얼굴은 급속도로 시무룩해졌다. 표정 변화의 속도가 마치 뮤지컬 배우처럼 정신없었다.

“아니. 전쟁은…… 아주 오래 전에 끝났어. 퀸과 내 동료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 상대적인 크기의 차이 때문이야.”

“저 거인들에겐 너희가 너무 작아서 안 보인다는 건가?”

젠타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아니. 거인들도 신경 써서 관찰하면 우릴 볼 수는 있어. 정확히는 페어리들이 ‘제물’로 쓰일 수 없기 때문이지.”

“도대체 그 제물이 뭔데? 이 거인은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고?”

“층장인 크로톤에게 바치려는 거야. 크로톤은 이 거인들보다도 훨씬 크고 강력한 죄수야. 협곡 깊숙한 곳에 있는 기암거성에 살아.”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정보들이 페어리의 입에서 줄줄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것을 머릿속에 입력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혀야 했다.

“나는 이 층에 떨어지자마자 어떤 주술에 걸렸어. 이 거인들에게 끌려가는 걸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어떤 마법 같은 것에. 그것도 크로톤의 짓인가?”

“응. 이 층에 내리는 눈에는 크로톤의 입김이 서려 있거든. 거기 닿으면 너처럼 무기력해져. 물론 나처럼 숙련된 페어리는 눈발 사이로 날기 때문에 멀쩡하지만!”

젠타는 빙판 위에서 회전하는 피겨 스케이터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았다.

나는 녀석의 정신 없는 템포에 휘말리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이 층엔 나 혼자 온 게 아니야. 아까 네가 본 레나스 말고도 세 명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뿔뿔이 흩어졌어. 대체 제물로 바쳐진다는 게 무슨 의미지? 죽게 된다는 건가.”

젠타가 느닷없이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여지껏 멀쩡했던 걸 보면 추워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퀸이 말씀하셨어. 이 감옥 안에서 죽음보다 끔찍한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건 크로톤의 제물이 되는 것이라고.”

하긴. 그냥 다짜고짜 죽인다면 제물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을 것이다.

잡아먹히는 행위를 비유하는 단어도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제물 대신 식량이라는 표현을 썼겠지.

“젠타, 네 말대로라면 넌 여기 잡혀 온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 말을 건 거지. 날 풀어주려고?”

그러자 젠타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 미안해. 내가 너무 오랜만에 살아있는 죄수를 만나서 말이 길었지.”

녀석은 페어리 퀸의 명령을 받고 ‘어떤 죄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 층에 새로운 죄수들이 떨어지면 모두 거인들이 잡아 채가 버리거든. 그래서 퀸이 기다리시는 죄수를 알아보려면 타이밍은 이때뿐이야. 아마 네 동료들한테도 다른 페어리 친구들이 가 있을걸.”

“너희가 그 죄수를 찾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페어리 퀸이 직접 행차하셔서 그 죄수를 구해주신댔어. 나는 네가 그 죄수인지 확인하는 임무를 갖고 온 거고.”

즉, 젠타는 퀸의 전령이자 수색대인 셈이란 소리였다.

나는 미약한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너희 여왕께서 어떤 죄수를 찾고 있는데?”

“그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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