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48화 (148/300)

#148. 지하실의 유령 (3)

“어째서야? 보통의 아이템들과 달리 레나스만 특별취급하는 이유가 뭔데?”

“저 인형이 평범한 무기가 아니라 교도관과 깊은 인연이 있었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일당백의 힘을 갖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이 감옥 안에서 정식으로 신격에 오른 그룬덴 사니릭투스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리 뛰어난 명검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자들조차 탐을 낼 수 있는 ‘물건’인 겁니다.”

이렇게 말하며 곰인형은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검푸른 포탈은 여전히 건너편을 비추지 않은 채 일렁이고 있었다.

“저 포탈 또한 단순한 문이 아니에요. 오랜 시간 푸르가토리움의 각 층을 지배하고 있는 교도관들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감옥의 일부이지요. 저 인형이 포탈에 진입하는 순간 자신의 영역으로 낚아채려는 교도관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요약해보자면 사니릭투스가 더 이상 푸르가토리움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그마치 신격 존재의 무기였던 레나스를 다른 교도관들이 탐낼 거라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어지간해선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는 교도관들의 심기를 이 정도로 자극한 건 당신이 벌여놓은 일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교도관의 전언은 살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지금까지 교도관들이 당신에게 갖고 있는 태도는 흥미나 관심, 기껏해야 눈엣가시 정도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겁니다. 수왕 르팔타커스의 유지를 잇고 있다지만 저층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경계심을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이번 만철도시에서 나는 기원검 네메시스의 칼자루를 회수했고, 그 과정에서 교도관 사니릭투스를 죽였으며, 그의 오토마타인 레나스를 강제로 동료에 편입시켰다.

“당신이 얻은 기원검 네메시스는 감옥의 역사상 단 한 명만이 휘두를 수 있었던 초월급 무기입니다. 무려 신살(神殺)의 업적을 갖고 있으니까요. 인간이 자신의 방에 들어온 개미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듯이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그 정도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개미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의 이빨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살충제를 준비할 수도 있다는 거죠.”

이렇게 듣고 보니 새삼 교도관이라는 신격의 존재들이 얼마나 나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일전에 캉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이 층의 교도관이 되게 착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착한 교도관은 죽은 교도관뿐이다.’

그때는 생각 없이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실제로 착한 교도관은 이미 죽은 사니릭투스뿐이었던 것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레나스를 무사히 다음 층으로 데려갈 수 있는 건데.”

“제가 그 방법을 알려드릴 거라고 확신하는 표정이 기분 나쁘군요.”

“설마 경고만 하려고 행차하신 건 아닐 거 아냐.”

곰인형의 코끝이 씰룩였다. 물에 빠진 녀석을 구해줬더니 봇짐을 내놓으라는 격이니까. 하지만 쓸데없는 밀당으로 시간을 낭비하진 않았다.

“인벤토리에 넣으세요. 그러면 포탈을 출입하는 당신의 인형에 누구도 접근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가 보장하는 것이니 믿어도 좋아요.”

나는 즉시 그 방법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레나스, 들었지? 실례할게.”

“죄송합니다만 관객님. 저는 지금까지 관객님이 하시는 말씀만 들었을 뿐입니다. 어떤 지적 존재와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는 현상만 포착했을 뿐 대화의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라? 이게 무슨 소리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 또한 레나스의 덤덤한 말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레나스 누나? 저 곰인형이 안 보여?”

“네. 제게는 파악 불가능한 공간만 탐지될 뿐입니다. 제가 만들어진 이래 처음 있는 현상입니다.”

설명은 곰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교도관장이 해주었다.

“저 인형은 여러분처럼 감각기관으로 사물을 살피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제 존재를 받아들이는 여러분과 달리 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건 당연하지요.”

레나스는 신격 존재인 교도관장과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오토마타인데도 교도관장은 그런 탐지 범위를 아득히 초월하는 모양이었다.

“어때요, 슈바인 스트링거? 이제야 절 프라이팬으로 때린 행위가 얼마나 겁 없는 행위였는지 실감이 되시나요?”

“아니. 실감 안 돼. 한 번만 더 해보면 실감이 날 것 같기도 한데. 이왕이면 이번엔 프라이팬 말고 디아볼릭으로 다져주고 싶기도 하고.”

“본전도 못 건졌군요.”

나는 레나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러자 오토마타는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 실례할게.”

레나스의 어깨에 손바닥을 올리자 예상대로 아이템 창이 떴다.

[용사가 주인 없는 물건과 접촉했습니다.]

[이름: 레나스]

[등급: EX급]

[푸르가토리움 4층 교도관 그룬덴 사니릭투스가 만들어낸 궁극의 오토마타입니다. 연금무장술로 주변의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형태 또한 다양한 전투 형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용사의 인벤토리에 수납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EX급이라니.

SS급 성검인 아론다이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등급이다. 일순간의 파괴력은 아론다이트가 더 뛰어나겠지만 그 성검이 스스로 적을 공격하거나 내게 말을 걸지는 못하는 걸 생각해보면 레나스의 아이템 등급이 더 뛰어난 것도 말이 된다.

“아이템 수납.”

명령어를 입에 담자 레나스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인벤토리 안으로 역소환된 것이다.

이로써 레나스를 여전히 전력에 포함시키며 층을 건너갈 안전한 방법을 알게 되었다.

“형아, 레나스 누나는 그럼 어디로 간 거야?”

“아주 안전한 곳에 있어. 언제든 내가 원하면 다시 바깥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캉이의 걱정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거긴 어떻게 생겼는데? 나도 레나스 누나랑 같이 있으면 안 돼? 혼자 있으면 심심할 거야.”

나는 오래 전에 생명체는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적 있다. 캉이의 마음씨는 기특하지만 그 바람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다.

“걱정하지 마. 레나스는 어차피…….”

고독함을 느낄 수 없어, 라고 말하려다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 없어 다른 표현을 황급히 가져다 붙였다.

“이 포탈을 건너가자마자 다시 꺼내줄 거니까, 그때 캉이가 같이 놀아주면 되지. 안 그래?”

곰인형은 우리가 층간 구역으로 갈 수 있도록 포탈 앞에서 한 발짝 비켜주었다.

나는 곰인형을 지나치려다가 헛기침을 했다.

“고맙다, 여러모로.”

“호오, 당신에게서 감사의 인사를 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이군요.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

이 만철도시에서의 모험을 끝내며 내게는 하나의 강한 의문이 생겨났다. 시련이 없었던 이 층에서 내겐 다양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고, 원한다면 아무런 싸움과 투쟁 없이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 곰인형이 사니릭타운을 둘러보라고 퀘스트를 주지 않았더라면 말이지.

“그래서 문득 의문이 들더란 말이지. 너는 내 탈옥계획에 도움을 주고 있어.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너의 계획이었고, 어디까지가 너의 안배였는지 말야. 칸, 나이알레와 얽히는 것. 등반죄수들을 억압하던 악마와 조우한 것. 그룬덴 사니릭투스와 대면해서 그의 최후를 장식해 준 것.”

그 모든 것들이 다 이 녀석의 안배였던 걸까.

나는 마치 인형처럼 이 교도관장의 바람대로 움직였던 것인가.

곰인형의 눈이 빛났다.

“당신이 이 층에서 무대의 비유를 종종 사용했기에 저도 조금 빌려볼까 합니다. 그래요. 저는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작성해두는 편입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곰인형은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배우들의 즉흥 연기력을 감상하는 걸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당신이 사니릭투스와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도 했고, 지하의 악마 역시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어요.”

“너는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라고 했잖아. 그러면 모든 미래를 다 예측하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그 질문에 대답하면 당신의 인벤토리에서 숨죽이고 있는 단탈리온은 환호를 지르겠으나…… 그럴 수 없어 안타깝군요. 하지만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모든 죄수들 중에서 내 운명만큼은 읽기 어렵다고 교도관장은 말했다.

“그래서 호이란은 당신을 가리켜 왕이라고 한 것입니다, 슈바인 스트링거.”

*

층간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캉이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다.

“레나스, 아공간 속에 들어가 있었던 기분은 어때?”

“그것은 제 기억에 없습니다. 마치 제 주인님이 이 푸르가토리움에서 저를 부르시기 전 무기고에 안치되어 있었을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벤토리 안에선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단탈리온이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내게 나오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특별했던 걸까.

- 물론입니다, 용사님. 오토마타 레나스는 고도로 발달된 계산기나 총기와 본질적으로 같지만 저는 엄연히 마나와 에테르를 축적하는 마도 생명체니까요.

단탈리온의 설명에는 ‘나와 인형을 비교하지 말라’는 은근한 젠 체가 담겨 있었다.

필체만으로 그런 것을 읽어낼 수 있게 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 장소의 설계나 양식은 제가 처음 보는 유형이군요. 저기 슈바인 관객님의 유년 시절로 추측되는 피사체를 담은 사진이 있습니다.”

“맞아. 교도관장이 내 기억 속에서 추출한 풍경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곳이거든.”

“바깥 풍경이 창문을 통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출입구도 없고요.”

“네 말이 맞아. 그래서 매번 올 때마다 적응이 안 돼.”

“이 공간을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 좀 둘러봐도 괜찮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나스는 뚜벅뚜벅 2층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진짜 목재계단이었다면 육중한 무게를 갖고 있는 레나스를 버텨낼 수 없었겠지만 층간 구역의 물질은 뭔가 단단한 것으로 되어 있는지 삐걱이는 소리 한 번 내질 않았다.

“누나, 같이 가.”

캉이는 레나스의 뒤를 졸졸 따라갔고 다행히도 오토마타는 그런 구미호 소년을 내치거나 하지 않았다.

반면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는 층간 구역에 들어오자마자 투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제르비어스, 수정구가 붙은 폭류천마검의 성능을 시험해보고 싶어. 상대가 되어 주지 않겠어?”

“후후.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아스티나. 이 몸 역시 4층에서 오메가 위프를 되찾았음에도 마음껏 휘둘러보지 못했다. 지금까지와의 대련을 생각하면 곤란할 거야.”

그렇게 둘은 거실 공간을 확장한 다음 대련을 가장한 살벌한 싸움을 시작했다. 마음껏 힘을 해방해도 부서지지 않는 층간 구역의 이점을 활용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그렇게 반나절의 시간이 흐른 후,

레나스가 나를 찾아왔다.

“다 둘러본 거야? 내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렸네.”

“캉이 관객님이 ‘철왕전기 제트카이저’라는 제목의 설화를 감상하는 데 동참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다가 저의 존재조차 잊고 몰입해 계신 것 같아 방금 나온 참입니다.”

“만철도시에 비하면 여긴 좁아터졌으니까. 아마 너에게 큰 감흥을 주는 공간은 아닐 거야.”

그러나 레나스는 내 말을 부정했다.

“만철도시와 유사한 지점도 존재합니다.”

“여기가?”

“네. 공간탐지 능력을 발휘해 이 공간과 외부를 이어주는 통로를 전부 살펴보았습니다. 출입문이 있는 현관이나 옥상으로 연결되는 테라스는 전부 조작된 공간이었습니다. 문은 존재하지만 제가 가진 어떤 수단으로도 입장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면서 레나스는 바닥을 가리켰다.

“하지만 지하는 다릅니다. 이 주택의 지하에는 거실 못지않게 넓은 공간이 은폐되어 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럴 리가 없는데?”

왜냐하면 내가 살던 2층 집에 지하실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밑에…… 뭔가가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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