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지하실의 유령 (2)
“저 오토마타는……?”
“오페라 극장의 프리 마돈나 레나스잖아?”
거리에는 온통 하얀 고양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마치 혈관을 가로막고 있는 노폐물처럼.
도로가 도시의 혈관이니 내가 증식시킨 고양이 인형들은 압도적인 규모의 혈전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다.
광장에서 대로로 이어지는 교차로.
노을을 닮은 머리카락을 가진 오토마타가 손바닥을 그러모았다.
[연금무장술 연성기능 해금]
[형태변환 E: 입자 연성 특화형]
그러자 고양이 인형들은 네다섯 개씩 서로 뭉치더니 빛을 발산했다.
그러고 나서 만들어진 것은 등면지, 나무와 철선으로 이뤄진 풍등(風燈)이었다.
화륵.
풍등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촛불. 그것이 등면지 내부의 공기를 연소시키면서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마, 마법인가?”
“아름다워. 마치 축제 같아.”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 전역에서 풍등이 날아올랐다.
건물 옥상으로 피신해 있던 오토마타 시민들이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떤 꼬마 오토마타는 마신주의 꼭대기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파도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처럼 솟구치는 풍등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이 층에서의 승리를 축제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거냐?”
내 옆에서 망토를 펄럭이는 제르비어스의 표정은 평화로웠다.
적은 물러났고, 이제 이 층에서 우릴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어?”
“저렇게 날아오르는 건 원래 고양이 토템이었고, 그건 네가 소환해낸 거니까. 너라면 굳이 레나스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없앨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 퍼포먼스를 위해 남겨놓은 건가 싶었던 거다.”
제르비어스의 말은 반만 맞았다.
실제로 증식을 멈춘 건 내 의지대로였고, 도시에서 인형을 없애버리는 방법에는 중력 마법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해도 몇 시간 뒤면 제한시간이 종료되어 저 인형들은 먼지로 돌아갔을 터다.
“저건 위령(慰靈)이야.”
아스티나가 끼어들었다.
“위령? 영혼을 위로하는…… 그거 말이야?”
“그래. 내가 있던 지구에선 풍등이 축제에서 사용되기도 했지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자들을 위로하는 방법이기도 했거든.”
물론 이 만철도시에 가득한 오토마타들에게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저 풍등이 달래주길 바라는 넋은 ‘진짜’ 만철도시의 시민들이었다. 레나스의 폭주로 인해 비극의 희생자가 되었던 그들 말이다.
“마왕, 너는 이 감옥 안에서 두 마리의 펫을 길들였어.”
“밍밍이와…… 꼭꼭이 말이냐?”
마그마 위를 뛰어다닐 수 있는 헬 판테라 밍밍이.
그리고 삼월초원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검독수리 꼭꼭이.
“정신지배 스킬을 여러 번 사용해 보니 확실히 알겠더라. 너는 그 두 녀석에게…… 더 강한 정신지배를 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즉, 그 두 마리의 펫은 자신의 의지로 마왕을 따랐다. 지금의 나는 그걸 확신할 수 있다.
제르비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녀석을 지배하고 싶었던 게 아니니까. 동등한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
풍등의 행렬은 어느덧 까마득하게 올라가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머지않아 가장 높은 건물인 검궁의 최상층에 도달하는 풍등이 생겨날 것이다.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옥좌가 쓸쓸히 풍등의 불빛을 반사시키고 있겠지.
“사니릭투스도 그랬을 거야. 주인으로서 레나스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저 애와 동등한 친구로서 걷고 싶었겠지.”
그때 우리가 보았던 그 들판에서처럼.
하지만 레나스는 죄를 짓게 되었고, 그 주인이 그것을 대속하게 되었다.
“한 번쯤은 레나스의 손으로 이 도시에 불빛을 가져다주도록 해주고 싶었어.”
죽은 사니릭투스의 영혼은 이제 온 우주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는다. 윤회의 고리로 포함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니까.
“저 불빛들이 누구를 달래줄지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
포탈이 우리 눈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오토마타들은 밤이 되자 일상으로 돌아갔기에 주변은 적막했다.
우리가 퍼레이드를 마치고 처음 이 분수대 앞에 섰을 때의 그날 밤처럼.
변화가 있다면 한 명의 동료가 더 생겼다는 것. 죄수가 아닌 오토마타라는 점이 예상치 못했던 점이지만.
그리고 또 한 명.
“이제 정말로 가시는 거군요.”
우릴 배웅하기 위해 나온 하얀 법복의 여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얀 고양이 법정의 재판장 나이알레는 다시 멀끔해진 차림을 하고 있었다. 목소리 역시 공명정대한 본래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고.
“민폐만 끼치고 간 것 같아 죄송하네요.”
내 말에 나이알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아마 그대 이후로 올라올 그 어떤 등반죄수라 하더라도 이처럼 시끌벅적한 난리를 피우지는 못하겠지요.”
“등반죄수들을 모두 처리하지 못했는데 괜찮겠어요?”
“검궁 기사단은 아직 건재합니다. 그들이 자랑처럼 여기는 무기 또한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마피아가 일망타진 되자마자 새로운 적대 세력이 도시 안에 출몰했으니 그들은 다시 바빠질 겁니다.”
전화위복으로 삼겠다는 것인가. 비록 인형이라지만 그런 강직함은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은발의 마검사님. 잠깐 앞으로 나서주시겠습니까?”
“저요?”
나이알레에게 지목당한 아스티나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오토마타 재판장 앞에 섰다.
“허리춤에 찬 그 검을…… 잠깐 보여줄 수 있겠어요?”
아스티나는 조금 망설였으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류운학과 칸의 무기였던 폭류천마검을 풀어내었다.
나이알레는 금속으로 이뤄진 손가락으로 그것을 섬세하게 어루만졌다. 마치 잃어버린 연인이 남긴 유품을 다루듯이.
“우리를 인도하시던 위대한 연금술사이자 교도관이셨던 분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세운 율법과 규칙 또한 의미가 없어졌지요.”
이 오토마타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렇기에 이제 오토마타는 숙원을 이룬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다행히 재판장으로서 계속 할 일을 할 수 있을 테지요.”
“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아스티나의 질문에 나이알레는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 그라비타스 페룰라를 당신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아스티나. 저보다는 그대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겁니다.”
우리 모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기를 잃어버린 오토마타가 얼마나 약해지게 되는지는 여러 번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걸 저에게 주시겠다고요?”
“저의 숙원은 연모하는 사내 칸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재판장과 마피아의 보스 사이에서 그것은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열망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무기를 통해서라도 간접적인 해소를 바란다는 것이 나이알레의 뜻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아스티나는 결국 지팡이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제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르실 거예요.”
“알고 있답니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기들이었다고 했지요?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에 배심원은 없지만 저는 아무도 제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왼손에 그라비타스 페룰라를, 오른손에 폭류천마검을 든 아스티나는 웅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엄청난 선물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나이알레의 안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지팡이와 검을 따로 따로 사용한다면 굉장히 번거로우실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렇기에 지팡이와 검을 하나로 다룰 수 있도록 합치는 것이 좋겠다며,
나이알레는 레나스에게 부탁했다.
“어때요, 레나스? 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레나스의 양손이 다른 형태를 가진 두 무기 위에 포개졌다.
생명체를 제외한 모든 것의 형태를 변환시킬 수 있는 위대한 연금술이 또 한 번 진가를 발휘했다.
레나스의 가슴 안에 있는 마정석이 광채를 한 번 떨치니 그라비타스 페룰라에 박혀 있던 수정구는 어느새 폭류천마검의 손잡이 끝에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한 몸이었던 것처럼.
“휘둘러 보십시오, 아스티나. 무게 중심은 괜찮습니까?”
“네. 너무…… 완벽해요.”
허공에 두 번 궤적을 만들어낸 아스티나가 홀린 듯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나이알레 역시 양손을 가슴 앞에 그러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직 이 감옥을 벗어난 존재는 여지껏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언젠가 탈옥이 최초로 일어난다면 그 소식의 주인공이 여러분이기를 바라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남긴 채 나이알레는 떠나갔다.
나는 여전히 발그레한 볼을 붉히는 아스티나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렇게 좋아?”
“어, 당연하지. 한 번 단념했었던 보물들이 모두 내 손으로 들어왔잖아. 이 검을 쥐고 있으면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검을 청룡패웅검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아마 그 두 분을 뛰어넘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 거야.”
“못 기다리겠어. 빨리 층간 구역으로 가서 이걸 휘둘러보고 싶어. 상대해 줄 거지?”
“물론. 나도 마검 디아볼릭이 새로 생겼고 제르비어스도 채찍을 되찾았으니 대련은 이전보다 훨씬 격렬해질 거야. 기대하라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포탈에 손을 뻗었다.
만철도시와 작별하고,
새로운 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두우우웅.
그런데 그 순간 포탈이 격하게 일렁이더니 무언가가 반대편에서 튀어나왔다.
“물러나!”
나와 아스티나, 그리고 제르비어스는 단숨에 전투 모드로 돌입해 기세를 끌어올렸다.
포탈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등장한다는 것이 우리에겐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캉이와 레나스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저 둘은 삼월초원의 설공이란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재빨리 둘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격한 환영은 부담스러운데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앙증맞은 얼굴이 뾰옥! 하고 포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무대 장막을 젖히고 나타난 것 같은 그 주인공은 곰인형의 머리였다.
“교도관장?”
“네. 접니다. 응차.”
곧 곰인형은 어깨와 몸통, 다리까지 포탈에서 빼내더니 분수대의 턱 위에 올라섰다. 마치 서커스에서 묘기를 뽐내는 동작처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평소였다면 저는 결코 감옥의 층에 현신하지 않았을 겁니다. 능력이 아닌 예의의 문제거든요. 각 층의 교도관이 담당하는 구역에 제가 개입하게 되면 그들은 몹시 불편해 할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는 건 이 층에 네가 배려해야 할 교도관이 없기 때문인가?”
곰인형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 아주 놀라운 짓을 해주셨더군요, 슈바인 스트링거. 3층에서는 교도관을 공격해 비늘을 주워 담으시더니, 이번 층에서는 무려 교도관을 살해하셨지 않습니까.”
비아냥거리는 말투에는 역시 똑같이 맞대응해주는 게 최고다.
“그래서 뭐, 형량 추가라도 하려는 거냐?”
“아니오. 물론 그런 목소리를 내는 교도관도 있었습니다만 소수의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룬덴 사니릭투스는…… 여러모로 독특한 자였으니까요.”
교도관장은 사니릭투스의 의지를 존중한다며 더는 따지지 않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가만히 층간 구역에서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몸소 마중을 나온 이유가 있을 텐데.”
녀석은 짤막한 앞다리를 들어 레나스를 가리켰다.
“저 인형에 관해 조언 드릴 것이 있어서 나온 겁니다.”
“레나스에게?”
“네. 방금 제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저 인형은 포탈에 진입하는 순간 갈가리 찢겨 나가버렸을 테니까요.”
순간 간담이,
아주 조금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