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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46화 (146/300)

#146. 지하실의 유령 (1)

“정답입니다, 관객님. 동일 응답자는 지금까지 0명이었습니다.”

지금껏 아무도 짚어내지 못한 정답을,

푸르가토리움에서 태어난 구미호 소년이 맞춰버렸다.

레나스는 당황해서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캉이의 앞에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관객님께서는 최초로 정답을 고르셨습니다. 제게 입력된 명령으로 인해 관객님은 일대일로 단독 세레나데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우우와아…… 진짜야?”

“그렇습니다. 바로 공연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레나스가 캉이에게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전광석화처럼 손을 놀려 캉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읍!”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마, 캉이야.”

발버둥 치는 캉이를 레나스로부터 떨어트려 놓은 후 녀석의 귓가에 몇 마디를 속삭였다.

그러자 내 계획이 마음에 들었는지 캉이는 열렬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위풍당당하게 레나스 앞으로 걸어간 캉이는 이렇게 외쳤다.

“누나의 세레나데는 감옥 바깥에서 들을 거야. 그게 관객인 내 용청이야!”

“……캉이야, 요청. 요청이라고 해야지.”

“요청이야!”

전말을 알아챈 아스티나가 까르르 웃었다. 내가 캉이에게 시킨 것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한 것이다.

제르비어스는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으나, 곧 레나스의 반응에서 납득하게 되었다.

“그렇군요. 그게 관객님이 제게 주시는…… 새로운 명령인 겁니까.”

나는 팔짱을 낀 채 레나스 앞에 섰다.

“그래. 너처럼 뛰어난 가수의 공연을 독차지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이런 삭막한 곳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

가까스로 얻어낸 독창회의 티켓이다.

그러니 사용처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물론 억지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레나스는 무리한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인정합니다. 관객님이 제게 주신 요청은 정당합니다.”

영혼이 없이 태어난 오토마타에게 영혼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목적을 잃어버린 인형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는 푸르가토리움이라는 험악한 감옥의 네 번째 층이야, 레나스. 우리는 앞으로 다섯 개의 층을 더 돌파해서 이 감옥을 벗어날 생각이고.”

다시 한 번 레나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는 어떻게 할래?”

물론 인간이 아닌 레나스가 내 손을 마주 잡거나 악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만족했다.

레나스가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부터 최중요 보호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언젠가 여러분이 제게 단독 세레나데를 들려달라고 할 때까지, 여러분을 따라다니며 지켜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나는 만철도시 최강의 인형을 호위무사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잘 부탁해, 레나스. 앞으로 소나기를 맞게 되는 날이 오면 부디 우리의 우산이 되어줘.”

*

“전열을 가다듬어라! 물러서지 마!”

“기사단이여, 검궁을 사수해야 한다!”

광장에 내려섰을 때 내가 본 풍경은 멈춰있던 사투가 재개된 아슬아슬한 현장이었다.

어느덧 숫자가 이백 이하로 줄어버린 검궁 기사단은 날뛰는 등반죄수들을 가까스로 상대하고 있었다.

“많이 바빠 보이시네요, 에니찰리드.”

목이 터져라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검궁 기사단장은 검댕이 묻은 얼굴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층장님? 아니, 어째서 아직 떠나지 않은 겁니까. 포탈까지 가는 길을 우리가 열어드리지 않았나요?”

“그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못다 한 숙제가 생각나서 그만.”

쿠오오오오오오!

그때, 광장 한켠에서 거대한 중력 폭풍이 일어났다.

마법으로 저만한 출력을 터트릴 수 있는 오토마타는 4층을 통틀어서 단 한 명뿐이다.

잠시 동안 폭력의 공백 사태를 강제로 만들어낸 재판장 나이알레가 우리 일행을 발견했다.

“슈바인 스트링거, 어째서 되돌아온 거죠? 저들의 타깃이 당신인 이상 이곳은 위험합니다. 그대는 대단히 영리한 축에 속한다는 내 판단을 철회해야 하는 건가 고민되는군요.”

“아직 철회하지 마세요. 제가 대단히 영리한지는 알 수 없지만 만철도시가 이 난리통에 집어 삼켜진 건 엄밀히 제 책임이 크니까요.”

무한히 증식하는 하얀 고양이들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층장의 열쇠를 노리는 등반죄수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는 이 현장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하자 나이알레와 에니찰리드가 우려를 드러냈다.

“포탈 쪽에서 그대를 사냥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등반죄수들까지 이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사단 역시 초개처럼 목숨을 불사르고 있으나 전황은 절망적입니다. 압도적인 숫자의 지원군이라도 오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막강한 무기를 휘두르는 등반죄수들이 검궁 기사단을 말 그대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숫자로 밀어붙이던 기사단의 인해전술도 등반죄수들이 모여들면서 의미가 없게 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패색이 짙은 상황.

나는 뜸 들이지 않고 준비해 온 카드를 꺼내 들기로 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위해…….”

내 손이 가리킨 곳에는 다소곳한 자세로 뒤를 따라오던 레나스가 있었다.

“강력한 지원군을 데리고 왔습니다.”

레나스의 면모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에니찰리드가 혀를 찼다.

“이 소녀는 오페라 하우스의 프리 마돈나가 아닙니까. 노래하는 가수가 어떻게 지원군이 된다는 거죠?”

“그에 대한 대답은 레나스가 몸으로 보여줄 겁니다.”

나는 레나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부탁해. 생각보다 네 우산이 필요한 순간이 빨리 찾아왔네.”

“방금 관객님께서 사용하신 어휘의 맥락이 분명치 않습니다. 저는 비유를 해석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 편이니 직접적인 단어로 표현해 주십시오.”

이렇게 오토마타와 대화하는 법을 하나둘 배워나가는군.

“이 광장에 존재하는 등반죄수들을 모두 박살내 버려.”

“불가합니다.”

“엥? 왜?”

“슈바인 관객님과 제르비어스 관객님 또한 등반죄수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으윽.

다시금 로봇청소기를 다루던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나는 침착하게 내 부탁을 수정했다.

“나와 제르비어스를 제외한 등반죄수들을 모두 제압해줘. 이러면 돼?”

“실행하겠습니다.”

레나스가 무릎을 굽히자 그녀를 중심으로 바닥에 거미줄처럼 실선이 그어졌다.

수직으로 날아오른 오토마타는 최대한의 효율로 등반죄수들을 상대하기로 마음 먹은 듯했다.

[연금무장술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B: 저격 특화형]

광장에 푸른색 비가 내렸다.

모르는 이가 봤더라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폭죽이 터진 광경처럼 보였겠으나, 이 광장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자들의 안목은 모두 그 푸른 실선에 담긴 위력을 놓치지 않았다.

“커허어어억!”

“끄아아아악!”

단 한 번 힘의 방출로 절반 이상의 등반죄수들에게 치명타를 입힌 레나스의 등 뒤에 네 장의 날개가 펼쳐졌다.

[연금무장술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D: 비행 특화형]

단 한 기의 오토마타가 음속 돌파의 재난이 되어 등반죄수들을 덮쳤다.

“어어어어?”

검궁 기사단원들은 느닷없이 자신들을 압박하던 죄수들이 핏자국만을 남기고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나이알레? 저 정도면 지원군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스티나는 레나스를 가리켜 ‘일인군단’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지금의 위용을 보면 그 표현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재차 실감할 수 있다.

인벤토리에서 디아볼릭을 꺼내 쥐었다.

“나도 다녀올게. 모두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또 혼자 뛰어들려는 거냐, 용사야? 우리도 이제 꽤 마력을 회복했다.”

“나중을 위해 아껴둬. 검을 뽑긴 했지만 나는 레나스의 싸움에 힘을 보태려는 게 아니거든.”

“그러면?”

“내가 할 일은 잔반 처리야.”

타아아앗!

내 첫 번째 목표물은 기둥 뒤에 숨어 레나스의 초전자포로부터 살아남은 등반죄수 쿠자가르트였다.

“다시 만나 반갑다, 응?”

쿠자가르트의 입장에선 까다로운 방해꾼에 신경이 팔린 사이, 최종 목표물인 내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 양상이 반가웠을 것이다.

채애애앵!

하지만 디아볼릭과 쿠자가르트의 대검이 불꽃을 일으키며 충돌했을 때, 녀석은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왜 그렇게 실실 웃는 거지, 층장?”

“네 검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어?”

“……분절검 하이페리온이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

“왜기는. 압수목록에 이름을 적어야 할 거 아니야.”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하이페리온의 검신을 장갑으로 덥썩 붙잡았다.

그야말로 광인의 행동이다.

상대의 무기에 접촉하는 건 언제든 신체가 잘려나가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쿠자가르트가 힘을 터트리거나 절기를 사용한다면 나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하지만 내 동작에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았던 쿠자가르트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주인이 없는 아이템이므로 인벤토리에 수납이 가능합니다.]

눈앞에 뜨는 메시지.

반갑고 달콤하기 짝이 없구나.

“아이템 수납.”

츠팟.

분절검 하이페리온이 아무런 징조 없이 착용자의 손에서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내 인벤토리는 또 하나의 칸을 채우게 되었다.

“마, 마법인가?”

순식간에 무기를 빼앗긴 쿠자가르트의 입술이 새파래졌다.

“아니. 마법도 권능도 아니야.”

그냥 꼼수 중의 꼼수다.

나는 살신참을 터트려 쿠자가르트를 멀리 날려 보냈다.

무기도 잃고 평정심도 잃은 전사를 무력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일단은 한 개 압수.”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는 본래 주인이 존재하는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지 못한다.

때문에 마주쳐 오는 적의 무기에 접촉해 아공간으로 역소환하는 이런 파격적인 전법은 늘 상상에 그쳐야 했다.

‘하지만 이 만철도시는 지금 교도관이 없는 공백상태.’

무기고를 이 층에 융합시키고 오토마타들에게 쥐어준 사니릭투스가 사망하는 순간, 만철도시에 현존하는 모든 무기는 ‘줍는 사람이 임자’인 물건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게 오토마타 레나스 한 명을 다음 층으로 보내기 위해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으악! 내 곤봉을 내놓아라, 이 빌어먹을 놈!”

“저놈에게 접근을 허용하지 마! 무기를 훔쳐 간다.”

후후. 과연 가능할까?

나를 떨쳐내려고 집중력이 흐트러졌다간 바로 레나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텐데?

몰아치는 전투 인형과 그녀 뒤를 따라다니며 등반죄수들의 무기를 강탈하는 용사의 콤비는 완벽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결국 광장에 모인 모든 등반죄수는 제압당하거나 달아났다.

그 와중에 내 인벤토리에는 A급과 S급 무기가 넘쳐나게 됐고.

‘언젠가 이걸 사용할 날이 오겠지.’

디아볼릭마저 역소환시킨 후 손바닥을 털고 있자 살아남은 검궁 기사단이 머리 위로 주먹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도시를 지켜냈다!”

“층장 님과 프리 마돈나가 우리를 구원하셨도다!”

우레와 같은 함성의 중심에 서 있는 건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그때, 하늘에서 레나스가 내려섰다.

내게로 걸어오는 도중에 그녀의 등 뒤에 있는 날개가 차르륵 줄어들더니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슈바인 관객님, 이제 반경 1킬로미터 내엔 적대적인 존재가 관측되지 않습니다. 또 부탁하실 게 남았습니까.”

이제 어려운 장애물은 모두 제거했다.

하지만 딱 하나.

레나스의 힘을 빌려야 하는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미안하지만 만철도시의 대청소를 끝내려면 아직 하나가 남아 있어.”

지금도 멈추지 않고 증식하고 있는 무해한 인형들.

저것들을 처리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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