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뛰는 놈과 나는 놈 (2)
“내가 있던 세계에 오토마타는 없었지만 로봇이라는 게 있었어. 마정석 대신 전기를 연료 삼아 움직이는 기계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지.”
“그 로봇과 같이 지내본 적은 있소?”
“로봇청소기라고…… 원반 비슷한 크기에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하는 놈이야. 하지만 당신이 만들어낸 오토마타들과 비교하기엔 민망해. 종이비행기와 전투폭격기 정도의 격차가 있달까. 뱉을 수 있는 대사도 한계가 있고.”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가 로봇청소기 한 대를 집으로 가져오신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경품으로 받았다면서.
나와 여동생은 한동안 스스로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를 신기하게 생각하며 녀석을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똘똘한 녀석은 아니었어. 허구헌 날 길을 잃어버렸거든.”
경품으로 내줄 정도로 값싼 모델이어서일까.
그 로봇청소기의 인공지능은 썩 대단한 것이 못 됐다. 식탁 의자의 다리에 걸리거나 침대 밑 잡동사니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 하는 경우가 잦았다.
“언제나 녀석을 궁지에서 꺼내주는 건 내 몫이었지. 커텐을 잡아 삼켜서 실밥을 터트리는 대형사고를 친 적도 있고. 아주 몹쓸 녀석이었어.”
“그래서 그 로봇은 이후로 어떻게 되었소?”
“결국 한 달도 되지 않아 창고에 처박아버렸어. 인간 대신 청소를 하라고 만들어놓은 기계인데 청소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버리는 사고뭉치였으니까.”
사니릭투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카지노에 침투하는 임무를 그대의 동료에게 일임한 건 현명한 결정이었소. 아무래도 그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데엔 영 신통치 않아 보이니까.”
“뭐라는 거야.”
“그 로봇을 쓰지 않기로 한 진짜 이유가 따로 있지 않소?”
죽음을 앞둔 자에겐 어떤 통찰력이라도 생기는 건가. 어떻게 이런 사소한 걸 짐작해내는 거지.
나는 별수 없다는 듯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 실은 마음이 영 불편했거든.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비어 있는 충전단자가 나를 반겼어. 로봇청소기는 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가구 밑에 끼어 배터리가 방전돼 있었고.”
“왜 그걸 보는 데 마음이 불편했던 거요? 기계에는 영혼도 없고, 감정도 없을 텐데.”
“몰라. 그런 건. 그냥 당시의 내가 그 깡통이 버벅이는 걸 보는 게 짜증 났을 뿐이야.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나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배터리가 닳아 작동을 정지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뿐.”
대체 이런 이야기를 왜 듣고 싶어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사니릭투스는 흡족해했다.
“그런 게 인간이란 생물이오. 기계의 형태나 복잡성은 크게 상관이 없지. 스스로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거요.”
흐리멍덩한 노인의 눈은 지금 이곳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인간이었던 시절의 자신을 더듬고 있는 듯 보였다.
“그토록 쉬운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소이다. 내가 오토마타를 만들었던 것은 오만함 때문이었소. 나야말로 연금술의 진리를 탐구해 금단의 영역을 최초로 돌파한 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내 업적과 성취를 증명해주는 도구로서 오토마타를 만들어나갔던 거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만든 오토마타 레나스는 달랐다.
연금술사는 레나스와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함께 하면서 소녀의 형상을 본떠 자동인형에게 더 값진 것을 주고 싶어졌다.
“그 아이는 나를 위해서 끊어진 다리를 일으켰소. 굶주린 늑대 무리를 내쫓아주기도 하고,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는 협곡을 건너 약초를 캐오기도 했지.”
레나스가 없었더라면 연약한 인간인 그는 젊은 나이에 진작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나는 인간 세상에 잘 섞이지 못했소이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아야 했던 건 그 이유도 있었겠지. 그 가운데 레나스만이 내 유일한 대화상대였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였다오.”
처음에는 지시를 따르는 인형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연인,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뛰어난 지성이 발목을 붙잡았소. 자신을 기만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거든. 레나스가 나를 극진히 보살피고 고민을 들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이유는…… 내가 그 명령을 입력했기 때문이오. 레나스가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몸이 되었으면서도, 그 완벽함이 거꾸로 비틀리기 짝이 없는 내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 같아 괴로웠지.”
그러다가 결국에는 파국의 날이 왔다.
인형에게 영혼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그의 숙원을 들어주기 위해 레나스가 돌이킬 수 없는 혈겁을 일으켰던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몸담았던 그 동네는 소중한 곳이었소. 늙고 괴팍한 연금술사를 언제나 환대해 준 다정한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지.”
하지만 자신이 만든 오토마타가 그들의 목숨을 전부 앗아갔다.
“그 후회야말로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소이다. 그 어떤 속죄로도 등가교환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죄악.”
“……그 대가로 이렇게 감옥에 붙잡혀 있는 것이지 않나.”
“그대의 이야기를 들으니 후회는 더욱 깊어진다오. 내가 만약 레나스를 진작에 정지시켰다면 어땠을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외롭고 싶지 않아 곁에 두는 대신에, 그 로봇청소기를 창고에 던져버린 그대처럼 내 삶에서 치워버렸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 회한의 톱니바퀴에 스스로를 못 박아버린 노인 앞에서 무언가 적당한 말을 찾아내 보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어진 대사라고는 ‘청소를 시작합니다’, ‘청소를 완료합니다’, ‘이물질을 제거해주십시오’의 세 마디밖에 없었던 로봇청소기조차 어린 내 마음의 짐덩이로 남았었다.
그런데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해 온 동반자를 본인의 손으로 정지시킨다고?
그것은 위대한 연금술사뿐 아니라 보통의 인간에게도 몹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사니릭투스의 경우 그로 인해 받은 대가가 실밥 풀린 커텐 자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독했을 뿐이다.
[1분 후 시간정지의 권능이 해제됩니다.]
벨리오나의 회중시계가 곧 작동을 끝낼 것을 예고해왔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원검의 칼자루를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아아.
기원검의 칼자루가 사니릭투스의 복부에 박힌 파편에 반응하며 광휘를 내뿜었다.
“담소의 시간이 끝났다는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그룬덴 사니릭투스.”
그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죄는 내가 짊어지고 갈 터이니 레나스, 그 아이에게 부디 두 번째 기회를 주었으면 하네.”
“당신은 레나스에게 영혼을 주고 싶어하잖아. 하지만 내겐 그런 대단한 권능 같은 건 없어. 앞으로도 생길 것 같지 않고.”
나는 이 감옥의 죄수다.
게임으로 치면 일개 플레이어일 뿐,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아니다.
무에서 영혼을 만들어낸다는 건 세계의 창조주급은 되어야 가능한 기적이다.
“그래도 나는 내 칩을 그대에게 걸었소이다. 결과를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다만 아쉬울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니릭투스는 나를 선택했다.
교도관에게 자살의 도구로 선택받은 용사는,
망설이지 않고 칼자루를 뽑았다.
*
놀랍게도 사니릭투스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켰을 뿐, 쓰러지거나 죽지 않았다.
“안 죽는 거야?”
“아직은 그렇소이다. 하지만 기원검의 파편은 내 욕망을 이뤄주는 대신에 교도관으로서의 모든 권능을 없애버렸소.”
“그 말인즉슨…….”
“난 이제 평범한 노인이 됐다는 거요. 지극히 짧은 수명만이 남은 인간.”
단탈리온이 해주었던 이야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하얀 섬광이 사니릭투스를 데려갔습니다.
그의 수명이 21분 남아있었던 때의 일입니다.
“당신의 수명은 이제 21분 남았다는 건가?”
“그렇소.”
사니릭투스는 속여서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 앞으로 21분 동안 레나스는 내 죽음을 막기 위해서 모든 조치를 취할 테지. 그대에게 버거운 숙제를 주게 되어 미안할 따름이오.”
나는 단탈리온을 펼쳐 방금 들은 말을 확인했다.
- 그렇습니다, 용사님. 오토마타 레나스는 현재 한계출력에 도달한 속도로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제 계산에 의하면 27초 후에 검궁 최상층의 외벽에 당도할 겁니다.
27초라.
내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곳까지 날아오는 데 3분 이상이 걸린 걸 감안하면 무지막지한 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망쳐봤자 소용없겠지?”
- 그렇습니다. 레나스는 용사님에게서 칼자루를 다시 빼앗기 전까진 추격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도망가실 생각도 없으시잖아요?
그렇다.
기원검을 뽑아도 사니릭투스가 21분간 생존할 수 있다는 사태는 고려하지 못했지만 레나스가 이곳으로 날아올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였으니까.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할 문제야.”
나는 단탈리온과 기원검의 칼자루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인 디아볼릭을 꺼내 들었다.
사니릭투스가 물었다.
“나로서는 레나스를 막아설 수 없다네. 내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명제가 그 아이의 최우선 입력 명령이거든. 그대는 무슨 수로 그 아이를 이길 생각인가?”
질문 속에는 분명한 기대감도 섞여 있었다.
자신이 일생에 걸쳐 만들어낸 연금술의 정점을, 눈앞의 죄수가 어떤 공략법으로 상대하려 하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호기심.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 ……그러니 직접 보라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저 멀리 공장 내부가 속절없이 터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두 줄기의 불꽃을 내뿜으며 내게 돌진해오는 단발머리의 소녀.
오토마타 레나스가 일직선으로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만전의 태세를 갖춘 채 레나스가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스킬을 전개했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이식 무영보(無影步)]
일순간 사라진 내 몸은 이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하지만 레나스는 당황하지 않고 사니릭투스 앞에 당도했다.
“레나스야, 저자와 꼭 싸워야 하겠느냐.”
“말을 아끼십시오, 주인님. 지금은 호흡 외에 다른 어떤 행동도 권유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대로 죽길 바란다 해도?”
“네. 지금은 제가 주인님의 의사를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이니까요.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사니릭투스의 예측대로 레나스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연금무장술(鍊金武裝術)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A: 보병 특화형]
레나스가 수검을 꺼내 들었다. 녹색의 안광이 정확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까아아앙!
순식간에 돌진해 들어온 레나스의 수검과 디아볼릭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마피아 보스 칸의 일검보다 훨씬 묵직한 파괴력이 내 몸을 덮쳤고, 나는 속절없이 뒤로 튕겨나가야 했다.
치이이이이익.
부츠가 바닥에 마찰을 일으키며 기나긴 줄을 만들어냈다.
“일격에 뒈질 뻔했네.”
디아볼릭을 들지 않은 손을 털어내며 나는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최초의 습격도, 이번 일격도 레나스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아닐 것이다.
다만 싸움의 여파로 사니릭투스가 다칠 가능성이 두려워 그에게서 나를 멀리 떼어놓을 목적으로 수행한 동작들일 뿐.
그러니 이제부터가 진짜다.
눈앞에서 전투 자세를 취한 레나스가 말을 걸어왔다.
“관객님, 주인님의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있던 그 물건을 되돌려받길 원합니다.”
“내가 거절한다면?”
“관객님의 생명반응을 정지시킨 후 강제로 회수하겠습니다.”
물론, 나는 그녀의 계획에 동참해줄 생각이 없다.
싸워서 이길 생각이었다.
룰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녀의 주인인 사니릭투스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21분 동안 버틴다면 나의 승리.
그러지 못한다면 나의 패배.
디아볼릭에 푸른 검기가 맺혔다.
“덤벼라, 레나스. 주인조차 멈춰 세우지 못하는 최강의 오토마타를 이 자리에서 내가 꺾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