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지금 죽이러 갑니다 (2)
하나는 맞고 둘은 틀렸다는 말을 아스티나는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워둔 건 맞아. 하지만 시비를 걸게 될 쪽은 내가 아니라는 거지.”
나는 무대 위에서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서 있는 레나스를 가리켰다.
“이제부터 내가 만철도시에서 뭔가 일을 하나 벌일 생각인데…… 십중팔구 저 애가 그걸 목숨 걸고 막아설 것 같거든.”
“또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려는 거야?”
“몰랐나 본데 나 화룡도 출신이야. 폭탄을 달고 마그마의 바다에 뛰어든 적도 있어.”
“레나스의 강함은 차원이 다르잖아. 겁나지도 않아?”
사실은 겁이 많이 났다.
천마 류운학과 마녀 일레인을 동시에 속여넘기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순간만큼이나 한 발짝만 잘못 내디디면 끝장이 날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더 편한 길을 찾아서 다음 층으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 돼. 매 층마다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안전한 선택만 고를 순 없으니까.”
“…….”
“물론 우린 이번 4층에서 잃은 게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걸 얻지도 못했어. 제르비어스가 오메가 위프를 되찾은 건 잘된 일이지만 그걸로 만족하면 너무 아쉬운 일이잖아?”
현재 아스티나는 두 자루의 검을 양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본래 그녀의 검이었던 청룡패웅검. 그리고 설공과 류운학, 칸의 손을 거쳐 넘어온 폭류천마검.
“이대로 다음 층으로 가면 폭류천마검은 사라져버릴 거야. 정당한 소유권이 우리에게 없으니까.”
수백의 등반죄수들이 나를 때려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상황도 중대한 문제였다.
“일단 포탈까지 어떻게 가느냐도 풀어야 할 숙제야. 다행히 내가 세운 작전이 성공하기만 하면…… 폭류천마검도, 포탈까지 무사히 탈출하는 것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다행히 필요한 정보는 모두 모였다.
이제 실행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말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는지 아스티나는 실용적인 질문을 했다.
“나는 뭘 하면 되는데?”
“오오, 듬직하잖아. ……간단해. 머지 않은 순간에 내가 갑자기 너희 눈앞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
“사라져? 순간이동?”
“순간이동은 안 쓸 거야. 하지만 너희들한테는 그렇게 느껴지겠지. 만약에 그 순간이 오면 당황하지 말고 레나스의 뒤만 따라오도록 해. 그러면 자연히 뭘 해야 하는지 감이 올 테니까.”
*
“고마워, 레나스. 등반죄수들을 깔끔하게 처리해줘서.”
무대 위에서 레나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관객님께 감사인사를 받아야 할 당위성은 도출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공연할 무대와 표를 끊고 입장한 관객을 불안요소에서 지켜낸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그게 나에겐 큰 도움이 됐거든. 마음의 빚 같은 거야.”
“그렇습니까. 여전히 그런 형이상학적인 개념은 제게 어렵습니다.”
그때, 어딘가에 숨어 있던 단장과 검표원이 헐레벌떡 레나스에게 달려왔다.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레나스야. 노래만 훌륭한 줄 알았더니…… 그런 힘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냐?”
단장의 말에 검표원 또한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말예요. 어쩌면 그 악독한 마피아들이 밤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들 때 우리 레나스가 나섰다면 한 방에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류운학이 푸르가토리움에 붙잡혀 왔을 때 마피아의 보스 칸이 만철도시에 출고되었을 테니, 도시가 밤의 대통령에게 시달린 시간은 자그마치 100년이 넘는다.
하지만 레나스는 이 작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노래를 부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힘을 행사하지 않았다.
“도시를 지키는 건 제게 입력된 명령이 아닙니다.”
냉정하게까지 들리는 레나스의 말에 단장과 검표원은 물론 우리 일행까지도 합죽이가 되었다.
더 이상의 질문을 불허하는 듯한 기색이었기 때문이다.
단장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는 듯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말이다, 극장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래서야 3주 뒤의 정기공연에 지장이 생길 것 같구나. 건설조합에서 인부들을 끌어와야 할 텐데, 지금 도시 전체가 완전히 난리통이니 어째야 할까. 지금까지 한 번도 정기공연이 취소된 적이 없었다만, 이런 시국이니 일단 간판을 내려야 하지 않겠니?”
“아니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레나스가 무대 위에서 사뿐하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착지하지 않고 허공 위에 머물렀는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오토마타의 무릎 뒤 표피가 딸깍 열리더니 로켓 연료를 분사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 안에 박힌 마정석이 다시 한 번 빛을 발산했다.
제르비어스와 아스티나가 긴장했으나 나는 손을 저어 가만히 있으라 권했다.
전투 시의 구동 모습과 미묘하게 뭔가 달랐다.
[연금무장술 연성기능 해금]
[형태변환 F: 입자 수복 특화형]
레나스를 중심으로 어떤 자장(磁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권역에 닿은 잔해들이 두둥실 공중에 떠올랐다.
“다시…… 달라붙고 있어?”
동강 난 좌석들이 말끔히 달라붙었다. 끊어진 바이올린의 현은 다시 팽팽하게 이어졌고, 찢어지고 불태워진 바닥의 카페트들이 멀끔한 형태로 짜여졌다.
그것은 마치 비디오의 ‘뒤로 재생’ 버튼을 눌러 0.5배속으로 되감는 걸 보는 듯했다.
“우와! 신기해. 요술 같아!”
가장 강력한 경지의 요술인 분신술을 구사하면서도 캉이는 레나스의 연금술에 탄복했고,
“불에 탄 흔적도 수복된다고? 엔트로피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고? 복잡한 술식이나 대가로 바치는 제물도 없이? 끄어어, 연금술이 마법보다 뛰어난 건가?”
마녀의 딸로서 당당히 살아온 아스티나는 납득 불가한 경이로운 기술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몇 분 걸리지 않아서 폭탄 투하로 인한 폐허 같았던 극장 내부는 본래의 말쑥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제르비어스, 뭘 하고 있는 거야?”
마왕은 그 큰 덩치로 손가락 마디만 한 나무막대기를 또각또각 부러트리고 있었다.
레나스의 수복 자장 안에 있었기에 막대기는 다시 달라붙었다가 부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엇, 미안. 이거 나름 중독적인데.”
레나스는 ‘그만두십시오’라거나 ‘방해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하는 요청을 해오진 않았다. 다만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제르비어스의 얼굴을 직시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뭔가 찔끔했는지 제르비어스는 곧 막대기를 손에서 놓았다.
그것은 스르륵 날아가 맨 앞 좌석의 팔걸이로 흡수되었다.
“대단해, 레나스. 이런 능력까지 있는 줄 몰랐어.”
“위대하신 저의 주인님께서 저를 오랫동안 연구 과정에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연금술사 그룬덴 사니릭투스가 평생에 걸쳐 일궈낸 연금공학의 결정체가 저 작은 체구에 모두 담겨 있다는 소리였다.
아스티나가 손바닥에 올라간 은빛 머리카락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내가 뜯어낸 머리카락은 되돌아가지 않네? 어째서지?”
“유기체는 연금술의 수복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제 주인님께서는 오토마타로 정점에 오르는 걸 원하셨을 뿐,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연금술을 적용하는 걸 엄격히 금하셨거든요.”
단탈리온이 설명해준 적 있다.
어떤 선을 넘은 연금술사는 결국 오토마타와 호문쿨루스 중 하나로 노선이 결정되게 된다고.
그리고 사니릭투스는 전자에 속한다고 말이다.
레나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주인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오토마타든, 호문쿨루스와 키메라든 어차피 영혼을 담을 수 없는 그릇들이라면 다른 생명체를 희생하지 않아도 만들어낼 수 있는 오토마타가 자신의 성정에 더 맞는 길이라고 하셨지요.”
자신의 주인에 관한 이야기라서일까. 레나스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토록 길게 말하는 것을 처음 보는 우리 일행은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레나스, 그러니까…… 네가 이 감옥의 무기고에 붙잡히기 전에 호문쿨루스를 만난 적 있어?”
“일곱 번 있습니다. 그중 세 번의 경우엔 상대 쪽 연금술사의 호문쿨루스를 사살해야 했습니다.”
“어째서?”
“그 연금술사들의 진리 탐구 방식을 보신 주인님께서 몹시 격분하셨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연금술사들은 전쟁터에서 희생당한 병사들의 사체를 재료로 삼았는데, 그들은 더 빠르고 손쉬운 방법을 택했기 때문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살인, 납치, 감금.
더 뛰어난 호문쿨루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악행을 저질렀던 연금술사들도 존재했다.
사니릭투스는 같은 연금술사로서 그걸 내버려둘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신을 믿지 않는 불신자로서 자신이 정의를 집행해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그렇기에 저에게도 전투와 살상 기능이 탑재된 것입니다. 그 호문쿨루스들을 척살하는 것이 더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인님은 설파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레나스의 화법은 지극히 인형다웠다.
자신에겐 큰 의미가 있는 사니릭투스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무엇무엇을 들었다’, ‘무엇무엇을 기억한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 이야기들의 주어에 정작 레나스는 없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는 어땠지?”
“뭐가 말입니까?”
“네 주인인 사니릭투스의 명령으로 다른 연금술사들을 막아섰을 때 네 기분은 어땠어? 형태와 재질은 달라도 결국 너처럼 인간의 피조물인 호문쿨루스들을 사살했을 때는 무슨 생각이 들었지?”
“질문의 요지를 파악할 수 없군요. 제게 감정을 느끼는 기능은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임무 수행에 불필요한 생각에 프로세스를 낭비하도록 만들어지지도 않았지요.”
“그저 주인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는 건가.”
“네. 그리고 저의 작동 방식에 의문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그런 필요가 발생된 적도 없고요.”
나는 레나스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물었다.
“너는 그룬덴 사니릭투스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따랐다.”
“네.”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고.”
“맞습니다.”
“나는 네가 이곳이 아닌, 진짜 사니릭타운의 모든 인간을 죽였다는 걸 알아. 네 주인에게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는 일념 하에.”
“그랬습니다.”
캉이의 귀가 살짝 처지는 것이 보였다. 주변의 공기가 묵직해졌다는 것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네 주인이 왜 오토마타에 영혼을 만들어내는 데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 장본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
모든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하던 레나스가 이번에는 잠시 뜸을 들였다.
만들어진 이래의 기나긴 시간을 되짚어봐야 했기 때문일까.
“……아니오. 없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그러니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거야.”
그 대가로 이 오토마타의 주인은 감옥에 붙잡혀 왔고, 교도관의 업보를 짊어졌으며, 파천황 르팔타커스 시온에게 자신을 찔러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런데도 너는 모르는구나.
이 모든 것들이 벌어지는 이유들에 대해서 말이야.
궁금해하는 것도 감정이니까.
‘미련하기 짝이 없는 주인과 인형 같으니.’
나는 뒤로 훌쩍 뛰어서 무대와 멀어졌다.
레나스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으나 내 동료들은 느닷없는 움직임에 의아해했다.
인벤토리를 열어서 손을 뻗는다.
“너에게 꼭 알려줄 것이 있어, 레나스.”
“무엇이 말입니까?”
“난 이제부터 검궁의 최상층으로 갈 거다.”
“관객님께선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시든 제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데요.”
“허락이 아니라 통보야.”
인벤토리에 있는 작은 ‘물건’을 빼내 와 손에 쥐었다.
이것을 사용할 일이 앞으로 영원히 없을 줄 알았건만 상황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이 오토마타에게 진짜로 중요한 게 뭔지 가르쳐주고 싶어졌으니까.
“내가 검궁으로 떠나는 이유는 너의 주인을 죽이기 위해서거든.”
“그렇습니까.”
허풍이 아니었다.
내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오토마타 레나스는 극히 짧은 시간에 그것을 간파했다.
콰아아아아앙!
무대 바닥이 박살 나면서 검의 형태로 변한 레나스의 팔이 내 목젖을 찌르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