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38화 (138/300)

#138. 지금 죽이러 갑니다 (1)

레나스의 체구는 작다.

내 가슴팍에 머리가 위치한 정도이니 신장이 겨우 155센티미터 정도 될까.

팔다리도 가냘프기 짝이 없다. 인간 소녀가 저런 체격을 갖고 있었다면 물동이 하나 들어 올리기도 벅차 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객석 통로에서 압박해 들어오고 있는 등반죄수들의 덩치는 용 서너 마리는 손쉽게 때려잡을 듯한 거구들이었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방적인 구도.

“적대반응이 감지됩니다. 다들 돌아가실 생각이 없으신가 보군요. 경고는 무의미하다고 판단, 실력행사로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레나스는 인간이 아니다.

신격에 오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연금술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오토마타다.

에메랄드 같은 눈에서 내뿜어지는 안광이 좌우로 비산했다.

[연금무장술(鍊金武裝術)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A: 보병 특화형]

레나스의 오른손이 철컥이더니 날카로운 검의 형태로 변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이로운 출력을 실감한 등반죄수들이 무대 위로 도약했다.

“이 빌어먹을 인형!”

“가장 작은 부품 단위로 해체해주마!”

1 대 57의 대결이 시작됐다.

등반죄수들은 각자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전사들이었다. 서로가 경쟁자이기에 연계 공격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모두가 독자적인 수를 펼쳤으나 그 자체로 위력적인 합공이 되었다.

까앙! 깡!

하지만 레나스는 우아하게 춤을 추듯 등반죄수들의 패도적인 공격을 받아냈다.

휘둘러지는 검을 빗겨내고,

찔러오는 창을 짓밟은 후,

덮쳐오는 도끼는 튕겨낸다.

“커허어어억!”

어떤 등반죄수도 두 번 이상의 공격을 레나스에게 펼쳐내지 못했다.

검으로 변환된 오토마타의 팔에 공격이 가로막히면 섬전 같은 주먹이나 발차기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아앙!

넋을 잃고 구경하고 있던 제르비어스의 망토가 거칠게 펄럭였다.

녀석으로부터 불과 3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좌석에 한 등반죄수가 기역 자로 처박힌 탓이었다.

그 등반죄수의 오른쪽 대흉근은 발자국 모양으로 움푹 패어 있었다.

“여긴 너무 가깝잖아? 2층으로 올라가는 게 낫겠어.”

아스티나와 캉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동료들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천마어기행공으로 날아올랐다.

곧 2층 발코니의 명당자리에 앉으니 레나스와 등반죄수들의 치열한 격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슈바인, 이렇게 될 걸 어떻게 예상한 거야?”

“맞어. 레나스 누나가 저렇게 강한 줄 형아는 알고 있었어?”

젠체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으나 나는 솔직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나도 몰랐어. 정확히 말하면 뭔가를 확신했다기보단, 확인하고 싶었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 만철도시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마피아나 검궁 기사단의 뛰어난 실력을 체감하면 할수록 비어 있는 퍼즐의 존재감이 커져 갔거든.”

도시를 지탱하는 기술의 수준이 이토록이나 뛰어나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시민들의 삶이 그렇게나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다면…….

“실제의 사니릭타운을 하룻밤 사이에 궤멸시킨 어떤 자동인형은 대체 얼마나 뛰어났던 걸까.”

오페라 하우스의 VIP석에서 우리는 바로 그걸 확인하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 레나스의 전투법을 면밀히 살피던 아스티나가 감탄했다.

“어느 방향에서 공격이 와도 미리 알아채고 있어.”

“기계처럼 정확하게 반응하고 있지? 하긴, 기계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기계라서 가능한 거겠지만.”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 무공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야.”

나는 만전불패의 체술을 어느덧 Lv. 6까지 달성해놓고 있었다.

그래서 등반죄수들이 공격을 결심하는 순간과 투로를 꽤 정확한 수준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나스의 전황파악 능력은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예상이나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예언에 가까울 만큼.

적수가 발을 내딛기도 전에 무기가 출수되는 지점에 미리 반격의 수를 심어놓고 응전한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공포에 질릴 만한 대응이다. 자신의 호흡, 습관까지도 모두 파악당한 채 조종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효율적이야. 소름 끼칠 정도로.”

AI와 대국하는 바둑기사가 있다고 치자.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AI가 두는 모든 수에 압도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바둑판에 첫 돌을 놓은 순간 ‘당신은 그걸로 패배하게 됐습니다’라고 선언하는 AI를 마주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그 선언이 현실로 변하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바둑기사가 느끼게 되는 공포와 절망은 얼마나 아득하겠는가.

레나스를 공격하는 등반죄수들은 바로 그것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근접전에선 답이 없다. 원거리에서 포격해!”

등반죄수들은 앞서 뛰쳐나간 라이벌들이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한 방 컷’을 당하는 걸 보고서도 계속 덤벼들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무대 중앙에 레나스를 놔둔 채 둥그렇게 포위진을 형성한 등반죄수들이 힘을 끌어올렸다. 각자가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을 펼치려는 것이다. 그것이 장풍이든 기공탄이든, 마법화살이든.

이번에도 레나스의 반응은 재빨랐다.

그들이 거리를 벌리는 순간 왼발을 살짝 웅크리더니 질겁할 만한 가속력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보이지 않았어.’

레나스의 궤적을 놓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과녁을 잃어버린 등반죄수들이 허둥지둥할 때,

구미호의 뛰어난 동체시력만이 그 오토마타의 위치를 발견해냈다.

“형아! 천장이야!”

무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수십 개의 원형 조명.

그중 한 개의 조명이 좌우로 빛줄기를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레나스가 그 위에 올라타 있기 때문이다.

[연금무장술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B: 저격 특화형]

이번엔 레나스의 왼팔이 형태를 바꾸었다.

그것은 신체의 말단으로 갈수록 직경이 커지는 대포였다.

어느새 검의 형태에서 원래의 손으로 돌아온 레나스의 오른손이 포신을 움켜쥐자, 푸른색 레이저가 수십 갈래로 뻗어 나갔다.

프즈우우우우웅!

순간, 극장 풍경은 달궈진 프라이팬에 메뚜기를 던져넣은 꼴이 되었다. 등반죄수들이 레이저에 꿰뚫리지 않기 위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레나스의 푸른 레이저는 마치 유도탄처럼 포착한 상대를 쫓아가 끝내 급소를 꿰뚫었다.

“끄아아아아악!”

“커허어억!”

곧 객석이 무지갯빛 피안개로 자욱해졌다.

각기 다른 차원에서 끌려온 등반죄수들의 종족은 다양했다. 때문에 피의 색깔마저 다채로웠던 것이다.

꾸우우웅.

그런 몽환적이고도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만든 장본인이 오케스트라석에 착지했다.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땅을 짚은 레나스 주변으로 우그러진 색소폰과 끊어진 첼로의 현 등이 튀어 올랐다.

여전히 움직이는 등반죄수들이 열댓 명 남아 있었다.

[연금무장술 살상기능 해금]

[형태변환 C: 중거리 특화형]

돌진하는 레나스의 양 주먹은 어느새 도리깨처럼 변해 있었다.

‘모닝스타? 아니야. 체인 모닝스타(Chain Morningstar)다.’

철구로 바뀐 주먹이 무자비한 궤적을 그리며 사슬과 함께 뛰쳐나왔다.

지구의 만화영화에서 봐온 모든 인간형 전투로봇들의 최종로망인 로켓 펀치처럼 등반죄수들을 두들기는 레나스였다.

“이 도시에 어떻게 이런 괴물이…… 끄악!”

“젠장! 상대가 안 돼. 일단 도망친다.”

등반죄수들의 절반 이상이 궤멸당한 이후부터 그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레나스는 통로 중간에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목적은 애초에 ‘불법 입장객의 퇴거’였으므로 전의를 잃고 달아나는 상대를 절멸시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의식을 잃은 분들은 제가 직접 퇴장시키겠습니다.”

살상기능을 집어넣은 레나스의 얼굴은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곳에 처박힌 등반죄수들부터 목덜미를 붙잡아 끌어냈다. 난동을 피우는 주취자를 끌어내는 청소부처럼.

육중한 갑옷을 걸친 쿠자가르트의 무게는 200킬로그램은 우습게 넘을 터.

하지만 레나스는 그것이 재활용 쓰레기봉투인 듯 질질 끌고 갔다. 전투에 돌입하지 않아도 괴력은 상시발동되는 모양이었다.

“대체 내가 뭘 본 거야.”

폭렬마왕 제르비어스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용사야, 내가 감옥에 들어온 이래…… 지금 본 것이 두 번째로 충격적이다.”

“그래. 네겐 그 어떤 사건도 첫 번째를 이기긴 힘들겠지.”

녀석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순간은 반려묘였던 ‘밍밍이’가 1층 교도관의 화신체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밍밍이와 깊은 감정적 유대가 없었던 나는 레나스의 신들린 듯한 ‘원맨쇼’를 첫 번째로 꼽는 데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다.

“아스티나, 너의 소감은 어때?”

“한 국가와 전쟁을 벌여도 물러설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일인군단(一人軍團).”

저토록 가녀린 소녀에게 붙여지기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거창한 표현이었으나 아스티나의 말에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쟤랑 내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진심이야?”

“나와 가장 대련을 많이 해본 사람이 너랑 제르비어스잖아.”

아스티나는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을 점치는 마법사의 표정이 아니었다. 어떻게 대답하면 내가 상심하지 않을지 신중하게 표현을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비관적이야?”

“단순히 누가 세냐의 문제를 넘어선 것 같아. 우리가 방금 본 건 대결이나 전투라기보단…… 청소나 박멸이라고 해야 하지 않아?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슈바인, 네가 레나스를 제압하는 그림은 전혀 그려지지 않는걸?”

“내가 지금껏 감옥에서 꺾어온 상대들의 절반 이상은 다 나보다 강한 자들이었는데도?”

내 볼멘 항의에 대한 대답은 제르비어스의 입에서 나왔다.

“그것은 아론다이트 못지않게 위협적인 너의 세 치 혓바닥 덕분 아니었겠냐. 하지만 저 소녀는 인간이 아니야. 일부러 화를 돋을 수도, 거꾸로 나태하게 방심시킬 수도 없는 자동인형이라고.”

캉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형아, 그런데 왜 누나랑 싸우려는 건데?”

“아니야. 누가 싸운다는 거야. 그냥 그런 경우가 생겼을 때 어떻게 될지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자 캉이의 찡그린 눈썹이 조금 완화되었다.

“아, 그런 거지? 형아가 싸울 때 내가 변신해서 지켜주기로 했잖아. 그런데…… 솔직히 레나스 누나랑은 싸우기 싫어.”

꼬마다운 솔직한 감정이었다.

나는 캉이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겨주었다.

“알았어, 인마. 널 앞세울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마라.”

그렇게 떠드는 사이 어느덧 레나스는 모든 등반죄수들을 극장 밖으로 내쫓았는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정확히 우리가 있는 발코니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연이 끝났나 봐. 그럼 저번처럼 우리의 프리마돈나를 만나러 내려가 볼까?”

제르비어스와 캉이가 먼저 1층으로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스티나는 뛰어내리지 않고 내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왜 그래?”

“방금 캉이한테 한 말의 진짜 의미가 뭐야?”

“캉이를 앞세우지 않겠다고 한 거?”

“그래. 그건 ‘레나스와 싸울 때’라는 앞말을 생략한 거 아냐?”

천마와 마녀 사이에서 나온 딸이라서일까.

아스티나는 가끔 내가 잘 갈무리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짚고 넘어올 때가 있었다.

“대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야? 무슨 황당한 계획이길래 저 무시무시한 오토마타에게 시비를 걸려는 거고?”

나는 아스티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는 맞고 둘은 틀렸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