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37화 (137/300)

#137. 무대의 주인공 (3)

오페라 하우스의 검표원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고로 훌륭한 도시는 철골이나 벽돌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강철이 도시의 뼈대이고 벽돌이 도시의 살결이라면, 마지막으로 음악이 혈관처럼 흘러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검표원은 오페라 하우스가 만철도시에서 유일하게 문화를 지켜내고 있는 곳이라는 믿음, 그 최전방에 자신이 우뚝 서 있다는 것에 대한 고양감에 늘 가득 차 있었다.

“다, 단장님. 살려주십시오.”

매표소의 작은 박스 안에서 검표원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도로를 가득 메운 하얀 고양이의 파도가 곧 오페라 하우스의 거리를 잠식하려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떡하나, 이제 테이프가 다 떨어졌다!”

쩌적쩌적.

얇은 유리창은 고양이 인형이 바깥에서 짓누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한 채 금이 가고 있었다.

“위대한 연금술사시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검표원과 함께 매표소 박스 안에서 고군분투하던 단장이 탄식을 내뱉었다. 불꽃이 그려진 로브를 입은 백발의 오토마타는 검표원의 손을 붙잡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진짜 연금술사가 이곳에 있었더라면 도시를 집어삼키는 이 미증유의 재난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장이 입은 화려한 로브는 진짜 연금술사의 그것이 아니었으며, 자신 역시 단순히 무대 위에서 정해진 대사를 읊는 배우에 불과했다.

그러니 기적을 일으킨 것은 자신이 아니라 의외의 손님들이었다.

[리버스 그래비티]

하늘에 거대한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고양이 인형들이 도로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연히 박살 나기 직전이었던 매표소 박스의 유리창 역시 가까스로 불운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 저분들은?”

단장과 검표원은 거의 동시에 기적을 일으킨 자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며칠 전 오페라 공연장을 방문했던 층장과 그 동료들이었다.

새로운 층장이 마피아의 보스를 때려잡았다는 소문은 그들도 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분들에게 자신들의 공연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에 콧대가 높아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한 번 이곳에 방문할 것이라고는, 게다가 이렇게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희가 다시 왔어요.”

그때와 달리 층장은 은백색의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었다.

“층장 님이 아니십니까. 다음 층으로 올라간다고 그때 작별인사를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었죠. 그런데 이 도시에는 제 예상보다 구경거리가 많이 있더라고요, 글쎄.”

층장 슈바인 스트링거가 너스레를 떨며 단장 옆에 있는 검표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는데, 뭐 하나만 요청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흘러내리는 모자를 고쳐 쓴 검표원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이 오페라 하우스의 모든 좌석을 예약하고 싶습니다.”

*

“이제 막 결계를 완성했어. 적어도 서너 시간은 인형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아줄 순 있을 거야.”

“고생했어.”

나는 인형들의 파도를 튕겨내는 반구형의 막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확인하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진을 거두는 아스티나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아직 악마와의 내기에서 소진된 마력이 회복되기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아! 이제 우리가 극장을 갖는 거야?”

다시 인간 형태로 돌아온 캉이의 품에는 주황색 공들이 잔뜩 들어 있는 통이 안겨있었다.

우리는 방금 공을 뽑아서 좌석을 선택하는 대신, 모든 좌석을 통째로 대여한 것이다.

“가지는 게 아니고 잠깐 빌리는 거야.”

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 있는 단장과 검표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있으면 위험합니다. 극장 안으로 안내해 주실래요?”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공연이 있는 날이 아닌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좌석을 빌려드리는 것도 가능했지만…….”

“괜찮습니다.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니까요.”

오페라 하우스의 회전문에 들어서며 나는 말했다.

“배우를 만나기 위해서 온 거거든요.”

객석은 어둠과 적막에 감싸여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열기 때문에 그 중간에는 이렇게 스산한 공간이 되어버리는 모양이다.

“용사야, 이제 우린 뭘 하면 되지?”

제르비어스가 여전히 출입구 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오늘은 이 극장 전체를 빌린 거니까 아무 곳에나 편히 앉아.”

솔선수범하듯이 나는 1층 맨 앞 좌석의 중앙에 거의 드러눕듯이 앉으며 말했다.

“그게 될 리가 없잖냐. 등반 죄수들 중에는 뛰어난 무공을 가진 자들이 태반이었다. 너처럼 기감을 펼쳐서 우리를 찾아내려는 녀석들이 반드시 나올 거라고. 그런데 여기에서, 그냥 앉아 있으라고?”

내 부탁 때문에 결계를 만들어주었으나 그 의도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는 아스티나도 마왕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 여기는 분명 좋은 추억이 담긴 장소지만 피난처로서는 별 볼 일 없는 곳이야. 고지대의 요새도 아니고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개방된 장소잖아. 너무 위험해.”

의문을 가진 것은 우리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무대의 장막을 걷고 걸어 나온 오토마타 소녀 또한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란이 느껴져 나와 봤습니다만…… 그때의 그 관객님 아니신가요?”

“그래. 오랜만이야, 레나스.”

“제 기억으로는 저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나흘하고도 일곱 시간 만인데요. 오랜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적절치 못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시간 감각으로만 단어를 고르진 않거든. 작별한 지 오래되지 않았어도 반가움이 너무 크면 ‘오랜만’이란 표현을 쓰기도 해.”

“그렇습니까. 기억해 두겠습니다.”

단발머리의 오토마타는 우리 일행을 주욱 둘러보더니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일로 방문하신 건가요? 다음 회차인 726,492회 공연이 시작되려면 앞으로 3주 이상이나 남았는걸요.”

“그러면 기다리지 뭐.”

레나스는 이런 아리송한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복도에 서 있는 단장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그 역시 어깨를 으쓱하기만 할 뿐 레나스에게 뾰족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

“공연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뭘 하고 있어, 레나스?”

“대기실에 앉아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댄서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 모두가 그리 하고 있죠.”

“따로 연습은 안 해도 되는 거야?”

“네. 연습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컨디션에 따른 실력 변화가 없는 오토마타인 탓일까. 나는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레나스가 노래 연습을 하지 않는 이유.

그것은 이 공연 자체가 그녀에겐 ‘연습’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주인인 연금술사 그룬덴 사니릭투스.

그에게 들려줄 ‘자장가’를 연습하기 위한 장소.

“이 오페라 하우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봐도 될까?”

“처음에는 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시의 시민들이 제 노래를 듣고 조금씩 몰려들었죠. 그러다 길바닥에 앉아 노래를 기다리던 오토마타들 중에서 누군가 편한 장소를 만들어내자는 아이디어를 내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시작은 프리마돈나 혼자의 단독 무대였다. 무대가 선행되었고 객석이 그 뒤를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정상적인 극장이 생기는 순서와는 정반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출입구 쪽에서 거대한 쇳덩어리가 무대 아래의 오케스트라석을 향해 날아왔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극장의 출입문이 그랜드 피아노를 박살 내며 나뒹굴었다.

“결계를 뚫고 들어왔어!”

아스티나와 제르비어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곳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구나, 층장!”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오메가 위프를 허리춤에서 풀어낸 제르비어스가 으르렁거렸다.

“등반죄수들이다. 그때 지하 무기고에서 우리와 싸웠던 녀석들도 보이는군.”

저벅저벅저벅.

셀 수 없이 많은 오토마타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중앙 통로에서 스물하나.

좌측 통로에서 열일곱.

우측 통로에서 열아홉.

총 57명의 등반죄수들이 내가 있는 장소를 감지하고 몰려든 것이다.

한 등반죄수가 무대 앞을 가로막고 섰다.

“일어나지도 않는군. 체념해서 층장의 열쇠도 포기할 생각인가?”

눈앞의 등반죄수는 우리가 첫 번째로 싸웠던 황금의 성전사 쿠자가르트였다. 네 자루로 변환되는 그의 특대검이 나를 가리켰다.

“열쇠를 내놓아라, 슈바인 스트링거.”

“열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말이야…….”

나는 팔짱을 낀 채 발끝을 까닥거렸다.

“너희. 여기에 표는 끊고 들어왔냐?”

“표?”

단어의 뜻을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쿠자가르트는 이런 상황에서 왜 딴청을 피우는지를 지적한 것이다.

대답은 그의 등 뒤인 무대에서 들려왔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이 극장의 구조 자체가 무대에 선 배우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레나스의 아름다운 음성은 아무런 기계 장치 없이도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표를 끊고 들어오지 않으시면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다른 관객분들께 방해되니 어서 나가주십시오.”

쿠자가르트를 비롯한 등반죄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로 향했다.

천천히 무대 끝으로 걸어온 단발머리의 소녀.

그 무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강고한 죄수들을 코웃음 치게 만들었다.

쿠자가르트가 훌쩍 뛰어 무대 위에 올랐다.

“오토마타여, 네깟 인형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저는 인형이 맞습니다만 말씀하신 이 ‘자리’는 배우들만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내려가주시지 않겠습니까?”

“무기도 없이 빈손으로 만들어진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감히 내게 명령을 해?”

쿠자가르트의 특대검이 번개처럼 뽑아 나왔다.

그 검의 끄트머리는 레나스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추었고 프리마돈나의 단발머리가 풍압에 들썩였다.

“혀, 형아. 구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캉이는 내 옆좌석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구해줘? 내가? 저 애를?”

다음 순간 무대 중앙에서 무언가가 번쩍하더니 뒤쪽 객석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증폭된 타격음은 그 뒤에 객석을 덮쳤다.

꽈아아아앙!

무대 위에는 이제 단 한 명만이 남아 있었고,

그 주인공은 평범하게 주먹을 뻗은 레나스였다.

“스스로 퇴장하지 않으시겠다면 제게 입력된 명령에 따라 강제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즈우우우우웅.

레나스의 금속 피부가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피부의 색깔이 달라진 게 아니다.

그녀의 몸속에 박혀 있는 마정석의 믿을 수 없는 순도와 잠재력이 인형의 표면을 뚫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끄으…….”

주먹 한 방에 객석에 처박힌 쿠자가르트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넷이 전력을 다해 싸워서 겨우 쓰러트렸던 성전사를 일격에 잠재운 레나스의 위용에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히 이 만철도시에는 주인공이 있다.

모든 오토마타들이 이 감옥 안에서 재현된 ‘인형’들이다.

그런데 단 한 명.

감옥 바깥의 원래 세상에서 빚어진 인형이 있었다.

- 레나스, 너에게도 무기가 있어?

- 아니오. 저는 무기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오토마타 레나스에겐 아무런 무기가 없다.

‘그녀 자체’가 이 만철도시 최강의 무기이니까.

짝짝짝.

잔뜩 긴장한 등반죄수들과,

경악한 내 동료들 사이에서 오직 나만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만철도시란 무대의 주인공이 화려한 등장을 마친 것에 감격하면서 말이다.

“즐길 준비나 해. 이제 진짜 제대로 된 공연이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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