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등가교환 (2)
[보너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보너스 퀘스트 #2. ‘인형 뽑기’]
[용사는 4층 만철도시의 지하 무기고에서 고대종 악마의 복사본과 마주쳤습니다. 이곳에서 용사가 원하는 무기의 소유권을 획득하기 위해선 악마와의 내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 등반죄수의 입장에서 탐이 날 수밖에 없는 무기를 상품으로 내거는 이 악마와의 내기는 승리조건이 극도로 까다롭습니다.
지금 용사는 천마 류운학과 대등한 승부를 펼칠 정도의 무력과 드래곤하트 플레이트, 디아볼릭을 다룰 수 있을 만큼 높은 스탯을 획득한 상태입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극복할 자신이 없다면 여기서 물러나십시오.]
[기한: 없음]
[보상: 무기고의 전 품목 중에서 원하는 무기 2개의 소유권]
[실패 시: 용사 자신을 포함한 등반대 4인의 영혼 상실]
두 번째 보너스 퀘스트.
결코 짧지 않은 설명을 후루룩 읽은 나는 곧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교도관장이 이렇게 간곡히 말리는 경우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천마 설공의 출몰을 예고했던 페널티 퀘스트.
삼월초원의 모든 죄수들이 전력을 쥐어짜내 가까스로 막아냈던 8층의 죄수 설공.
즉, 악마와의 내기가 그 설공을 상대하는 일에 못지않은 난이도를 갖고 있다는 뜻.
“왜 그러는가, 등반죄수여. 이제 와 덜컥 겁이 난 모양이지?”
사슬에 묶인 악마의 도발이 날아왔다.
하지만 평소처럼 이죽거리거나 얄밉게 받아쳐줄 수가 없었다.
이 내기에서 패배했을 때의 페널티가 너무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졌을 경우엔 우리의 영혼을 빼앗기게 되는 모양이야.”
지금까지 나는 어떤 퀘스트에서도 물러선 적이 없었다. 이 감옥 안에서도, 감옥 밖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동료들의 영혼까지 볼모로 잡힌다면 그건 이야기가 다르다. 내 무모한 도전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어이없는 소리 하지 마.”
아스티나 류의 목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함께 층을 오르기로 결정하면서 우리는 운명공동체가 된 거야.”
분명 그랬다.
나는 달밤에 잠긴 초원에서 아스티나에게 약속했었다.
내가 너의 조커가 될 테니 나를 믿고 베팅해라.
“게다가 승리하면 저 시커먼 놈한테 영혼을 빼앗길 일도 없는 거잖아?”
허리춤의 오메가 위프를 어루만지는 제르비어스 폰타인도 마찬가지였다.
“용사야, 너희들은 오메가 위프를 되찾아주는 싸움에서 함께 목숨을 걸어주지 않았나. 긍지 높은 폭렬마왕은 누군가에게 진 빚을 잊지 않아.”
그러니 앞만 보고 가라며,
마왕은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형아. 위험한 순간이 오면 내가 아홉 개의 꼬리로 막아줄 테니까.”
내 허리춤까지 오지 않는 캉이의 말이었다.
기특한 자식. 누가 누굴 지켜준다는 거야.
“너희들 모두 짠 거야? 약속이나 한 듯이 낯간지러운 말들을 내뱉기는.”
내가 머뭇거리자 아스티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등반대의 리더는 처음부터 너였어. 그러니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군말 없이 네 판단에 따를 거야. 반대로 너무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어서 내기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치열하게 심사숙고했다.
분명히 영혼을 걸고 하는 내기라는 건 위험도가 너무 크다. 게다가 저 악마 녀석이 공평한 조건에서 내기에 임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빈손으로 지상으로 돌아가 다음 층, 그다음 층으로 등반을 계속했을 때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겠는가.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 결심했어. 다들 믿어줘서 고마워.”
악마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손을 올려놓은 다음 선언했다.
“내기에 응하겠다. 단, 우리에게 정확한 룰을 알려주는 것이 조건이야.”
악마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설명했다.
“그거야 당연하겠지. 내기의 룰은 간단하다. 너희 중 한 명이 나와서 그 레버를 조작해 인형을 뽑게 될 거다. 제한 시간은 한 게임당 30초. 인형 하나를 성공적으로 뽑을 때마다 점수가 쌓여간다.”
“폭류천마검이 영혼 33개의 가치가 있다고 했지?”
“그렇다. 그러니 너희가 33번째 인형을 뽑는 데 성공하는 순간 승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레버를 조작하는 도전자가 인형을 뽑는 데 실패한다면?”
악마의 입술이 음흉하게 일그러졌다.
“도전자는 영혼을 빼앗기고 그 기계 안에 갇히게 된다. 내 설명에 거짓이나 속임수는 없다. 아주 심플한 룰이지.”
“우리에게 총 4번의 목숨이 있다고 해석해도 되나?”
“영리하군. 그렇다. 본래 나를 찾아오는 등반죄수는 언제나 한 명이었거늘, 이번에는 특별한 사례로 기록되겠어. 하지만 환영이다. 초월자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너, 중첩된 시간선을 표류했던 저 여자, 나와 동류로 붙잡혀온 마왕, 게다가 아직 성장 중이긴 하나 신화 속 환수와 경쟁할 수 있는 꼬마까지.”
악마는 진수성찬을 눈앞에 둔 미식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이 내기를 시작한 이래 가장 탐나는 제물들이 걸어들어왔다. 솔직히 흥분을 감추기가 어렵군.”
“그 웃음이 쏙 들어가게 해 주마.”
나는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고 두 개의 레버를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용사야, 역시 네가 조작하는 거냐?”
“그래야지. 우리 중에서 기계를 조작하는 실력은 내가 가장 뛰어나니까.”
분명 며칠 전의 액세서리 숍에서 조작했던 인형 뽑기 기계와 정확히 같은 질감에 같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긴장감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1층 횡단보도 위를 일직선으로 걸어가는 것과 100층 빌딩 옥상의 난간을 일직선으로 걸어가는 것의 차이점이랄까.
실패하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압박감이 호흡을 가쁘게 하고, 손가락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평정심을 유지하자. 식은땀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다행인 점은 기계 안에 들어있는 인형의 숫자가 수백 개를 훨씬 웃돈다는 점이었다.
특정 인형을 골라서 뽑아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다.
즉, 한 번의 시도에 하나의 인형을 ‘확실하게’ 꺼내기만 한다면 영혼을 잃을 일은 없다.
인형 더미에서 큼지막한 황금색 투구를 쓴 인형을 주시하며 레버를 밀었다.
레버를 중립으로 놓자마자 멈추는 게 아니다.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정지하는 것을 계산해야 한다.
그렇게 Y축으로 한 번, X축으로 한 번 레버를 조작하자 강철 집게가 스르륵 밑으로 내려갔다.
덥썩.
집게가 인형의 투구를 정확하게 붙잡는 데 성공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액세서리 숍의 인형 뽑기 기계에서는 이 단계에서부터 긴장감이 더욱 커지는 구조였다. 벽면에서 막대가 튀어나와 인형을 떨어트리는 바람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아스티나가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도 바로 그 방해 시스템 탓이었다.
하지만 악마가 만들어낸 기계에선 인형이 배출구까지 운반되는 과정을 방해하는 그 어떤 장치도 등장하지 않았다.
“형아! 잘했어.”
등 뒤에서 캉이가 방방 뛰었으나 나는 웃지 못했다.
쉬워도 너무 쉽다.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찰캉.
강철 집게가 힘을 풀자 인형이 기울어진 미끄럼틀을 타듯 배출구로 빠져나왔다.
“훌륭한 솜씨다, 등반죄수여.”
악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
보란 듯이 첫 번째 시도에 성공했는데도 전혀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불길한 예감이 더욱 강해지던 찰나,
슈아아아아악.
지면으로부터 3미터 정도 떨어진 허공에 불길한 원형 포탈이 생겨났다.
거기에서 떨어진 것은 황금색 투구와 견갑을 걸친 거구의 기사였다.
“물러나!”
나는 디아볼릭을 뽑아 들며 동료들에게 외쳤다. 기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강력한 힘뿐만이 아니었다.
수천 년을 항아리에서 썩은 것 같은 독기.
우리를 향한 지독한 살기였다.
악마가 턱을 긁적였다.
“쿠자가르트가 나왔나. 꽤 뛰어난 녀석이지. 오랜만의 내기라서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데…… 어쩌면 금방 끝이 날지도 모르겠어.”
착지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던 기사, 쿠자가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우리 중 최장신인 제르비어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신장이 압도적이었다.
“적.은.네.마.리.인.가.”
“그래. 저놈들을 죽이면 네 영혼 할당량 4개가 차감된다.”
쿠자가르트가 악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부.디.나.의.무.기.를.”
악마가 손가락을 튕기자 유리상자 중 하나가 박살나더니 용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특대검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콰직.
특대검이 쿠자가르트와 우리 사이의 지면에 박혔다.
해방된 무기의 칼자루를 그 주인이 가볍게 움켜쥐었다.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병장기를 어깨에 걸치는 자연스러운 동작만으로도 쿠자가르트의 용력을 알 수 있었다.
“슈바인, 저 사람…….”
“그래, 수갑을 차고 있어.”
바짝 긴장한 채 그를 노려보고 있자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눈동자를 간지럽혔다.
용사의 심안이 발동되려 하는 것이다.
[이름: 쿠자가르트]
[별호: 황금의 성전사]
[종족: 인간], [클래스: 팔라딘]
[HP: ??,???], [MP: 7,300], [근력: 950], [민첩: 620]
[형량: 1,329년]
막강한 스탯과 그에 걸맞은 형량.
느껴지는 기운을 놓고 보면 어쩌면 천마 류운학보다 강한 죄수다.
설공의 본체나 뇌신 지드만큼은 아니지만 절대로 평범한 죄수가 아니다.
“덤.벼.라.나.의.내.기.상.대.들.이.여.”
쿠자가르트가 특대검으로 돌격 자세를 취하며 선언했다.
“너는 등반죄수인가?”
“그.렇.다.멈.춰.진.내.등.반.을.이.어.가.려.면.너.희.를.쓰.러.트.리.는.수.밖.에.”
흉맹한 기세가 그의 투구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가 시전한 첫 번째 공격은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쐐애애애액!
특대검을 나에게 집어던진 것이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삼식 살신참]
다행히 나 또한 비천성검이란 필살기가 있어서 이런 식의 변칙 공격엔 익숙했다.
S급 마검 디아볼릭과 쿠자가르트의 특대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그러자 튕겨 나가야 할 특대검이 다음 순간 네 자루의 검으로 분리되더니 더욱 빨라진 속도로 나를 노렸다.
“치잇!”
반격을 포기하고 무영보를 시전해 회피해내자 제르비어스의 오메가 위프가 쿠자가르트의 등을 후려쳤다.
쩌어어어엉!
한참을 날아가던 쿠자가르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도 완벽한 낙법으로 바닥을 구르다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다.
그가 손을 뻗자 네 자루로 나뉘어 있던 무기가 다시 하나의 특대검으로 합쳐지더니 그의 손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어딜!”
특대검을 바닥에 내리찍은 것은 어느새 여우화를 마친 캉이의 앞발이었다. 캉이의 등에 올라타 있던 아스티나가 뛰어오르며 쿠자가르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슈바인! 제르비어스!”
“지금 가고 있어!”
캉이가 육중한 체중으로 특대검을 짓누르고 있는 동안 우리 셋은 쉴 새 없이 그를 몰아쳤다.
“훌.륭.한.연.계.다.”
무기가 없는 맨손 싸움으로도 쿠자가르트는 강했다. 오메가 위프를 붙잡더니 제르비어스를 붕 떠오르게 만들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돌격을 해오질 않나, 아스티나의 포스 필드를 박치기로 깨부수질 않나,
내 용사전용기 축공탄에 턱이 돌아가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등.가.교.환.이.다.”
무공 사자후에 버금가는 포효를 내지르며 쿠자가르트가 주먹 한 방으로 구미호 상태의 캉이를 하늘로 띄워 올렸다.
그리고 바닥에서 특대검을 주워 올린 쿠자가르트가 강렬한 검풍을 일으켰다.
“무.기.를.탐.하.는.자.여.영.혼.을.뱉.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