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등가교환 (1)
시야에 닿는 모든 곳에 무기가 있었다.
하나의 칼자루에 세 개의 검신이 달린 독특한 검에서부터 회전하는 칼날이 달린 방패, 흉흉한 독기를 내뿜는 단검 등 각양각색의 무기가 허공에 진열돼 있었다.
무기들은 정육면체의 유리상자 안에 들어있었는데, 보통 한 상자당 무기가 서른 자루가 넘었다. 게다가 거인이 사용하는 것 같은 초대형 병장기 같은 경우는 한 자루가 상자 하나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상자들 옆엔 스스로 빛을 내뿜는 마정석이 일정 간격을 두고 떠 있었다.
전설 속 무기들의 백화점.
그게 내가 받은 인상이었다.
“용사야, 마왕성의 무기고도 자랑할 만한 규모라고 생각했거늘 이곳에 비하면 잡화점 수준도 안 되겠다. 네가 있던 세계에선 이런 걸 본 적이 있냐.”
중세 문명 수준의 세계에서 마왕으로 군림하던 제르비어스가 내게 물었다. 녀석은 뭔가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하면 이렇게 확인받고 싶어했다.
“아니. 지구는 이런 냉병기 대신 화기가 발달했지만…… 그중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무기 창고는 들어본 적이 없어.”
게다가 단순한 쇠붙이가 아니었다.
풀이 죽은 듯이 귀가 내려온 캉이가 도리질을 쳤다.
“여기, 냄새가 너무 안 좋아. 캉이가 싫어하는 것들이 잔뜩 섞여 있어. 히잉.”
우리를 안내하던 오토마타 암스트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층장 님의 꼬마 친구분께서는 후각이 대단하시군요. 유리벽 안에 들어가 있다고는 하나 이곳의 무기들에는 모두 학살과 살육의 흔적들을 증거하는 물건들일 테니까요.”
캉이는 대수림에 있을 때부터 피비린내를 싫어했다.
“오토마타의 경우는 어때? 너희도 냄새를 맡을 수 있나?”
“그러믄요. 수만 개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후각 센서가 있지요. 만철도시에서 요리사들을 만나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구에 있었을 때 냄새를 맡는 로봇이 한창 개발단계에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화재현장에 투입되는 소방 로봇이었다던가.
하지만 이 만철도시를 거니는 오토마타들은 그것에 비할 수 없는 차원의 자동인형들이었다.
지구의 문명이 계속 발전한다 하더라도 100년 안에는 이런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았다.
특이점이라는 게 온다 하더라도…… 지구의 과학자들이 마법이나 무공을 사용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혼자만의 힘으로 이런 오토마타들을 설계하고 만들어냈다는 연금술사 그룬덴 사니릭투스는 얼마나 대단한 천재였던 걸까.
그 정도면 아인슈타인과 테슬라, 구텐베르크를 합친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암스트롱. 사니릭투스는 이 감옥에 붙잡혀와서 교도관이 되었지. 그러고 나서 네메시스라는 이름의 검에 찔린 후 그 검의 힘으로 이 층에 만철도시를 재현했다고 들었어.”
“그렇습니다. 도시의 안내 책자에도 실려 있지 않은 이야기를 알고 계시다니, 역시 이전의 층장 님들과는 뭔가 다르시군요.”
“그렇다면 너 같은 오토마타들은 이 감옥 안이 고향이겠네? ‘인간 연금술사’ 사니릭투스가 만들었던 사니릭타운에 너는 없었을 거 아냐.”
내 말을 듣던 암스트롱은 잠깐 보폭을 늦추는가 싶더니 이내 원래의 걸음 속도를 유지했다.
“층장 님의 말대롭니다. 이 도시가 다양한 차원에서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라는 실감은 솔직히 우리 오토마타들에겐 없습니다. 이미 완성된 생태계 안에서 조립과 해체를 거듭할 뿐.”
그가 중절모를 벗더니 그것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이 중절모를 쓰고 ‘진짜’ 만철도시를 누볐던 암스트롱이라는 인간의 기억은 제 안의 기억 회로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의 기억을 학습했다고 할까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무기를 받지 않은 오토마타들은 만철도시 안에서 평범한 시민들처럼 일상을 살아가며 도시를 풍요롭게 한다.
그 평범한 오토마타들.
우리를 반겨주고, 카지노에서 돈을 잃기도 하고, 화재가 터지면 울며 달아나기도 하는 그들은 어쩌면…… 한때 실존했던 인간들을 베이스로 재현된 것일지 모른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인간 암스트롱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기억도 갖고 있는 거야?”
“네, 물론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만철도시의 시민들이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단탈리온이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 만철도시는 사니릭투스의 오토마타 레나스의 폭주로 인해 멸망했다.
연금술사 주인에게 ‘영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선물하고 싶어했던 한 자동인형이 벌인 끔찍한 비극.
“그런데 너희는 왜 레나스를 두려워하지 않지?”
“아마도 영혼이 없는 오토마타이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층장 님과 대화할 때 보여주는 표정들은 모두 관찰과 학습을 토대로 산출되는 것일 뿐, 진짜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허락되어 있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가는 암스트롱이었다.
“나는 줄곧 이 도시 전체에 묻고 싶은 것이 있었어. 사니릭투스는…… 왜 무기고를 감옥의 4층과 융합시킨 것인지. 어째서 자신의 실수로 멸망시킨 도시를 자동인형들로 채워 넣어 이 감옥 안에 재현한 것인지 말이야.”
“제가 답해줄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군요. 저 또한 이 도시를 굴러가게 만드는 흔한 부품 중의 하나, 실제처럼 재현된 무대에 올라선 단역에 불과하니까요.”
다시 중절모를 쓴 암스트롱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감히 대답을 드려본다면 무대가 만들어지는 이유라면 보통 하나뿐이지 않겠습니까.”
무대가 존재하려면 관객이 있어야 한다.
4층 만철도시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대한 무대라면,
대체 그 관객은 누구란 말이지?
*
연금술사 그룬덴 사니릭투스의 일대기.
단탈리온이 길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에는 여러 등장인물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푸르가토리움 4층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등장인물이 하나 있었다.
아주 중요하고 사악한 녀석이.
“오토마타 암스트롱이 지하 무기고의 관리인을 뵙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에는 천장과 연결된 거대한 철기둥 앞이었다.
기둥 한가운데엔 어떤 존재가 사슬로 묶여 있었다.
머리에 달린 큼지막한 두 개의 뿔.
화살표 모양으로 축 내려앉은 불길한 꼬리.
지금은 사슬에 꿰뚫려 있지만 펼쳐진다면 천공을 농락할 수 있을 것 같은 박쥐 형상의 날개.
무기고의 관리인은 악마였다.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던 그 악마가 눈을 떴다.
마치 ‘이곳에 방문객이 온 것은 100년 만이군’ 같은 대사를 치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녀석이었다.
“이곳에 방문객이 온 것은 100년 만이군.”
엇. 정말로 저런 대사를 치네?
악마의 혀가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게다가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무기가 환수되었군. 그런가, 마피아가 운영하는 카지노가 결국엔 무너지고 말았나.”
암스트롱은 악마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다음 우리를 쳐다보았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층장 님. 통계상 이것이 층장 님을 뵙는 마지막 순간일 가능성이 높기에 여기서 작별인사를 드리는 게 맞겠지요. 포탈까지 안내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린 또 보게 될 거다. 내 취미가 통계를 박살 내는 거거든.”
“……그런가요. 부디 필요한 만큼의 행운이 층장 님께 깃들기를.”
악마는 암스트롱이 수레를 놔두고 돌아가는 것을 쳐다보지 않았다.
녀석의 시선은 처음부터 오직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등반죄수로군. 이 무기고에 볼일이 있어 왔겠지?”
“그 전에 넌 이름이 뭐냐.”
“내게는 이름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오래전에 잊혀져 모든 문명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진 무명의 악마, 그 존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오토마타니까.”
“……네가 레나스를 꼬드겨 학살을 일으켰던 장본인이구나.”
“정확히는 그 장본인의 기억과 행동 원리가 입력된 복사본이지.”
악마가 검은 손톱을 까딱하자 수레에 담겨 있던 무기들이 일제히 떠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무기 상자의 빈 공간을 찾아 자동으로 배치되었다.
“나는 나를 찾아온 등반죄수들과 길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보통 너희들은 그렇지 않더군. 원하는 무기의 이름을 말하라.”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
나는 내 옆에서 아까부터 입이 근질거린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아스티나를 쳐다보았다.
아스티나가 악마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폭류천마검. 마피아의 보스 칸의 무기였으며, 동시에 류운학이라는 죄수로부터 감옥이 압수한 검을 가져가고 싶어.”
철컹.
악마가 팔짱을 끼자 그의 날개에 연결된 사슬이 꿈틀댔다. 마치 기둥을 휘감은 뱀이 용트림을 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카지노에 들렀다면 잘 알겠구나. 만철도시의 땅 위에서 모든 것은 등가교환의 대법칙 아래 자유롭지 못하지. 그 법칙은 땅 밑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를 쓰러트리고 가면 되는 거 아냐?”
아스티나가 청룡패웅검을 뽑아 들어 자신을 겨눴음에도 악마는 조금도 움찔하지 않았다.
“후후후. 은발의 여인이여, 이곳이 진짜 만철도시의 땅밑이고 내가 복사본이 아닌 진짜 악마였다면…… 방금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대의 육체는 666조각으로 찢겨져 나갔을 것이다.”
“…….”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재현’된 이후 새로운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 자격 없는 자가 무기고의 무기를 반출하고 싶다면 너희 역시 그 법칙에 따라야 한다. 내 목을 뎅겅 잘라 침을 뱉는다 한들 저 유리 상자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거다.”
아스티나 대신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법칙에 대해서 알려줘.”
“좋다. 나는 상대가 요구하는 무기를 상품으로 내걸어 일종의 내기를 강제할 수 있다. 내기를 수락하는 쪽에서도 그에 걸맞은 것을 내놓아야 하겠지. 카지노 룰렛에서 게임을 하려면 칩을 걸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현무패웅검을 꺼내 들었다.
“이쪽에서도 무기를 걸라는 건가?”
“아니. 나는 본래 악마로 태어났고, 조립된 복사본으로 격하된 지금도 그 본질에선 변함없다. 본디 악마가 취급하는 거래 품목은 단 하나뿐이지.”
폭렬마왕 제르비어스가 답을 내놓았다.
“영혼이군.”
“정답이다, 다른 세계의 동족이여.”
“불쾌하니 너와 같은 카테고리로 묶지 마라. 뿔이 달려 있을 뿐 나는 마족의 우두머리인 마왕이야.”
“그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지. 너희가 원하는 폭류천마검이라는 검의 값어치를 산출해보도록 하마.”
악마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33개. 그 검은 33개의 영혼과 동일한 값어치를 갖고 있군. 이 무기고 전체를 통틀어서도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대단하다. 즉, 너희는 나와의 내기에서 33번 영혼을 걸고 승부해야 한다.”
“내기의 종목은 뭐지?”
“너희들에게 익숙한 것으로 해주마.”
악마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허공에서 육중한 장치가 튀어나와 바닥에 내려앉았다.
쿠우우우웅.
우리는 모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전의 태세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먼지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엔,
황당함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인형 뽑기 머신?”
하얀 고양이 토템을 뽑았던 인형 뽑기용 기계와 정확히 똑같은 외양을 한 상자가 요란한 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철제 집게발 밑에서 다소곳이 쌓여 있었다.
악마의 눈치를 살폈으나 결코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영혼을 걸고, 인형을 뽑으라는 거야?”
“그렇다. 얕보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너희가 저 바깥에서 재미로 즐겼던 그것과는 본질부터 다른 흉악한 물건이니까.”
악마가 음산하게 웃었다.
“자, 결정하라. 내기에 응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