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30화 (130/300)

#130. 하얀 고양이 법정 (3)

“서기, 대표 피고인인 칸의 죄목을 나열해 주십시오.”

“네. 이자는 사니릭시티에서 허가받지 않은 시설물인 카지노를 수백 년 동안 운영했으며, 파산의 지경에 오른 귀족들의 신병을 납치해 테러의 장작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폭력 사태와 방화를 일으킨 부하들을 거느린 죄까지 포함해…… 총 1,476건의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습니다.”

나이알레가 엄숙한 얼굴이 되어 칸을 쳐다보았다.

“피고인, 혐의를 부인하겠습니까. 항변의 기회를 드리지요.”

그러자 칸은 미련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나는 어제 후련하게 한바탕 놀았다. 마지막 떠나는 길에 당신의 얼굴마저 볼 수 있었으니 아무런 미련이 없어.”

“‘숙원’을 완료했다 이건가요. 그대가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하군요. 오토마타가 만들어진 목적을 다한다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니까요.”

“그래. 내 죄를 달게 받겠다.”

오토마타 칸은 위풍당당하게 말을 마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방청석 쪽을 돌아보았다.

칸은 내게 전음을 사용했다.

- 신세가 많았군. 그대도 언젠가 자신만의 ‘깨달음’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차르르르르.

숙원을 이룬 사이브리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칸 역시 픽셀화되어 소멸되었다.

그 모습이 내겐 마치 설화 속의 무인이 새로운 경지를 돌파해 우화등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스! 우릴 놔두고 어딜 가는 겁니까!”

“안 돼. 이러다간 우리 정말 다 용광로 행이라고.”

물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칸의 등 뒤에 줄줄이 붙잡혀 온 마피아들.

그들의 반응이 분노에 가까웠다면 한 오토마타 여인의 눈빛은 천년의 상실을 겪은 슬픔이었다.

재판장 나이알레는 칸이 앉아 있던 피고인석의 빈 자리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그렇게 후련히 떠나버리다니.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눈치가 없는 사내로구나.”

하지만 회한이 섞인 그 표정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재판장은 다시 엄숙한 얼굴로 돌아와 선언했다.

“주동자가 한 발 먼저 용광로로 떠나갔으니 그의 지배 하에 있었던 부하들 역시 따라가야겠지. 긴 시간 만철도시의 질서를 어지럽혔던 마피아 조직원 192명에 대한 배심원단의 평결을 듣겠소.”

그러자 마피아들의 어깨가 긴장으로 굳어졌다. 좌중은 숨을 죽이고 재판정에서 일어날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33인의 배심원단 앞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팻말이 놓여 있었다. 배심원 전원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붉은색 팻말을 집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만장일치 유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절망에 고개를 푹 숙이는 마피아들의 탄식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재판장인 저는 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아들여 피고 192인 전원의 유죄를 선언합니다. 형벌의 종류는 완전소멸인 용광로형으로 합니다.”

땅땅!

재판장 나이알레의 지팡이가 나무판 위를 두들겼다.

“존명!”

미리 도열해 있던 검궁 기사단원들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마피아들을 끌고 갔다.

그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이알레의 지팡이가 판결을 내린 순간 강력한 중력 마법으로 제압을 마친 모양이었다.

검궁 기사단의 행렬 뒤에 낯익은 얼굴의 오토마타가 뒤따르고 있었다.

만철도시까지 우리를 태워다 준 가이드 암스트롱이었다.

나를 알아본 그가 중절모를 슬쩍 내리며 인사했다.

“오호, 아직 포탈을 이용하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층장 님.”

“생각보다 이 도시엔 구경거리가 많은 것 같아서.”

“부디 마지막 순간까지 위대한 사니릭투스의 축복이 따르기를 바랍니다. 그럼 전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암스트롱의 등 뒤에는 저절로 떠 있는 공중 수레가 있었다. 수레 안에는 마피아들에게서 회수한 무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기들도 즐비했다. 무이크루의 암흑 낫. 엘룩크로의 전투 도끼 등.

다음 순간 내 옆에 있던 아스티나가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슈바인, 아빠의 무기가…….”

칸이 휘두르던 폭류천마검이 두둥실 떠올랐다. 교도관의 권능이 행사되고 있는 것인지 손을 뻗어봐도 마검에겐 닿을 수가 없었다.

[오토마타로부터 해방된 무기가 적법한 주인의 존재를 탐색합니다.]

[탐색 결과 없음.]

[교도관이 인정한 절차에 따라 폭류천마검의 소유권은 다시 검궁의 무기고에 환수됩니다.]

폭류천마검은 암스트롱의 수레를 향해 날아가더니 그곳이 제자리인 양 안착했다.

아스티나는 물고 있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절박한 얼굴이었다.

“슈바인.”

“기다려 봐. 주인이 없는 무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조급해할 건 없어.”

마왕 제르비어스는 교도관이 ‘인정한 절차’에 따라 오메가 위프를 되찾았다. 교도관장이 내준 보너스 퀘스트에도 정당하게 획득한 모든 아이템의 소유권을 보상으로 준다고 하였으니,

폭류천마검을 정당하게 얻어내는 방법을 이제부터 알아내면 된다.

“모두 정숙하세요! 판결과 집행 절차까지 모두 완료되었으니 이걸로 재판의 폐회를 선언하겠습니다.”

나이알레가 의석에서 일어나 암스트롱을 향해 지시했다.

“그대에게 일시적으로 검궁 지하 무기고의 출입권을 드리겠습니다, 암스트롱. 검궁의 공장이 다시 가동될 때까지 주인 없는 무기들을 돌려 보내주길 부탁합니다.”

“존명.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위대한 사니릭투스의 의지대로.”

“등가교환의 법칙은 지켜질 것입니다.”

우우우우우웅.

순간 놀이공원의 바이킹에 올라탄 것처럼 허벅지 밑이 붕 뜬 느낌이 들었다.

텅 빈 피고인석을 중심으로 방청석과 배심원석이 좌우로 멀어지며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지금이 단탈리온의 지식에 의존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 암스트롱이라는 오토마타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검궁의 무기고가 출입구를 드러내는 일은 마피아가 소탕될 정도의 대규모 재판을 제외하면 일어나지 않거든요. 용사님의 목적이 무기의 소유권이니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겁니다.

암스트롱이 먼저 통로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공중 수레가 그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때, 내가 나이알레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재판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자 폐회선언에 장내를 떠나고 있던 모든 오토마타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기묘한 통일성을 목도할 때마다 내가 인형들의 나라에 와 있다는 실감이 차오른다.

“층장 슈바인 스트링거.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 아직 그대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했군요.”

흥미롭게도 마녀의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저 오토마타의 웃음은 성녀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자비롭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숭고미.

“검궁 기사단에게 협조해 마피아를 소탕할 수 있도록 전열의 선두에 서 주신 것에 대해 도시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아, 그렇게까진…….”

“그리고 만철도시에서 제 유일한 위안이었던 한 사내를 용광로의 먼지로 돌아가게 만든 짓거리에 대해선 머리부터 맨틀 밑으로 처박아드리고 싶네요.”

“예? 뭐라고요?”

따사로운 표정으로 폭풍과도 같은 천년의 증오를 드러내던 오토마타는 금세 본래의 말투로 돌아왔다.

“그래서, 제게 하고 싶은 질문이 뭔가요?”

방금 뭔가 얼음단검처럼 싸늘한 것이 지나간 것 같았지만 나는 모른 척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고 본론을 꺼냈다.

“저 지하에 검궁의 무기고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와 친구들이 그 내부를 좀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암스트롱은 만철도시에서 층장이 입장하지 못하는 곳은 없다고 설명해 준 적 있다.

물론 마피아의 영역인 카지노는 진법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것은 특수한 경우라고 봐야 한다.

즉, 내 질문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단 예의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 나이알레의 두 다리가 스르륵 공중에 떠올랐다. 새하얀 법복이 나풀대다가 곧 내 눈앞에 내려섰다.

말 그대로 하얀 고양이처럼 사뿐한 동작.

“본래였다면 만철도시의 그 누구에게도 무기고의 입장 허가는 내려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층장은 그 대상에서 예외지요. 더군다나 그대는 어젯밤 폭주하는 열차를 멈춰 세움으로써 시민들을 위험에서 구해내 주었지 않습니까.”

나이알레는 우리 넷의 얼굴을 차근차근 살펴보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정의감이 뒷받침되어주지 않는다면 목숨을 걸고 위험과 싸울 수 없지요. 그런 그대들이 저 밑에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물어도 될까요?”

거짓을 고할 순간이 아니었다.

나는 솔직하게 우리 일행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흐음. 칸의 검과…… 제 지팡이의 본래 주인.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겁니까? 그리고 층장인 당신은 그 두 분의 제자이고요?”

“네, 그렇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아니오. 그 말을 믿습니다. 저는 이 만철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의 ‘마법 기능’을 내장하고 있는 오토마타. 마법진을 펼치지 않아도 그대들의 몸속에 박동하고 있는 마법 서클의 존재를 느낄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빨라지겠다.

하지만 나이알레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층장 님, 무기고에 들어가 폭류천마검의 소유권을 얻어내겠다는 그대의 바람이 합당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부모와 스승의 유품을 회수해서 다음 층으로 건너가겠다는 용기와 의지에도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노파심에 경고해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나이알레는 마피아의 보스 칸을 끝장내버린 나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류운학과 일레인 쿠디슈와의 인연을 이야기한 순간 태도가 변했다.

즉, ‘어디 밑에서 개고생해봐라’라는 태도에서 ‘어지간하면 말리고 싶은데’ 하는 태도로.

“어떤 경고입니까.”

“제가 검궁의 공장에서 조립되어 탄생한 이래 무수히 많은 층장들을 이 밑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무기를 되찾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으며, 극소수의 층장은 본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기를 탐내던 경우이지요.”

마법사들의 언어는 확률에 기반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대답하기 편하도록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기고에 입장한 층장이 목적을 이루고 돌아온 비율이 얼마나 됩니까.”

“0.5퍼센트. 천 명 중에 다섯 명 꼴입니다.”

그야말로 지독한 난이도.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이다. 평범한 등반죄수로 4층에 올라섰다면 그는 분명 뛰어난 용력을 가진 죄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이진 않았겠지.’

게다가 무기를 되찾겠다는 목적으로 이 지하 무기고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은 그 시점에선 빈손이거나 변변찮은 무기로 싸워왔다는 뜻일 거다.

“그래도 들어가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관문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저의 목표는 탈옥. 최종층까지 오르기 위해선 강력한 무기가 절실합니다.”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나이알레가 두 걸음 물러서 길을 열어주었다.

통로 밑에서부터 피부를 섬뜩하게 만드는 흉흉한 느낌과 작열하는 열기가 우리를 덮쳤다.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층장 님. 저 밑을 지키고 있는 녀석은…….”

나이알레의 속삭임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악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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