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다이너마이트 트레인 (4)
만철도시에서 관광을 한 첫 날.
우리들은 도시 전체를 롤러코스터처럼 관통하는 모노레일을 타고 돌아다녔었다.
웅장한 건축물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탑승한 승객들도 온화했다. 이동수단이라기보다는 관람용 기관차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칸이 폭주시키고 있는 저 열차는 다르다.
엄청난 속도로 레일을 박살 낼 듯 달리고 있다. 마정석의 힘을 있는 대로 끌어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타악!
나와 아스티나는 음속을 돌파할 기세로 비행한 끝에 가까스로 8량 열차의 꼬리칸에 올라탔다.
“슈바인, 칸이 이 열차로 뭘 하려는 것 같아?”
“탈출?”
아스티나의 질문에 답했던 나는 곧 그것을 부정했다.
“아니야. 이 도시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했어. 녀석의 목적이 강자와의 생사결에 있는 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달아나는 것도 말이 안 돼. 싸울 상대를 찾지 못할 테니까.”
결국에 남은 것은 유인.
“자신을 막아설 수밖에 없도록 함정을 만들어둔 거야. 다수에 포위되어서 체포되는 건…… 녀석의 입장에서 재미가 없는 거지.”
“무엇을 그리 노닥거리고 있는 거냐!”
300미터 앞에서 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몸 앞으로 검을 떨치는 궤적이 그려졌다. 우리에겐 익숙하기 짝이 없는 초식.
“엎드려!”
반사적으로 열차의 지붕에 몸을 납작 붙이자 머리 위로 흉흉한 검파가 지나갔다.
콰르르르릉!
빗나간 검파에 썰린 빌딩이 잘린 김밥처럼 거꾸러지는 게 보였다.
탁 트인 공간으로 나오자 칸은 더욱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원거리에서 맹공을 펼쳤다.
우리는 중력 마법인 포스 필드로 꼬리칸 전체를 감싸며 버텼다. 그러는 사이 카지노는 저 멀리 한 점이 되어 까마득히 멀어졌다.
“아스티나, 잠깐만 버텨줘.”
나는 단탈리온을 꺼내 이 열차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 만철도시의 중앙에 있는 검궁입니다. 레일 위를 질주하는 가속도에 열차의 무게, 그리고 머리칸에 실려 있는 마정석까지 고려하면 도시의 95%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대폭발이 예상됩니다.
이런 미친.
칸은 열차를 거대한 다이너마이트 삼아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를 감행하려 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조차 멀쩡하기 힘든 재앙이 일어날 터였다.
“막아야 해.”
오메가 위프와 폭류천마검을 회수하기 위해선 칸의 자폭 테러를 어떻게든 막아 세워야 한다.
“크하하하! 너희들이 내가 있는 칸까지 올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칸이 머리칸의 난간을 붙잡더니 몸을 날려 기관실 내부로 들어갔다.
저 멀리 만철도시를 부채꼴처럼 감싸고 있는 바위산이 보였다. 위대한 연금술사 사니릭투스일 것으로 추정되는 한 노인의 얼굴이 석상처럼 조각되어 있었고, 그 아래 기다란 터널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열차 밖에 있다간 통째로 갈려 나갈지 모르는 상황.
“진입한다!”
나와 아스티나 역시 꼬리칸의 창문을 박살 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풍경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토마타들?”
객실 좌석 안에 수십 명의 오토마타들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우리가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오토마타들의 인공 눈알이 일제히 움직이는 광경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딱히 우릴 막아서진 않는데?”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스티나가 그들의 복장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말했다.
“카지노에서 많이 봤던 유형의 오토마타들이야. 아마도…… 칩을 모두 잃은 자들 아닐까?”
“오토마타를 파산시킨 다음 자폭 열차에 태웠다고? 그거 조금 오싹한 변태 같은데.”
관상용으로 이 많은 오토마타들을 탑승시켰을 리 없다. 분명 어딘가에 사용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꼬리칸의 통로를 절반쯤 지나쳤을 때, 모든 오토마타의 눈알이 붉게 빛났다.
그리고 그들의 신체 내부가 주황빛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인형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코어가 한계 범위 이상으로 가동되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추진제였구나.
이 많은 수의 오토마타들을 폭발시켜 열차의 속도를 계속 높이려는 것이다.
“앞칸으로 달려!”
문을 열 시간도 아깝다. 나는 그래비티 웨이브로 문짝을 통째로 날려버린 후 아스티나의 허리를 붙잡고 몸을 던졌다.
그렇게 7번 칸에 들어온 다음 황급히 철문을 닫자,
꾸우우우우우웅!
꼬리칸이 터널 안에서 폭발하며 열차 전체를 가공할 압력으로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띠링!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돌발 퀘스트 #9. ‘폭탄제거반’]
[용사는 칸이 준비한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이 열차는 안타깝게도 폭탄으로 가득 찬 소시지와 같았네요. 폭탄을 처리하고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지 못하면 무기들을 얻으려는 용사의 목적은 폭발의 잔재처럼 멀리 날아가버리고 말 겁니다. 제한 시간 내에 열차를 멈춰 세우십시오.]
[기한: 4분]
[보상: 민첩 +50]
[실패 시: 칸 소멸]
망할 교도관장의 퀘스트.
실패의 페널티가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열차와 함께 칸이 먼지가 되어 날아간다. 즉, 사이브리즈의 숙원과 아스티나의 염원이 함께 증발되는 것이다.
“이 고생을 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7번 칸의 오토마타들은 자신들이 곧 사이좋게 가루가 될 운명이라는 건 까마득히 모른 채 태연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을 뿐, 대량으로 탑재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존재들.
철컹철컹.
시커먼 암흑만이 보이던 창문 너머로 다시 도시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 빨라진 폭주 열차가 터널을 금방 지나친 것이다.
“칸에게 장단을 맞춰주면 안 되겠어.”
우린 7번 칸의 창문을 박살 내고 다시 열차의 지붕 위로 올라왔다.
저 멀리 칸은 아예 머리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 연쇄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겠다는 듯.
머리칸을 제외하면 남은 열차는 여섯 량.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열차 전체의 무게는 가벼워질 테고, 부스터 효과는 증폭될 거다.
어쩌면 레일의 종착점인 검궁에 도달할 때까지 3분이 채 안 걸릴 수도 있다.
나는 아껴두었던 기술을 펼쳐내야 할 때란 걸 알았다.
“아스티나, 터지기 전에 열차를 떼어낼게. 공중에서 처리해줄 수 있겠어?”
“해볼게.”
인벤토리를 열고 아론다이트를 해방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론 성검이 지그재그로 날아갈 궤적을 그렸다. 선로가 일직선이 아니라 연거푸 휘어져 있었기에 정밀한 예측과 계산이 필요했다.
칸은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용사전용기 무극참월공]
[제사식 비천성검(飛天聖劍)]
칸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성스러운 빛을 내뿜는 아론다이트가 쏘아져나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론다이트는 내가 계산한 대로 유려하게 움직이며 칸과 칸을 잇는 차량 연결기를 박살 냈다. 앞칸과 분리되며 속도가 느려진 차량을 아스티나가 중력장으로 감쌌다.
두웅.
그 중력장은 폭발의 여파를 최소한으로 줄여주며 도시를 불바다로 만드는 걸 막아줬다.
그 작업을 다섯 번 반복하자 이제 남은 차량은 단 하나뿐이었다.
칸은 자신의 안대를 긁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손에는 여전히 폭류천마검이 들려 있었다.
“참 무식한 방법을 쓰는군.”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젠장.”
“그렇게 녹초가 된 몸으로 나를 체포할 수 있겠나? 응?”
비천성검을 사용한 나는 물론이거니와 여섯 번이나 차량의 폭발을 마법진으로 감당해야 했던 아스티나 또한 기진맥진한 건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칸은 우리와 처음 싸웠던 모습 그대로 쌩쌩해 보였다.
“단기전이다. 열차가 목적지에 닿기 전에 널 끝장내주지.”
머리칸의 좁은 지붕 위에서 우리는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칸과 아스티나의 사이에 내가 서 있는 셈.
등 뒤의 아스티나가 천마군림보를 펼쳤다.
시전 대상은 칸이 아닌 머리칸의 동체.
끼기기기긱!
막대한 무게에 짓눌린 열차가 굉음을 내며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칸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가속도를 줄인다면 녀석의 목적에 흠집이 갈 테니까.
나는 현무패웅검에 검기를 두르며 외쳤다.
“와라! 나를 뚫기 전엔 아스티나를 못 건드릴걸.”
“외나무다리를 만든 건가. 바라던 바다!”
칸이 나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필사적으로 만전불패의 체술이 감지하는 폭류천마검의 궤적을 파악한다. 그리고 최대한 정면에서 받지 않고 흘려내며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일검을 교환할 때마다 뒤로 물러서게 되는 건 나였다.
“으하하하! 어디 숨겨놓은 비장의 카드는 없느냐!”
젠장. 없을 리가 있겠냐.
나는 이를 악물고 층장의 열쇠를 넘겨받는 순간 발생했던 보상을 마음속으로 선택했다. 스탯 하나를 골라 2배로 만들 수 있는 보상.
‘근력을 두 배로 높이겠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혈관을 타고 용솟음치는 기운이 샘솟았다.
[용사가 보상을 선택했습니다.]
[근력 수치가 610에서 999로 오릅니다.]
아직 한계돌파는 무리였지만 이걸로 류운학의 근력 수치를 웃도는 공격력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스탯이 갱신될 때마다 HP와 MP가 다시 최대치로 차오르는 건 보너스!
카앙!
내 검에 처음으로 튕겨져나가는 칸의 눈동자가 이채를 띄었다.
“힘을 숨겨두고 있었던 건가?”
“아니. 방금 막 세진 거야. 이 순간을 위해 아껴둔 거다.”
인벤토리에 손을 뻗는다.
S급 방어구 드래곤하트 플레이트를 건드리자 백금의 휘황찬란한 판금갑옷이 저절로 장착되었다.
이제까지의 나였다면 입은 순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꿈쩍도 못 했겠지만 근력의 최대치를 달성한 내게는 깃털처럼 느껴질 뿐.
“갑옷까지?”
폭류천마검의 검신을 흠집 없이 튕겨내 버리는 완갑에 칸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놀랐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지.
나는 아직 인벤토리를 닫지 않았다.
‘아론다이트는 무리야. 이건 근력뿐 아니라 민첩까지 999를 달성해야 사용할 수 있는 최종무장.’
하지만 폭류천마검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검이 내게는 있었다.
“마검은 마검으로 상대해주지!”
S급 마검 디아볼릭이 손에 감기는 느낌은 훌륭했다.
해방되자마자 거칠게 울어 젖히는 디아볼릭을 칸에게 휘둘렀다.
“으으음! 이런 굉장한 검을 이제야 꺼내놓는다고?”
맞부딪히는 검에 밀리면서도 칸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회피는 선택할 수 없을 거다. 녀석이 열차를 버리고 달아난다면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스티나가 머리칸을 완전히 정지시켜버릴 테니까.
옆으로 달아날 수 없는 펜싱 피스트 위와 같다. 전진과 후퇴밖에 할 수 없는 전장을 강제해 버린 것이다.
“어디 막아보시지!”
나는 초근접 거리에서 천마수라검의 초식을 전개했다.
상대인 칸 역시 마치 거울처럼 천마수라검을 펼쳐 응수했으나 공격력과 방어력이 훌쩍 올라간 내 압박에 밀려 뒷걸음질 쳐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칸을 머리칸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그의 애꾸눈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내가 으르렁거렸다.
“네가 바라는 깨달음을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폭류천마검을 밀어붙이는 마검 디아볼릭.
나는 이 감옥에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절세의 무기를 마음껏 휘두르는 쾌감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템빨의 무서움을 이제부터 알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