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26화 (126/300)

#126. 다이너마이트 트레인 (3)

“내 검의 본래 주인이 너희들을 지나치게 오냐오냐 가르친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내 움직임을 따라붙는 데만 급급할 리가 없잖나.”

오만한 한 마디였으나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칸의 실력은 대단했다. 천마 류운학이 세 개의 달이 모이는 삼만월의 밤에 보여주었던 압박감을 뛰어넘었다.

칸의 육체에서 단전의 역할을 하고 있을 마정석이 보통 물건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폭류천마검을 다루도록 선택된 오토마타.

의심의 여지 없이 이 만철도시에서 최고급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진 괴물 중의 괴물이다.

어쨌든 도발을 받았으니 응해주는 게 인지상정.

나는 현무패웅검의 칼자루를 붙잡고 무극파천공의 최종 비기를 준비했다.

“아스티나, 아수라대멸겁을 쓰자.”

“건물 자체가 버텨낼 수 있을까?”

“지붕이라도 날아가주면 땡큐지. 진법에 균열이 생기면 더 좋고.”

고개를 끄덕인 아스티나가 나와 동일한 자세를 취했다.

우리 둘이 초대형 범위공격인 아수라대멸겁을 단 한 명에게 사용한 적은 이제껏 없었다.

“안타깝다만 그 기술…….”

그러자 칸이 웃으며 천마폭류검을 뒤로 당겼다. 터져 나오는 내공의 발산에 그의 어깨를 덮고 있던 코트자락이 갈기갈기 찢겨버렸다.

“나한테도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콰드드드득.

카지노 최상층 응접실의 벽면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마공을 시전하는 세 명의 압력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초월식(超越式)]

[아수라대멸겁(阿修羅大滅劫)]

각기 다른 색채를 지닌 세 명의 아수라가 응접실을 가득 채웠다.

무자비하게 적을 섬멸하는 악신 아수라.

그들이 가진 여덟 개의 곡도가 상대를 도륙하기 위해서 허공에 검파를 난사했다.

꽈아아아아아앙!

나와 아스티나는 숱한 검파를 얻어맞고 벽면에 처박혔다.

반면에 칸은 고작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을 뿐이었다. 그가 입고 있던 블랙슈트가 참격에 찢겨져 나갔고, 드러난 팔과 다리에는 매끈한 금속 피부가 시리게 빛났다.

“재미있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너희들이 처음 만철도시에 들어왔을 때 부하들을 보내지 않고 직접 나설 걸 그랬어.”

칸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너는 이 카지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도시의 어둠을 지배하고 있다. 딱히 조직을 거느릴 생각은 없었어. 군림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다만 이 자리에 올라와 있으면 내 무기를 노리고 강자가 찾아와 줄 거라 생각했을 뿐.”

우리가 젖먹던 힘까지 뽑아서 덤벼들자 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본래 무기의 주인이 무(武)를 추구하는 자였기에 그 영향을 받은 걸까.

나는 사람 모양으로 구멍이 난 벽에서 걸어 나오며 그에게 물었다.

“강자와 싸우고 싶었다면 검궁 기사단이라는 다른 조직이 있지 않아?”

“취향 차이다. 나는 검은색이 좋거든.”

그러면서 칸은 묵빛으로 요사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폭류천마검의 검신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가락은 피부가 아니라 금속이라서 귀곡성 같은 마찰음이 일었다.

“층장이여. 카지노가 뭘 하는 곳이라 생각하지?”

“돈을 벌기 위한 곳 아니야?”

“그건 만족스러운 답변이 아니군.”

칸이 고개를 젓자 나는 아스티나를 쳐다봤다. 1층에서 훈련된 도박사인 딜러들을 격파함으로써 2층 VIP룸의 입장권을 얻어낸 장본인.

“욕심이 더 큰 욕심을 집어삼키는 곳이라 생각해.”

아스티나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칸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맞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것을 바라는 탐욕. 그 탐욕에 휘둘린 자들이 개미지옥이라는 걸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 건물이다.”

한 개의 칩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무게는 한없이 가벼운 것. 카지노의 손님들은 모두 행운이 자신의 편이라 믿으며 룰렛 테이블에 칩을 던지지만 결코 그 설계자를 능가할 순 없다.

손님이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는 한.

“우리 오토마타는 영혼을 부여받고 태어나는 생명체와 달라. 공장에서 조립되어 뽑아져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나처럼 뛰어난 무기를 받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강력한 경지를 이룩하게 되고.”

칸의 말에는 가을바람처럼 스산한 공허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겐 적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내게 굴복하는 오토마타들이 생겼고, 마피아라는 조직도 만들어졌지. 내가 한 것이라곤 복장의 색깔을 검은색으로 통일하라는 명령뿐이었다.”

애꾸눈의 오토마타는 단지 기다렸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우쳐줄 뛰어난 강자를.

“층장 슈바인 스트링거. 너에게 묻고 싶다. 너는 방금 사용한 기술을 아수라대멸겁이라 불렀지. 여덟 개의 팔을 휘두르는 귀신의 형상을 소환하는 훌륭한 무공이야.”

“그런데?”

“이 기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고작 두 개의 팔을 소환하는데 그쳤던 건 알고 있나?”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완성된 형태로 류운학에게서 무극파천공을 넘겨받았다. 가르침을 받긴 했으나 내가 아수라를 소환할 수 있는 것은 파천황의 권능인 ‘스킬 대여’ 덕분이었으니까.

“무제한의 수명을 가진 우리 인형과 달리 필멸자로 태어난 너희 인간들은 불꽃처럼 살아가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다음 대의 인간에게 부탁하며 이런 무공을 만들어내는 거야.”

칸은 폭류천마검을 들지 않은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정밀한 부품들이 마정석의 힘으로 쉼없이 가동 중일 터였다.

“이 검을 붙잡고 있으면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 무극파천공이라는 무공은 단 한 명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당대에 발탁된 인재들이 치열한 고민을 거듭해 개량된 거지.”

자신이 만들어진 순간 ‘성능’으로서 탑재된 무공.

칸은 그 무공의 근원을 되짚어 올라가 보려 했던 것이다.

“무인의 ‘깨달음’. 과연 그것이 무엇이길래 한 인간의 수명으로는 이룩할 수 없는 것을 달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인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어. 그게 내가 검을 휘두르는 이유라 할 수 있겠지.”

칸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그의 말을 더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일견 비등해 보이지만 엄밀히 말해 온갖 수를 다 사용하고 있는 나와 아스티나에 비해 칸은 훨씬 여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어디까지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는지 시험해 본 것이다.

무를 각성시키는 ‘깨달음’이 인간만이 가진 것인지 알고 싶어서.

다시 중단세를 취한 칸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자 신형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기감을 펼쳐두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늦지 않게 가까스로 그의 검을 맞받아칠 수 있었다.

까아앙!

내 정면에 나타난 애꾸눈이 폭류천마검을 밀어붙이며 으르렁거렸다.

“더 보여다오, 너희들의 깨달음을.”

칸의 배후를 노리고 아스티나가 달려들었다.

휘두르는 검격을 가뿐하게 피해내는 칸. 하지만 그건 허초였고 진짜 공격은 등 뒤에 숨겨둔 호심멸룡탄이었다.

“즐거워. 전장을 읽는 눈은 층장이 더 낫고, 기술의 숙련도와 과감함은 흑기사가 뛰어나다 이건가. 둘의 조화가 좋다만…….”

칸이 양손으로 폭류천마검의 칼자루를 붙잡더니 천마회풍일섬을 무려 4연격으로 펼쳐냈다.

“잔꾀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휘이이이잉!

참격의 소용돌이가 유도탄처럼 나와 아스티나를 따라붙었다.

어쩌면 녀석의 ‘코어’가 가진 성능은 천마 류운학의 단전보다 더 뛰어난 출력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큰 기술을 거침없이 난사할 수 없다.

“치잇!”

전력을 다해 도망치다 참격이 약화되었을 때 업화의 쌍장으로 간신히 베어낼 수 있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그 순간, 우리가 기다리던 텔레파시가 날아왔다.

- 제르비어스 폰타인: 방금 지하에서 무지막지한 놈을 쓰러트렸다. 진법은 이제 사라졌어.

귓속말이 아닌 단체 텔레파시.

자연히 아스티나 역시 마왕의 전보를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칸에게서 방어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왜 그러는 거지? 덤벼들어야 할 순간이었을 텐데.”

힘을 몰아 쓴 후유증으로 숨이 벅차올랐다.

“방금 내 동료가 카지노의 결계를 박살 냈다. 네가 펼친 진법은 이제 아무 효력도 없어.”

칸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그런가. 감히 날 상대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거로군.”

“네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어쩌면 사부님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우리 목적은 대련이나 비무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마피아의 보스인 칸을 체포하는 것.

그 주인공이 우리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폭도들을 전부 잡아들여라!”

“오늘 이곳에서 마피아를 일망타진한다.”

아래층에서 시끌벅적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카지노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육백의 검궁 기사단이 전부 출동한 모양이었다.

“크허어억!”

응접실의 화분을 박살내며 나동그라진 것은 부러진 낫을 들고 있는 무이크루였다. 가슴에는 십자 모양의 금이 가 있었다.

녀석 앞에서 착검한 채 걸어오고 있는 오토마타는 기사단장 에니찰리드였다.

“드디어 만나게 됐구나, 칸. 당신을 체포하겠다.”

응접실의 천장이 와장창 깨지며 완전무장한 기사단원 여섯이 특수부대원처럼 진입했다.

칸을 포위한 기사단원의 기세는 살벌했다.

“순순히 따라와서 법정에 서도록, 밤의 대통령.”

칸은 천천히 자신을 에워싼 오토마타들을 하나씩 훑어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협공을 펼친다면 칸에게 승산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에선 여유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의 말대로 해주고 싶다만 아직 밤은 많이 남은 것 같은데?”

틱.

칸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등 뒤에서 느닷없이 강렬한 섬광 다발이 터져 나왔다.

“윽, 뭐지?”

수십 개의 서치라이트가 빛을 발산하는 가운데 폭류천마검을 어깨에 걸친 칸의 모습이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누군가 진법을 만들었다는 건, 그것이 무용지물이 될 순간도 대비하고 있었다는 뜻 아니겠냐 말이지.”

칸은 나와 아스티나가 뛰어들었을 때의 위치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땐 그가 계단의 층계에 앉아 있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것은 계단이 아니라 마정석으로 움직이는 열차의 앞머리였다.

에니찰리드가 땅을 밟았다.

“도주하려는 건가!”

하지만 그녀는 뛰어오르지도 못하고 거꾸로 주저앉았다. 일대를 장악할 수도 있는 천마군림보가 한 명에게만 집중되었을 때 벌어지는 절기다.

칸의 시선은 내 얼굴을 향해 있었다.

“따라올 텐가? 못다 한 승부를 내려면 방해꾼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지.”

열차가 발진했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치워버리겠다는 듯 쇄빙선처럼 벽을 뚫고 나가는 열차의 앞머리. 벽 뒤에 숨어 있던 열차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카지노의 복도가 이렇게 긴가 했더니, 미리 선로를 깔아둔 거였어.’

칸의 열차가 빌딩 최상층에서 뛰쳐나가다가 곧 만철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공중 선로에 불똥을 튀기며 안착했다.

에니찰리드가 분기탱천해 소리쳤다.

“비행선으로 돌아가서 보스를 추격한다.”

검궁 기사단의 정예들이 내려온 밧줄에 올라타며 상공에 뜬 비행선으로 향했다.

하지만 화재사건 때의 출동속도를 보아하니 열차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어려워 보였다.

“카지노의 꼭대기층에 열차를 숨겨놓다니. 허를 찔렸어.”

박살 난 창틀에 한 발을 올려놓고 있는데, 아스티나가 흑기사의 갑옷을 해제한 다음 걸어왔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갑옷을 벗었다는 건 방어력을 포기하고 속도전을 택하겠다는 뜻이었다. 전력으로 달리는 열차를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옳은 판단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차에 올라탄다. 저렇게까지 따라와 보라고 한다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우리는 지체 없이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칸이 올라탄 열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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