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25화 (125/300)

#125. 다이너마이트 트레인 (2)

“커허억!”

바닥에 나뒹굴던 제르비어스가 울컥 피를 토했다.

UG-777이 발사한 미사일은 장난감처럼 생긴 주제에 파괴력 하난 대단했다. 그 슈바인 녀석의 용사전용기 축공탄을 정통으로 얻어맞았을 때보다 훨씬 대미지가 컸다.

“끄으으으.”

옆구리가 그을린 구미호가 어지러운듯 고개를 털어대고 있었다. 맷집에서라면 등반대 중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캉이마저 고통스럽게 할 만큼 무시무시한 일격이었다.

‘비껴 맞았는데도 이 정도다. 직격으로 맞으면 죽을지도 몰라.’

제르비어스의 입가에는 이제 웃음기가 완전히 소멸해 있었다.

캉이를 흘깃 쳐다보는 마왕.

“움직일 수 있겠냐, 꼬맹이?”

“응. 옆구리가 저리긴 한데, 못 걸을 정도는 아니야.”

“우리 둘이서 저 쇳덩어리를 쓰러트리는 거야. 할 수 있겠어?”

“해볼게.”

캉이의 아홉 꼬리가 수직으로 치솟았다.

동물의 언어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제르비어스는 갯과의 동물들이 꼬리를 세울 때의 의미를 잘 알았다.

‘이 구역은 내가 지킨다. 물러서지 않으면 다쳐.’

지금 캉이는 본능적으로 상대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녀석의 시선을 끌 테니까 일단 뒤로 빠져 있어. 그리고 신호하면 원거리에서 두들기는 거야.”

“좋아!”

캉이가 지면을 강하게 박차며 물러섰다. 제르비어스는 망토를 집어던진 후 마기를 온몸에 둘렀다.

상대가 무슨 공격을 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리해서라도 방어력을 올린 것이다.

건곤일척의 승부.

‘장기전으로 가면 무조건 진다. 마피아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약점을 찾아 부숴버려야 해.’

그때, UG-777이 또 한 번 스핀 레버를 당겼다.

화면에 나온 것은 똑같은 검 세 자루.

[슬롯 커맨드: 소드 플래시]

UG-777의 옆면에서 여섯 쌍의 대검이 튀어나왔다.

저 내부에 수납되었다고 믿을 수 없는 크기의 무기들. 마법이나 권능의 개입이 있던 것이 틀림없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여섯 개의 대검이 내쏘는 검기가 제르비어스와 캉이를 끝까지 추적해왔다.

마왕은 몸에 두른 마기로 검기를 막아냈으나 자세가 크게 흐트러졌고, 구미호는 꼬리를 둥그렇게 뭉쳐 방패처럼 사용했지만 충격에 비틀거려야 했다.

“이쪽이다! 고철덩어리야.”

제르비어스가 마정석 기둥을 향해 돌진하자 UG-777의 다음 기술이 또 한 번 작렬했다.

[슬롯 커맨드: 일렉트로 웨이브]

여섯 개의 팔이 쑥 들어가고 대신에 두 개의 작살이 튀어나와 바닥에 푹 박혔다. 그리고 일대에 벼락 폭풍을 일으켰다.

공격이 제르비어스에게 집중된 사이,

캉이가 분신술을 사용해 4마리로 늘어났다. 분신들은 UG-777의 네 방위를 포위한 채 여우트림을 십자포화로 내쏘았다.

꾸우우우우웅!

거대 슬롯 머신을 중심으로 십자가 모양의 고랑이 생길 정도의 파괴력이었으나,

정작 UG-777은 조금의 타격도 없이 멀쩡했다.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두들기는 기분이었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제르비어스는 탈력감에 진저리를 쳤다.

어쩌면 일행을 둘로 나눈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슈바인 스트링거와 아스티나 류가 이 순간 함께 있었더라면 저놈을 쓰러트릴 공략법을 어떻게든 찾아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다가 마왕은 자신의 양 볼을 한 차례 때렸다.

짜악.

‘정신 차리자. 녀석은 우리를 믿고 맡긴 거야. 나약한 감정에 심취하면 마왕의 뿔이 운다.’

마왕성에서 자신은 패배해 본 적이 없다. 몰려오는 용사들을 쓰러트리기만 하면 됐다. 힘 대 힘의 정직한 승부에서 한 번도 밀려본 적이 없었기에 전략과 전술을 익힐 필요도 없었다.

슈바인, 그 녀석은 달랐다.

무력 싸움에서 앞서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 한 차례 패배한 후에도 복수전을 계획했고 결국에는 목표를 이뤄냈다.

‘녀석의 목표는 언제나 승리가 아니고 극복이었지.’

제르비어스는 UG-777을 이길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애초에 저 카지노 경비원을 쓰러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와 캉이에게 주어진 임무는 결계를 유지하는 동력원을 파괴하는 것.

승리가 아니라 상황을 극복하는 것에 집중하자 비로소 하나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UG-777은 슬롯을 돌려서 공격 방법을 랜덤으로 출력한다.

그렇게 선택된 기술은 하나같이 무지막지한 파괴력에 상대를 집요하게 따라오는 추적 기능까지 붙어 있었다.

빈틈을 노린다면 기술을 사용한 뒤 다시 스핀 레버를 돌리기까지의 짧은 공백.

그때를 노려야 했다.

[마왕군 폭렬마법]

[1급 오의 ‘업화의 쌍장’]

남겨진 힘이 많지 않다. 그것은 혓바닥을 빼문 채 헐떡이는 캉이도 마찬가지.

제르비어스는 단 한 번의 시도에 사활을 걸어보기로 했다.

“여전히 침입자 생존. 대응방식을 선별합니다.”

다시 한 번 UG-777가 스핀 레버를 철커덕 내렸다.

휘이이익!

마왕의 손에서 뻗어 나온 두 줄기의 마기가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 단단한 매듭을 만들었다. 업화의 쌍장이 휘감긴 곳은 UG-777 스핀 레버의 손잡이였다.

“꼬맹아, 내 허리를 물어라!”

“아저씨를 물라고?”

“설명할 시간이 없다, 어서!”

캉이가 주춤주춤 다가와 제르비어스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로 이어지는 부분을 깨물었다.

단단한 송곳니가 마갑을 뚫고 파고들었으나 마왕은 아랑곳없이 작전을 지시했다.

“녀석의 가운데 화면을 주시해. 처음의 꽃다발이 나란히 배열되는 순간을 노리는 거야. 그때 내 몸을 통째로 잡아당기면 된다. 알겠지?”

“읍읍!”

제르비어스를 깨물고 있는 와중이라 제대로 된 단어를 만들어낼 순 없었지만 알겠다는 의사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생물의 궤를 진작 벗어난 구미호의 초월적인 동체시력이 흐릿한 잔상만을 남기며 돌아가는 슬롯 스크린에 집중됐다.

두 차례 꽃다발 문양이 지나가자 캉이는 다음 출현 타이밍을 확신했고,

그 순간에 맞춰 앞발에 힘을 주었다.

제르비어스와 연결된 마기의 밧줄이 스핀 레버를 강제로 멈춰 세웠다.

[슬롯 커맨드: 폭죽]

다행히 원하던 커맨드가 선택되었다. 마왕은 업화의 쌍장을 해제한 뒤 캉이의 등 위로 올라탔다.

“가자!”

UG-777이 요란한 폭죽을 터트리는 가운데, 그 꽃다발들을 헤치고 한 마리 구미호가 아름답게 비상했다.

단번에 UG-777의 머리 위를 뛰어넘은 캉이가 마정석 4개가 박힌 기둥 앞에 당도했다.

그러자 제자리에서 빙글 회전한 UG-777이 다시 한 번 스핀 레버를 돌렸다.

이번엔 행운을 기대할 수 없었다.

스크린에 뜬 것은 입을 쩍 벌린 용의 머리 세 개.

[슬롯 커맨드: 드래곤 브레스]

자그마치 용의 브레스를 내뿜으려는 모양이다.

바닥에 드리워진 여우와 뿔 달린 사내의 그림자가 주우욱 길어졌다.

뒤통수가 후끈 달궈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이 준비되고 있다는 게 현실로 다가왔다.

“아저씨.”

“뒤돌아보면 안 돼.”

UG-777이 내뿜는 막강한 공격들에는 출력 제한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어딘가에 저 슬롯 머신에 에너지를 전달하는 공급원이 있다는 소리.

그렇다면 저 강력한 경비원이 어째서 이 지하에만 배치되어 있는가 하는 의문이 풀린다.

십중팔구 눈앞의 마정석을 깨부수면 결계와 함께 녀석의 구동이 멈출 것이라 믿고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

“꼬맹아, 제트카이저 27화다. 그걸로 가는 거야.”

“지상 최대의 콤비 편?”

“그래, 그 편의 클라이막스를 우리가 재현하는 거다.”

층간 구역에서 애니메이션 제트카이저를 함께 독파했던 둘이었다. 27화에서 주인공 훈이는 눈엣가시였던 라이벌 블랙 스핑크스와 처음으로 팀을 이뤄 사천왕을 쓰러트린다.

후으으으읍.

캉이가 여우트림을 내쏘기 위해 가슴을 부풀렸다.

기수인 제르비어스 역시 허벅지의 악력만으로 자세를 유지시킨 후 합장했다.

[여우트림] X [지옥파쇄포]

구미호의 입에서 쏘아져 나간 광선포에 지옥파쇄포가 따라붙으며 나선의 궤적을 그렸다.

통상 주먹보다 스크류 펀치의 파괴력이 더욱 뛰어난 원리로 둘의 합공이 절묘하게 융합되었다.

우르르르르릉!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 기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성공이다.”

탈진한 제르비어스가 캉이의 등에 엎드린 채 뒤를 돌아보자 UG-777의 복부에는 거대한 메탈 드래곤이 입을 쩍 벌린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지만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마정석이 빛을 잃어가고 진법에 붙잡혀 있던 마나 스트림이 흐트러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마왕은 자신들의 싸움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탁하고 풀렸다.

그때, 캉이가 앞발로 턱을 긁적였다.

“아저씨, 그러면 우리 중에 누가 제트카이저야?”

“……당연히 나 아니겠냐.”

“내가 먼저 쐈는데?”

“작전을 지시하는 게 주인공이지, 인마.”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

나는 아스티나와 함께 삼월초원의 불청객인 천마 설공을 격파했다.

이후 3층 대수림에서 무수한 야수들과 야수왕, 층장의 열쇠를 품은 채 폭주하던 구미호 캉이를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마검사 아스티나와 한두 번 합을 맞춰본 게 아니다.

이제는 전음이나 텔레파시라는 번거로운 수단을 쓰지 않고서도, 눈빛과 호흡만 보더라도 서로의 다음 수를 미리 예상하고 협공을 짤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극파천공을 극성까지 사용하는 칸을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이야아아압!”

진각을 밟고 일직선의 경로로 검을 내지른다.

마치 사자의 심장을 일격에 꿰뚫으려는 검투사의 그것처럼.

그러나 칸은 짐승이 아니라 자연처럼 움직였다. 나룻배에게 길을 내어주는 냇물처럼 내 검로에서 옆으로 비켜선 것이다.

이후 검의 무게가 정확히 분산되는 지점을 구둣발로 걷어차 내 자세를 흐트러트린다.

아스티나의 맹공이 그 빈틈을 노리고 철퇴처럼 내려꽂혔다.

칸이 검을 땅에 꽂자 반투명한 검막(劍幕)이 그의 몸을 둘러싸며 아스티나의 검을 도로 튕겨내었다.

청룡패웅검으로 쏟아내던 내공이 도로 자신에게 되돌아왔는지 물러서는 아스티나의 눈썹이 일그러져 있었다.

“계속 이럴 건가?”

칸이 검을 빙그르르 제 손에서 돌리며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무기부터가 사기다.

“자신만만했던 것 치곤, 아직 내게 한 번도 일격을 먹이지 못한 것 같은데?”

까아아아앙!

칸의 폭류천마검이 또 한 번 울었다. 검 끝에서 터져 나오는 마공의 덩어리가 벽의 잔해를 빨아들였다.

검신을 감싸는 검기를 넘어서는 경지.

검강(劍罡).

아스티나와 내 협공에도 귀신같은 무용으로 받아치는 데다가, 거리를 벌리면 검강을 폭산시키는 전법으로 우리에게 대미지를 준다.

“젠장. 정말 엄청난 검이네, 저거.”

내공을 잔뜩 끌어다 쓰는 무식한 힘 대결에서만큼은 이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칸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았다.

나와 아스티나가 휘두르는 두 패웅검은 엄밀히 말해 환수의 파편으로 만들어낸 검.

그 무기를 빚어낸 장인 만검패웅의 솜씨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애초에 무극파천공의 진가를 뽑아내는 데 최적화된 검은 아니다.

하지만 칸의 폭류천마검은 천마신교의 본거지인 십만대산의 병기고에서 류운학이 가려 뽑은 무림 최강의 병기.

검격을 서로 교환할 때마다 람보르기니와 같은 트랙에 선 덤프트럭이 된 기분이었다.

박살 난 천장에서 흘러나온 바람이 칸의 코트 자락을 펄럭이게 만들고 있었다.

“부디 이제부턴 전력으로 와주지 않겠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