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다이너마이트 트레인 (1)
“순순히 그 검을 내놓아라!”
아람의 금강벽력부가 여러 개의 잔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만전불패의 체술로 녀석의 투로를 예상해 막아세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파지직!
하지만 충돌 직후 터져나오는 전류 폭발이 성가셨다. 무기의 본래 주인인 마라혈귀와 맞붙었을 때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마라혈귀가 내공을 끌어내어 간헐적으로 사용하던 스킬이 무기에 자체 내장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남의 무기를 탐내다가 배가 터져서 혼쭐이 나는 건 본체나 인형이나 마찬가지군.”
나는 살신참으로 반격했다.
아람의 허리를 두 동강 내버릴 요량으로 작렬시킨 스킬이었는데 녀석은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려 공격을 피해냈다.
“사지가 막 줄어들고 그러는 거냐!”
아람의 체구는 나보다 더 작았고 도끼의 길이 역시 현무패웅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만큼 근접전의 숙련도가 대단했다.
특히 스프링처럼 팔다리가 줄어들었다가 펴지는 오토마타의 특수능력이 시너지를 더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뇌신 지드가 르팔타커스와 싸우는 걸 관전했지.’
벼락 그 자체가 되어 공방을 펼쳤던 지드에 비하면 아람의 금강벽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격 효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옆구리를 노리고 휘둘러져 오는 도끼를 막아세운 뒤 전격을 감당했다.
“어떠냐, 유기체에 의존하는 살덩어리야. 뼛속까지 불타는 느낌이지?”
“아니. 조금 따끔하기만 한걸.”
검을 쥐지 않은 왼손에서 업화의 쌍장을 불러일으켜 아람의 어깨, 정확히는 관절의 접합부를 박살내버렸다.
주인의 손에서 떨어져나온 금강벽력부는 평범한 쇳덩이가 되어 나동그라졌다.
“아스티나, 괜찮아?”
수세에 몰려 있으면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티소르의 수정구가 발산하던 빙결 마법은 흑기사의 갑옷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고, 아스티나의 정밀한 중력 마법 컨트롤은 기압 자체를 흐트려 놓는 경지까지 이르러 있었다.
즉, 상성 싸움에서 지고 들어간 나티소르는 아스티나의 그래비티 슬래시에 날아가서 벽에 처박혀 있었다.
방금 일어난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카포레지메의 인공 안구가 껌뻑였다.
그것을 무시하며 우리는 보스의 응접실 문을 열어젖혔다.
구우우우우웅!
마치 냉장고가 힘차게 가동될 때의 소음을 수천 배 확대한 것 같은 기괴음이 넓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피아의 보스 칸은 환하게 빛나는 벽면을 등진 채 작은 층계 앞에 앉아 있었다.
한 갈래로 질끈 묶은 머리에 검은 안대를 한 애꾸눈.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검의 손잡이를 카페트 위에 꽂은 채 손잡이 끝에 턱을 얹어 놓고 있는 오토마타.
그가 입을 열었다.
“어서 오라.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군.”
칸은 우리 등 뒤에서 꿈틀대고 있는 부하들에게는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
감정을 죽이고 있는 건지, 자동인형이라서 본래 부하를 아끼는 감정이 없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마피아의 보스 칸. 당신을 체포하려고 왔다.”
“죄목은?”
“만철시티에 저지른 방화와 폭력 기타 등등. 대충 그런 거겠지. 사실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엔 별로 관심 없어. 마피아의 두목을 체포해서 법정에 세우는 게 내 목적이거든.”
“내가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를 정도로 아둔해 보이지는 않고……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어깨에 걸치고 있던 검은 코트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고풍스러운 광택의 검은 구두가 산책하듯 사뿐하게 바닥을 내딛었다.
꾸우우우웅.
순간, 칸의 몸을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족쇄처럼 내 몸을 옭아매 왔다.
극마지경에 오른 자가 펼치는 천마군림보.
사부님인 류운학의 절기가 우리가 기억하던 위력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흑기사의 갑옷을 입은 아스티나도 움찔하는 걸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스르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검을 세워 칸을 겨누었다. 녀석이 천마폭류검의 본래 주인만큼 강할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한 사실이니까.
칸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내 기술에 저항할 수 있다니, 흥미롭구나.”
그가 천마폭류검을 천천히 뽑아 들며 물었다.
“싸우기 전에 묻겠는데 너의 둘 중에 이 검의 주인이 있는가.”
“아니. 하지만 검의 주인과 깊은 인연이 있지.”
“아쉽군. 이 검을 휘둘렀던 죄수가 층장이 되어 올라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거든. 되도록이면 그와 전력을 다해 싸워보고 싶었단 말이지.”
천마폭류검을 가볍게 좌우로 휘두르자 살을 에는 위압감이 전달돼왔다.
비루한 목검을 든 채로도 삼월초원의 절대강자였던 류운학이었다. 그가 신병이기를 들었을 때 얼마만큼 강한지는 아직 나도, 아스티나도 겪어본 바가 없다.
“너희 둘이 동시에 덤비면 그 죄수보다 강하려나?”
칸의 순박한 질문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물어오니, 솔직히 대답해주자면, 몰라.”
“모른다?”
“그분과 같은 층에 있을 때였다면 이기지 못했겠지. 다만 그사이 변수가 많이 생겼어. 그분의 품을 떠나온 뒤로 우리는 꽤 강해졌거든. 그런데 너는 그분의 무공을 최대한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폭류천마검을 들고 있으니.”
나와 아스티나가 동시에 검기를 발출했다.
조금의 아낌도 없는 최대 전력의 임전태세.
“싸워봐야 알겠지.”
칸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좋다. 우리 셋의 궁금증이 똑같으니, 사이좋게 여기에서 그것을 풀어보면 되겠구나.”
그가 검 끝을 한 번 흔들더니, 다음 순간 허공을 찢는 천마회풍일섬이 터져나왔다.
*
“잡아라!”
“꼬리 쪽으로 가지 마! 맞으면 골로 간다!”
거대한 구미호가 샹들리에 위로 뛰어올랐다. 사방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오는 마피아들이 망연자실 위를 올려다보았으나 돌아오는 건 고고한 여우의 자태뿐이었다.
“내가 나선다!”
무이크루가 포커 테이블을 밟고 날아올라 큼직한 동작으로 낫을 휘둘렀다. 노린 것은 구미호의 왼쪽 다리였으나 여우에게는 듬직한 기수가 탑승해 있었다.
카각!
제르비어스가 만들어낸 마기의 방패막이 무이크루의 낫을 튕겨냈다. 허공에 떠 있던 마피아의 카포레지메는 후속으로 날아오는 마기의 폭섬에 무방비로 노출돼야만 했다.
[마왕군 폭렬마법]
[4급 오의 오메가 플레어(Omega Flare)]
나가떨어진 무이크루가 수십 명의 마피아들과 한 덩이로 엉키면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우지끈.
캉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샹들리에의 케이블이 끊어지자 소년 구미호는 지체 없이 바닥으로 내려섰다.
뒤를 따라붙는 마피아들의 서슬 퍼런 공격에 슬롯머신들이 무참하게 박살 났다.
“아저씨, 찾았어?”
“그래. 마나 스트림이 집중돼 있는 곳은 저쪽이다.”
캉이가 아홉 개의 꼬리를 칼날처럼 빳빳하게 세우더니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그러자 그 회전공격에 휩쓸린 마피아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찰나의 공백을 놓치지 않고 캉이가 뛰어올라 도착한 곳은 로비 중앙의 룰렛 테이블이었다.
구미호의 앞발이 치켜 올라가며 명검과 다름없는 발톱을 세웠다. 그러자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딜러 오토마타는 여우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꽈아아아앙!
캉이의 앞발이 룰렛 테이블의 녹색 상판을 통째로 박살 내며 바닥에 충격파를 만들었다.
무수한 칩들이 허공에 떠올라 제르비어스의 눈 앞을 가렸다. 튀어 오른 룰렛 휠을 업화의 쌍장으로 베어낸 마왕이 캉이의 오른쪽 어깨를 두들겼다.
“내려가자!”
캉이의 육중한 덩치가 순간 3분의 2로 줄어들어 본래였다면 통과할 수 없는 구멍을 통과해 내려갔다.
무수하게 얽힌 금속 파이프가 둘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제르비어스가 지옥파쇄포로 그것들을 끊어냈다.
어린 구미호와 폭렬마왕은 혼연일체가 되어 유전을 찾아내는 굴착기처럼 아래로 아래로 파고 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드넓은 지하 동력실.
캉이의 네 다리가 사뿐하게 지면을 밟았다. 기수인 제르비어스에게 전혀 충격이 오지 않는 신묘한 솜씨였다.
“캉이야, 여우트림으로 천장의 구멍을 쏴. 파이프를 녹이는 거야. 할 수 있겠어?”
“응!”
허리를 곧추세운 구미호의 주둥이가 쩍 하고 벌려졌다. 붉은 광선포인 여우트림이 쏘아지며 파괴적인 고온을 방출했다.
곧 여우트림이 쓸고 지나간 경로에 있던 파이프들이 녹아내리며 단단하게 얽혀 들어갔다.
“잘했어. 이러면 마피아들이 여기까지 내려오는데 시간이 꽤 걸릴 거다.”
잠시나마 추격을 떨쳐낸 둘은 곧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돔형 천장의 중앙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기둥. 그 기둥 밑에는 녹색으로 빛나는 큼지막한 광석이 수백 개의 케이블과 연결돼 있었다.
“저것이 카지노를 방어하는 진법의 핵심이로군.”
초대형 마정석 4개가 일정한 리듬으로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마왕의 뿔은 그곳에서 전달되어 오는 마력의 강도가 무지막지하다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아저씨, 그럼 저걸 박살내버리면 되는 거잖아?”
“그래. 그러면 우리의 임무는 끝이…….”
쿠르르르르릉.
그때, 동력실 벽면에서 거대한 직육면체가 튀어나왔다.
바닥에 부착된 여섯 개의 바퀴가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면서 마왕-구미호 콤비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슬롯머신?”
카지노의 로비에 즐비해 있던 슬롯머신을 열 배로 확대한 것 같은 초대형 오토마타였다.
마피아들은 강력한 결계를 지키는 문지기를 지하에 배치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우노키오 가디언 UG-777. 침입자 감지.”
슬롯머신의 측면에 달린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침입자 대응 방식을 선별합니다.”
UG-777의 몸체 좌측에 달린 스핀 레버가 철커덕 내려가더니 스크린에 있는 세 개의 칸이 팽그르르 돌아갔다.
그러자 스핀이 멈추고 눈이 X자로 표시된 해골 마크 세 개가 연달아 표시되었다.
“선별 완료. 완전 섬멸로 대응합니다.”
꾸아아아앙!
‘섬멸’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제르비어스가 지옥파쇄포를 내쏘았다.
하지만 UG-777은 엄청난 내구도를 가진 모양인지 꿈쩍도 하지 않으며 다음 행동에 착수했다.
철커덕.
스핀 레버가 다시 한 번 돌아갔고 이번에 스크린에 뜬 조합은 꽃다발 세 개였다.
캉이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긴장했다. 눈앞의 슬롯머신 괴물이 무슨 공격을 해 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슬롯 커맨드: 폭죽]
UG-777의 몸체에서 나팔관이 튀어나오더니 요란한 폭죽을 터트렸다.
잔뜩 얼어붙어 있던 제르비어스와 캉이의 멍한 얼굴 위로 종이 꽃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만철도시에 온 첫날 퍼레이드에서 보았던 그것과 정확히 같은 재질이었다.
마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야, 괜히 긴장했잖아? 그냥 무시하고 기둥을 부수면 되겠…….”
철커덕.
다시 돌아간 스핀 레버가 이번에는 색다른 조합을 내놓았다. 둥그런 폭탄이 세 개.
[슬롯 커맨드: 미사일]
이번에는 나팔관 대신 로켓 런처의 포신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불길한 격발음이 귓가를 때렸다.
“캉이야, 점프해!”
소년 구미호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자 그 자리에 미사일이 작렬하면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