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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23화 (123/300)

#123. 숙원청부업자 (5)

아스티나의 일권이 허공을 찢었다.

그 주먹의 끝에는 입을 틀어막은 에띠소크가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일한 궤적의 권법으로 그걸 막아서는 누군가가 있었다.

타앗!

아스티나는 튕겨져나오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절로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짜 이렇게 나온다고?”

아스티나의 미간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청룡패웅검에겐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이 한 자루 있다. 뛰어난 장인 만검패웅이 각기 다른 시간선에서 사방신의 파편으로 제작한 무기인 현무패웅검이.

지금 그 현무패웅검이 분명한 살기를 품고 아스티나의 심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리 비키지 못해?”

매료 마법에 단단히 홀린 동료 슈바인 스트링거가 무극파천공의 기수식을 취한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에 아스티나는 울화통이 터졌다.

한 대 제대로 때려줘야 화가 풀릴 텐데, 하필 자신의 무기인 청룡패웅검을 바로 저 녀석이 맡아두고 있는 바람에 여의치가 않아 보였다.

아스티나의 기세에 움찔해서 주저앉을 뻔하던 에띠소크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잘했다, 내 장난감! 저년을 묵사발 내버려.”

그러자 정지된 로봇처럼 우뚝 서 있던 폭렬마왕 제르비어스의 손에서도 업화의 쌍장이 피어올랐다.

수갑을 찬 두 동료가 있는 대로 힘을 끌어올리며 아스티나에게 덤벼들었다. 연거푸 점멸마법인 워핑을 사용해 뒤로 물러섰지만 세뇌된 동료들은 곧 간격을 지우며 따라붙었다.

‘너무 불리해.’

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구도는 지금과 똑같았으나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슈바인은 당시 자신보다 못 미치는 숙련도를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몰라보게 강해진 상태였다. 거꾸로 아스티나는 입고 있던 흑기사의 갑옷과 청룡패웅검이 없는 맨몸.

수세에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썩둑!

어머니 참월의 마녀에게서 물려받은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한 움큼 잘려나갔다. 검기를 발출하고 있는 현무패웅검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옆에서 협공을 펼치고 있는 제르비어스가 지옥파쇄포를 거침없이 연발했다. 그것을 튕겨내기 위해 중력을 굴절시키면 호흡의 빈틈을 노려 검격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때? 같은 편에게 혼쭐이 나는 기분이? 내 매료 마법은 이런 점이 참 좋더라구.”

에띠소크의 빈정거림이 꽤 먼 거리에서 들려왔다. 어느덧 수세에 몰리는 바람에 날개 달린 오토마타와의 거리가 벌어진 것이다.

‘마법의 매개체를 박살내버리면 매료도 풀리겠지.’

아스티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워핑의 도약지점을 최대한으로 늘여 점멸을 시전했다.

그런데 순간 슈바인이 마법진을 그려 그래비티 프레스로 아스티나의 워핑을 강제로 취소해 버렸다.

그렇게 도약 중간에 붙잡혀버린 아스티나의 옆구리를 제르비어스의 주먹이 무자비하게 후려갈겼다.

뻐어어억!

기역 자로 튕겨져나간 아스티나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내장까지 도달한 충격에 선혈을 한 모금 내뱉었다.

“정신 차리지 못해, 슈바인 스트링거!”

하지만 그녀가 믿고 따르던 대장은 간절한 부름에도 아랑곳없이 흐리멍덩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녀석, 진짜 이름이 뭐랬지?

아스티나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진정시키며 오래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원래 이름은 그게 아니라고?’

‘응. 나는 영혼만 이 감옥에 잡혀온 거거든. 본래 이름은 따로 있어. 박상식이라고 해.’

‘이상한 발음이네.’

‘아버지의 괴상한 유머 감각에서 나온 거야. 상식을 박살 내면서 크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대.’

“정신 차려, 박상식!”

아스티나의 외침이 용사 슈바인 스트링거의 육체, 그 안에 내재한 영혼에 직접 가 닿았다. 그가 쥐고 있던 현무패웅검의 검신이 미묘하게 부르르 떨었다.

절박한 아스티나의 외침을 에띠소크는 비웃었다.

“소용없어. 한 번 걸린 내 세뇌가 흔들릴 일은 절대로 없거든.”

그때, 상반신을 낮춘 슈바인 스트링거가 뒷발을 축으로 삼아 제자리에서 뒤돌았다.

순간 복도를 환하게 비추는 검기의 참격.

[천마신교 비전 무극파천공]

[천마회풍일섬(天魔會風一閃)]

반달 모양으로 뿜어져 나간 검기가 에띠소크의 요술봉을 정확히 반으로 잘라버렸다.

복도 벽면이 무참하게 박살 나는 충격파에 에띠소크가 나뒹굴었다.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슈바인이 그녀의 날개를 짓밟으며 웃었다.

“……어떻게?”

*

어떻게냐고 물으니 내가 대답해줘야지.

“한 번 당한 걸 또 당하면 알파 테스터라 할 수 없지.”

우노키오 카지노의 지하에서 에띠소크의 요술봉이 매료빔을 발사하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술식을 전개했었다.

[정신지배 Lv. 4]

그 스킬의 시전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비록 세뇌 마법이 정신을 침식시키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불완전하긴 했으나, 덮쳐오는 파도에 방파제를 세울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정신의 일부에 방어막을 펼쳐뒀기에 ‘모종의 충격’을 받으면 매료 마법을 깨트릴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다.

아스티나가 내 진짜 이름을 부르는 순간,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허어억! 무슨 일이냐?”

등 뒤에서 제르비어스가 황망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외침이 들렸다.

감히 마왕에게 매료 마법이 통할 것 같냐며 나선 주제에 나보다 더 빨리 걸려 버린 녀석.

그런 제르비어스 옆에서 아스티나가 서슬 퍼런 눈빛을 하곤 걸어왔다.

“슈.바.인.”

한 글자 한 글자를 발음할 때마다 표창에 찔리는 것처럼 아프게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미안해. 사실은 이게 다 카지노에 안전히 잠입하려는 작전의 일환이었다고 하면 안 믿겠지?”

“친구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거침없이 살초를 쓰는 작전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응?”

“……잘못했다.”

“엄마가 물려준 웨딩드레스를 엉망으로 만든 벌은 나중에 꼭 받아내겠어. 물어내야 할 거야.”

아스티나가 입고 있던 순백의 드레스는 세뇌 상태의 내가 만들어낸 상처로 곳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정말이지 큰 죄를 지은 기분이다.

그나저나 웨딩드레스를 물어내라는 협박이 묘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얘는 알고 있나 모르겠다.

콰앙!

그때, 복도 끝 응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웬 소란이냐.”

“보스의 휴식을 방해하는 놈들은 즉결처분인 걸 모르는가.”

흉악하게 생긴 마피아 두 녀석이 우리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키가 작은 녀석은 전류가 흐르는 도끼를, 늘씬한 다리를 가진 녀석은 한 손에 푸른색 수정구를 들고 있었다.

“아람! 나티소르! 나 좀 도와줘.”

내 발에 깔려 있던 에띠소크는 날개를 뚝 떼어내더니 둘에게로 기어갔다.

“음란의 마녀. 혼자서 공을 차지하려다가 낭패를 보는 거 아니냐. 이제부턴 우리에게 맡겨라. 무기를 잃었으니 넌 이제 카포레지메 박탈이야.”

아람이라는 녀석이 한 손에서 도끼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나섰다. 저 오만한 손동작과 전격을 자유자재로 뿜어대는 무기.

그렇다면 저 도끼는 분명 마라혈귀의 금강벽력부다.

“이 앞으론 누구도 지나가게 할 수 없다, 습격자들.”

그 옆에 있는 여성형 오토마타의 수정구에선 서늘한 냉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지금껏 감옥에서 만나온 녀석들 중 빙결마법을 사용하는 후보는 둘. 잭 프로스트 디멜 무바크와 엘프 록시탄.

나티소르란 이름으로 미루어보아 수정구는 육망성 록시탄의 무기로 보였다.

삼월초원의 간부급 강자가 무기로 증폭된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위협적인데 반대편에서도 우르르 마피아들이 몰려나왔다.

선두에 선 카포레지메 무이크루가 낫을 휘둘러 바닥에 내리꽂았다.

“너희는 앞뒤로 포위되었다, 냄새나는 것들아.”

으르렁거리는 무이크루의 말에 아람이 화답했다.

“감히 마피아의 소굴에 제 발로 걸어들어오다니, 엔진 코어가 부었구나.”

흐음.

오토마타들은 간덩이가 부었다는 표현을 저렇게 쓰는 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뒤로 포위되었다면 옆을 뚫으면 그만이지.”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복도 한쪽 벽면을 박살 내면서 하얀 털을 자랑하는 앞발이 마피아 솔다토 둘을 압사시켰다.

“뭐야, 이 괴수는?”

여우화를 마친 캉이가 아홉 개의 꼬리를 살랑이면서 마피아 무리와 대치했다.

“형아! 냄새로 찾아왔어.”

구미호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자 마피아 중 몇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간담이 서늘해졌나 보지? 아, 엔진 코어가 차가워졌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렇게 빈정대긴 했으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침입자다!”

“이쪽이야!”

블랙슈트를 입은 오토마타들이 계속해서 통로에서 쏟아져 나와 복도를 틀어막고 있었다.

수적 열세를 부정할 수 없는 상황.

순간이동을 사용해서 아스티나와 함께 VIP 룸에 잠입한다는 본래의 작전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플랜 B로 간다. 우린 다시 둘로 나눠질 거야.”

하지만 조합은 달라진다.

나는 발밑에 있던 에띠소크의 날개를 주워들었다.

그녀의 매료 마법에 당해서 나와 제르비어스는 카지노의 지하에 숨겨진 비밀시설을 지나쳐왔다.

그곳에서 느껴지던 흉흉한 기운.

“캉이야, 냄새 맡을 수 있지?”

“응! 그런데 이건 왜?”

“이 냄새를 쫓아가면 진법을 유지하고 있는 근원이 나올 거야. 제르비어스 아저씨를 태우고 그곳으로 가.”

폭렬마왕이 캉이의 등에 올라탔다.

“진법을 부술 때까지…… 버틸 수 있겠나.”

“해 봐야지. 최대한 판을 크게 벌려줘. 그래야 대기하고 있는 검궁기사단이 카지노 내부로 진입할 수 있어.”

“좋아. 맡겨 둬라.”

“누가 달아나게 놔둘 것 같으냐!”

무이크루가 낫을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하지만 캉이는 이미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순식간에 터져나가는 여우트림에 마피아들이 휩쓸려 나갔다. 무이크루는 카포레지메답게 가까스로 고개를 숙여 광선포를 피했으나 장발이 썩둑 잘려나갔다.

“이따가 만나!”

캉이가 앞발로 바닥을 내리치자 VIP룸이 있는 층 전체가 격하게 진동했다. 곧 뻥 뚫린 구멍으로 아홉 개의 꼬리가 쏙하고 사라졌다.

“쫓아라! 놓치면 안 돼!”

무이크루와 그의 솔다토들이 앞다투어 구멍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럼 우린 보스를 잡으러 가보자고.”

인벤토리를 열어서 청룡패웅검과 흑기사의 방패를 아스티나에게 던져 주었다.

넝마가 된 드레스 위로 매끈한 검은 갑옷이 오른팔을 중심으로 돋아났다. 검은 장갑이 청룡패웅검을 오랜만에 단단히 쥐었다.

예고나 전조도 없이,

빙결의 창 세 개가 정면으로 날아왔다.

콰창!

나는 아스티나의 앞을 막아서면서 그것을 일검에 잘라냈다. 한 호흡에 세 방위를 전부 방어할 수 있는 천마수라검의 묘리였다.

“치사하게 변신하고 있는데 공격하기냐.”

나티소르의 손에서 살짝 떠오른 수정구가 주변에 서리를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네놈을 습격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제 발로 걸어들어왔구나.”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게 병법의 기본이라지.”

마라혈귀의 벽력부를 든 아람이 두꺼비처럼 웃었다.

“너희처럼 좋은 무기를 든 녀석들을 순순히 다음 층으로 올려보내면 며칠 동안 케이블이 꼬이는 기분인데, 잘됐어. 그 검 두 자루와 신기한 갑옷까지 빼앗아주마. 다행히 갑옷은 칠할 필요도 없겠군. 이미 칸 님이 좋아하는 색이라…… 큭!”

아람은 황급히 벽력부를 들어서 내가 날려 보낸 그래비티 잽을 상쇄시켰다. 그러느라 두 걸음 뒤로 물러서야 했다.

바짝 긴장한 얼굴.

“누가 무기를 넘겨준대? 이쪽이 오히려 너희를 털려고 온 거다.”

아스티나와 나는 이미 만전의 태세를 갖춘 뒤 돌격할 준비를 마쳤다.

“너희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음, 굳이 말하자면 청부업자랄까?”

두 자루의 패웅검이 뽑아낸 검기가 복도를 환히 비추었다.

최단 시간에 두 카포레지메를 쓰러트리고 보스인 칸을 붙잡으러 가야 한다. 그래야 사이브리즈에게서 정당하게 마왕의 채찍을 돌려받을 수 있다.

“오토마타의 숙원을 이루어주려고 온 숙원청부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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