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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천재의 탈옥 플랜-118화 (118/300)

#118. 금단의 방정식 (3)

- 도시의 인간을 모두 제물로 바치라는 이야기에도 레나스는 평온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학살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본래 오토마타의 행동원리에는 살생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주인인 사니릭투스의 생명을 위협하는 장애물이 있을 경우, 그것만을 배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요. 암살자의 습격을 막아서는 호위의 기능을 위해서.

“제게 그것이 허용되어 있는지 연산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오토마타 레나스는 기나긴 연산에 들어갔습니다. 급기야 영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절망감이야말로 제 주인인 사니릭투스의 생명력을 공격하는 주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절망감을 소거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인간을 몰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능하겠군요.”

그것은 주인의 기관지 건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기로 결정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의사결정.

레나스가 미궁의 천장을 뚫고 날아올랐습니다.

그때, 고대종 악마의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는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았고요.

“레나스야, 어디에 있느냐.”

한편, 수명이 다해가던 연금술사 사니릭투스는 오랜만에 침상에서 일어나 거실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회광반조의 순간이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오토마타 소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순간 노인에겐 그녀의 노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는데 말이죠.

요란한 폭죽소리와 번쩍이는 섬광이 창밖을 어지럽혔습니다. 사니릭투스는 고개를 갸웃했죠.

‘퍼레이드가 또 시작된 건가? 축제는 아직 두 달이나 남았을 텐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너무 오랫동안 병상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는, 먼지가 쌓인 지팡이를 들어 테라스로 나왔습니다.

서커스 유랑단에 몸을 담았던 소년 시절부터 연금술사는 빛의 폭발을 좋아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 꽂히는 하얀 섬광이 사니릭투스를 데려갔습니다.

그의 수명이 21분 남아있었던 때의 일입니다.

*

- 하루 밤새 왕국을 멸망시킨 대마도사, 대륙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린 마룡,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간 타천사.

푸르가토리움의 교도관장이자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는 그때까지 셀 수 없이 많은 흉악한 죄수들을 붙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자동인형이 연출해낸 대학살의 사건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지요.

‘영혼이 없는 자동인형의 죄는 그 주인에게 물어야 한다.’

감옥은 상상을 초월하는 죄를 저지른 레나스의 취급을 고민하다가 영혼이 없는 오토마타를 죄수의 ‘무기’로 판단했습니다.

주인은 0층 대기실로 소환되었고 오토마타 레나스는 그 주인으로부터 분리되어 푸르가토리움의 무기고에 압수되었죠.

[수감자 그룬덴 사니릭투스, 당신의 형량은 400,000년입니다.]

수갑을 찬 채 연옥의 문 앞에 선 늙은 연금술사는 그제야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아끼던 오토마타에게 영혼을 만들어주고 싶어했던 자신의 욕망이 도리어 그 인형의 손으로 씻을 수 없는 업보를 지게 만들었다는 걸.

[그룬덴 사니릭투스. 등급 인간. 4층 무저갱의 늪에 배정됩니다.]

무저갱은 금단의 지식을 탐구한 자들이 배정되는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이 늪에 빠져들게 되는 죄수들은 일말의 예외도 없이 광인이 되었습니다.

넘쳐나는 지식과 진리에 대한 갈망은 그대로 둔 채,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강탈된 천재들의 말로였지요.

“호오, 그대는 미치지 않는군요.”

다만 사니릭투스는 억겁의 세월을 견뎌내며 지성을 온존하였습니다.

그 연금술사가 하는 일은 촛불을 피워올리는 것.

하루가 지나면 다시 무로 돌아가는 촛대에 절망하지 않고 무한히 불씨를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교도관장이 그 촛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곧 꺼질 불을 피우는 거지요?”

“내 실수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소이다.”

“그대는 불신자가 아닌가요? 믿지도 않는 신에게 용서를 비는 것처럼 보이는걸요.”

“여전히 신을 믿지 않으며,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오. 다만 내가 저지른 죄를 ‘망각’하는 것은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

교도관장은 웃었습니다.

“그대의 형량은 다른 죄수들에 비해서도 무척 높은 편입니다. 그 이유는 알고 있나요?”

“윤회의 고리로부터 나를 멀리 떼어놓으려는 것 아니겠소. 수명이 다해 환생할 경우 또다시 같은 죄를 짓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지.”

“역시 총명하군요. 그대에게 교도관장으로서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군요. 뛰는 자를 나는 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뜻입니다.”

사니릭투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굳어버린 촛농처럼 광채를 잃어가던 그의 눈빛에 오랜만에 이채가 돈 것입니다.

“그대에게 아직 공석인 4층의 교도관 자리를 맡기고 싶습니다. 어떠신가요.”

“불신자를 신격으로 올려주겠다는 말은 짓궂은 농담처럼 들리오만.”

“신격 존재가 되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이건 결코 포상이 아닙니다. 푸르가토리움의 교도관이 된다는 것은 영원불멸의 신격이 된다는 뜻. 하지만 그 대신에 다시는 윤회의 고리에 합류할 수 없으며 우주가 사멸할 때까지 관리자의 숙명에 붙잡혀 있어야 한답니다.”

네, 용사님. 놀라셨습니까?

사망도 허락되지 않는 무기징역의 장기수(長期囚).

그것이 바로 강고한 힘을 휘두르는 교도관들의 본질입니다.

바로 그것을 교도관장은 사니릭투스에게 제안한 것이지요.

“내게 선택권은 있는 거요?”

“물론이지요. 저는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이나 자유의지를 가진 자들을 사랑합니다. 그대는 당연히 제안을 거부할 수 있어요.”

교도관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대에겐 못다 이룬 숙원이 하나 있지 않나요? 바로 그것 때문에 그대가 만든 자동인형이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것이기도 하고.”

“내가 교도관이 되면…… 숙원을 이룰 방도가 생긴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사니릭투스는 주변에 피워올린 수천 개의 촛불이 모두 사그라들 때까지 고민하였습니다.

마지막 불꽃이 회색 연기를 남기고 죽어버렸을 때,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주황색 머리카락의 소녀.

“교도관이 되겠소이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신격에 오르다. 그대에게는 역설의 신명이 어울리겠군요.”

4층의 교도관 ‘침묵으로 통곡하는 검’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까마득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교도관 사니릭투스 앞에 육중한 덩치를 가진 자가 찾아왔습니다.

맹수의 심장과 악마의 눈빛을 한 죄수.

만전불패의 검투사 르팔타커스 시온이었습니다.

“화신체를 만들지 않았군, 교도관. 그런 연약한 본체를 드러내놓은 주제에 짐의 앞을 막아서려는 건가.”

사니릭투스는 르팔타커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숙원을 위해서 교도관이 되었소이다. 아래층의 죄수가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을 하등의 이유가 없지.”

“저 포탈 너머로 짐을 그냥 보내주겠다?”

“나는 ‘지금’의 당신에겐 볼 일이 없소이다. 당신을 두 번째 만났을 때야 비로소 볼일이 생기겠지.”

오만한 전사 르팔타커스의 입가에 초승달이 걸렸습니다. 교도관의 답을 비웃은 것이지요.

“짐을 막아서지 않는 걸 보면 그 뱀대가리 녀석과는 달리 눈치가 있는 녀석인가. 하지만 너의 기대는 응답받지 못할 것이다. 짐은 이대로 계속 층을 올라가 이 감옥을 벗어날 테니까. 너와 짐이 만나는 건 이게 마지막이다.”

사니릭투스는 대꾸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자신의 기대가 들어맞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일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러갔으나 형량 무한의 신격이 된 사니릭투스에게 그 긴 시간을 견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르팔타커스 시온이 침통한 표정으로 4층 무저갱에 다시 발을 디뎠습니다.

“부족했다, 부족했어…….”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발톱이 꺾이지 않았던 짐승이 눈앞에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사니릭투스는 르팔타커스의 손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무기’가 들려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단한 검을 들고 있구려. 지금은 부서져 있지만…….”

르팔타커스 시온의 기원검 네메시스.

장쾌함을 내뿜었던 그 대검은 이때 부러진 검신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었지요.

사니릭투스는 영혼 없는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왕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대가 그 검을 부러뜨려 각 층에 흩어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맞다. 후일을 위한 짐의 안배이지.”

“이 몸이 관리하고 있는 4층에도 그 파편을 남겨둘 수 있겠소이까? 그것이 내가 계속 간직하고 있던 부탁이오.”

르팔타커스는 황막한 무저갱의 풍경을 둘러보더니 혀를 찼다.

“짐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네메시스의 파편을 숨길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내 검의 존재감을 은폐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보이는군.”

그러자 사니릭투스는 자신의 배를 가리켰습니다.

“이곳에 찌르면 되지 않겠소이까.”

“……죽고 싶은 모양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쉬이 죽을 수 없는 팔자라오. 이래 봬도 신격을 획득한 교도관의 몸. 그대의 검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어찌 견뎌볼 수 있을 것 같소이다.”

“기원검의 권능을 탐내는 모양이군. 그 말로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하나 짐에게도 나쁠 것은 없는 제안. 각오는 되어있는가.”

“그럼 부탁하겠소.”

신도 죽일 수 있는 무기의 부러진 검신이 사니릭투스의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파천황은 손잡이만 남은 네메시스를 거둔 채 아래층으로 떠났고, 남겨진 사니릭투스는 기원검의 파편에 남겨진 힘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근본은 만물의 작동원리를 탐구하는 연금술사.

결국 사니릭투스는 기원검(Desire Sword)의 권능 일부를 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톱니바퀴 삼고, 교도관의 신격을 윤활유 삼아서.

사니릭투스는 4층과 5층의 경계선에 은폐되어 있던 푸르가토리움의 일부 ‘무기고’에 접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기고에 잠들어 있던 모든 무기들을 해방시켰습니다.

무저갱의 늪 위에 철골이 세워졌고,

그 철골 위에 벽돌이 날아와 건물을 만들었으며,

이윽고 무수한 도로들과 그 도로를 밝히는 마신주들이 솟아올랐습니다.

오토마타 레나스는 오페라 극장의 무대 위에서 눈을 떴습니다.

장구한 시간 동안 푸르가토리움의 무기고에 묻혀 있었으나 그녀의 의식이 느낀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습니다.

눈앞에는 텅 빈 객석.

어딜 보아도 그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되,

다만 목소리만이 들려왔습니다.

“내 딸, 레나스야.”

“주인님이십니까?”

“너와 나눌 이야기가 무척 많다만…….”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한 연금술사. 자신의 덧없는 욕망을 깨닫는 데에 이토록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인간.

그가 이 오토마타 소녀를 위해 다시 도시를 부활시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인간이었던 시절 못다 했던 소소한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었어요.

“자장가를, 다시 한 번 불러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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